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냉큼 수상작인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었다. 그 때, 아 이 작가 참 잘 쓰는구나 했었고, 내 마음에 드는 작가야 싶었다. 덕분에 번역이 되어 나올 때마다 열심히 모으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데...
대체로 이런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빨강머리 여인>을 읽으면서... 아 작가의 절정이란 그런 시기란 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으나 왠지 애초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느꼈던 그런 감동은 없어서 다른 책들보다 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는 것 같다.
이 책 <빨강머리 여인>은 왠지 이전의 여러 작품들이 짬뽕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이디푸스 신드롬과 나는 잘 몰랐던 동양의 비슷한 이야기, 뤼스템과 쉬흐랍 간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터키의 발전상들이 겹친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결말도 그 신화들, 이야기들과 통하고 있다. 물론, 예상은 되는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아 맞았어 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실망스러워 이런 건 아니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풀어나가는 이야기 솜씨가 있어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결국 신이 말한 대로 되었군." 마흐무트 우스타는 말했다. "그 누구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거지." (p75)
아마 이 구절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운명이라는 것. 그게 무엇인지 잠시 이 구절에 머물며 생각. 아버지가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고 그런 아버지의 부재는 '나'에게 일생의 숙제였다. 그러다가 우물 파는 장인인 마흐무트 우스타를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빨강머리 여인'이 운명처럼 마음을 흔들고... 이 만남들이 '나'의 인생을 많이 바꾸어 버린다... 아주 많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알게 되는 여러 사실들도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온 아니 살아오고자 노력했던 '나'의 인생에 파문을 일으켰고.
아버지의 목, 피부에 눈길이 멈추었다. 내가 일곱 살 때 한번은 어머니, 나, 아버지 이렇게 셋이 헤이벨리섬 해변에 간 적이 있다. 내게 수영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나의 배를 받치며 물속에 놓았고, 나는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안간힘을 다해 헤엄쳤다. 내가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조금 더 헤엄을 치고 빨리 배우게 하려고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고, 나는 조금 더 헤엄을 쳐야 했다. 고함을 질렀다. "아빠, 가지 마세요!" 내가 소리를 지르고 당황한 것을 본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강한 팔로 나를 고양이처럼 잡아채 물에서 꺼내 바다에서조차 아주 특별한 향기(값싼 비누와 비스킷 냄새)가 나는 목과 가슴에,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목 바로 그 부분에 내 머리를 기대헤 했다. 그런 다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얘야, 그렇게 두려워할 것 없단다. 봐, 내가 여기 있잖니, 알겠어?"
"네, 알았어요."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p251)
돌아가신 아버지를 쳐다 보며 기억하는 '나'의 모습에 괜한 안스러움을 느낀다. 사춘기 시절에 절실히 필요했던 아버지가 부재했었고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던 '나'에게,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들이 조각조각 떠오르면서 그것이 일생의 의지였음 또한 느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굳건했던 아버지, 나에게 큰 의지가 되리라 믿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도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아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긴 소설에서 이 부분이 유난히 인상에 남은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기 때문 아닐까.
오르한 파묵의 책을 앞으로도 계속 읽을 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는 이 작가의 절정을 이미 맛보았기에 어떤 작품으로도 그걸 대체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