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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이 가물가물해 찾아보니 2년 전 딱 이맘때였습니다. 그때도 9월이었습니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고 구병모 작가의 소설들은 마치 차갑고 깊은 물 같다고 썼습니다. 2년만에 다시 그녀의 장편을 읽게 됐습니다. 제목은 '파과(破果)'. 냉장고에 넣어놓고 잊어버려 단단하던 형체를 잃어버린 과일. 매달 꼬박꼬박 내는 전기세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의 냉방기능도 지켜내지 못한 과육. 


작가는 그 흐물어져내려 형체를 잃은 사과를 보고 한 60대 할머니 킬러의 이야기를 구상해냅니다. 과연 작가란, 그런 것을 보고 아 젠장 욕을 하고 말거나 냉장고 치울 걱정을 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혹은 처음엔 그랬더라도 곧 그 생각을 넘어 이러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존재입니다. 소재가 신선하다는 것, 단순히 새롭기만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무심코 보아넘긴 많은 '늙어감'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것, 그것은 구병모 작가에게 받은 첫인상과 다르지 않은 여전한 장점입니다.

꽤나 자극적인 소재여서 그럴까요. 그러나 [고의는 아니지만]에 묶어낸 소설들이 '차갑고 깊은 물' 같았다면, [파과]는 MSG가 들어간 것이 분명한 순두부찌개 같았습니다. 실제 파과는 먹을 수 없지만, 구병모의 파과는 맛있고 잘 먹힙니다. 대신, 인공조미료가 들어가 자극적인 맛도 납니다.

영화 속에서는 언젠가부터, 멋진 킬러의 애인이나 들러리, 혹은 골칫거리로만 등장하던 여성들도 흔히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섹시하고 강인한 여성 킬러들을 영화 속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킬러의 여자친구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구병모의 킬러는 다릅니다. 물론 그녀도 또래에 비해 탄탄한 몸을 갖고 있긴 했으나 60대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또래의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그렇고 그런 실랑이를 지켜보는 첫 장면에서 이 60대 할머니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는 꽤나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조각'의 캐릭터는 그녀의 나이나 직업의 특수성을 제외하고는 여느 킬러들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가족 관계로 인해 조각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이미 외롭고 불행했습니다. 태어난 것도, 친척 집에 보내진 것도, 오해가 생기고 사촌오빠를 다치게 한 것도, 고의성 없이 어쩔 수 없이 조각이 맞닥뜨려야 했던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킬러로 길러집니다. 유일하게 정신적으로 기대는 류를 위해 그녀는 프로가 되고, 프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거두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집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간소하나마 가구와 여분의 옷과 주방용품 등의 세간붙이가 있었고, 그 사소한 것들이 나중 가선 부담이 되었으며 기실 부담이야말로 집을 이루는 요소였다. 이사 외에는 떠돌아다니면서 그것들을 모두 움직일 방법이 없었고, 조각은 집이란 반 남긴 떡이나 씹던 껌을 벽에 붙여놓을 때나 필요한 곳으로 간주했으며 빈 몸으로 도망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류는 의외로 집을 고집했다. p.248

'지켜야 할 것'은 더이상 만들지 말자던 류도 집만큼은 고집했지만, 조각은 그마저도 욕심내지 않습니다. '방역' 대상이 방역 대상이 되어야하는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녀도 언젠가부터 집에 개를 기르고,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이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40년 넘게 지켜오고 이루어온 '대모', 프로로서의 자질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파과'란 싱싱했던 과일이 뭉그러진 모습이기도 하고, 단단하고 영글었던 과육에 물이 흘러넘치게 되어 더이상 단단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고, 씨앗에서 과일이 되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파괴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냉혹했던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변화들을 겪는 것이, 그녀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정말로 그럴 만한 상대를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이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인지, 원래 다른 사람들을 연민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인데 그것을 오랫동안 누르기만 해서 갑자기 폭발하게 된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복합적인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동안 악착같이 지켜왔던 단단함을 스스로 허물면서 킬러에서 인간으로 회귀합니다. 

그래서 구병모 작가가 만들어낸 이러한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멋진 일입니다. 적어도 '할머니도 여자다', 혹은 '킬러도 사람이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는 넘어섰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조각과 류의 관계, 류와 조와 그의 아기의 사연, 어린 시절 친척집에서 겪은 억울한 오해, 투우와의 일화, 강 박사와 강 박사의 가족들에 대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동안 너무나 흔하게 보아온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 같았습니다. 

투우와 벌이는 마지막 결투 장면은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고, 여자 작가가 그려내기에는 또 굉장히 디테일이 살아있었지만, 좋지는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킬러의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서 [파과]가 그저 흥미롭긴하나 통속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자세한 결투 장면이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스토리를 위해 그렇게까지 잔인한 장면들이 꼭 필요했나에 대한 대중에 취향이 다를 수 있듯이 이 장면에 대한 생각도 독자마다 다를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잔인한 장면은 무조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는 아닙니다. 그것이 필요했다고 여겨지는 작품이 있고 아닌 작품이 있는 거죠. 어쨌든 제 생각에 구병모 작가라면 굳이 이러저러한 익숙한 설정들을 취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60대 할머니 킬러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파과]는 문장들이 대체로 긴 편입니다. 현대 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문장들이죠. 짧고 간결해야 잘 읽히고 힘도 생기니까요. 비문을 쓰게 될 가능성도 줄고요. 하지만 잘 다듬는다면 긴 문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길어지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비문이 나온다한들 그것도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의식도 항상 맞춤법과 문법에 맞게 흘러가진 않으니까요.

구병모 작가가 그러한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문장들이 전반적으로 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으로 쓴 것을 보면, 분명 만연체 문장을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만이 옳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고, 또 '조각'이라는 캐릭터를 더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쓸 데 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가끔 평범한 할머니로 보이고자 할 때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연기하는 조각이지만, 그래왔기 때문에 그녀 안에는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말들이 더 많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MSG가 든 음식은 중독성이 있어서 그걸 알든 모르든 또 먹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항상 유기농만 먹을 수도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MSG 안 든 음식을 먹고 싶긴 하지만, 구병모 작가의 다음 작품은 그래도 또 다른 방식의 요리일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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