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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1998년 즈음이었나? 김덕수 씨가 사물놀이 40주년을 기념해 [미스터 장고]라는 앨범을 낸 적이 있다. 오현란, 신해철, 정원영, 이하늘 등 대중가수들도 함께 참여해 국악을 무척 현대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명반인데,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 중 하나가 바로 2번 트랙 <공간>이라는 곡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공간>이라는 곡을 들으면, 이 ‘공간’이라는 곡이 만들어주는 나만의 ‘공간’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공간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공통적으로 평화와 신비가 공존하는 듯한 그런 공간이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한 공간 지각 말고 ‘기억에 의한 공간 지각’은 정말이지 시시때때로, 언제나 갑자기, 불현듯, 더 자주 일어났다. 멀쩡하게 일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과거 여행지의 한 길모퉁이가 생각난다든지,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음식점에서의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든지, 시끌벅적했던 술집에서의 기억들이 나를 찾아온다든지 하는 경험은 그야말로 일상이 됐을 정도로 나에겐 친숙하다.
기억하기 위해 많은 공간들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뒀지만, 정작 내가 시시때때로 불러내는 공간들은 사진 속에 박제해둔 곳보다는 무의식에 저장해둔 곳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 때의 마음, 그 때 내 눈이 보고 내 귀가 듣고 내 코가 냄새 맡고 내 피부가 느낀 것들의 총집합일 것이다.
[공간 공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에게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장소나 눈에 보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의 짬뽕이 만들어내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아름다운 공간들을 소개하고 그 공간에 대한 저자만의 해설을 들려주고 있는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영국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 테이트 모던의 탄생 배경과 저자가 생각하는 테이트 모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공간은 오감의 공감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났다.
2004년 12월 테이트 모던에 가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에 이곳은 내리막길이 있는 노오오오옾은 중앙홀 때문에, 건물 전체가 길고 좁고 높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테이트 모던을 다시 보니, 내 기억과 달리 홀 부분만 그런 모양새일 뿐인 게 아닌가.
당시 나는 아주 적은 여비를 가지고, 아주 타이트한 스케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하고 싶은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다. 혼자 낯선 런던의 거리를 떠돌다가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홀에 들어섰을 때는, 무거운 배낭여행을 돈 주고 맡긴 후 가벼운 몸으로 갤러리를 즐길 것인가, 돈을 아끼기 위해 그냥 좀 더 배낭 무게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를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마음으로 홀 입구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지금껏 그 홀의 모양이 건물 전체의 모양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지에 나오는 그림도 그냥 표지로만 보았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떤 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책표지 정도로만 인식됐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 공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고 나니, 이 공간이 느껴졌다. 창과 창 사이로 스민 빛이라는 걸 몰랐을 때는 벽에 그려진 무늬로만 보였던 이곳이 지금은 아무리 다시 봐도 움푹 팬 창이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곳을 가본 적은 없지만 이곳을 잘 아는 저자의 설명으로 인해 나는 이 공간에 대한 공감각이 생겼다.
더불어 책을 읽고 나니 ‘김종진’이라는 저자도 마치 내가 가 본 하나의 공간처럼 인지가 된다. 테이트 모던에 대한 기억처럼 주관적으로 왜곡된 인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느끼기에 저자는 지적이고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열린 사람인 것 같다.
공간을 바라보는 편협하지 않은 시선도 좋고 책 중간 중간, 그리고 책의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해놓은 지혜로웠던 앞 세대들의 철학을 풀어놓은 부분도 굉장히 좋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는 네 가지 특질이 한데 겹쳐질 때 진정으로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네 가지는 '땅 위에 있음', '하늘 아래에 있음', '신성함을 마주함', '죽음의 운명 속에서 살아감'이다. p.43
이리도 명쾌할 수가! 특히 땅 위에 있음, 하늘 아래에 있음 너무 좋다. 쉽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고.
완전한 침묵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침묵도 소리라고 말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가 무반향실에서의 체험 이후 쓴 글을 인용한 부분도 역시 좋았다.
"나는 두 개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높은 음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음이었습니다. 음향 엔지니어에게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높은 음은 내 몸속의 신경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이고 낮은 음은 피가 순환하는 소리라고 말이죠." p.195
소리가 전혀 울릴 수 없도록 했음에도 내 몸속의 신경 시스템이 작동하는 높은 음이 들리고, 피가 도는 낮은 음이 들리는 경험. 어떻게 보면 전적으로 인간의 오감과 체험을 통해 인지하는 공간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실제로 스스로의 감각 중 일부를 통제해 일부만으로 뭔가를 느낄 수는 없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다.
[공간 공감], 결코 건축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다시 보게 해주고, 새롭게 알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 참 고마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