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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니 보얀주 [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러 매체에서 "근래 가장 많이 거론될 작가"로 수차례 꼽힌 바 있는 신예 여성 작가 샤니 보얀주의 데뷔작.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접경지대에서 2년간 사격 조교로 복무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군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작품이다.

 

샤니 보얀주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영미권 작가들의 이름과는 또 다른 낯섦을 느낄 수 있어서 끌립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에서 실제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생생하고 솔직한 글이 기대가 됩니다. 사실 역사책 자체는 소설에 비해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모든 역사는 더욱 재미있고 와닿습니다.

 

2.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람들]

'밀란 쿤데라 전집' 2권.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제 작가 밀란 쿤데라의 유일한 단편집. 프랑스에서 1968년 출간된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농담> 다음에 출간되었지만 실은 정식 등단 전 처음으로 썼던 산문들의 모음이다.

 

밀란 쿤데라의 유일한 단편집이라니 어찌 읽고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밀란 쿤데라 전집을 한 권씩 사모으고 있는 콜렉터의 입장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신간입니다. 정식 등단 전에 썼던 산문들이라고 하는데 저는 대체로 대가들의 초기작들이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이전의 글이라고 하니 궁금해집니다.

 

3. 김사과 [천국에서]

2005년 스물한살의 어린 나이에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후 저돌적인 에너지로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며 한국문학의 가장 개성적이고 문제적인 작가로 성장해온 소설가 김사과의 장편소설.

 

김사과 소설은 읽고 나면 늘 찜찜합니다. 개운하지 않고 불쾌하지만 다음 소설이 나오면 또 어김없이 보게 됩니다. 그 찜찜함이 단지 거기에서 그친다면 다음 작품을 찾지는 않겠지요. 아마도 특유의 찜찜함은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느끼고 또 가능한한 피하고 싶어하는 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4. 류츠신 [삼체]

한쏭, 왕진캉과 함께 중국 과학 소설의 3대 천왕이라 불리는 류츠신의 작품. 2007년 40만 명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SF 잡지 「커환시제」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과학 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륙을 휩쓸었다.

 

신간 리스트를 살펴보기 전에는 중국 과학 소설에 대해 잘 몰랐고 그래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표지와 제목과 이 소개글을 모두 보고 나니 굉장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괜한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나라 작가가 쓴 SF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고 장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건 왜일까요.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니 보얀주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3년 10월 07일에 저장
절판

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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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7일에 저장

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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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7일에 저장

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15,700원 → 14,130원(10%할인) / 마일리지 780원(5% 적립)
2013년 10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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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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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추리소설이 좋아요!


[무덤의 침묵]은 한 꼬마의 생일잔치에서 발견된 뼛조각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뼈는 레이캬비크 외곽의 그라파르홀트 언덕배기에 있는 공사장에서 주워온 것입니다. 그곳에는 발견된 뼛조각의 나머지 뼈들이 묻혀 있습니다.

형사 에를렌두르는 뼈를 발굴할 수 있는 조사단을 부릅니다. 고고학자인 스카르페딘은, 빨리 그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내고 싶은 에를렌두르의 마음과 달리 느긋하기만 합니다.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유골과 그 주변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거죠.

만약 [무덤의 침묵] 1시간짜리 미드였다면, 그 즉시 각종 첨단과학장비로 뼈와 주변환경을 분석한 후 어렵지 않게 그 유골의 신원과 뒷이야기들을 밝혀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고고학자 스카르페딘과 아주 성격이 비슷합니다. 

"인내는 미덕이죠. 그 점을 명심하세요."

스카르페딘이 에를렌두르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인내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곧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말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스카르페딘은 답답할 정도로 신중하고, 마침 병리학자는 스페인으로 짧지 않은 휴가를 떠났습니다. 어차피 서둘러 유골을 파내어봤자 그것을 분석해줄 사람이 없으므로 에를렌두르는 부하들과 함께 자신들의 방식으로 꼼꼼히 사건을 조사합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덩어리로 진행됩니다. 에를렌두르 반장, 엘린보르그, 올리가 사건을 조사해나가는 과정, 고집 세고 무뚝뚝한 에를렌두르의 불행한 가족사, 그리고 초반에는 누구의 언제적 이야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한 처참한 가족의 이야기가 그 세 얼개입니다.

장르소설을 읽고 감상을 쓰면서 너무 줄거리를 자세히 언급하면 이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직 읽지 않은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줄거리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마 장르문학 팬이라면, 앞에 간략하게 소개한 내용만 봐도 대략의 줄거리와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짐작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무덤의 침묵]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골 혹은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모든 재미와 초점이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가 균형적으로 의미를 가진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보더라도, 그 유골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죽임을 당한 것인지 다 알고 이 책을 읽는다해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통을 겪었고 또 이를 수사하는 에를렌두르 이하 조사팀이 어떻게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는지를 보는 재미와 가치가 훨씬 큽니다. 뭔가 대단한 반전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장르소설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과정도 굉장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에를렌두르와 전 부인 할도라, 자신을 망가뜨린 채 아빠를 원망하는 딸 에바와 모든 것에 무관심한 아들 신드리의 이야기와 유골과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 그리고 수사 중에 만나는 사람들 간의 관계나 그들의 증언을 따라가다보면,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단순히 유골은 누구의 것일까 하는 것보다는 그 사이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 더 궁금한 거긴 하지만요. 그리고 동시에 그 유골이 특정인의 것만은 아니기를 하는 바람도 저절로 생겼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았든, 불행한 삶을 살았든, 모두 결국 죽긴 하지만 적어도 그 언덕에 그렇게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묻혀 수십년 후에 우연히 발견되는 형식의 죽음은 아니었기를 바라게 되는 거죠.

작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이 가정폭력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정폭력'이라는 네글자로 그 모든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직접 겪은 이에게는 이 단어가 결코 자신이 겪은 그 고통과 불행을 설명하거나 지칭하지 못합니다.

"이혼했나 보군요." 여자는 에를렌두르의 허름한 차림새를 보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렇습니다. 부인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가정폭력 사실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에를렌두르가 말했다. 
"영혼을 살해하는 범죄를 일컫는 편리한 말이죠. 그게 진정 어떤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쓰는 순진한 말 말예요. 평생 동안 영원한 두려움에 떨며 사는 인생이 어떤지 아세요?"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알고 보면 대부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또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의 순환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어 찬찬히 하나하나 다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관습을 통해 맺어지는 '가정'이라는 것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 또한 꽤 흥미롭습니다. 이미 결혼한 두 가정, 그러니까 에를렌두르 반장과 악마 (토르)그리무르의 가정은 결과적으로 결혼을 통한 행복한 가정 이루기에 실패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결혼에 이르지는 못한(않은) 두 가정, 벤자민과 그의 약혼녀, 그리고 올리와 그의 애인 베르그토라 역시 결혼하는 데 실패합니다. 

먼저 결혼한 두 부부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할도라와 결혼한 에를렌두르가 결혼할 당시 명확한 결혼관이나 의지나 확고한 사랑의 감정 없이 어쩌다보니 결혼하게 된 것처럼, 이미 한 아이의 엄마였던 그리무르의 아내(책 마지막 장까지 이름 없이 '엄마'로만 등장하는 이 여성) 역시 남편과 결혼할 당시 에를렌두르가 결혼하게 된 과정이나 동기와 비슷하게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올리는 반대로 사랑하는 것은 명확하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어 애인과 갈등을 겪습니다. 베르그토라는 결혼과 아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이것을 터놓고 이야기하지도 못합니다. 쉽게 터놓고 할 수 있는 성격의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죠. 근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면 둘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혼을 통한 안심과 확인이냐,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한 충실함이냐를 막상 이야기해보면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같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과거의 연인인 벤자민과 약혼녀의 경우도 결국 결혼은 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했습니다. 그리고 이 커플의 경우 전혀 다른 외부의 요인이, 어떻게 보면 또 다른 가족으로 인해 불행한 결말을 맞고 맙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직접적으로 가족을 때리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은 단순한 구타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태서 작가는 '그저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결혼을 하는 것' 또한 다른 식구들에게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에를렌두르는 그 결혼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헤어진 아내, 딸, 아들 모두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본인도 또다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영혼 없는 청혼을 받아들인 과거 이야기 속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결혼을 결정했다고 해서 그런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원해서 하는 결혼'과 '필요해서 하는 결혼', 혹은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결혼'은 분명 다른 겁니다. 작가는 그렇다면 과연 '결혼'은 무엇이고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꼭 누구를 탓한다기보다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여러 형태로 들려주면서 말입니다.

"기특하게도 벤자민은 언니에게 잘해 줬어요. 연애편지 같은 것도 썼고. 그 당시에 레이캬비크 사람들은 약혼을 하면 긴 산책을 나가곤 했어요. 평범한 구혼과정이었죠." p. 170

이 얼마나 아름답고 로맨틱한가요. 약혼을 하면 긴 산책을 나간다니. 그것이 평범한 구혼과정이라니. 그러니까 약혼과 본질은 바로 이런 데에 있다고 역설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않고, 죽지도 않은 올리 커플을 통해 어느 정도는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랑과 결합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역시 수많은 경우와 형태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만요.

이 소설의 또다른 장점은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매력 또한 느끼게 해준다는 겁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야. 우리는 이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건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지. 날씨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나빠지는지, 또 그 사람의 경우와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누구도 그런 일을 의심하지 않아. 그런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니까." p.124

에들렌두르는 그라파르홀트로 가는 길에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실종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욘 아우스트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욘 아우스트만은 1780년에 블론두길에서 얼어죽었다. 그의 말은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지만 욘의 유해는 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 손은 파란색 니트 벙어리장갑 안에 들어 있었다. p. 127

그러면서 동시에 장르소설에서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수법, 그러니까 맥거핀-헷갈리게 하기- 등을 활용함으로써 독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워낙 오래된 사건이고, 아이슬란드에는 인구자체가 많지 않으며, 날씨도 변덕스럽다는 점을 통해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도 보여주고, 추리 그 자체에도 독자를 개입시키는 거죠. 

이제 저는 며칠 후면 아이슬란드로 갑니다. 비록 짧은 열흘 동안의 일정이지만, 아이슬란드를 가기 전에 단순히 여행책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나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아이슬란드 작가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쓴 소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이 작가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연대기상으로는 이 [무덤의 침묵]보다는 [저주 받은 피]를 먼저 읽고 [무덤의 침묵], [목소리] 순서로 책을 봤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점은 다소 아쉽지만 이 책을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레이캬비크 중심부보다는 외곽 위주로 진행되고, 배경도 주로 1940년대이긴 하지만 뭔가 관광지로서의 아이슬란드보다는 생활터전으로서의 아이슬란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요.

제가 무지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이 아이슬란드에까지 파병을 했는지는 몰랐는데, 처음에는 영국군이, 영국군이 떠난 후에는 미국군대가 레이캬비크에 주둔했다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버무려서 조급해하는 독자를 진정시켜가며 천천히, 하지만 꼼꼼히 삶과 사람들의 본질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멋있습니다. 글 잘 쓰는 작가, 재미있게 쓰는 작가는 많지만, '멋있게 쓴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는 흔치 않은데,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 제게 그랬습니다. 이제 사흘 앞둔 아이슬란드 여행이 더욱 설레는 이유입니다. 인드리다손 작가는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나요?

+ 잡설을 한 가지 더 풀자면, 저는 이런 우연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데, 이 책 말미에 '파과병'을 앓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산백과에서는 '파과병[hebephrenia, 破瓜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감정과 의지의 둔화가 눈에 띄고 치매화(痴呆化)한 것 같은 병세를 나타내는 일이 많고 예후가 불량하다. 매우 서서히 시작하고 어린이처럼 명랑해지고 허튼웃음을 웃거나 혼잣말 등을 볼 수 있으며, 무위하게 지내는 일이 많아지고 드디어는 고도의 정신황폐에 빠진다. 20세 전후의 파과기(破瓜期)에 발병하는 일이 많아서 성별에 관계없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영어명은 청춘(청년의 마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왠지 최근에 읽은 구병모 작가의 [파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구병모 작가가 이렇게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듯이 제가 억지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이 '파과'를 둘러싼 우연에 대한 해석도 쉽사리 만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서 인생은 더 재미있고, 좋은 문학작품을 접하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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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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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물가물해 찾아보니 2년 전 딱 이맘때였습니다. 그때도 9월이었습니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고 구병모 작가의 소설들은 마치 차갑고 깊은 물 같다고 썼습니다. 2년만에 다시 그녀의 장편을 읽게 됐습니다. 제목은 '파과(破果)'. 냉장고에 넣어놓고 잊어버려 단단하던 형체를 잃어버린 과일. 매달 꼬박꼬박 내는 전기세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의 냉방기능도 지켜내지 못한 과육. 


작가는 그 흐물어져내려 형체를 잃은 사과를 보고 한 60대 할머니 킬러의 이야기를 구상해냅니다. 과연 작가란, 그런 것을 보고 아 젠장 욕을 하고 말거나 냉장고 치울 걱정을 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혹은 처음엔 그랬더라도 곧 그 생각을 넘어 이러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존재입니다. 소재가 신선하다는 것, 단순히 새롭기만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무심코 보아넘긴 많은 '늙어감'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것, 그것은 구병모 작가에게 받은 첫인상과 다르지 않은 여전한 장점입니다.

꽤나 자극적인 소재여서 그럴까요. 그러나 [고의는 아니지만]에 묶어낸 소설들이 '차갑고 깊은 물' 같았다면, [파과]는 MSG가 들어간 것이 분명한 순두부찌개 같았습니다. 실제 파과는 먹을 수 없지만, 구병모의 파과는 맛있고 잘 먹힙니다. 대신, 인공조미료가 들어가 자극적인 맛도 납니다.

영화 속에서는 언젠가부터, 멋진 킬러의 애인이나 들러리, 혹은 골칫거리로만 등장하던 여성들도 흔히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섹시하고 강인한 여성 킬러들을 영화 속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킬러의 여자친구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구병모의 킬러는 다릅니다. 물론 그녀도 또래에 비해 탄탄한 몸을 갖고 있긴 했으나 60대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또래의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그렇고 그런 실랑이를 지켜보는 첫 장면에서 이 60대 할머니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는 꽤나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조각'의 캐릭터는 그녀의 나이나 직업의 특수성을 제외하고는 여느 킬러들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가족 관계로 인해 조각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외롭고 불행했습니다. 태어난 것도, 친척 집에 보내진 것도, 오해가 생기고 사촌오빠를 다치게 한 것도, 고의성 없이 어쩔 수 없이 조각이 맞닥뜨려야 했던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킬러로 길러집니다. 유일하게 정신적으로 기대는 류를 위해 그녀는 프로가 되고, 프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거두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집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간소하나마 가구와 여분의 옷과 주방용품 등의 세간붙이가 있었고, 그 사소한 것들이 나중 가선 부담이 되었으며 기실 부담이야말로 집을 이루는 요소였다. 이사 외에는 떠돌아다니면서 그것들을 모두 움직일 방법이 없었고, 조각은 집이란 반 남긴 떡이나 씹던 껌을 벽에 붙여놓을 때나 필요한 곳으로 간주했으며 빈 몸으로 도망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류는 의외로 집을 고집했다. p.248

'지켜야 할 것'은 더이상 만들지 말자던 류도 집만큼은 고집했지만, 조각은 그마저도 욕심내지 않습니다. '방역' 대상이 방역 대상이 되어야하는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녀도 언젠가부터 집에 개를 기르고,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이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40년 넘게 지켜오고 이루어온 '대모', 프로로서의 자질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파과'란 싱싱했던 과일이 뭉그러진 모습이기도 하고, 단단하고 영글었던 과육에 물이 흘러넘치게 되어 더이상 단단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고, 씨앗에서 과일이 되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파괴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냉혹했던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변화들을 겪는 것이, 그녀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정말로 그럴 만한 상대를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이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인지, 원래 다른 사람들을 연민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인데 그것을 오랫동안 누르기만 해서 갑자기 폭발하게 된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복합적인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동안 악착같이 지켜왔던 단단함을 스스로 허물면서 킬러에서 인간으로 회귀합니다. 

그래서 구병모 작가가 만들어낸 이러한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멋진 일입니다. 적어도 '할머니도 여자다', 혹은 '킬러도 사람이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는 넘어섰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조각과 류의 관계, 류와 조와 그의 아기의 사연, 어린 시절 친척집에서 겪은 억울한 오해, 투우와의 일화, 강 박사와 강 박사의 가족들에 대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동안 너무나 흔하게 보아온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 같았습니다. 

투우와 벌이는 마지막 결투 장면은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고, 여자 작가가 그려내기에는 또 굉장히 디테일이 살아있었지만, 좋지는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킬러의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서 [파과]가 그저 흥미롭긴하나 통속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자세한 결투 장면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스토리를 위해 그렇게까지 잔인한 장면들이 꼭 필요했나에 대한 대중에 취향이 다를 수 있듯이 이 장면에 대한 생각도 독자마다 다를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잔인한 장면은 무조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는 아닙니다. 그것이 필요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 있고 아닌 작품이 있는 거죠. 어쨌든 제 생각에 구병모 작가라면 굳이 이러저러한 익숙한 설정들을 취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60대 할머니 킬러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파과]는 문장들이 대체로 긴 편입니다. 현대 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문장들이죠. 짧고 간결해야 잘 읽히고 힘도 생기니까요. 비문을 쓰게 될 가능성도 줄고요. 하지만 잘 다듬는다면 긴 문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길어지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비문이 나온다한들 그것도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의식도 항상 맞춤법과 문법에 맞게 흘러가진 않으니까요.

구병모 작가가 그러한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문장들이 전반적으로 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으로 쓴 것을 보면, 분명 만연체 문장을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만이 옳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고, 또 '조각'이라는 캐릭터를 더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쓸 데 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가끔 평범한 할머니로 보이고자 할 때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연기하는 조각이지만, 그래왔기 때문에 그녀 안에는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말들이 더 많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MSG가 든 음식은 중독성이 있어서 그걸 알든 모르든 또 먹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항상 유기농만 먹을 수도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MSG 안 든 음식을 먹고 싶긴 하지만, 구병모 작가의 다음 작품은 그래도 또 다른 방식의 요리일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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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화 [제7일]

 

장편소설입니다. '기차가 낳은 아이'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서 7일 동안 연옥에서 이승의 인연들을 만나 그동안의 앙금도 풀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한줄로 요약된 설명만 봐서는 '전설의 고향'이 떠오릅니다. 우선 위화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고, 중국의 귀신은 어떻게 이승을 완전히 떠나는가도 궁금합니다.

 

2. 토니 데수자 [뮬 - 마약 운반 이야기]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수상기록보다는 "미치게 자세한 책.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합니다. '미치게 자세한' 건 대체 어떤 것일까요.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얼른 떠오릅니다만, 토니 데수자의 자세함은 과연 저를 미치게 만들까요, 환호하게 만들까요.

 

3. 마리사 마이어 [신더]

 

여러 매체에서 2012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루나 크로니클'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가 아시면 알려주세요! 암튼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이 작가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동화들을 소재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이는 데 능하다고 해서입니다. 똑똑한 패러디는 언제나 재밌거든요.

 

4. 루이스 어드리크 [사랑의 묘약]

 

이번 달 주목소설들은 지난 달과 달리 이전에 읽어본 적 없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네요. 심지어 처음 듣는 작가 이름도 5명 중 3명이나 됩니다. 루이스 어드리크도 그 중 한 명인데요. [비둘기 재앙]이라는 책으로 2009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사랑의 모약]은 작가의 처녀작인 것 같은데, 출판사의 [비둘기 재앙] 소개글에 있는 '놀라운 상상력과 정교한 구성,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기대합니다.

 

5. 윤대녕 [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작가의 작품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남쪽 계단을 보라]는 이미 1995년에 출간된 바 있는 소설집을 새롭게 선보이는 거라고 하는데요. '윤대녕'이라는 이름의 값은 무엇인지, 읽어보고 싶습니다.

 

8월의 주목 소설로 추천한 7월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벌써 9월도 왔네요. 9월 중순에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아이슬란드에 다녀오면 10월에 읽을 책들도 정해져 있겠네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관리자님과 항상 애쓰시는 파트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알라딘의 신간평가단이라 정말 행복합니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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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운반 이야기
토니 데수자 지음, 이재경 옮김 / 홍시 / 2013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1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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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8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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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의 묘약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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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예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별 정보 없이 이 책을 집었을 땐 [여름의 흐름]이라는 제목 자체에 끌렸습니다. 시원한 파란색 표지는, 돌이켜보면 한국인의 여름이란 언제나 덥고 끈적끈적한 계절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다른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떤 상쾌하고 가벼운 글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낚인 겁니다.

 

[여름의 흐름] 안에는 표제작 <여름의 흐름>을 비롯해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여름의 흐름>, <좁은 방의 영혼> 등 중편 2편과 <만월의 시>, <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한낮의 피리새> 등 4편의 단편입니다.

 

<여름의 흐름>은 사형집행간수의 이야기입니다. 두 아이의 아빠인 사사키와 아직 사형집행의 경험은 없는 신입 간수 나카가와, 그리고 사사키의 동료인 호리베는 사형수들을 수감하는 형무소에서 일합니다. 사사키는 일이니까 사형집행을 돕고 호리베는 어느 정도 죄인을 직접 벌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사형집행을 돕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는 나카가와는 선배 간수들의 조언과 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첫 경험을 포기하고 맙니다. 처음이 무섭지, 한 번 하고 나면 그 역시 선배 간수들처럼 무심해지거나,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될 것이 보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셋째를 임신한 사사키의 아내는 가뜩이나 전부터 그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왔습니다. 거기다 후배가 그렇게 갈등하고 결국은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사키 역시 새삼 자신의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집니다. 날은 끈적이고 더운 비는 쏟아붓고 아이들은 자랍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곧 그들도 나카가와처럼 질문을 하겠지요.

 

갈등의 양상이 폭발해서 술에 취하거나 술에 취해 사사키가 실은 사형을 즐기는 거라며 비난하거나 결국은 관둬버리는 나카가와와 달리 사사키의 갈등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거나 폭발하지 않습니다. 식상한 비유지만 마치 물 위의 오리 같다고 할까요. 멈추지 않고 헤엄치기 위해서 물 아래의 발은 바쁘지만 물 밖에 드러난 모습은 아무렇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회의와 고뇌와 갈등을 이어갑니다.

 

두려워하는 나카가와를 달래려고 동료인 호리베와 셋이 낚시를 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짙은 풀냄새와 물비린내가 함께 느껴집니다. 그들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숨기고 물고기를 낚습니다. 한적한 시골에서 가질 취미가 많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취미가 낚시라는 점도 아이러니합니다. 낚시 역시 일종의 사형집행이니까요. 형무소에서의 사형집행은 진실여부를 떠나 죄의 유무를 가리는 과정을 거치지만, 물고기를 낚을 때는 그러한 과정이 생략됩니다. 그저 찌를 무는 놈을 잡아올려서 이 놈을 살려줄지 말지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그때 그때 결정합니다.

 

<여름의 흐름>에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좁은 방의 영혼>입니다. 장이 바뀌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전 몇 장을 읽는 동안 <여름의 흐름>이 끝난 걸 모르고 사사키가 병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됐나 생각했습니다. <여름의 흐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흘러간 겁니다. 영화기법으로 치자면 점프컷이 아닌 페이드아웃인 거죠. 끝났는데도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지 않으면 끝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영화들처럼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렇죠, 우리의 인생도 언제나 그렇게 흐르니까요.

 

<좁은 방의 영혼>은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그 무슨 중병에 걸려 요양병원 2인실에 입원해있는 어린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아버지가 있고 매일 그를 돌봐주는 친절한 간호사가 있고 같은 방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중년의 환자 동료(?)가 있습니다. 그는 친구가 필요하지만 그 중년의 남자 같은 친구는 아니며, 그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 중년의 남자가 습관처럼 중얼거리는 비관의 말들이 아닙니다.

 

담담한 척 하지만 그는 굉장히 외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물고기나 나비가 되어 병실 밖을 나섭니다.

 

상대방은 그 물이끼를 조금씩 먹었다.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큰마음 먹고 말했다.
"친구라고?"
상대가 되물었다.
"그냥 아는 사이라도 괜찮아."
"아는 사이?"
다시 되묻는다.
"함께 있는 것 말이야. 다른 누군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
"긴 시간?"
"그래."
"시간이라니?"

_ <좁은 방의 영혼> 중

 

자유롭게 세상을 보고 자연과 하나가 되지만 결국 그의 몸이 누인 곳은 좁은 2인 병실입니다. 버릇처럼 아내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든가, 자기는 곧 죽을 거라는 말을 하는 옆침대의 중년 남자가 지긋지긋합니다. 가뜩이나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 외로움과 싸우는 주인공에게 그 남자의 말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계속해서 남자의 병문안을 오고, 남자는 그러는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으므로 주인공에겐 양치기 소년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이 이야기의 비극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입에 달고 살지만 죽지 않아서 그냥 들어넘겼던 그 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거죠. 잘은 모르지만 귀찮았던 존재인 남자의 죽음은 그 병실 안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남깁니다.

 

<만월의 시>는 아르바이트로 봐주고 있는 집에서 이상한 일을 겪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매주 그 집을 봐주는 하루만 술과 음식, 그리고 여유를 즐기는 청년은 침실에 걸린 그림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합니다. 그림 속 나체의 여자들과 음탕한 한 때를 보내기도 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다른 남자를 죽이기도 하면서요. 그런 그를 현실로 자꾸 불러들이는 것은 옆 방에서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입니다. 그 이상한 전화의 유혹은 그가 그림을 보면서 하는 상상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는 현실에서의 일탈은 끝끝내 선택하지 않습니다.

 

<바다>는 이 작품집 중에서 가장 별로였던 작품입니다. 어릴 적에 글짓기를 할 때, '친구집은 부자고 내가 그렇게 갖고 싶던 피아노도 있지만 친구는 친엄마와 살고 있지 않아서 결국은 가난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내가 사실은 더 부자인 것 같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남자의 심리묘사는 제가 어릴 적 쓴 글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결국 같은 맥락처럼 느껴져 좀 유치하고 지나치게 교조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역시 <바다>처럼 메시지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흔들다리 너머의 저쪽 세계의 그와 이쪽에서 흔들다리 너머의 그쪽을 동경하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만월의 시>에서 청년이 보는 그림을 묘사하고 그를 통해 환상적인 느낌을 드러내는 것처럼 <흔들다리를 건너다> 역시 이쪽에서 그쪽을 보는 남자의 동경이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한낮의 피리새>에서는 마루야마 겐지 특유의 개성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평온하고 따뜻하게 느끼는 시골, 혹은 작은 마을의 선생님의 시각에서 이야기는 흐릅니다. 하지만 <한낮의 피리새> 속의 시골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현대의 도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서로 무관심하고 삭막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에게 유독 애정을 느껴서 피리새를 선물한 제자와 피리새를 대하는 태도 역시, 문학 속의 여느 선생님과는 다릅니다. 차갑고 무심해서 약간은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보통 문학 속에서 선생님이 묘사되는 방식은 크게 2가지인 것 같습니다. 타인의 시각에서 본 교사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선생님이거나 혹은, 일인칭에서 서술되는 교육과 제자들에 대한 무한 사랑과 책임감을 갖춘 선생님을 주로 보아왔다면, <한낮의 피리새>에서는 교사인 주인공이 스스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과 주변에 무관심하고 심드렁합니다. 교사로서의 의무감이나 죄책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체 작품들 중에 가장 차가웠습니다.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은 이 책에서 접한 6편이 전부입니다. 주변에 마루야마 겐지의 팬도 있고, 팬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을 읽었다는 분도 계신데, 이후의 작품을 좋아하든, 초기의 작품만을 좋아하든 간에 [여름의 흐름]이 좋은 작품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었습니다. 제 경우에 [여름의 흐름] 안에 실린 여섯편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한낮의 피리새> 같은 작품에서 그가 사람과 자연과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지금 평가해도 굉장히 독특하고 개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내면의 서늘함을 그야말로 서늘하게 보여준 작품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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