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어느 날 철학자 탈레스는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트라케(발칸반도 동부지역, 그리스령과 터키령으로 나뉨)의 하녀가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트라케의 이 하녀는 총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몸은 지구에 두면서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철학자의 삶을 이토록 재치 있게 조롱했으니 말이다. (p5-6)

 

여기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하녀는 웃었고 누구는 재치 만점이라고 했지만 철학자들은 이를 무지한 대중의 상징으로 삼았다 한다. 발치에만 눈을 두고 다니는 이들을 비웃으며, 철학자의 눈높이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그런 문제의식, 그러니까 하늘을 볼 것이냐 땅을 볼 것이냐... 이런 화두로 시작하는 책이다.

 

제일 첫 장의 제목이 이것이다.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을 잃은 지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음을, 아니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인간이 가진 참된 것이 드러난다는 걸 철학은 말해준다. 깨달음은 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p20)

 

리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에서 시작하는 이 장은, 뉴욕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던 2003년 8월 15일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정전이 발생하자, 뉴욕의 밤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쳤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에 큰 재난이 닥치고나서야 뉴욕의 시민들은 그동안 그들이 '별들의 지붕' 아래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기 위해 공동체를 꾸려나가게 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서로를 도와가며 이끌어가며 그렇게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그래서 솔닛은 그 공동체들을 '낙원'이라고 부른다. 낙원이란 우리가 휴가 갈 때 가고 싶어하는, 드넓은 바다와, 해변과, 칵테일과 이런 것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문제와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창의성과 자유라고 말한다. 철학은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천국에서 철학은 할 수 없다. 이겨내야 할 것이 없으니까. 그냥 늘어져버리면 그만이니까.

 

문득,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만큼 철학하기 좋은 나라도 있나 싶기도 하고.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내참, 알 수는 없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거다. 철학은 인류의 공통적인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경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동물인 것을 감안할 때 그 나라 특유의 상황에 걸맞는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마지막은 다 닿아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철학자들의 책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유명한 해외의 석학들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 발딛고 살면서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는 그들이 그 함의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 궁금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저자의 생각에 백프로 다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해도, 우리의 현실에서 뽑아낼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잘 썼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요컨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는 말이란 한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옳은 말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세상에 옳은 말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을 뿐이다. (p251)

 

그래서 수많은 특강들을 좇아다니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의지는 고마우나 그것이 체화되지 않는다면 그냥 그것에 그치고 만다고 일침한다. 내가 내 속에서 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것을 되새김질할 때만이 내 것이 된다는 것.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해야 완성되는 것. 나도 같은 생각이다.

 

 

 

 

 

 

 

 

 

* 찾아보니 다양한 책들을 펴낸 분이다. 니체에 대한 책들이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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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9-10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두고 있었는데... 비연님 리뷰 보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비연 2018-09-10 21:39   좋아요 0 | URL
홋~ 쉬엄쉬엄 읽으시면 재미날 거에요^^ 어려운 글은 아니고 짤막한 에세이 형태이긴 한데 생각할 거리는 던져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