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2집 우정모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쓸쓸한 표정으로 추는 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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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걸작의 뒷모습 - 옥션에서 비엔날레까지 7개 현장에서 만난 현대미술의 은밀한 삶 by 세라 손튼 

비밀스럽고 때로는 배타적이기까지 한 현대미술과 미술계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사람들이 살아가고 거주하는 일상적 공간으로서 미술계는 어떤 곳인지, 소위 걸작이란 어떻게 탄생하고 유통되는지 들여다본다. 「뉴욕 타임스」와 런던「선데이 타임스」가 선정한 2008년 ‘최고의 미술책’에 이름을 올렸고, 「인디펜던트」에서 2008년 “올해 최고의 책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항상 흥미를 끄는 건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 아니었던가. 최근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아주 재기발랄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후 예술에서 걸작과 거장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을 보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2. 후쿠다 시게오의 디자인 재유기 by 후쿠다 시게오 

단순화된 형체와 트릭아트를 융합시킨 시니컬한 ‘놀이’ 정신이 넘쳐나는 디자인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후쿠다 시게오의 에세이집. 이제까지 발표한 후쿠다 시게오의 저작물과 인터뷰, 그리고 신문, 잡지, PR 잡지 등 약 200점의 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위트와 유머를 담은 ‘놀이’ 정신이 넘쳐나는 창조의 계보로, 위대한 영감과 탁월한 식견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작품이 독특한 사람은 발상도 독특하고, 작품이 놀이인 사람은 일상도 놀이일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의 저작물, 인터뷰, 각종 매체에 실린 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잠든 상상력과 창조력을 한 번 깨워보고 싶다. 

3. 매그넘 컨택트시트 by 크리스텐 루벤

매그넘 사상최초로 컨택트시트, 즉 밀착인화지와 작품을 함께 수록한 사진집으로, 2011년 가을 전세계 동시출간 된다. 1930년대부터 2010년까지, 인간과 세계를 기록한 우리 시대의 빛나는 사진 이미지들이 원본 밀착인화지, 사진가들의 현장노트, 관련자료들과 함께 508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면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욕심내는 건 그야말로 욕심인 걸 안다. 탐욕이다. 알지만 정말 갖고 싶다. 매그넘이라니. 밀착인화지와 작품이 함께 수록돼 있다니. 1930년대부터 2010년까지를 아우른다니. 아아아아 갖고 싶어라, 나의 소유욕이 가장 강하게 꿈틀댄다.

4. 마이클 잭슨, 진실 혹은 거짓 by J. 랜디 타라보렐리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평전.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마이클 및 잭슨 가족과 친분을 유지하던 저자가 30년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저자는 마이클 잭슨의 진짜 이야기를 추적하기 위해 타블로이드지의 루머와 비난들을 파헤치고 있다. 마이클과의 대화를 포함한 수백 번의 인터뷰는 화려함 뒤에 감추어져 있던 마이클의 은밀한 세계로 안내한다.  

마이클 잭슨이야말로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아닐까. 나조차도 숱한 소문들로 인해 진실을 보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This is it'의 감동, 이 책에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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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목신간 리스트를 쓰고 나면, 다 욕심이 나다가도, 막상 받아본 책이 다르면, 그냥 잊어버리고 만다. 

읽고 싶었던 책, 좋은 책들을 다 읽으려면, 사회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걸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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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술 분야도 잘 부탁드려요! ㅎ

karma 2011-10-1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고요한 제 서재에 들러 이렇게 답글까지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
항상 너무너무 감사해요.
한 달에 한 번씩 마구마구 설렙니다. 아 이번엔 어떤 책일까 하고요 :)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차갑고 깊은 물. 구병모의 소설은 차고 깊은 물 같다. 차가운 물에 들어갈 때는 준비운동을 해야하고, 가슴에 참방참방 물도 좀 묻혀둬야 하고, 그래도 들어가면 처음에는 차갑다. 정신이 확 든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쓰는 이 리뷰는 '마치 차갑고 깊은 물 같은 구병모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 

받자마자 책을 읽었으니 책을 읽은지 3주가 지났는데도,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집의 목차를 다시 찬찬히 읽으니 각 이야기들이 웬만큼 다 생각났다. 많은 훌륭한 소설집을 읽어왔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아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모든 소설집은 읽고 나서 3주가 지나도 제목만 보고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어야 훌륭하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그만큼 구병모 소설은 이야기 자체가 또렷하고 또 강렬하다. 발상부터가 기발하다. 이야기들의 성격은, 부산, 전주, 제천, 부천 등 우리나라에 수많은 영화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꼭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같다'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때로는 신선하고, 기이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한 번도 유쾌하지는 않았다. 한 젋은 소설가가 써낸 소설집 전체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이거 하나는 확신을 갖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유쾌하지 않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벌레를 일단 두꺼운 책을 던져 잡아놓고는 차마 책 밑의 시신을 확인하지는 않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덮어두고 싶어하는 얘기들만 끄집어내서 그걸 아주 기발하고도 괴기스러운 상상력으로 더욱 더 또렷하게 만들어 눈앞에 들이미니까. 

명목상 경제적 효용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비유가 금지된 폐허를 찾은 남자의 이야기, 무슨 영문인지 눈 떠 본니 인도 한복판에 몸이 쳐박혀 있었다는 남자의 이야기, 훌륭한 교사로 살기 위한 노력이 한 순간의 실언(정말 실언일까)으로 끝나버린 여자 이야기,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을 새들이 쪼아서 조장(鳥葬)해주는 시대를 살며 알바사기(?)를 당한 여대생 이야기, 잠들지 않는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가 오븐에 넣어 조리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여자이야기, 눈물샘을 꿰메버린 고통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 남자이야기, 그리고 성욕을 느끼면 몸속에 이식된 장치가 커다란 고철 괴물이 되어 몸밖을 뚫고 나오는 남자를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 

[고의는 아니지만] 속에는 이렇게 한 줄 정도로 요약만 해도 감당하기 버거운 이야기들이 잘 짜여지고 쓰여져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표지가 얼마나 책 그 자체인지 알 수 있다. 모두가 공중에 붕 떠서 공중부양을 하고 있듯이 비현실적이고, 어쩌면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해주고 서로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머리 대신에 바나나나 치아, 장미, 포크, 하이힐, 캔 따위를 달고 있으니 공포스럽다.   

 

마치 ......같은 이야기 

가장 처음에 나오는 <마치 ......같은 이야기>를 읽고 나니 우습게도 누구 한 사람이 떠올랐다. 누구 한 사람이 떠오른 걸 '우습다'고 표현한 이유는 비유라는 것이 무언가를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결코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비유와 상황묘사들이 모여서 누구 한 사람(지금은 한 사람이지만 결국은 아주 여러 사람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역설이기 때문이다. 

"이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실패작이야. 그냥 날생선을 우려낸 물도 이보단 낫겠어요." 

"생선이라니 그야말로 싱싱하지 않은 표현이로군요. 나로 말하자면 이건 병든 파충류의 분비물 같은 맛이에요." 

그러다가 일행 중 한 남자가 시인을 향해 손짓했다. 

"당신도 같은 걸 마시고 있으니 말해봐요. 이게 무슨 맛입니까?" p.13 

"왜 못합니까. 고작해야 비유일 뿐이잖아요." p.17
  

독재정권 하에서는 더욱 훌륭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쏟아진다고 했다. 감시와 검열을 피해서 표현을 다듬고 말을 돌리고 주체를 숨기다보니 비유와 상징이 정교해지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라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간단한 안주 하나를 먹으면서도 시를 쓴다.  

"만일 손님께서 그...... 제가 조잡한 표현을 사용하는 걸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의 핏빛 같은 술을 한잔 달라고 하느니보다 레드와인을 달라고 하는 게 실물로서의 술을 얻어내는 데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말하는 자와 그걸 듣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교양과 문화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p.19  

비유가 금지된 표면 상의 이유는 쓰지 않는 편이 '경제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면의 이유는, 인간의 말이라는 것 자체가 비유가 없이는 생동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고자 함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고 또 알고 있는 두 가지 비유법을 금지하는 데 성공하자 나머지, 대상물 자체가 말의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환유니 제유 같은 것들은 힘들이지 않고 차례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만, 사실 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사라졌다기보다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언어적 소양을 갖춘 경제 노동인구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수많은 말들 가운데 그것을 비유라고 뽑아낼 만한 예리한 식견을 갖춘 위정자도 흔치 않았기에 적발 사례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p.21 

그런데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봤자 위정자들은 이게 비유인지 아닌지 적발할 식견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어쩌고저쩌고 하면 넌 사람도 아니야' 뭐 이런 표현을 실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데, 알고 보니 비유법을 금지한 그 사람은 정말로 '사람도 아니었다.' 어떤가, 유쾌하진 않지만 통쾌하지 않은가. 

타자의 탄생   

제목에 대해서부터 생각해보면, '타자'라는 것은 뭐 특별히 탄생한다기보다 그저 존재하는 것에 가까운데 작가가 '타자'가 '탄생'한다고 제목을 붙여놓은 걸 보면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타자의 탄생>을 읽고 생각해보니, 타자는 그냥 내가 아니면 다 타자인데, 그 수많은 타자 가운데도 적지 않은 숫자의 타자는 나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남'이라든가, '타자'라든가 하는 말을 붙이기엔 좀 미안해진다. 분명히 '나 자신'도 아니지만 '남'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관계에 있던 사람과 다시 멀어지거나, 그 사람을 밀어내야 할 때가 오고, 자의든 타의든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을 때 '타자'는 '탄생'하는 것이다. 

시작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암튼 주인공 남자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길 한복판 이미 단단하게 굳어버린 시멘트 속에 정박한 상태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말을 걸고, 걱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준다. 완전한 타자였던 사람들과 조금씩, 순간이나마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처음의 관심과 관계맺기도 오래가지 못하고, 오히려 도시락을 갖다주던 아내와의 관계도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명확한 상태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길 한 가운데, 시멘트 속에 정박한 남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육체가 한 장소에 정박해 있으면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거나 비 그친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처럼 포복 전진할 듯 말 듯 뒤틀린다. 어쩌면 시간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며 타인이나 사물과 부딪치는 데에서, 혹은 부는 바람을 적극적으로 온몸에 맞음으로써 비로소 생성되는 미미한 파장의 한 종류인지도 모른다. p.63  

정박한 것은 몸이지만, 몸이 정박하면 시간도 덩달아 꼼짝할 생각을 않고,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진짜 타자는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도 타자가 된다. 

고의는 아니지만 

야, 쟤네들 봐. 쟤들은 되게 예쁜 거 한다. 그 말에 원탁의 아이들은 우르르 일어나서 그들과 자신들 사이에 놓인 강의 폭과 깊이를 깨닫는데, 그건 곧 준비물을 가져온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미술 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목도하는 것이다. p.87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삶은 '그들과 자신들 사이에 놓인 강의 폭과 깊이를 깨닫'는 일인 것 같다. 처음에는 어렴풋하게 느낄 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목도하'게 된다. 엄마 아빠가 바쁜 아이들은 그 일을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시작한다. 

다 아는 얘긴데, 어쩌면 나도 겪었던 얘긴데, 구병모의 담담하고 무신경한 서술은 그것을 좀 더 또렷하게 만든다. 그리고 구병모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런 아이들을 가르쳐야하는, 준비물을 가져오는 아이들과 매번 가져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야 하는 교사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녀는 누구한테 휘둘러버릴 것만 같은 주먹을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 속으로 감추고 마지막 남은 관용을 바닥까지 긁어 설득 조로 말했다. p.101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차별하지 않고 모든 아이를 똑같이 대하려고 애쓰지만 교사도 인간인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구한테 휘둘러버릴 것만 같은 주먹을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 속으로 감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 두 번, 결국 그녀는 그렇게 감추어왔던, 대신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주먹을 한 순간, 한꺼번에 휘두르고 그것이 결국은 비극을 부른다. 

아, 이쯤 쓰고 나니 정말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 말을 한 그녀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차이가 점점 더 또렷해지는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를 때는 상황이 달라져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면 나는 어쨌든 아이의 준비물을 잘 챙겨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더욱 더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할까.  

치열한 고민 끝에 단순한 결론 한 가지를 얻는다. 아이들 교육비와 심지어는 준비물들까지 다 유치원에서 준비해주면 어떨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돈을 지원하면 어떨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랏돈을 운용하는 작자들이 돈을 좀 합리적으로 잘 써주면 어떨까. 근데 그렇게 한다고 한들 아이들이 그 어떤 상처로부터도 보호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이 리뷰에서 도대체 몇 번의 질문을 하고 있나. 구병모의 소설이 이런 질문들을 만든다.

조장기 (鳥葬記) 

죽음의 냄새라니, p.123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멈추어 있던 사람들에게 새의 무리가 날아와 그를 쪼아죽인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란다. 웃을 때 쓰는 근육보다 우울한 표정을 지을 때 쓰는 근육이 확실히 적다. 그러니까 움직임이 적다는 것은 어쩌면 '우울'이나 '좌절' 같은 말과 가깝다. 이런 점을 포착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구병모의 재능이다.

그리고 '우울'이나 '좌절' 같은 말과 가까운 한 여대생. 학비를 벌어야 하지만 못생긴 데다 특출난 재주도 없다. 그런 여자가 쉽게 구한 일자리는 뭔가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그만두려고 하는데 그것마저도 쉽지가 않다. 좋은 일자리는 구하기가 어렵지만 힘든 일자리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고,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휘말리는 게 더 쉽다.  

자신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우울과 좌절과 죽음의 기운을 의식하며 두려워할 정도로 그녀는 다행히 아직 건강하지만, 곧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게 될까봐 무섭다. 뭔가를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 땅의 청년들이 가엽다.

어떤 자장가 

이번에는 자신의 논문 대신 남의 논문이나 레포트를 대필하며 잠자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다. 아이는 자지 않고, 남편은 깨지 않고, 독촉 문자는 온다. 갖은 방법으로 아이를 재우려고 해봐도, 재우려고 할수록 자지 않으려고 하는 딸과 여자는 거의 사투를 벌인다.

자라면서 아이는 여자가 자신을 재운 뒤 다시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걸 조금씩 눈치챘으며, 그 무언가가 마치 비밀스러운 제사나 의식이라도 되는 줄 알고 그 현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점점 더 오래 깨어 있기 시작했다. p.160  

이런 상황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구병모가 제시한 해답은,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오븐에 넣어 익히는 것이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서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여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환상. 아니면 잠을 거의 자지 못하다보니 멍한 정신에서 자기도 모르게 불러낸, 진심이 섞인 자신의 무의식. 

얼마 전에 들은 정말 결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 지인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우리 아내는 말랐는데도 팔 힘 하나는 정말로 세. 나는 우리 애를 30분도 못 안고 있겠는데, 우리 아내는 3시간도 안고 있더라니까. 와우, 정말로 팔 힘이 세." 자기 아내가 자기 딸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지, 오븐에 넣고 굽는지도 모르는 채 자고 일어난 남편이 겨우, 그리고 버티다 못해 잠든 모녀를 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최고다. 이렇게 시니컬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결말이라니.

재봉틀 여인 

"뭐 잘했다고 울어?"는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아주 보편적인 발화이다. 뭘 잘했다고 우는 게 아닌데, 뭘 잘했다고 우느냐 물으면 그게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난감하고, 그렇다고 나는 눈물을 딱 그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는 애초부터 안 우는 게 최곤데, 애초부터 안 울 수만 있다면 안 울었겠지. 그러니까 "뭐 잘했다고 울어?"라는 말을 들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히려 눈물이 더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뭐든 꿰메준다는 재봉틀 여인을 만난다.

"손님, 무엇을 꿰메드릴까요?" p.184 

뭐든지 꿰메준다고 하면 과연 나는 뭘 꿰메달라고 했을까. 무서웠을텐데 겁도 없이 이 남자는 그 재봉틀 여인에게 뭔가를 꿰메달라고 했고 그 덕에 그는 더이상 울지 않게 됐다. 하지만 울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울지 않는다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그는 차에 부딪혀도 울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사랑앞에서도 아주 시크한 사람이 됐다. 그래서 그는 행복했을까. 

곤충도감 

난감하다. 그러니까 구병모의 재주는 그냥 둬도 난감할 상황을 더 난감하게 이야기하는 것인 것 같다. 이걸 어째야하나, 이럴 경우 어떡해야 하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는 질문만을 이야기 속에 교묘하게 섞어서 마구 던져대니까.  

오락실에서 1945 게임할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쏴서 없애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들이닥치는 폭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은 내가 뻥! 하고 사라져버리던. 아마 구병모가 던지는 질문에도 한꺼번에 다 대답을 찾으려다 보면 결국은 뻥!

어떤 계기로 인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지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p.226 

범죄이기도 하고 범죄가 아니기도 하고, 잘못이기도 하고 꼭 잘못이라고 말 할 수 없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고,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아, 정말 어쩌라고! 하는 반항아적인 대사가 절로 나온다.  

성범죄자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그리고 사회의 시선을 바라보는 구병모의 시선은 언뜻 불분명해보이지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듯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가해자가 가해자가 된 것은 그 자신이지만,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제 본 [리틀 칠드런]이라는 영화 속 소아성애자 로니와 그의 엄마가 떠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구병모의 질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상당히 동의한다고 해도, 재발율이 높은 성범죄자의 죄를 한 번의 실수로 생각하고 아무런 편견 없이 봐줄 수 있을까. 또 그건 자신이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모르겠다'는 답이 비겁하다는 걸 알지만, 정말 모르겠다. 

 

다시 책 표지 이야기를 하자면, 표지 속 일곱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결같이 두 다리 곱게 모으고, 두 팔은 얌전히 차려 자세를 한 모습이다 (임산부만 가볍게 배를 받쳐들고 있다). 처음에는, 그리고 어릴 때는 다 다르게 시작하지만 결국 삶은 살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 보면, 다들 이렇게 누가 구령이라도 부른 것처럼 '차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렇게 굴욕적이고 무의식적인 차려 자세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많은 방법 중 하나로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이 어쩌면 우리를 뭔가 좋은 답 근처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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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 Incend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히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오프닝 시퀀스라고. 많은 사람들은 충격적인 결말을 이야기하지만 [그을린 사랑]은 이미 오프닝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선명한 초록도 아닌, 아름답고도 축축해보이는 그 초록에서 시작해 그 아이의 발뒤꿈치와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와 카메라를 무표정하게, 하지만 똑바로 응시하던 그 아이의 눈빛. 영화가 바로 거기에서 끝이 났어도 나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냐"고 욕하지 못했을 것 같다. 모든 걸 다 말해주는 눈빛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을린 사랑]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강렬하게 시작된 이야기니까 더 강렬하게 끝내야했을까.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극장 안 사람들은 참지못하고 소리를 냈다. 마지막 진실마저 모습을 드러냈을 땐 극장 안이 병원 같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진실에, 관객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함께 영화를 본 이는 구토증세와 복통을 호소했다.

감독(연극의 원작자라고 해야하나, 암튼)은 왜 이렇게 뒤엉킨 편집과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관객들에게 줬을까. 기교가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게 이윤 아닐 거다. 이렇게 '말도 안 돼!' 라고 할 법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만들어내는 것이 전쟁이고 그렇게 처참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거나 '낯설다'거나 '원래 그래왔던 거야'라는 단순한 생각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전쟁통에는 말 되는 일보다 말 안되는 일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이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마음 먹었을 때 이것보다 더 약한(?) 결말은 생각하진 못했을 거다. 그러므로,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고 해서 이 영화에서 보여준 진실을 '영화니까 가능한 진실'이라고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뼈아픈 이야기이기에, 감독은 차분하게 순차적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보여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이었더라도 아마 이 얘기, 저 얘기가 시간 순서와 상관 없이 뒤죽박죽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현재의 쌍둥이와 엄마의 상사이자 친구인 공증인 아저씨의 행보와 그들의 기억과 엄마의 기억이 마구 뒤엉킬 수밖에, 달리 수가 없었을 거다.

여기에 중동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복잡한 도시, 빽빽한 인파 속에서도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비참한 삶은 비참하지만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라면 그 비극이 대조적으로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 과연 이 땅은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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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karma님 :) 글 잘 읽고 갑니다. 조만간 이 영화를 볼까 하는데, 마음 단단히 먹고 봐야겠네요.

karma 2011-09-2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로 마음을 바위같이 단단히 먹고 보셔야 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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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사과_ 나b책 

'첫 번째 청소년소설'이라는 말에 드디어 용기를 낸다. 서점에서도 몇 번이나 '영이'를 집어 들었다가 놓곤 했다. 왠지 아직은 읽을 용기가 안 났었는데 이제 읽어보고 싶다. 

2. 이청준_ 소문의 벽 

물론 요즘 젋은 작가들의 그것도 참 좋지만, 나는 옛 소설들의 제목이 참 좋다. 젊은 작가들의 제목짓기는 재기발랄하고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이젠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만한 연륜있는 작가들의 제목짓기는 뭔가 깊은 상징이 담겨 있으면서도 멋이 느껴진달까. 아직 1, 2, 3권은 없지만 꼭 1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으니까. 

3.  미쓰다 신조_ 산마처럼 비웃는 것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뽑혔다는 작품과 이 작품 중 고민하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기존 미스터리의 형식과 틀을 과감히 파괴해 나가며 그야말로 미스터리 문학의 신경지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니 한 번 읽어봐야지 않겠는가!  

4. 미야베 미유키_ R.P.G. 

미야베 미유키는 나를 일본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작가다. 정말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단순히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심연과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너무 멋있는 작가.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라는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이 미스터리가 궁금하다.' 더군다나 '모방법'의 다케가미 형사님이 나오신다니. 

5. 테이아 오브레트_ 호랑이의 아내  

그녀가 미국 문단에 등장할 때 받았다는 수많은 찬사들은 사실 오직 한 작가에게만 안겨져야할 법한 극찬이지만, 사실 나는 새로나온 책 목록을 넘겨볼 때마다 비슷한 말을 여러번 봤다. 그래서 그 말들을 믿는다기보다, 그저 '호랑이의 아내'라는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더는 설명할 수 없지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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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을 하루 넘겨 이 글을 쓰면서 왠지, 아... 

마지막이라니, 길고 긴 6개월이 이렇게 한 방에 훅 지나가나 싶어, 새삼 당혹스럽다. 

매달 이번 달에는 어떤 책을 선물받게 될까 생각하며 발표를 기다리고, 또 발표가 나면 도착할 날을 기다리면서 

'알라딘 증정'이라는 기분 좋은 도장 박힌 책의 책장들을 넘기면서 진정으로 행복했음을, 

나를 신간평가단으로 간택해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랑해요, 알라딘 :)  

(앗! 먼댓글을 엉뚱한데 걸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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