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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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서 성인이 된 남자는 규방 출입을 허락 받고 전족 한 성인 여성과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긴다.

남자들은 발에 입을 맞추거나 발가락 냄새를 맡으며 감각적인 흥분을 했던 경험을 친구들과 서로 교류했다.

-<채비록 제 4편>중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 되어 왔던 중국 여성들의 뼈를 깎는 신체적 고통이였던 '전족'은 1895년, 청일전쟁이후 밀려 들어온 선교사들과 서양인들이 야만적인 행위라며 '여성과 아동' 신체에 대한 엄청난 가해를 지적하면서 반 전족 운동이 시작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은 무너졌지만 혁명의 주역들인 쑨원, 장빙린(章炳麟), 쑹자오런(宋敎仁) 등 혁명파 인물 대부분이 여성의 인권과 권리는 장래의 문제라며 ‘보류’ 또는 ‘지연’시켜 버리며 여성의 삶을 왕조 시대에 맞춰 놓고 순종과 정절을 강조 했다.

혁명 이후에도 엄마들은 자신의 딸들의 발을 강제적으로 접어서 10센티 크기의 전족용 신발에 넣어 버렸다.


오래전 부터 중국 남성들은 여성의 작은 발이 주는 은밀한 즐거움과 성적 유희를 즐겼다.

상류층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의 발 크기와 첩의 발 크기를 비교 하며 발이 더 작은 발을 가진 어린 여자를 찾아 다녔다.

전족이 성행한 명대에는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과 서문경의 정사장면을 읽은 당대 중국 남성들은 반드시 전족을 한 여성을 아내나 첩으로 맞이 했다.

남성에게 여성의 전족은 여성미의 최고 표준이며 한족의표지시였고 조신함의 상징으로 뒤뚱거리는 모습은 남성을 흥분시켰다.

혁명이 시작되자 남성들은 변발에서 해방되어도 여성들을 전족에서 해방 시키지 말아 달라는 청원이 중국 전역에서 빗발쳤다.

3촌 크기(약 7센티)의 발은 어른 손바닥 크기 보다 작지만 수 많은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 서도 중국 역사에서 여성들의 발 크기가 '3촌'에서 더 커졌던 적이 없었다.

1930년대 일본이 대륙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중국 대륙 여성들도 일본과 맞붙어야 한다며 반전족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공산당 주도하에 수많은 여성들이 대장정과 항일전쟁, 그리고 내전에 동원되어 활약하며 신중국 수립(1949)을 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 시키는데 크게 일조 했지만 이들을 생활 현장의 생산 노동자로 떠밀어버렸다.

1950년대 말 대륙 전체에 불어 닥쳤던 '대약진운동'에서 현장 생산 노동자들이 였던 여성들은 강제 유산, 낙태를 당하거나 극도로 위험한 공장에 투입 되어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다. 이러한 비극은 문화대혁명(1966~76)시기에도 이어져서 중국 여성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부녀정책’의 대리자로만 취급 받았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 ‘페미니즘’은 ‘부녀주의’ 또는 ‘여성주의’라는 용어로 사용 하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 서구 학계에서 사용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부녀주의',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 하는 이유는 공산주의에서 페미니즘은 곧 부르주아의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중국 학계에서는 '여성의 눈으로 보는 여성 해방 사상'이라는 다소 긴 의미가 내포된 용어를 사용 하며 여성 인권에 서구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인권 사상을 배제 시키고 있다.

중국은 '여성'이라는 단어 보다 '부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산당의 지도로 여성의 삶을 '자각 시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초대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중국을 통치 하기 시작한 마오쩌둥은 남자와 여자는 각각 하늘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라며 사회 전역에 남녀 구분과 차별 철폐 운동을 실시 했지만 역사가 되어버린 전족이 또 다른 형태로 여성의 삶을 억압해 오고 있다.

20세기 등소평 집권 이후 줄곧 유지 되고 있는 중국의 대국화는 서양이 강요한 근대적 가치들을 대신해 유교적 인본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여성의 인권은 서양에 의해 강요받은 인권이 아닌 중화 사상에 뿌리를 둔 인권 '부녀주의'사상에 근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 공화국 여성의 인권이 세계 인권의 기준에 맞출 수 없고 이들이 주장 하는 인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 가치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왜 남자들이 여자에게 전족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딸에게 전족을 시켰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하이힐 착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족 하는 이유 한 가지는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차이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전족 관습이 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적 흥분도 중요한 이유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전족하면 질이 좁아져 '처녀'와 성관계를 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서구 남자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의 종종걸음을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이며 만족감을 느끼는데, 전족도 유사한 만족감을 주었다. 레비에 따르면 "아장거리는 발걸음과 뒤뚱거리는 엉덩이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레비는 전족한 아내를 둔 남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전족 발걸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 하이힐 걸음걸이에 대한 시각과 매우 비슷하다. ... 중국 남자들은 망가진 발을 갖고 놀고, 입을 맞추고, 쪽쪽 빨고, 입에 집어넣거나 페니스 주변에 갖다 대고,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와 아몬드를 끼워 먹고," 발 씻은 물을 마시는 데서 성적 쾌락을 얻었다. 로시에 의하면 전족으로 얻는 만족감 중에는 여자가 망가진 발에 생긴 '굳은살 벗겨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있었다. 이는 발 페티시를 가진 현대 남자가 하이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전족을 강요한 또 다른 동기는 여자의 모든 자유와 독립성을 제한해 '정조'를 지키려 함이었다. 전족은 일종의 '정조대'처럼 작용했다.여자들은 전족이 초래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딸의 발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발을 작게 하지 않으면 결혼할 남자를 찾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아내감으로 여겨졌다.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어릴 때 가족에게 팔려 성매매 되는 용도로 길러지는 여자아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전족을 했고, 발이 작을수록 성매매 될 때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렇게 결혼의 형태건 성매매의 형태건 남자들이 서로 간에 여자를 팔고 거래하는 한 전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 중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부와 지위로 나눠지는 계급에 따른 신분 차별과 특정 피부색은 노예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차츰 와해 되고 사라진 것은 150년이 채 되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반면에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고 하이힐의 굽을 낮추고 브래지어를 벗고 피임을 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펼친 역사는 고작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가사 노동과 육아에 시달렸던 여성들의 삶이 신분제 계급과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강대국인 미국이나 1분에 한 번 꼴로 여성이 남자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매를 맞는 인도와 이슬람 국가들이나 10분에 한 번 꼴로 가족 폭력에 시달리거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어 살해를 당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 여성 해방을 지지하는 수준과 사회 인식은 2세기 전 노예 해방을 지지 했던 수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노예를 부려 먹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것처럼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을 가하며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 아무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듯이 현 시대에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억압을 주장하면 해묵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자연의 이치와 본성의 차이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라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도시화된 국가의 교육 받은 사람들이나 자신을 진보주의나 사회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나 가정에서 남성은 야망과 모험심 독립심, 합리성을 집중적으로 훈련 받고 학습하기 아주 좋은 환경에 노출 되어 있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양보, 참을성, 친절함과 상냥함을 갖춘 여성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부추기며 강요 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차별과 억압에 맞서서 불굴의 의지로 남자의 능력을 넘어선 위대한 여성들도 많지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거나 근육질에 신체적으로 용감한 모습이나 전쟁 터에서 맹 활약을 하며 전투에 직접 참가 하는 여성의 모습이 드라마, 영화, 광고에 등장한 것이 미디어 매체 역사상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의 활동을 제약했던건 여성의 특수한 생물학적 책임인 출산과 안전한 육아를 위해 실용적 방안에서 비롯 되었지만 문명의 발달과 국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심리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목적과 수단으로 정교하게 편협한 관습과 사상을 단숨에 부숴 버리기 힘들게 고착화 시켜 왔다.

1972년 7월 느슨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며 파리에서 스페인어로 편집해 발간하는 정치 문학계간지 <리브레> 편집자들이 다섯명의 여성들에게 보낸 질문에 응답한 수전 손택은 1년 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 해서 1973년 <파르티잔 리뷰>에 '여성이라는 제 3세계'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 했다.

당시 기고한 글에서 수전 손택은 여성 해방을 위한 모든 진지한 계획은 해방이 그저 평등(진보적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은 권력의 문제다. 남성 권력이 약화되지 않는다면 여성은 해방될 수 없다. 여성 해방은 남성이 독점한 권력을 여성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의식과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로써 권력 자체의 속성까지 변해야 하는데, 유사 이래 권력이 내내 성차별적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공격성과 신체적 강압을 선호하는 규범적이고 소위 선천적인 남성적 취향과 동일시되고 전쟁과 정부, 종교, 스포츠 상업의 영역에서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의 형식및 특권과 동일시 된다.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주장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의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해방이 아닌 진압일 뿐 피상적인 변화는 기존 권위를 위협하는 분노를 매수 해서 불안정하고 지나치게 억압적인 규칙을 개선하는 것은 기존의 지배 형태를 재생성 하는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에 더해 수전 손택은 남성의 지도와 지지, 승인을 받는데 익숙한 여성은 성별과 피부색을 가리지 말고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수전 손택이 활발하게 페미니즘 운동을 펼쳤던 시대에는 흑인이 백인의 공공 장소에 자유롭게 드나든다거나 백인 전용 학교에 등교 하거나 특정 지역에 거주 할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성은 여전히 어떤 변화나 영향을 사회나 가정에 끼치게 될 경우 주변과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남성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걱정을 하는 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역사적으로 계급 차별 철폐나 해방이 저항에 부딪치지 않았던 적이 없었듯이 어떤 지배 계급도 싸우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특권을 먼저 내려놓지 않았다.

애초에 국가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 자체가 남성의 절대적인 특권 위에 세워졌고 남성은 더 나은 사회와 가족을 위해서라는 조건을 내세워서 공정한 결정이라는 이유로 특권을 내려 놓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남성들은 마지 못해 여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 했고 교육의 기회를 열었고 전문직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1세기 들어서 고도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룩한 세상에서 '성 해방'과 '성 차별'의 개념이 sns세상에서 점점 불명확하게 희석 되어 버렸다.

아름다움과 젊음이 돈과 상품으로 널리 소비 되었던 시대를 지나 손 안에 폰으로 볼 수 있는 영상과 숏폼에 점령 당한 세상에서 여성의 신체와 몸은 좋아요와 싫어요의 갯수로 극혐과 찬양의 두 가지 정서로 갈라져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이 서바이벌 게임화 되었다.

이로 인해 10대 시절부터 sns를 사용한 청소년들은 쉽게 상처 받으며 미를 기준으로 하는 게임 때문에 자신의 타고난 외모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스스로 굶주리거나 신체 불균형이 될 정도로 운동에 빠지거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기도 하고 인플러언서들이 사용하는 화장 도구나 옷, 성형 시술을 따라 하는 식으로 중독성이 강한 게임에 빠져 버린다.

시대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국의 공통된 아름다움은 젊음이고 이상적인 젊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거울 속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사회적으로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이 유독 여성에 대한 외모에 적용 되어서 여성의 성격과 관심 본질에 까지 깊이 영향을 미쳤다.

이와 달리 남성의 외모를 향해 잘생겼다 같은 말이 널리 통용 되어서 남성에게 젊음과 건강함은 유능함이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다.

나이가 들어도 경륜에 따른 노련함이 표출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 부터 손과 발, 두 상의 크기 얼굴 형, 가슴, 엉덩이, 눈의 크기 목의 길이 피부색의 밝기와 어두움 그리고 머리카락 숱과 길이에 따라 사회적인 잣대와 시선에 불안해 하고 조바심 치며 때로는 절망하며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낱낱이 뜯어 보고 분석한다.

어떤 부위는 성형 시술로 고쳐서 사회적으로 칭송 받는 미의 기준에 들어 맞는다 해도 어떤 부위는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경우 오로지 완벽한 아름다움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편향된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특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곳은 도처에 널려 있어서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아름다움이 대다수 여성이 추구하도록 권장 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남성도 선 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쓰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유니섹스 뉴노멀 시대라 해도 여성에게 화장과 몸치장은 사회적 의무여서 매력을 유지 하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름다움을 유지 하는 여성에게는 유능함과 전문성, 권위를 갖게 만드는 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난을 가하고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스토커에게 살해 당해도 법적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법의 잣대는 여전히 18세기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개는 제 몸의 크기도 몰라서 작은 개가 큰 개를 향해 짖거나 공격할 때면 큰 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문이 열려진 공간을 유유히 빠져나가다가 꼬리 몇 센티 미터 정도만 문 안쪽으로 남겨 두고 주인을 향해 신호를 보낼 정도로 자신의 몸 길이를 정확하게 안다.

자신의 몸 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온 몸의 털을 세우며 몸의 크기를 배로 불릴 수 있는 고양이는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 하고 있다.

한 쪽 다리로 귀를 긁거나 혀로 네 발을 핥으며 몸 단장을 하는 고양이는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서 민첩하게 대처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양이가 아닌 개와 비슷하다.

자신의 몸 크기나 모양이 어떻게 변해 갈지 잘 알지 못해서 유명 모델이나 셀럽의 외모를 미의 기준으로 삼고 극단적인 노력과 시술을 강행하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각국의 문화마다 이상적인 기준을 가진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고 나름대로의 차별과 억압이 존재 한다.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미국은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갖춘 국가 이면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할 때면 남편의 성을 따라 쓰는 아내가 암묵적으로 남편이 지지하는 선거 정당에 투표하는 수동적인 경향이 여전히 존재 한다.

노골적으로 성과 인종을 차별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을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미디어 매체는 물론이고 광고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협한 미의 기준을 우수한 신체 조건이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의 광고 캠페인에 푸른 눈 금발 머리에 여성 모델이 청바지를 입으며 "청바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때때로 머리 색, 눈동자 색, 성격까지 결정한다"라는 내레이션을 하다 파란 눈이 클로즈업업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여성 모델은 이렇게 말한다.


"내 청바지는 파란색이다(My jeans are blue)"


또 다른 광고에서는 'Great Genes'라는 문구 아래 'Genes'이라는 단어가 줄로 지워지는 대신 'jeans'라고 덧 씌워지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재 미국은 푸른 눈, 금발의 백인 여성을 지배하는 강한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 성조기를 쥐고 흔들며 비 백인계나 소수자, 약자, 장애인들 그리고 영주권자들과 공부와 직장 때문에 단기 거주 하는 이들을 차별하거나 내쫓거나 체류 비용을 배로 내라고 요구 하고 있다.

인류는 인간이 된 순간부터 신체를 장식해왔다.

머리에 꽃을 꼽고, 몸에 문신을 하고 눈꺼풀을 검게 칠하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속옷을 입고 계절에 따른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신발을 신었다.

신분과 부의 규모에 따라 신체를 꾸미고 장식하는 것이 달라져 왔고 21세기의 아름다움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것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서 국가마다 공통된 게임의 규칙은 여성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의 영원성이였다.

자본 소비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권력화 시켜서 남성의 손에 관리 되어 온 여성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동시에 세뇌 당한 아름다움은 여성을 가두는 족쇄이자 신화였다.

과학 기술과 의술이 발전 할 수록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인식도 빠르게 바뀌어 가듯 앞선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녀들의 어머니들 세대와 달리 인공 지능 시대에서 아름다움은 누구나 손쉽게 수정하고 보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들이 오랫동안 쐐기처럼 사회 규범에 박아 놓은 것을 준수 하며 안전과 특권을 보장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았던 순수의 시대는 지나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성은 남자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야심을 품고 실천하는 모습을 스스로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많은 여성과 남성이 우리 사회의 언어와 행동,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수전 손택(193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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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족에서 수전 손택 그리고 오늘의 여성에 이르는 글이 너무 훌륭해서 숨 참아가며 읽었네요

scott 2025-08-21 12: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5-08-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족의 비애와 고통.ㅜ.ㅜ
리뷰를 읽고 나니 다시 바라봐지는 수전 손택의 책이군요.

scott 2025-08-21 12:46   좋아요 1 | URL
전족 참으로 기이하고 기괴합니다!



마힐 2025-08-2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중국 배낭 여행을 했었어요. 그때 어느 소도시 기차역에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어떤 남자가 제 앞에서 새치기를 하더라구요. 순간 당황했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창구에서 표를 팔던 여성 직원이 부리나케 뛰쳐나오더라구요. 그 여성 직원은 새치기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치고 욕을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싸대기를 후려 쳤어요. 옆에서 저는 순간 문화적 충격을 먹었답니다. 모택동이 말 했다는 “妇女能顶半边天“ 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지요.
싸대기를 맞은 남자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줄 뒤로 가서 서더라구요.
그 이후 부터 저는 모든 여성들 앞에서는 고분하기로 했답니다. ㅎㅎ
scott 님 글을 읽으니 예전 일이 떠올랐네요.

2025-08-21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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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아내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병약한 오웰을 돌보는 엄마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아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하고 교정교열까지 해주는 비서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해주는 가사도우미 였을 뿐 오웰은 결혼 기간 내내 바람을 피우거나 강간에 가까운 범죄짓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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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 시절 유명인들 뒤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이 있었던 일은 너무 많은데 이건 많이 심하네요.

scott 2025-08-10 00:20   좋아요 1 | URL
오웰의 현재까지 이어진 명성은 80퍼센트 정도가 아내 아일린 덕분이였습니다.

희선 2025-08-08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웰 아내 잘 모르는군요 다른 사람 아내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죠 그래서 이젠 알려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이 맞았다고 말할 수는 없군요


희선

2025-08-1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5-08-08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뤼쉰의 아내 주안(朱安) 이 떠오르네요. 이들 대문호들은 왜 자신의 아내가 비극적 삶을 살게 내버려 두었을까요? 그녀들의 희생위에 쌓아올린 문학적 성취를 우리가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과 인간은 별개로 봐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네요.
scott님, 더운날 건강 유의 하세요.

2025-08-10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에 관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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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를 불태우고 거리를 행진하고 촛불을 들고 동일 임금과 가정 폭력 가사 육아 임시 중절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던 1970년대 그리고 2025년 시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해방 투쟁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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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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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작가 클레어 키건은 자신이 가르치는 창작 워크숍에서 한 학생이 이야기 서사에서 드라마적인 구조가 없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도 이야기가 성립 된 작품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설명 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당시 클레어 키건은 학생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휴식 시간에 자료를 찾아 사무실로 가는 동안 머릿 속에서 하나의 심상이 떠오른다.

사무실에서 빈 손으로 돌아 온 클레어 키건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매일 직장 사무실로 출근한 남자는 퇴근 시간에 회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텔레비전 리모콘을 누르니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다큐멘터리가 흘러 나왔다.

맨 처음 키건의 입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적인 구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 어느 한 남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 되었다.

창작 수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 키건은 수업 중에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속의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날 키건은 그 남자의 삶의 한 단면을 쓰기 시작했고 5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2023년 겨울 미국 문예지 뉴요커의 픽션 팟 캐스트 섹션에서 퓰리처 수상 작가이자 매년 뛰어난 창작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수상을 받고 있는 조지 손더스가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 작품이 '그해 최고의 단편'이라며 극찬을 했다.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한국어판 너무 늦은 시간)' 라는 작품을 작가 클레어 키건이 직접 낭독 하는 목소리로 공개 되던 날부터 매일 아침 출퇴근 시간에 소리로만 듣다가 페이퍼백으로 구입해서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소리로 들었을 때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심리와 의도를 활자로 읽고 재차 앞 장으로 돌아가 곱씹어 보니 키건 특유의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장에 내포된 인간의 섬뜻함이 느껴졌다.

클레어 키건이 학생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쓰기 시작한 <너무 늦은 시간>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7월 29일 금요일에 더블린의 날씨는 예보와 같았다. 오전 내내 뻔뻔한 햇볕이 메리온 광장에 내리쬐면서 카헐이 지키고 있는 열린 창가의 책상에까지 들어왔다. 잘린 풀의 맛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고 이따금 후텁지근한 바람이 창틀의 담쟁이덩굴을 흔들었다.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


지극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공무원 카헐의 시선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한 때 결혼까지 약속 했던 약혼자 사빈에게 파혼 당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남자의 일상적인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서 카헐의 입에서 "씹년"이라는 여성 비하 욕이 튀어나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 보니 카헐이라는 남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 키건은 프랑스인 엄마와 영국 태생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빈이라는 여성의 시점이 아닌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남자 카헐의 시점으로 남자들 스스로 지각하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여성 혐오 대한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시간을 교차 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켜 나간다.

무의식적으로 대화 중에 여성을 암캐, 창녀,씹년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카헐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 사빈이 좋아하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여자들이 그저 게을러터진 여자라 생각한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 친구 사빈의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서 매 끼니 차려진 음식 재료 값을 아까워 하고 설거짓 감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우연히 지갑을 놓고 온 여자 친구를 대신해서 계산 한 것을 두고 두고 잊지 않는 카헐은 매번 자신이 음식 재료 값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생색을 낸다.

결혼 반지 사이즈를 조정할 때 지불해야 하는 돈이 아깝다며 여자 친구 사빈에게 자신이 돈을 찍어내는 기계냐고 화를 내는 순간 카헐은 어머니를 무시했던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사과 한다.

파혼을 당한 후 카헐은 대학 시절 주말에 집으로 돌아왔던 날 모처럼 모인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음식 준비를 했던 어머니가 맨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려고 의자에 앉는 순간 동생과 의자를 빼서 어머니를 넘어뜨렸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그 때 집안 남자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남자가 되지 않았을까 라며 후회를 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50페이지 분량 속에 카헐이 회사에서 청소부 여성 부터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여성 그리고 우연히 광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사비나라는 여성을 대하는 모습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교차 시키며 아버지로부터 학습된 남성성이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는지 뒤틀린 관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이야기 초반부 작가 키건은 '얽히고 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대체로 매끄럽게 흘러갔다.'라는 문장으로 이 짧은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단 한 문장 속에 내포 해서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극적인 긴장감 없이 완벽한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완성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실제 이야기는 늦은 시간이 아닌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이라는 제목에 작가가 의도한 응축된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카헐의 인생에 너무 늦지 않게 몇 번의 시간을 되돌릴 기회는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전혀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카헐이 누군가 만나고 통화 하고 문자를 주고 받는 모습에 배어 있는 여성 혐오의 짙은 그림자를 작가 키건은 우리 일상 주변에 지나치는 모든 것에 응축된 의미를 담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작품 분량의 크기는 손바닥만 한 판형에 위 아래로 충분한 여백을 둔 페이지가 100페이지 조금 넘는다. 작정하고 읽는다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휘리릭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맨 앞 장으로 되돌아가서 읽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2024년에 출간 된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은 25년 전 출간한 데뷔작에 수록된 단편 ‘남극’(1999년 작),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2007)을 비롯해 가장 최근 단편인 ‘너무 늦은 시간’(2022) 등이 실렸다.

2007년의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에킬섬 하인리히 뵐 하우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성 작가에게 갑자기 찾아온 독문학과 교수라는 남성과 겪는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여성 작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독문학과 교수는 수많은 남성 작가를 제치고 선정 된 여성작가가 한가롭게 케이크나 만들며 주변 풍광이나 즐기는 한량이라며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로 그녀를 힐난하며 가르치려 든다.

여성 작가는 처음 만난 여성에게 세상의 이치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 무시하며 가르치려 드는 남자에게 복수 하기 위해 습작하고 있는 소설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둔 주인공으로 그 남자를 선택하고, 소소한 복수를 단행한다.

1999년 발표작이자 이 책의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된 <남극>은 첫 문장부터 충격을 예고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었다.

-남극 중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가 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룬 <남극>은 평소 남편과 아이들 뒤치닥 거리만 했던 ‘여자’가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어봐 주고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직접 장을 봐서 요리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씻겨주기까지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다.

독자는 낯선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 여성의 시선을 따라 영국의 유서 깊은 도시 구석 구석을 따라 가다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일을 당하는 그 여자의 마지막 여정의 끝, 눈과 얼음의 땅에 도달하게 된다.

단편 <남극>의 마지막 문단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섬뜻한 돌직구를 날린다.


어둑함 속에서 그녀의 입김이 보이고 머리를 덮는 냉기가 느껴졌다. 차갑고 느린 태양이 동쪽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녀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창 유리 너머에 내리는 눈이었을까?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를 자꾸 바뀌는 빨간 숫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사과 씨처럼 새까맸다. 그녀는 남극을 ,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클레어 키건의 <남극> 중에서


키건이 쓴 세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아일랜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 하고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이 아일랜드 전체 남성의 모습이라 단정 할 수 없지만 시간과 세대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 무엇을 작가가 단단하게 문장 마다 심어 놓았다.

120쪽 분량의 10년의 시간 차를 둔 단편 세 편이 실린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은 ‘여자와 남자들의 이야기(Stories of Women and Men)’이고 프랑스어판 제목은 ‘Misogyny(여성 혐오)’다.

미국판과 프랑스어 판 제목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하나같이 잔잔해 보이는 일상에 숨겨진 폭력과 남성 우월주의, 여성 혐오가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시차를 갖고 있는 세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적 연민이나 따뜻한 손길은 철저히 배제한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구조를 서늘하면서 건조한 문장으로 해부한다.

웬만해서 100페이지를 넘겨 쓰지 않는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은 한 번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을 때는 밋밋하면서 평이한 문장이지만 다시 한 번 문장을 곱씹으며 등장 인물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심리와 사소한 행동을 따라 음미 하며 읽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에게 포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알게 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1999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한 작품은 5권 뿐이다.

단편 소설집 《남극(Antarctica)》과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하자 마자 아일랜드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중편 분량의 장편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는 미국 타임지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 되었다.

영화로도 제작 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 소설 부문에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가장 분량이 작은 작품으로 올랐다.

클레어 키건은 2023년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 원고를 완성한 이후 신간 소식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이 개봉 할 때마다 인터뷰에서 문예 담당 기자들은 새 작품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지며 신간을 기다리고 있다.

영미 문학계에서 너무 많이 화자되고 있는 클레이 키건의 작품은 모든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25년 동안 발표한 다섯 권의 책을 쓴 클레어 키건을 가리켜 '탄광 속에 보석' 같은 작가라 칭송하고 미국 문학계는 그녀를 21세기 체홉이라 칭송한다.

작가들에게 극찬과 칭송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쓴다 해도 내가 읽고 나서 감흥이 없다면 나에게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첫번째, 두 번째 세번째 네번째 그리고 다섯번째 연달아 클레어 키건의 책을 읽으면서 조지 샌더스 작가가 21세기 체홉이라고 극찬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되고 지적인 암시를 담담하면서 서늘한 공포로 차오르는 슬픔을 흘러 넘치지 않게 서서히 새어 나오게 사용하는 작가 클레어 키건은 오로지 세상에 자신의 언어로만 쓸 법한 문장으로, 저만이 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낸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양육과 생계에 지친 부모에 의해 친척 집에 잠시 위탁 되어 처음으로 보살핌과 사랑을 느끼는 9살 소녀의 이야기부터 가부장, 종교, 이웃, 빈부, 남녀, 욕망, 소문, 평판, 술, 비겁함, 두려움 같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함'을 작가 키건은 응축된 문장에 담아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공기처럼 펼쳐 보인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어휘로 서정적이고 정교한 문장을 조각 하는 작가 키건의 언어는 소리 내어 읽어야 단 몇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진실과 진의가 숨어있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클레어 키건 단편 <굴복> 중에서


나는 단편 <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등장한 여자 작가의 모습이 작가 클레어 키건의 모습이라 상상하며 읽는다.


그녀는 책상 위의 종이 조각들을 보고 거기 적힌 메모를 읽은 뒤 한쪽으로 치웠다. 만년필 뚜껑이 빡빡 했지만 결국 열고서 공책을 펼쳤다.

그가 그녀의 케이크를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는지를 생각했다.그녀는 그 갈망과 싸우면서 고개를 숙이고 공책에 집중한 채 계속 써 내려갔다.


다섯 권의 키건의 책을 책꽂이에 나란히 꽂아두고 대 작가 체홉 작품을 읽으면서 스산하게 그려낸 아일랜드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삶의 흔적과 상처를 발견 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고 새삼 작가의 역량이 대가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본 영상 속에 그 무엇에 끌려서 충동 구매를 하거나 먹어 본 적 없는 것을 먹거나 가본 적 없는 곳을 찾아 가기도 한다.

영상과 달리 내가 구사하는 언어로 적힌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마음 안의 썰물과 밀물이 밀고 당기듯 파문의 파도를 일으키는 구절을 만날 때가 있다.

명료한 묘사보다 암시와 은유로 사람 사는 풍경을 그린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녀가 그린 인물들의 심상들이 내 마음의 파고를 따라 움직이며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놓았지만 쉽사리 말로 표현 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 동안에 읽을 정도로 얇고 가벼운 클레어 키건의 책은 다 읽고 나면 다시 펼치게 만든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 도파민에 중독되어 웬만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시대에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일 뿐이라 생각 할 것이다.

만 오천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기에 페이지 분량에 비해 책 가격이 비싸서 외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만 오천 원으로 120페이지 분량의 세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며칠의 일상이 어쩌면 삶 전체를 바꾸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옥토가 아닌 땅에도 씨를 뿌리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듯이 클레어 키건이 지어낸 이야기에는 지극히 평탄해 보이는 삶에서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선이 깨어지고 피어나지 않을 듯 했던 꽃이 피어나는 기적의 순간이 찾아 온다.

그러니 더 늦지 않은 시간에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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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미 문학사의 3대 비극으로 일컬어진다.












<모비딕>의 첫 장 서두를 여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 해두자]라는 문장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벽돌 부피의 분량에 본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슈메일이라는 모호한 인물이 화자로 등장 하는 <모비딕>의 초반부는 고래잡이 상선에 올라탄 이들이 거친 바다의 풍랑에 부딪치면서 겪게 되는 고단한 삶의 여정처럼 읽혀진다.

특히 소설의 상당 부분은 신문 르포타주 처럼 고래 사냥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들과 고래 잡이들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쉽사리 페이지가 넘어 가지 않는다.

이내 중반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 책 커버에 붙은 현란한 수식어들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세계 3대 비극, 미국 최고의 걸작, 역대 가장 많은 미국 대통령의 추천 도서, 미국 중고교 학생들의 필독서, 성경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 세기의 명작....

아무리 세기의 명작이라 해도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고 고리 타분한 전개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지만 멜빌의 <모비딕>이 성경 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이라면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 먹고 책을 펼쳐 집중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가장 먼저 첫 문장에 등장 하는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이슈메일'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스마엘이라는 발음이 된다.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은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대신 하녀의 몸에서 그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슈메일이다.

하지만 이후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들을 낳자 하녀의 아들 이슈메일은 추방되어 척박한 팔레스탄인 땅을 헤매는 방랑자가 된다.

단지 하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 이슈메일의 원죄는 무엇인가?

어미의 비천한 신분 탓인가?

아니면 태생적 운명 탓인가?

구약 성서 창세기 16장을 읽고 또 읽어도 이슈메일의 운명은 가혹할 뿐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 허먼 멜빌은 왜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성경에서 따온 이슈메일이란 이름을 부여했을까?

24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스물 한 살의 청년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상선에서 홀로 살아남아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세상에 전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이지만 정작 방대한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니다.

이슈메일은 '피쿼드'라는 고랫배에 승선 해서 태평양으로 출어 했다가 ‘모비딕’이라 불리는 거대한 흰고래에 받쳐 배가 침몰하게 되자 반드시 그 흰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광기 어린 집념에 사로잡힌 선장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인물이다.

따라서 <모비딕>은 다른 모든 동료 선원들이 사망한 가운데 악착 같이 혼자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스스로 이스마엘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한 젊은이의 체험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이슈메일이라는 청년이 무법천지의 고래잡이 상선에서 가까스로 홀로 살아남아서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고래 잡이 상선인 포경선 '피쿼드'는 미국 백인들에게 전멸 당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미국 북동부와 코네티컷 강 유역에 거주 했던 미 대륙 토착 원주민 부족이다.

1637년 백인 부대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피쿼드 부족의 비극은 민족 분쟁을 넘어 인종 섬멸 작전으로 불렸던 미 대륙의 끔찍한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미 대륙 원주민이 최초로 백인 부대에 맞서서 대등한 대결을 벌였던 <피퀴드 전쟁>은 영국에서 '메이 플라워' 호를 탄 백인 기독교 인들이 미 대륙에 도착 한지 17년 만에 미국 북동부 지역을 점령하며 신게계에서 거둔 눈부신 '승리'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허먼 멜빌이 <모비딕> 작품을 통해 미대륙의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표현 했던 것일까?

흰 고래는 잔혹한 미 대륙의 침략자 백인 기독교도들을 상징하는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암시로 가득찬 <모비딕>은 단순히 몇 단락으로 스토리를 요약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작품이다.

<모비딕>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고래 사냥과 고래 잡이의 삶의 여정을 지나서 중반부로 들어 가면 고래를 추적해서 파멸 시키려는 에이햅 선장의 광기 어린 인간의 섬뜻한 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다. 큰 어머니로 부르는 사라의 박해를 피해 하녀 신분인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을 떠나 모래 사막 같은 황무지 각지를 방랑하는 추방자이고 방랑자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등장하는 이슈메일 역시 계모 밑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난 인물이다. 그에겐 가정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정 붙일 곳 없는 육지에서 기약 없이 무작정 바다를 떠도는 모험의 길을 선택했다.

절망적인 소외감에서 선택한 자신의 여정 속에서 이슈메일은 피쿼드호의 선상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며 광기와 이성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 본다.

독자들 중에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완독 하지 못할 경우 우주 같이 방대한 <모비딕> 작품에 감춰진 중심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폭의 풍경화에는 숲과 나무 그리고 강이 있듯이 방대한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생김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숲 속의 나무 뿐만 아니라 뒤엉킨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소설 읽기의 진정한 매력은 전체 이야기의 핵심인 중심부와 그 이면에 감춰진 세부 사항의 전체 도감을 머릿 속에 그려 보며 소설의 진정한 주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다.

2024년 2월 1일 부터 투비컨티뉴드에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00회 완결을 기획해서 2025년 1월 9일 제 1부 50회 부터 중반부로 넘어 갔다.


https://tobe.aladin.co.kr/n/306335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914년 유럽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가문의 '이슈트반 저택'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세대와 인종, 그리고 계급별로 나눠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장군 죄르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어머니 시시황후의 영향으로 헝가리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던 황태자 루돌프는 보수적이고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 하는 황제 아버지와 달리 진보적인 사상으로 시대를 앞섰던 선구자였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절친이였던 장군 죄르지의 인생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았고 어느 날 후계자 자리에 올라간 사촌 동생 페르디난트 대공이 펼쳤던 평화적인 외교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에 속한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요제프는 모든 것이 유지 되길 바랬다.

반면 그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제국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 된다고 믿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에는 20세기 초 격변의 시대에 세대와 인종,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 역사에 실존 했던 인물과 내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첫 번째 출발 지점은 '비밀의 사제관'이다.


https://tobe.aladin.co.kr/n/149538


이야기의 초반부에 장군 죄르지와 그의 어린 딸 조피나, 집사 마그다,남자 하인 언드레시, 요리사 어누슈카,영국 국교회 교구당 소속에 이슈트반 가문 저택 사제관 목사 클라이만, 정원사 요셉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와 세상을 떠난 마망 아가타, 엄마 릴리가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 교사 안나가 사라져 버린 사실에 놀란 조피나는 떠난 이유도 몰라 그녀가 사용했던 방으로 들어가 슬픈 감정을 억누른다.

조피나는 2살 때 세상을 떠난 엄마 릴리와 3년 전 엄마 곁으로 간 마망 아가타를 그리워 하던 중 목사 클라이만이 있는 사제관 예배당으로 간다.

예배를 마치고 저택을 벗어나 목사 클라이만과 함께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간 조피나의 눈 앞에 1914년대 부다페스트 전경이 펼쳐 진다.

조피나와 목사 클라이만이 저택을 나간 사이에 조피나의 방은 불길에 휩싸이고 불이 진압 된 후 시신 한 구가 발견 된다.

그다음으로 등장하는 제 2화 '이슈트반 저택의 이방인'들 편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부다페스트 시장 비서 티서가 소환장을 들고 저택으로 찾아 와 장군 죄르지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티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계 촛침처럼 감시하고 관리하는 비서 쾨니그의 모습이 나온다.

제 3화 '토끼 섬의 고아들'편에는 도나우 강 유역에 있는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비서 쾨니그와 죄죄 박사가 한 여자 아이를 탈출 시키고 목사 클라이만은 아이의 신변 보호를 위해 교구당 신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 소녀의 이름은 주전너, 장군 죄르지와 같은 나이인 소녀는 저택의 하녀가 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초반부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 될 수록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장군 죄르지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저택에서 불이 났을 때 조피나는 어디에 누구와 있었을까?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탈출한 고아 소녀 주전너는 누구 일까?

조상 대대로 귀족 가문의 아이들, 사회적 지위가 없는 여성들, 하녀와 하인들, 부패한 공무원과 관료들, 사회적 지위 상승을 꿈꾸는 유대계들, 피 땀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가들, 계급의 차별과 부의 평등을 위해 싸우는 아나키스트들, 제국의 영토를 넘보는 스파이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비록 역사에 이름을 새기지 못했지만 내가 창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들과 깊이 연결된 인물들의 사연들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갈등이 증폭 되어 퍼즐 조각처럼 흩어졌던 복선들이 하나 둘 씩 맞춰져 나간다.

2025년 7월 3일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제 75화 '신 앞에 맹세하다' 지점까지 다다랐다.


https://tobe.aladin.co.kr/n/454202


1914년 세계는 수 세기에 걸쳐 유지 되었던 계급과 질서가 요동치며 민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 올랐다.

세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 하루 성실하게 자신의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역사적 사건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투영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개개인의 삶에 중첩되어 펼쳐진다.

누군가는 격변의 시대에 편승하고, 누군가는 개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기존 체제를 전복 시키기 위해 총을 꺼내 들었다.

격변의 시대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는다.

소설의 첫 시작은 작가로 하여금 그 소설을 쓰도록 이끈 직감과 사고, 지식들이 총 동원되지만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을 수록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이 투영 되어 깊은 곳에 실재 할 수 있는 어떤 신비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세기의 걸작 <모비딕>과 비교 할 수 없지만 1년의 시간을 넘어 70회에 달하는 분량을 쓰는 동안 단순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닌 1914년대의 격변의 역사 현장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삶의 여정 속에 담긴 진실함을 담고자 노력 했다.

2023년 1월 12일 부터 투비 컨티뉴드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꼬박 2년의 시간을 넘어 2025년 7월 3일 현재까지 1670개의 노트를 발행했다.

현재 투비 컨티뉴드에 총 10개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고 매일 <모닝 페이지>에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왜 우리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조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창작 플랫폼에 매일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부터는 하루 일과가 이전 보다 더 촘촘해졌고 시간을 좀 더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쓰게 되었다.

​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 이다.

24시간에서 평균적으로 잠자는 시간(일반적으로 6-7시간 숙면)을 제외 하면 개개인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일 것이다.

밥벌이를 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항상 머릿 속에서도 마음 속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

숏품 그리고 웹툰과 웹소설의 범람 속에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를 찾아 읽는 이들이 있다.

집필 공간도 집필을 구상하는 노트도 출간을 준비 하기 위해 쓰는 원고도 없는 무명 작가가 쓴 에세이 <모닝 페이지>와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꾸준하게 읽어 주는 독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안에 갖고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사고를 한 쪽으로 밀어 버리고 내 안에 숨어 있는 평온하고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글쓰기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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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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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6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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