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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3권 세트 - 신탁의 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기계들과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그리고 만일 누르게 되어 있는 잘못된 버튼이 있다면 결국 그것을 누르고 말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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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중 일부는 캔자스시티 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송된 것들이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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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켜세운 폴 오스터를 치켜세우고 싶다.
굉장히 떠받드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타자기가 치켜세워져 있다.

짧은 몇 문장들과,
정말 파닥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타자기 그림이
정말 자연스럽게, 그리고 멋있게 타자기를 치켜세우고 있다.

책상 밑에 놓여 그저 발을 얹는 물건쯤으로 전락해버린,
내 타자기를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쉬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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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3권 세트 - 신탁의 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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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우리가 왜 어느 한 사람에게는 빠져들고 다른 사람에게는 빠져들지 않는지를 설명해주는 어떤 객관적인 이유도 있을 수 없다. p.26 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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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편견을 가졌었고 어리석었다는 새로운 예들을 찾아내는 데서,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밖에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 자극을 받으니까.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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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를테면 그 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방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 몹시 유감스러웠고, 그 다음에는 나에게서 코피가 터져 나와 내 셔츠와 바지에 튀는 것을 알았다......................................코피가 터질 때마다 나는 꼭 바지에 오줌을 싼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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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떤 남자와 약속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했지만 (매력적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면 늘 남자와 함께 있기 마련이니까) 그 둘이 얼마나 깊은 관계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첫 데이트일 수도 있었고, 약혼자나 동거하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조용한 저녁 식사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미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베티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레이스가 자기 사무실로 돌아간 뒤 그 정도까지는 알려주었다) 결혼 이외의 다른 관계도 셀 수 없이 많았다. p. 79 각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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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우리 두 사람 모두 감정이 더 격해지기 전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이제 서로의 화를 돋우어 나중에 후회하게 될ㅡ그리고 화가 가라앉은 뒤 아무리 많은 사과를 하더라도 기억에서 절대로 지워질 수 없을ㅡ말을 하려는 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p.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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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p.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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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밑에서 둘째줄 오타.

내가 하는 한에서는 => 내가 아는 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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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모호한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신탁의 밤>이라는 소설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 손에 넣은,

어느 소설가가 쓴 미발표 소설의 제목이다.

실제로 폴 오스터가 쓴 <신탁의 밤>이라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큰 틀을 이루는 세 가지 이야기는

누구나가 이야기하듯이 어디까지가 이 이야기이고,

또 어디까지가 저 이야기이며,

어디서부터가 그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쓰여있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작가 폴 오스터의 의도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의 경계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존재한다면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러니까 보다가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긴지 헷갈리는 바람에

몇 페이지를 돌아가서 다시 보더라도 별로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뭐, 이미 이런 주제는 식상하다.

이미 그 옛날 장자가 내가 나비 꿈을 꾼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어쩌고 했던 거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같은 소설을 비롯해,

내가 아직 보지도 못했을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 써먹은 거니까.


하지만, 폴 오스터의 <신탁의 밤>은 나름의 개성이 있다.

우선, 그의 문장은 특별하다.

현란한 수식 없이 길게 이어지곤 하는 문장들은,

뭔가 굉장히 선명해 보이는 장면이나 상황을 엮어놓지만,

그 문장 하나 갖고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틀에 맞물리게 된다.


사실은 세상 자체가

‘우연’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단순히 ‘그래, 세상은 우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야’하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소설을 덥지 못하게 한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너무나 대놓고 던져놓은 주제문단,

“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에서 의문을 갖기 시작해야 옳다.

지금까지 우연에 의해 인생의 대반전을 경험하는 주인공

에 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도 우연에 의해 인생의 행방을 바꾸는 주인공

에 대해 쓰고 있던 진짜 주인공

도 역시 우연히 포르투갈제 파란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연에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주인공 시드니의 인생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존 트로즈는

생각은 진짜고, 말도 진짜고, 인간의 모든 것이 진짜이며,

따라서 미래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드니는 처음에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지만,

결국은 그 말에 수긍하는 것이 소설에 나와있다.

시드니의 생각이 나중에 또 어떻게 변하든 그것은 소설에 나와있지 않다.

폴 오스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까지인 것이다.

세상은 우연에 의해 돌아가지만,

그 우연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안에 내재돼있다는 거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별로 놀랄 필요가 없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없는 그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도 결국 우리라는 결론이다.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그래 이거야말로 정말 진실 아닌가.

우리에게 내재돼 있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은 사실 신이 특별히 내정해놓은 일도 아니다.

따라서 신의 섭리처럼 보이는 모든 우연한 것들은,

신의 섭리를 가장한 진짜,

우리가 내부 어딘가에 가지고 있었던 진짜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폴 오스터가 생각하는 글쓰기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숙명 같은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혹은 태어나고 나서부터,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느 순간부터 그의 안에 내재된 미래를 꺼내놓는 일이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 것도,

결국은 남자 안에 여자가 내재됐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토할 만큼 심각한 비약이기는 하지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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