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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손
존 어빙 지음, 이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나는 처음 4분의 1정도를 읽었을 때까지도 이런 이야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존 어빙의 유머를 즐기면서도, 과연 이 별 생각 없이 사는 잘생긴 남자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이 작가는 어쩌자고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는 걸까, 중간중간에는 걱정마저 됐다.
끝까지 읽고 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진짜 사랑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무엇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던 사람을 열망하게 만드는 과정이 보기에 좋았고 나도 같이 안달이 났다.
패트릭 월링퍼드는 그의 얼굴을 보는 누구라도 자연스레 호감을 갖게 되는 그야말로 ‘훈남’이다. 덕분에 크게 애쓰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살아도 한 뉴스방송국의 기자 자리에 않게 되고 원 없이 여자들도 경험한다. 결코 먼저 유혹하지 않지만 결코 거절하지도 않고 그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자신을 열어둔 채 흐르는 대로 사는 속 편한 남자였다.
그러다 인도 한 동물원에서 사고로 맹수에게 왼손을 먹히고 그의 인생은 바뀌는데, 사실은 그것조차 스스로의 깨달음이나 의지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그 왼손을 먹히는 장면을 본 한 여자에 의해 변화를 유도 받게 된 것이다. 그만큼 패트릭 월링퍼드는 ‘본인의 의지’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오토 클로센 부인 역시 목소리 하나로 남자를 녹일 만큼 고유의 매력을 가진 여자다. 어쩌면 그 강력한 매력 때문에 남편도 사고를 당한 건지 모르겠다. 여자의 강력한 매력은 남자의 강력한 질투를 부르고, 남자의 강력한 질투가 술과 만나면 이처럼 불의의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는 법이니까.
다만 클로센 부인이 월링퍼드와 다른 점은,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러한 극명한 차이가 월링퍼드로 하여금 그토록 깊게 빠져들도록 했던 것 같다. 극과 극은 결국 서로 만나게 돼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클로센 부인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매력적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지금까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 모든 것이 다 그녀의 계산에 의해, 철저히 그녀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남편을 향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남들이 봤을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게 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두 잉꼬 부부는 함께 TV를 보던 중 패트릭이 사자에게 왼손을 먹히는 장면을 본다. 클로센 부인은 다른 여자들과 다름 없이 패트릭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만큼 강한 동정심을 갖게 된다. 오죽하면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에게 기회가 된다면 본인의 손을 TV에서 처음 보는 그 훈남 기자에게 기증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러한 제안이 부른 순간적인 정신분열에 의한 사고로 남편이 죽자, 지체하지 않고 그 손을 들고 월링퍼드에게로 가는 것이다.
과연 클로센 부인의 진짜 마음은 뭘까, 남편도 사랑하지만 매력적인 월링퍼드에게도 너무 강한 끌림을 느껴 의도적으로 유혹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사랑을 보존한 걸까.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글쎄, 클로센 부인의 진짜 마음은 잘 모르겠다. 보통 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떠한 시점에서 쓰더라도 결국은 주인공의 진짜 속마음을 어떻게든 알려주게 마련인데, [네번째 손]에서는 끝까지 알 수가 없다.
덕분에 클로센 부인은, 픽션 속 상대역인 월링퍼드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까지도 끝까지 신비로운 여자로 남았다. 좀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지금까지도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로서, 자기가 시작한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다 까발리지 않고 모호하게 남겨두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릇 작가들이란, 다 말해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알쏭달쏭 열린 결말을 내는 경우는 작가 자신도 어떻게 마무리 지을 지 몰라서일 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존 어빙이 이렇게, 다 말하지 않고, 다 설명하지 않고, 비록 소설 속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한 여자를 이렇게 복잡한 상태로 남겨두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트릭의 변화를 없어진 손과 여전히 남아있는 감각으로 설명해내는 탁월함에도 반했다.
사지가 절단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없어진 자리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패트릭 월링퍼드는 그 사실이 별로 놀랍지 않았다. 오토의 왼손가락 끝부분, 그토록 살며시 클로센 부인을 만졌던 그곳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지만, 패트릭은 그 손으로 그녀를 만질 때 진정으로 그녀를 느꼈다. 잠을 자면서 패트릭은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손을 얼굴로 들어올리면 없어진 손가락에서 아직도 그녀의 음부 냄새가 나리라고 믿었다. P.203
“계속 통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월링퍼드는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때는 시작만 하고 말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쑤시거나 욱신거리기 시작하면 이제 곧 통증이 우겠거니 하는데, 오질 않는 겁니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사라지는 거죠. 마치 어떤 차단기가 있는 것 같은ÿÿ 전기차단기 같은 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자작 박사가 말했다. 월링퍼드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자작은 그에게 접합수술 겨우 오 개월 만에 22센티미터의 신경이 재생된 일을 상기시켰다.
“기억합니다.” 패트릭이 대답했다.
“자, 이렇게 보면 됩니다.” 자작이 말했다. “그 신경들이 아직 할 얘기가 있다고.”
“아니, 왜 이제 와서요?” 월링퍼드가 물었다. “손이 없어진 지 반 년이 지났는데. 전에도 어떤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았어요. 이제는 정말 왼손 중지나 인지로 뭔가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왼손은 없단 말입니다!”
“다른 생활은 어떻습니까? 일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죠? 연애는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아니 진도가 나가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기억으로는 연애 문제로 골치가 좀 아팠던 것 같은데요. 아니 당신이 그렇게 말했죠. 명심해요. 그 밖에 다른 여러 요소도 신경세포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기엔 잘려나간 신경들도 포함되지요.”
“그 신경들이 ‘잘려나간’ 느낌이 안 든다는 겁니다. 내 말은.” 월링퍼드가 말했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자작이 대답했다. “당신이 현재 느끼는 감각을 의학적으로 ‘지각 이상’이라고 합니다. 지각을 벗어난 이상감각이라는 거죠. 한때 왼손 중지나 검지에 통증이나 촉감을 느끼게 해주던 신경이 두 번 잘려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사자에 의해, 그다음엔 제가 잘라냈죠! 하지만 절단부위의 신경다발 어딘가에 잘린 신경조직이 아직 자리를 잡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신경은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다른 수백만 개의 신경과 이어져 있고요. 그런데 만일 절단된 신경 끝부분에 있는 뉴런이 접촉이나 기억이나 꿈으로 자극을 받으면 자신이 과거에 늘 보내던 그 메시지를 또 보내게 되죠. 그러니까 왼손이 있던 자리에서 비롯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각은 왼손에서 나왔던 그 신경조직과 경로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 겁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월링퍼드가 대답했다(사실은 “잘 모르겠다”가 맞는 대답일 것이다). P.223
알고 보니 피부 속이나 위로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일컫는 용어가 있었다. “의주감이라고 하지요.” 자작 박사가 말했다.
역시나 월링퍼드는 이번에도 잘못 알아들었다. “네?”
“의주감입니다. ‘촉각적 환상’을 뜻하죠.” 자작이 다시 한번 말해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n이 아니라 m입니다.”
(* ‘의주감(formication)’을 간통, 간음을 뜻하는 ‘fornication’으로 잘못 들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결국 진짜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의도로 접근했든, 그게 진짜 사랑이면 사람은 변한다는 것. 지금까지 이 리뷰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 자작 박사 역시, 비록 의외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사랑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별 생각 없이 일하던 패트릭을 한 인간으로서 철학하게 하고, 한 전문직 종사자로서 존재감을 갖게 한다.
죽음과 악천후는 TV의 최고 장기였다. P.237
언론이 명사들에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단 두 가지다. 숭배하거나 버리거나. 애도는 숭배의 최고 형태이므로 명사들의 죽음은 분명 더 없는 기회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통해 언론은 그들을 숭배하면서 버렸다. p.249
좋은 소설과 영화는 뉴스 혹은 뉴스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아이템 이상이다. 좋은 소설과 영화는 읽거나 볼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전반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책이나 영화에 대한 누군가의 취향을 똑같이 흉내 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패트릭은 깨달았다. P.390
변화 전의 패트릭을 아는 사람이라면, 패트릭의 위와 같은 사유의 흔적들을 믿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패트릭은 변화를 거쳤다. 바로 그 위대한 사랑을 통해서 말이다.
이리하여 패트릭 월링퍼드는 네 번째 손과 함께 두 번째 삶까지 덤으로 얻고야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