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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우연의 일치일까, 올 초 나는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동네 문방구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샀었다.

학교 다닐 때는 나도 누구나처럼 꽤나 그림을 그렸다. 아직 상상력이 마르기 전, 무엇도 귀찮아하지 않았던 그 때,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들은 잘 그린 그림으로 칠판에 다른 친구들 작품과 나란히 놓이기도 했고, 교내 예술제에 걸리기도 했고, 그 중 하나는 지금 내 방 구석 액자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랬기에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만 있으면, 다시 무엇이든 슥삭슥삭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결심하기 쉬운 연초이기도 해서 자신만만하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서 친구들 앞에서 선언도 했다.

“난 이제 그림을 그릴 거야.”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선물 받은 후, 그 때 샀던 스케치북 생각이 났다. 맨 첫 장은 그리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미완인 채로 두었고, 두 번째 장 역시 좀 더 나은 그림을 그리려 발버둥 치다가 여전히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의 저자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이 책을 시작했듯이, 나 역시 반성으로 이 책을 보기(‘읽다’라는 단어보다 ‘보다’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그림 자료가 풍부하다) 시작했다.

예쁜 빨간색 양장 표지에, 전문가로서는 초보 수준일 수많은 방식의 스케치들과 함께 간간이 저자의 생각을 글로 적어놔 우선 보기에 쉽고 편했다. 책을 잡고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책을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찝찝해졌다. 지금까지 본 그림을 흉내 내려다 실패해 미완인 채 덮어둔 스케치북 속 내 그림들이 생각났고,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 그림이라고 하니까, 이런 책까지 읽었으니까, 더더욱 그 스케치북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게 된 것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열어본 스케치북에는 종이 아래쪽 구석에 소심하게 그려놓은,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앤디 워홀 발바닥 때만도 못한 유치하고 어설픈 흉내가 떡하니, 어디 잡혀가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친구들이 그림은 잘 그리고 있냐고, 어디 한 번 보자고 안 해줘서 고마울 정도다.

어른이 된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비록 강제성을 띄긴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미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스케치북 한 장도 채워 넣지 못해 낑낑대고 있다니 말이다. 

틈틈이 다 읽은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의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면서, 버려둔 스케치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러다보면 나도 정말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까지 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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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네번째 손
존 어빙 지음, 이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나는 처음 4분의 1정도를 읽었을 때까지도 이런 이야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존 어빙의 유머를 즐기면서도, 과연 이 별 생각 없이 사는 잘생긴 남자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이 작가는 어쩌자고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는 걸까, 중간중간에는 걱정마저 됐다.

끝까지 읽고 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진짜 사랑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무엇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던 사람을 열망하게 만드는 과정이 보기에 좋았고 나도 같이 안달이 났다

 

패트릭 월링퍼드는 그의 얼굴을 보는 누구라도 자연스레 호감을 갖게 되는 그야말로 훈남이다. 덕분에 크게 애쓰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살아도 한 뉴스방송국의 기자 자리에 않게 되고 원 없이 여자들도 경험한다. 결코 먼저 유혹하지 않지만 결코 거절하지도 않고 그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자신을 열어둔 채 흐르는 대로 사는 속 편한 남자였다.

그러다 인도 한 동물원에서 사고로 맹수에게 왼손을 먹히고 그의 인생은 바뀌는데, 사실은 그것조차 스스로의 깨달음이나 의지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그 왼손을 먹히는 장면을 본 한 여자에 의해 변화를 유도 받게 된 것이다. 그만큼 패트릭 월링퍼드는 본인의 의지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오토 클로센 부인 역시 목소리 하나로 남자를 녹일 만큼 고유의 매력을 가진 여자다. 어쩌면 그 강력한 매력 때문에 남편도 사고를 당한 건지 모르겠다. 여자의 강력한 매력은 남자의 강력한 질투를 부르고, 남자의 강력한 질투가 술과 만나면 이처럼 불의의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는 법이니까.

다만 클로센 부인이 월링퍼드와 다른 점은,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러한 극명한 차이가 월링퍼드로 하여금 그토록 깊게 빠져들도록 했던 것 같다. 극과 극은 결국 서로 만나게 돼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클로센 부인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매력적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지금까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 모든 것이 다 그녀의 계산에 의해, 철저히 그녀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남편을 향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남들이 봤을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게 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두 잉꼬 부부는 함께 TV를 보던 중 패트릭이 사자에게 왼손을 먹히는 장면을 본다. 클로센 부인은 다른 여자들과 다름 없이 패트릭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만큼 강한 동정심을 갖게 된다. 오죽하면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에게 기회가 된다면 본인의 손을 TV에서 처음 보는 그 훈남 기자에게 기증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러한 제안이 부른 순간적인 정신분열에 의한 사고로 남편이 죽자, 지체하지 않고 그 손을 들고 월링퍼드에게로 가는 것이다.

과연 클로센 부인의 진짜 마음은 뭘까, 남편도 사랑하지만 매력적인 월링퍼드에게도 너무 강한 끌림을 느껴 의도적으로 유혹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사랑을 보존한 걸까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글쎄, 클로센 부인의 진짜 마음은 잘 모르겠다. 보통 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떠한 시점에서 쓰더라도 결국은 주인공의 진짜 속마음을 어떻게든 알려주게 마련인데, [네번째 손]에서는 끝까지 알 수가 없다.  

덕분에 클로센 부인은, 픽션 속 상대역인 월링퍼드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까지도 끝까지 신비로운 여자로 남았다. 좀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지금까지도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로서, 자기가 시작한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다 까발리지 않고 모호하게 남겨두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릇 작가들이란, 다 말해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알쏭달쏭 열린 결말을 내는 경우는 작가 자신도 어떻게 마무리 지을 지 몰라서일 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존 어빙이 이렇게, 다 말하지 않고, 다 설명하지 않고, 비록 소설 속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한 여자를 이렇게 복잡한 상태로 남겨두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트릭의 변화를 없어진 손과 여전히 남아있는 감각으로 설명해내는 탁월함에도 반했다

 

사지가 절단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없어진 자리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패트릭 월링퍼드는 그 사실이 별로 놀랍지 않았다. 오토의 왼손가락 끝부분, 그토록 살며시 클로센 부인을 만졌던 그곳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지만, 패트릭은 그 손으로 그녀를 만질 때 진정으로 그녀를 느꼈다. 잠을 자면서 패트릭은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손을 얼굴로 들어올리면 없어진 손가락에서 아직도 그녀의 음부 냄새가 나리라고 믿었다. P.203 

계속 통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월링퍼드는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때는 시작만 하고 말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쑤시거나 욱신거리기 시작하면 이제 곧 통증이 우겠거니 하는데, 오질 않는 겁니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사라지는 거죠. 마치 어떤 차단기가 있는 것 같은ÿÿ 전기차단기 같은 거요.”
, 바로 그겁니다.” 자작 박사가 말했다. 월링퍼드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자작은 그에게 접합수술 겨우 오 개월 만에 22센티미터의 신경이 재생된 일을 상기시켰다.
기억합니다.” 패트릭이 대답했다.
, 이렇게 보면 됩니다.” 자작이 말했다. “그 신경들이 아직 할 얘기가 있다고.”
아니, 왜 이제 와서요?” 월링퍼드가 물었다. “손이 없어진 지 반 년이 지났는데. 전에도 어떤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았어요. 이제는 정말 왼손 중지나 인지로 뭔가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왼손은 없단 말입니다!”
다른 생활은 어떻습니까? 일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죠? 연애는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아니 진도가 나가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기억으로는 연애 문제로 골치가 좀 아팠던 것 같은데요. 아니 당신이 그렇게 말했죠. 명심해요. 그 밖에 다른 여러 요소도 신경세포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기엔 잘려나간 신경들도 포함되지요.”
그 신경들이 잘려나간느낌이 안 든다는 겁니다. 내 말은.” 월링퍼드가 말했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자작이 대답했다. “당신이 현재 느끼는 감각을 의학적으로 지각 이상이라고 합니다. 지각을 벗어난 이상감각이라는 거죠. 한때 왼손 중지나 검지에 통증이나 촉감을 느끼게 해주던 신경이 두 번 잘려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사자에 의해, 그다음엔 제가 잘라냈죠! 하지만 절단부위의 신경다발 어딘가에 잘린 신경조직이 아직 자리를 잡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신경은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다른 수백만 개의 신경과 이어져 있고요. 그런데 만일 절단된 신경 끝부분에 있는 뉴런이 접촉이나 기억이나 꿈으로 자극을 받으면 자신이 과거에 늘 보내던 그 메시지를 또 보내게 되죠. 그러니까 왼손이 있던 자리에서 비롯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각은 왼손에서 나왔던 그 신경조직과 경로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 겁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월링퍼드가 대답했다(사실은 잘 모르겠다가 맞는 대답일 것이다). P.223 

알고 보니 피부 속이나 위로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일컫는 용어가 있었다. “의주감이라고 하지요.” 자작 박사가 말했다.
역시나 월링퍼드는 이번에도 잘못 알아들었다. “?”
의주감입니다. ‘촉각적 환상을 뜻하죠.” 자작이 다시 한번 말해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n이 아니라 m입니다.”
(* ‘의주감(formication)’을 간통, 간음을 뜻하는 ‘fornication’으로 잘못 들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결국 진짜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의도로 접근했든, 그게 진짜 사랑이면 사람은 변한다는 것.  지금까지 이 리뷰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 자작 박사 역시, 비록 의외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사랑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별 생각 없이 일하던 패트릭을 한 인간으로서 철학하게 하고, 한 전문직 종사자로서 존재감을 갖게 한다. 

죽음과 악천후는 TV의 최고 장기였다. P.237 

언론이 명사들에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단 두 가지다. 숭배하거나 버리거나. 애도는 숭배의 최고 형태이므로 명사들의 죽음은 분명 더 없는 기회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통해 언론은 그들을 숭배하면서 버렸다. p.249 

좋은 소설과 영화는 뉴스 혹은 뉴스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아이템 이상이다. 좋은 소설과 영화는 읽거나 볼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전반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책이나 영화에 대한 누군가의 취향을 똑같이 흉내 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패트릭은 깨달았다. P.390 

변화 전의 패트릭을 아는 사람이라면, 패트릭의 위와 같은 사유의 흔적들을 믿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패트릭은 변화를 거쳤다. 바로 그 위대한 사랑을 통해서 말이다

이리하여 패트릭 월링퍼드는 네 번째 손과 함께 두 번째 삶까지 덤으로 얻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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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단번에 산도르 마라이가 떠올랐다. 사실 독자로서, 한 사람의 많은 시간과 생각이 압축돼 있는 작품을 읽고 난 후 이런 식으로 서평을 시작하는 건 좀 미안한 일이다. 적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를 읽으며 산도르 마라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꽤 오래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을 열렬히 그리워하게 됐다.

각자의 독백 속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 혹은 새롭게 드러난 이야기들이 꼭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의 생각이나 믿음을 뒤집을 수밖에 없는 치밀한 서사 구조와 그것을 이야기하는 등장인물의 심연, 분명 작가 자신의 철학일 거라고 믿게 되는 각 캐릭터들만의 철학.

이런 방식은 내가 생각하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와 산도르 마라이의 많은 작품들의 공통점인데, 그래서인지 망구엘의 이번 작품에서 뒤로 갈수록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서 다르게 회상되는 인물과 사건들, 또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렇게 새롭지도 놀랍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았다.

현대소설들은, 영화도 그렇고, 왜 이렇게 일종의 ‘반전’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30년이나 지난 사건과 그 때의 인물들과 그 때의 감정들을 4명이나 되는 서로 다른 사람의 기억과 해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면 이런 식의 ‘반전스토리’ 형식을 지니는 것이 자연스럽긴 하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런 점들이 식상하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추리소설이 아니라면, 인물의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변화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나 반전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에 더 마음을 주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픽션들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그러니까 누가 봐도 매력적이라고 할 만한-에 탐닉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4명의 화자가 저마다 다르게 그리고 있는 인물, 주인공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가장 첫 번째 환상 속 여자에게는 외면당했다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할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외롭게 자랐다거나 하는 무시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런 약점들이 그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아픔을 간직하고 있어서 매력적인 인물, 특히 예술가들에 이제 조금 신물이 난다.

때문에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4장의 고로스티사의 목소리였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일까. 그의 목소리가 가장 담백하고 진실 되게 느껴졌다. 베빌라쿠아를 이야기하기 위해 베빌라쿠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쏟아놓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함으로써 그의 인생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했다는 점 역시 그의 이야기에 신뢰를 느끼게 했다.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는 가운데, 나는 그가 연인에게 읊어준 시구들만이 오로지 진실 같다.  

 

나는 가슴이 열매들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는,
그러고는 네 위에 떨어져 내려
너를 비옥하게 해주는 그 여름이라네.  

- 마누엘 J. 카스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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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미술관을 위한 일곱 가지 픽션 | 이유미, 최형순, 매트 브라운, 안주영, 김훈, 김지원, 손주영 (지은이) | 홍디자인 

전시, 음악 등 다른 분야와 흥미롭게 연계되어 있는 소설집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융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으로, 현대미술 전시의 융합 경향 중에서도 상당히 색다르고 독창적인 접근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 디자인 레지던스 작가를 포함한 일곱 작가의 디자인 작품이 영감이 되어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탄생되었다.   

너무 참신한 기획이다. 디자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 7편이라. 미술관이라는 장소는 분명 실재하는 현실의 공간이지만 미술관 안에서의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체험이므로 너무 잘 어울리는 기획이기도 하다. 하나의 디자인이 소설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만큼 상상력을 펼치게 하였는 가를 보면 작품의 넓이랄까, 융통성까지 함께 보이지 않을까 기대된다.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 이연식 (지은이) | 휴먼아트 

미술은 음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체였고, 음란함은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예컨대 사진과 영화는 발생 초기부터 음란한 내용을 담았고, 비디오와 인터넷은 포르노를 접할 수 있는 막강한 구실을 하며 급속히 확산되었다.  

'팜므파탈' 혹은 '옴므파탈'이라는 말은 요즘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쓰여 정말이지 식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로 만나는 '파탈들'은 너무 매력적이라 막상 직접 대면하면 항복을 외치게 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미술은 과연 어떤 제3의 성, 제3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굴복시킬지 궁금하다. 이 책이 단지 글자 그대로의 '음란함'에만 주목한 책이 아니길 빈다.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아트파탈-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11월 01일에 저장

미술관을 위한 일곱 가지 픽션
이유미 외 지음 / 홍디자인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1년 11월 01일에 저장
절판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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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1-0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완료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karma 2011-11-1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사합니다! :)
 
[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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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입에 담는 건 물론이고 머릿속에 잠깐 떠올리기도 싫은 범죄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모든 범죄자들이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또 자신을 정말 사랑해주는 연인이 있었어도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짝'이 있다면 범죄는 확연히 줄어들지 않을까. 나라에서 죄수 교화와 법치 관련해 쓰는 돈을 인연 찾아주기 프로그램에 쓰면 오히려 더 좋은 효과가 나오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얘기해봤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래서, 그 후론 정말 말았지만, 그리고 '천명의 백인 신부' 얘기와 따지고보면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또 한 번 '천명의 백인 신부' 리뷰를 쓰면서 이 이야기를 해본다. '리틀 울프'라는 이름의 인디언 족장의 제안이 어떻게 보면 나와 뿌리를 같이 하는 발상에서 비롯된 거라는 억지를 부려보려고. 
 
세상의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자신의 짝을 찾은 상태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정말 이게 맞다면, 세상의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비극적이기 짝이 없는 생각. 하다못해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무리에서도 늘 누군가 짝을 만나면 누군가는 혼자이기 때문에. 
 
어쨌든 리틀 울프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고, 어떻게 보면 순진하기 짝이 없고, 어떻게 보면 대담한 제안을 했다. 인디언과 백인들 사이의 융화와 평화를 위해서 천 명의 백인 신부를 보내달라고. 그러면 자기네들은 소중하기 짝이 없는 말 천 마리를 보내주겠다고. 역사에서는 당연히 이 제안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한 소설가의 머릿속에서는 이 대담하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받아들여진다. 
 
'실미도'에 투입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벼랑 끝에 있었던 것처럼, '천명의 백인 신부' 계획에 투입되는 천명에 턱도 없이 모자라는 숫자의 백인 여성들도 모두 각자 삶의 벼랑 끝에 있었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스스로 동참하고,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메이라는 당차고 솔직하고 뜨거운 여성을 주축으로, 백인 사회에서의 삶 대신, 그들이 '미개인'이라고 부르는 인디언 부족 사회에서의 삶을 선택한 다양한 여자들과 또 그녀들의 남편, 또 다른 아내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그들은 끊임없이 낯선 상황을 맞닥뜨리고, 겁 내고, 헤쳐가면서 조금씩 인디언 사회에 동화돼 간다. 서로 조금씩 다른 과정을 거쳐 서로 조금씩 다른 속도로. 
 
하지만 이런 현상을 단순히 '인디언 부족 사회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만 보기에는 뭔가 아쉽다. 각자 속해 있던 환경에서, 각자의 사연과 저마다의 이유로 배제됐던 그녀들이, 별다른 편견 없이 자신들을 바라봐주는 곳에서, '자기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인디언들의 눈에 그녀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들과 다른 백인 사회에서 온 여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특징을 잡아 이름을 지어주지만 그런 작명법에는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이 반영되지 않고, 그저 그들이 가장 먼저, 혹은 가장 자주 목격한 장면을 문자 그대로 설명하는 방식이 있을 뿐이다.  
 
   
  그 아이들은 갈색 피부에 건강한 활기가 넘치고 아주 사랑스럽다. 나이보다 성숙하고 건강해 보이며, 같은 또래 백인 아이들보다 품행이 바르다. 아이들은 너무 수줍어서 말도 제대로 못 걸고, 내가 사탕을 주면 엄숙하게 받아들고 까치처럼 깍깍거리며 달아난다. p.169  
   
 
   
  여자들은 사냥단 참여가 허락되지 않지만, 샤이엔 족은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는 데는 아무 편견이 없고, 피미는 사냥 솜씨를 확실히 증명했다. p.294  
   
 
메이는 그녀의 일기장에 인디언 부족 사회의 미덕을 이렇게 명료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미덕은 백인사회의 문화를 무조건 우월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인디언 부족 사회의 장점을 바라보면서도, 또한 그네들의 '미개함' 또한 메이의 시선을 통해 냉정하게 주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난 문제는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것 같아. 우리 사회처럼 미개인 사회에도 부자와 빈자가 있어. p.185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인디언들의 승전의식과 아직 낯선 술에 취해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벌이는 충격적인 행패들에 대해 충격을 받고, 가감 없이 비판도 한다. 
 
분명히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소설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와 살아있는 캐릭터들 또한 이 소설이 크나큰 미덕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가라앉는 기분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도 절대 해피엔드가 될 수 없겠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이것이 희극으로 끝맺어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책 읽는 속도를 자꾸 더디게 만들었다. 
  
이미 우리는 인디언들의 역사와 그들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또렷한 의식으로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가는 길이 편치 않다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충분히 실제 인물이었을 수 있는, '천명의 백인 신부' 속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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