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읽었다. 하나하나 새겨가며 읽어야했기도 했고 최근 저녁마다 약속이 있어서 책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이 책 오늘 좀더 읽고 자야지 하다가도, 씻고 누우면 피곤해서 책을 떨어뜨리기 일쑤인 나날들이었다. 즐겁기는 했으나 지나고 나니,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나고 다닐 이유가 있는가 싶어 내심은 조금 착찹한 마음마저 든다. 아마 내가 요즘 많이 외로운 모양인가. 들어오는 약속을 거부함없이, 바로 이번 주, 아니면 다음 주 이렇게 약속을 잡고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약속을 잡아대니 주중에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뜻없는 행위들이었다 라는 반성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다.
다음으로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Frederik van Eeden)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로 길섶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 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며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 425~426 pp
책의 말미에 적힌 이 단락을 읽고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요즘 상태가 안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워낙 시달리고 있는 최근인지라, 이 말이 너무나 위로가 되어서인 게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20여 년의 무기징역수 생활을 겪었던 (20대에 들어가 40대에야 겨우 세상에 나온)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라, 말씀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 지도 모르겠다. 오랜 인고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거친 후 내린 결론...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 남의 말에 굴복하지 마라. 남의 논리에 휘둘리지 마라. 너는 너일 뿐... 그게 자유(自有)로운 인간이며 이 세상에 올곧게 살아 있는 자부심이다 라고 전하는. 어제까지 받은 숱한 상처들이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돌아가신 선생님의 마지막 책을 읽으며, 그 책의 가장 마지막에 적힌 이 말,
'감사합니다.'
를 보면서 나 또한 하늘나라 저편에 계신 선생님께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 책이 좋은 건, 마치 내 사정을 아는 것처럼, 이리 다가오는 글들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내게 던저지는 글들. 위로의 글들. 그리고 그 다가옴에 반응하는 나를 바라보는 게 좋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미 세상에 없지만 (가끔, 지금 살아계셨다면 어떤 메세지들을 주셨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남기신 글들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자신감을 가지게 하니,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