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전집 1 다시 읽는 우리 문학 9
이상 지음, 김종년 엮음 / 가람기획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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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을 산 후로는 가방속에 책을 넣고도 스마트폰을 잡고 있었다. 내려야할 지하철역의 문이 닫힐 때 정신을 차려 억지로 나가려다 문에 끼이기도 하고, 내려야할 버스정거장을 지나쳐 다음 코스에서 내리려했으나 한코스가 한남대교를 건너고도 한참을 가서 내려주는 바람에 10분이면 갈 거리를 몇 배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읽는 단편소설, 참 좋다. 소설가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내게 보낸 장문의 문자를 읽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상의 글은, 비록 한자표현도, 영어나 불어나 일본어 표현도, 그 음역어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서는 현대에 읽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 더더욱 친구의 문자를 받는 기분이 들었달까.  

윤돈(런던의 음역어)이니 베제(프랑스어로 '키스')니 하는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써대는 인텔리 이상, 약간은 재수없기도 한 그의 일면을 만나는 묘미가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읽기에서 더 극대화됐다. 내 남자였다면 정말 팔모가지를 확 비틀어버리고 싶을 정신머리를 가진 남자지만(애초에 이상이 누군가의 '내' 남자가 될 인물도 아닐 것 같긴하다), 내 남자가 아니라서 너무 매력적인 그, 이상과 나, 우리 이런 사이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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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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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라는 강렬한 첫문장을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나는 이 첫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말에 대한 섣부른 예상을 방해하는 글쓰기의 한 수법으로 많이 쓰이는 방식의 문장이라서 '나'는 '내 아버지'의 실제 '사형집행인'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의식적으로 첫문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쓴 느낌이 들었다. 

글쓰기라는 게, 첫문장을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래서 모든 작가에게 첫문장에 대한 부담이나 아이디어가 있을 거라는 건 짐작한다. 정유정 [7년의 밤]의 첫문장은 단지 내 마음에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건데, 그래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이런 자극적인 문장에만 열정적으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본능적으로 '나는 이 문장을 싫어한다'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7년의 밤]을 읽는 3일의 밤은 내게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몸도 힘들었고, 그렇게 몸이 힘든데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못 찾겠어서 마음도 힘들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이 책읽기에 무리하게 매달렸다. 하지만 서원이 보낸 7년의 밤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3일밤이기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밖에 내가 겪고 있는 감정적인 증상들도 서원이나 세령이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였다. 내가 굉장한 야구팬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몇년전 은퇴 후 사업에 실패하고 애인과 그 딸들까지 살해한 후 자살해버린 한 야구선수를 떠오르게했기 때문이었다. 두사람 모두, 야구에 쏟던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을 다른 것에 그대로 투영시키고, 그 열정이나 사랑이 위태롭거나 실패하게 되면 이성이나 선한 의지를 결국 상실하게 되는 나쁜 케이스인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러고보면, 정유정 작가가 이번 작품을 성공시킨 가장 큰 열쇠는 탄탄한 구성도 구성이지만, 각각 확실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데 있다. 최현수와 최서원, 은주, 오영제와 문하영, 승환 모두. 모두가 각자의 사연과 과거를 갖고 있고 그래서 그 캐릭터들의 설득력도 더해진다. 

자살시도일까, 실수일까. 전자라면 재시도가 수순이고 그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실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실수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니까. p.306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실제 신발은 던지지도 못했어. 그저 웊물 앞에 서서,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인간들을 떠올리면서, 내 마음 속의 신발들을 집어 던졌지. 아버지, 남동생, 여동생, 막내 꼬까고무신까지. 상상 속에선 못 던질 게 없었다네. 심지어 우리 집을 통째로 던져버린 날도 있었어. 내 마음이 온갖 사악한 것들을 다 꺼내 던지고 나면 죄책감이 찾아드는 거야. 그러면 동생들이나 아버지한테 조금쯤은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되지. p.373
 

500페이지가 넘는 [7년의 밤] 장면 가운데 가장 슬펐던 한 장면을 소개하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침착하겠다고 약속하면 데려갈게." 

쓸데없는 다짐이었다. 우스운 우려였다. 서원은 샛문에 쓰러진 아빠를 보고도 흥분해서 덤비지 않았다. 피투성이 발을 보고도 소리치거나 울지 않았다. 제 아빠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문을 거는 것처럼 속삭여서 의식을 깨웠다. 

"아빠, 눈떠요. 진료소에 가게 일어나세요."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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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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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이 갈수록 감정이 단순해진다. 슬프다, 기쁘다, 행복하다, 짜증난다, 밉다, 좋다, 싫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붙잡고 그것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단순화하는 연습을 한 덕분일까, 정말로 감정이나 감각이 둔해져서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좀 더 감정이 복잡다단했을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되었어야 했다. 

덕분에 이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도 한마디로 요약될 만큼 단순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라야 리뷰를 쓰는데, 그냥 슬펐다. 이곳에서 내 실명이나 내 얼굴을 아는 이 없으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요즘 어디서든 울 핑계를 찾아 기회닿는 대로 울고 있는데, '달과 게'도 어느 정도 마음 편하게, 그것 때문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우는 거라고 말하며 그냥 마음 편하게, 하지만 얌전하게 울 수 있도록 해줬다. 

결국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지만(이미 가능한 최악의 상황들이 모두 일어나 버린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오히려 '슬프다'는 감정만이 남았을 거다. 서로 추악하게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다 드러내고 볼장 다 보자고 덤볐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았다면, 책에 줄 수 있는 별의 개수는 줄었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했을텐데. 

하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등장인물 중 누구의 나쁜 소원이 이뤄졌다한들 그를 대놓고 비난할 수 없을 그런 나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그래도 끝까지 독하게 버텨준 덕분에 그들 중 누구도 잠시나마 품었던 나쁜 소원을 이루지못하고 오히려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더욱 상처받고 만다는 것이, 그것이 참 슬펐다. 차라리 그냥 속시원하게 누구 하나 나쁜놈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렇게 서로 고백할 수 없는 상처와 얽힌 소원들을 갖고 있는 존재들끼리는 아무리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려해도 오히려 상처를 만들고마는 가위손일 뿐이다. 서로 치고받고 뒹구는 치기어린 싸움은 끝나면 오히려 감정의 반전을 일으켜 더 단단하고 좋은 감정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따뜻한 감정의 교류 사이사이로 흐르는 복잡미묘한 감정대립은 끝내 관계를 끝장내버리고 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슬프다. 

"소라게는 빠른 멜로디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수많은 다리를 제각각 움직여, 콘크리트 위에서 희미하게 딱딱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다가왔다." 

빠른 멜로디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그렇게 수많은 다리를 제각각 움직여, 마치 콘크리트 위에서 움직일 때처럼 딱딱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다가오는 것, 소라게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 같다.  

"실제로는 나른해서 어찌할 도리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리거나 날거나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막상 그 소라게에 쫓기고 있을 때는, 악몽을 꿀 때처럼 팔다리도 말을 듣지 않고,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어찌할 도리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리거나 날거나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이치나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가 한 것처럼 나쁜 소원을 빌고, 나쁜 행동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여가며 어른인 척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본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일 뿐이어서, 미치오 슈스케가 정해준 결론 안에서 그렇게 잠시 동안은 갇혀있어야 할 거다. 

+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위선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나야 신이치 같은 인물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는 그들의 상처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밀어내고 모른체하는 주변 인물을 비난하면서, 정작 현실에서 이런 인물을 만났을 때는, 소설 속 주변 인물들처럼 비겁자가 되고 마는 게 나라는 사실을 바로 오늘, 깨닫고 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 다가가 말 걸어줄 때인 것 같은데, 왠지 무섭고 겁이 나서, 그냥 안 봤으면, 더이상 어떤 내밀한 관계가 생기지 않았으면, 이쯤에서 모른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겁한 거 아는데, 정말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비겁함을 바라보며 멀쩡히 지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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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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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각보다 별로였다. 

와닿지 않았다. 나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러는 것도 싫다. 너무 많은 우연의 연속도 비현실적이고 그래놓고 결국은 그렇게 결론이 나는 것도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런 사람 싫다. 뭐 이건 소설이잖아? 그런대도 싫다. 이루지 못한 꿈 그런 건 모두 '벤'의 핑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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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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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과 김연수라니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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