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 무엇인지 묻자 캄파넬라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수줍음이 많은 조반니는 들다 만 손을 황급히 내린다.

선생님의 질문에 은하수라고 대답한 캄파넬라는 친구 조반니가 머뭇거리고 망설일 때마다 곁에서 챙겨주는 따스한 친구로 은하 축제의 날에 하늘타리 열매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등불을 넣어 강에 띄우는 놀이를 하러 함께 간다.

캄파넬라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가난한 조바니가 엄마를 위해 우유를 사 오던 그날 놀이에 끼워주지 않아 조반니는 홀로 언덕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본다.

'은하정거장, 은하정거장.'

언덕 풀 밭 위에 누워 있는 조반니의 눈 앞에 갑자기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 날아오르듯 불빛이 쏟아지고 정신을 차린 조반니는 어느새 기차 안 열차석에 앉아 있다.

이곳과 저곳의 세상을 가로 질러 달리는 은하철도

은하 열차에 탑승한 조반니는 세상을 초월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아들과 나란히 버스 맨 뒤에 앉아 버스가 습지대 남쪽을 크게 우회 하는 동안에 셸터 콘크리트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셸터의 위치를 그와 같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까? 그것은 세계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폭발의 열과 충격파가 이 도시를 엄습하기 전에 냉정함과 끈기를 가지고 진과 함께 걸어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심한 열로 콘크리트의 외벽이 번쩍거린 다음에 이어질 충격파는 어린아이의 귀에도 울릴 것이다. 이사나는 그때 평온하게 속삭이는 듯한, ‘세계의 끝, 입니다’라는 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오에 겐자부로의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중에서

핵전쟁의 위기 속에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진과 함께 아버지 이사나는 핵 방공호로 짓던 지하에 건물을 쌓아 올린 형태의 '핵 셸터'에 은둔한 채 세상과 단절한다.

은둔하는 남자 이사나는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들 진의 미래를 고래에게 부탁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라 믿고 버려지기 쉬운 존재인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의지로 세상에서 낙오된 청년들과 연대 해서 정부와 맞선다.

이사나가 쥔 총엔 정확히 다섯 발의 총알만 장전 되어 있다.

그 다섯 발의 총알로 무력으로 진압 하려는 정부를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핵전쟁의 위협에 처해 있는 세상을 구원하지도 못한다.

당신은 나라의 미래가 닫힌다 해도 자신은 나이가 들어 얼마 못 살 테니, 책의 지식만은 어떻게든 지닌 채로 죽자, 라고 말할 사람 아닌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 중에서

2023년 3월 3일 오에 겐자부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책장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모조리 꺼냈다.

몇 편의 단편집과 장편집은 추가로 해외 주문을 해 놓고 그의 초기작 부터 읽기 시작해서 전부 완독 했다.

오에는 생전에 인터뷰도 활발하게 했지만 주요 매체에 기고글도 많이 남겼다.

아들 히카리와 함께 나온 다큐부터 노벨상 수상식을 하러 스웨덴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영상까지 보면서 나는 오에가 세상에 남긴 글을 읽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던 날 밤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1994년 10월 13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 였지요.

전세 승용차에서 전화를 받은 교도통신 기자가 '아앗!'하고 다소 만화적으로 외치는 바람에 도쿄의 세이조 자택 앞에 모여 있던 저희들은 순간적으로 수상이 결정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삼사십 명이 있었던가요?

''일본 현대 작가들이 쌓아 올린 업적 덕분에 살아 있는 내가 수상한 것이다...'

이 말이 제 입에서 떨어지자 마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받아 적던 기자들 모습이 제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두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고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서있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뉴스에 제 얼굴과 목소리로 전부 도배 되고 온갖 신문 잡지 마다 제 얼굴이 표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기자들 40명 정도가 저희 집에 찾아 왔고 그리고 몇 달 후 마침내 수상식이 열리는 스웨덴으로 날아갔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 와서 앞서 인터뷰 예약을 한 기자들과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뜬 저는 거울을 보고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세상을 향해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자.'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일본 사회를 향한 발언과 행동에 거침 없었고 어떤 협박과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아베가 죽기 몇 달 전 어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선한 눈빛과 미소 뒤에 숨은 결의가 섬짓 했다는 말을 했고 정확히 100살을 채운 헨리 키신저는 미소를 띄우며 유창한 영어로 자신에 맹렬하게 질문을 퍼붓던 오에 겐자부로를 어디서든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었다고 회고록에서 언급 했을 정도로 인간 오에 겐자부로는 어떤 국가, 어떤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외쳤다.

'내가 쓴 소설이 인쇄되고 있는 이상,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이 미래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어 사람들이 열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때 나는 유령이 되어 나타나서 '그렇습니다. 나는 재미있는 것을 썼습니다 ! 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가 남긴 책을 전부 완독 하고 난 후 중국의 대 문호 '루쉰'이 남긴 글을 차례 차례 읽어나갔다.

인류의 멸망은 매우 외롭고도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의 멸망은 결코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생명의 길은 진보 하는 것이다.

항시 무한한 정신이라는 삼각형의 빗면을 따라 올라가니 어떤 것도 그를 방해 할 수 없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부조화는 여전히 많다. 인간 스스로 시들고 타락하고 퇴보한 것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이 때문에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의 절박하고 완벽한 잠재력은 어둠이 몰려와 대세를 막아도 비참함이 사회를 습격해도 죄악이 사람의 도를 더럽히더라도 항상 이런 철가시를 즈려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의 면전에서 웃으며 뛰며, 멸망하는 사람들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길인가? 바로 길이 없던 곳을 밟아 길을 만들어 낸 곳이다. 가시덤불만 있던 곳을 개척하여 만들어 낸 곳이다.

이전에도 길이 있었으니 이후에도 영원히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는 외로울 리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향상적이고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생명의 길 중에서

1945년 8월 15일, 정오 뉴스에 방송된 일본 제국의 종전 선언을 한지 78년의 시간이 흘러 2023년 8월 24일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자신들부터 살겠다며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하자 전문가들은 앞다퉈 실시간으로 방사능 오염 진단 키트를 꺼내 들고 문제 없다고 외치고 있다.

맑은 샘물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샘물은 전과 다름 없이 맑고 투명하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연달아 핏물을 쏟아 부어버리면 어디선가 엄청난 양의 조류가 닥쳐 오지 않은 이상 샘물은 어느새 붉은 핏물로 가득 차 버리고 차츰 시간이 흘러 악취가 나는 오염수가 된다.

​

제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습니까. 그런데 제가 잡아먹히게 되자 도망치다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왕에 죽을 거라면 족제비에게 잡아먹혀 족제비가 오늘 하루 목숨을 잇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신이여, 다음엔 이렇게 쓸모 없이 버려지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중에서

​

은하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정거장에서 하나 둘 내리고 마지막 조반니와 그의 유일한 친구 캄파넬라 친구만 덜렁 기차 안에 남겨진다.

'캄파넬라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 어디까지든 함께 가자 나는 이제 그 전갈 처럼 정말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따위는 백 번이고 불에 탄다고 해도 상관없어.'

1924년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를 때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의 밤>을 썼다.

' 나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이라도 두렵지 않아.

정말로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가겠어.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우리 함께 나아가자.'

​

마침내 마지막 탑승권을 손에 쥔 조반니는 친구 캄파넬라는 죽어서 은하 끝 하늘나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깨닫는다.

무시 무시한 무기로 세상의 반을 불태우며 이웃 국가의 무고한 생명들을 마구 짓밟은 일본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 하고 있다.

핵과학자들(미국 핵과학자회보·BSA)이 인류 멸망까지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만든 '운명의 날 시계'가 2023년 1월 1일 '자정 90초 전'으로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그리고 8월 24일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으로 10초 더 앞당겨졌고 휴먼노보이드로 대륙 굴기를 하고 있는 중국은 전기 먹는 인공지능 제국을 꿈꾸며 매년 원전 건설 10기의 기록을 세울 태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 걷어가는 루팡들에게 유리지갑을 탈탈 털리는 시민들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앞날을 걱정 한들 이 세상은 이전 시대로 회귀 하지 않을 것이고 '운명의 날 시계'는 지금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상처투성이인 나를 벌거벗기고,

당신이 따온 약초 기름을 발라주면서 어머니는 탄식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고 말해도 되나?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오랫동안 수수께끼가 될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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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 문학상에서 여성 수상자들은 총 17명으로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09년 스웨덴의 여류소설가 셀마 라게를뢰프(1858~1940)다.

셀마는 교사로 활동하던 1885년 고향인 베름란드의 제철소 주인과 소지주들의 생활상을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 첫번째 소설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를 발표하며 1890년대 스웨덴 낭만주의 부흥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

1909년에 셀마가 수상한 이후 17여년 동안 남성에게 문학상이 수여 되다가 1926년 이탈리아의 소설가 그라치아 델레다가 여성으로 두 번째 수상을 했다.

노벨위원회 측은 노벨 문학상 분야에서 여성에게 연이어 상을 수여 한 적이 없이 그동안 드문 드문 상을 수여 해왔다.

2024년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마침내 아시아권에서  최초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2000년대 부터 영국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odds)에서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배당률을 주고 있는 여성 작가들은 미국의 조이스 캐롤 오츠와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이고 2010년대 부터 영어권에서 활발하게 출간 되고 창작 수업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는 중국 작가 찬쉐가 있다.

​

​

1938년 생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거의 모든 장르를 종횡 무진 쓰며 매년 두 세권의 벽돌 부피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필력에 선두주자다.

시라큐스 대학 시절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단번에 출판사로 부터 출간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일찌감치 문학적 재능을 싹 틔웠던 캐롤 오츠는 1960년대부터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 소설을 동시에 집필하면서 틈틈이 시와 산문을 쓰고 여러 문예지에 비평을 발표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희곡을 쓰는 무시 무시한 필력으로 그녀가 매년 쏟아내는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려 달려드는 비평가들이 없을 정도로 문학계 괴물로 불리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조이스 캐롤 오츠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하고 있다.

‘문학의 여성’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오츠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자격 있는 작가일 것이다.

작가를 성별로 구분 짓고 그녀와 그가 써 내는 작품을 구별해 놓고 이 작품은 여성이 저 작품은 남성이 라는 잣대로 평가를 하는 건 유치한 짓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작품을 미국 남부 출신 백인 남성 작가가 썼다면 과연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까?

가부장적인 문화와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을 때 작품 활동을 시작한 캐롤 오츠는 남성 작가들이 절대 다수인 장르까지 창작 영역을 넓혀서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20세기 미국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

내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야.” 그녀가 지친 듯이 말했다.

“여자는 꿈 같아.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의 꿈이지.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산다는 뜻이야. 굴욕적이지만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어. 어떤 여자도 도망치지 못해. 여자의 일생은 남자에 대한 기다림이야. 그뿐이야. 이 꿈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여자는 그 문을 통과해야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늦든 빠르든 그 문을 열고 통과해서 어떤 남자, 한 명의 남자에게 도달해야 돼.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결혼 상대는 누구든 상관없지만, 이 길에서는 벗어날 수 없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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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가장 많이 거론 되는 작가는 장편과 단편을 총 망라해서 헤밍웨이, 포크너, 필립 로스이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은 주요 문학상을 거의 전부 휩쓸었고 미국 현대 문학 수업에서 이들 작품은 절대 빠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출판사에서 새 커버로 출간 할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백인 남성 작가들을 제외 하고 미국 현대 문학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는 조이스 캐롤 오츠다.

그녀가 1970년에 발표한 장편 <그들>은 일명 미국의 불평등과 차별이 극한에 달한 폭력의 시대를 집중 조명한 연작 작품인 '원더랜드 4부작'의 첫 작품으로 시대적 배경은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흑인 폭동의 한 복판에서 분투하는 가족의 모습을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적 인간 드라마다.

빈곤 노동 계층의 사랑과 계급, 인종과 도시 빈민화 문제를 정면으로 펼쳐 보인 오츠의 '원더랜드 4부작'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독창성이 뛰어나고 시대의 어둠을 문학적 언어로 빚어낸 20세기 현대 영미 소설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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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스 캐롤 오츠는 2000년의 첫 장편 소설로 세기의 배우 매릴린 몬로의 삶을 픽션으로 재 구성한 <블론드>를 출간하며 미국 문학계와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메릴린 몬로의 삶은 숱하게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왔고 여러 책들이 출간 될 정도로 언제나 전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그녀에 대해 많은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소문과 진실을 알고 있고 더러운 쇼 비지니스 세계에서 미스터리한 삶과 더러운 미국 정치인들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 알고 있다.

타고난 필력을 자랑한 작가 캐롤 오츠는 매릴린 먼로의 진짜 이름인 노마 진의 삶 부터 출발해서 어린 노마 진이 전전했던 수많은 위탁가정 중 딱 한 곳인 허구의 가정을 탐사 하듯 수많은 연인과 건강상의 위기, 임신중단과 자살 시도, 영화 속 연기 중 상징적인 것들만 선택 해서 픽션의 형식으로 그녀의 삶을 문학적으로 증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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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머리에 풍만한 곡선형의 먼로의 외모는 대단히 유혹적이였지만 그녀의 내면은 문학적인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먼로는 약물에 취해 있을 때도 술에 취해 있을 때도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서도 일기를 빠짐없이 썼고 영화 촬영 장에서 종종 시를 쓰기도 했다.

위탁 가정에 맡겨졌던 시절에도 동화책을 읽었고 신문은 항상 탐독 했고 성인이 된 이후로 다윈의 종의 기원도 읽었을 정도로 먼로의 독서열은 동시대 여 배우 중에서 최고였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증류 시켜 버린 노마 진의 삶의 첫 시작 <특급 배송>의 첫 페이지는 영화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에서 유모차가 내려오는 명 장면 처럼 물 흐르듯 천천히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의 삶 앞으로 배달된다.

​

이울어가는 세피아색 빛을 받으며 죽음이 큰길을 따라 질주해오고 있었다.

장식 없이 무겁고 단순한 배달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 만화에서처럼 죽음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죽음은 부랴부랴 서두른다. 죽음은 미친듯이 페달을 밟는다. 죽음은 특급배송취급주의라고 표시된 소포를 안장 뒤쪽의 튼튼한 와이어 바구니에 실어나른다.

도로 공사로 서쪽으로 가는 두 개의 윌셔 차선이 하나로 줄어드는 바람에 막히고 혼잡한 윌셔와 라브레아 교차로를 볼품없는 자전거를 타고 요리조리 능숙하게 누비며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은 무척 날래다! 죽음은 경적을 울려대는 중년 남자들을 비웃는다. 죽음은 웃음을 터뜨린다, 엿이나 드쇼, 아저씨! 그리고 당신도. 반짝반짝 매끄럽게 빛나며 오도 가도 못하는 값비싼 최신형 자동차들을 지나쳐 벅스 버니처럼 휭 달린다.

로스앤젤레스의 스모그 자욱한 공기 따위 꺼리지 않고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의 고향인 남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방사성 공기 따위.

그래, 난 죽음을 봤어. 엊저녁 꿈에서. 그전에도 여러 번. 난 겁나지 않았어.

너무나 자명한 죽음이 오고 있었다. 볼썽사납긴 해도 튼튼한 자전거의 얼룩덜룩하게 녹슨 핸들 위로 등을 구부린 죽음이 오고 있었다. 세탁은 했지만 다림질은 생략한 카키색 반바지와 칼테크 티셔츠를 입고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은 죽음이 오고 있었다. 근육질 종아리와 갈색 털이 숭숭한 다리. 울퉁불퉁 둥글게 솟은 손마디뼈. 얼굴에 여드름과 잡티가 돋은 소년. 햇빛이 자동차 앞유리와 크롬도금에 반사되어 언월도처럼 번쩍이는 바람에 죽음은 머리가 어찔하고 신경이 곤두선다.

죽음의 현란하고 대담한 질주에 더 많은 경적이 울려댄다. 죽음은 성의 없이 아주 짧게 머리를 깎았다. 죽음은 껌을 질겅질겅 씹는다.

죽음은 아주 판에 박은 듯 규칙적이다. 일주일에 오 일, 거기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요금을 더 높게 받는다. 할리우드 배달 서비스. 죽음은 특송 소포를 직접 배달한다.

죽음이 예기치 못하게 브렌트우드로 오고 있었다! 죽음은 8월의 인적 드문 브렌트우드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달린다. 세심하게 가꾼 수고가 애처롭고 헛되게도 이곳 브렌트우드의 ‘정원들’을 휙 지나치며 죽음은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앨터비스타, 캠포, 하쿰바, 브라이드먼, 로스올리보스. 막다른 골목인 헬레나 드라이브 5길까지. 야자수, 부겐빌레아, 붉은 덩굴장미. 만개 후 썩어가는 꽃 냄새. 햇볕에 그을린 잔디 냄새. 담으로 에워싸인 정원, 등나무. 원형 진입로. 햇볕을 막으려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린 창문.

-조이스 캐롤 오츠의 <블론드>의 '특급 배송' 중에서

​

1938년 생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작년에 두툼한 부피의 자서전을 출간하며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2026년 노벨 문학상의 메달이 어떤 작가의 목에 걸리게 될 지 모르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 스토리에서 좀비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까지 넘나드는 조이스 캐롤 오츠는 아름다운 문학적 언어가 아닌 충격적이고 기괴하며 과격한 스토리 작법으로 동시대 세계를 열정적이면서 예언적인 목소리를 쏟아내는 그녀는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 텔러다.

그녀가 오랫 동안 여러 대학의 문예 창작학과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작가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결코 당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당신의 ‘금지된’ 열정은 글쓰기의 연료와 같다.

2.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쓴 다음에야 쓸 수 있다. 초고는 지옥이다. 완고는 낙원이다.

우리의 작품이 돌에 새겨지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이 인쇄되기 전까지는 원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3. 후대인이 아니라 동시대인을 위해 써라. 운이 좋으면 당신의 동시대인은 후대인이 될 것이다.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염두에 둬라.: 조금 진지하면 위험하다. 대단히 진지하면 치명적이다.

5. 어떻게 한 챕터를 끝내야 할지 망설일 땐, 총을 든 남자를 등장시켜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조언이다. 나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6.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면 단락을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 둬라.

7. 당신 자신의 편집자, 평론가가 되어라. 공감하면서도 잔인해져라.

8. 이상적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독자가 있긴 있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9. 열심히 읽고 관찰하고 들어라. 마치 당신의 삶이 거기에 달린 것처럼

10.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조이스 캐롤 오츠는 전화 통화 신호음이 가는 동안에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책을 읽을 정도로 활자 중독자 이고 비행기 대기실에서는 장편 한 편을 뚝딱 읽어 치울 정도로 읽는 속도가 진공 청소기 흡인력과 맞먹을 정도다.

세상의 거의 모든 유명한 소설을 전부 읽은 조이스 캐롤 오츠는 상당량의 작품을 쏟아 내고 나서 역사 소설과 논픽션을 탐독하고 있고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누아르물은 수시로 읽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장르다.

90세를 앞둔 조이스 캐롤 오츠는 현재 분자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언어학, 철학책을 탐독하며 세상에 존재 하는 현상을 소설적 언어로 재현할 방법에 몰두 하며 지금까지도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

나이 든 작가는 젊은 작가에게 어떤 충고를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몇 년 전 들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만 이야기해줄 수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경주가 아니다.

아무도 진짜로 ‘이기지’ 못한다.

만족은 노력에서 나오고, 그 결과 보상이 따른다 해도

그런 보상은 아주 드물게 오는 법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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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2026-10-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한강이 아시아권 여성 최초수상자 아닌가요?

카스피 2026-10-0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년에 한국인 한강이 수상했으니 중국의 찬쉐는 물건너 간 것 같은데 조이스 캐롤 오츠나 마커릿 앳트우드도 유력하지만 역시나 유럽권 남성작가가 받지 않을까 싶어요.
 

1921년 미국 콜로라도의 오지 중에 오지인 캐슬락에서 목장 주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척박한 오지에서 소와 양떼를 키우며 가업을 일으킨 아버지 세대와 달리 태생적으로 유약 하고 힘쓰는 걸 싫어 했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급우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닐 때 이 남자는 몰래 인근 숲으로 도망쳐서 그 곳에서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 책에 푹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 남자는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 하고 싶었지만 태어나기 일 년 전인 1920년에 불어 닥친 경제 대공항으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서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이 남자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장학금을 받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입학한다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삼촌들 처럼 아들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서 변호사가 되기를 바랬다. 남자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경제학 전공으로 바꾸지만 수업은 영문학과 수업을 청강 했다.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 졸업마저 불확실해 졌을 때 군 입대 통지서가 날아 온다.

1940년 대동아 전선에 뛰어든 일본의 침공이 태평양으로 확대 되고 미 해군은 서부 버클리 대학에 일본어 랭귀지 스쿨을 개설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는 미 해군 통역관으로 군 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바램 하나로 버클리 대학에서 일본어 수업을 신청한다.

2년 동안 버클리에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한 남자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 항만을 침공하자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관으로 선발 되어 미 해군 기지 함선에 올라탄다.

하지만 군 장성 집안 출신도 아니고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남자는 장군의 직속 통역 최종 선발 심사에서 탈락한다.

1942년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 도착한 남자는 주변의 수상한 동태나 정보를 수집이나 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어촌 마을을 떠돌아 다닌다.

남자는 어촌 마을에서 일본 민간인들과 접촉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살아 있는 일본어를 배우게 되고 뜻밖에도 적군인 미군에게 친절하게 다가와 먹을 것을 주는 일본인들의 마음에 감동 받는다.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남자는 미 해군으로 부터 미국 서부 수용소에 갇힌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하와이에 거주 하고 있던 15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을 서부 강제 수용소로 몰아 넣었고 이 곳에 스파이나 조력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미국은 수용자들을 강하게 심문하며 이중 간첩 색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심적인 고통을 겪은 남자는 임무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 찾아가 외교관 시험에 응시한다. 필기 시험에 통과 한 남자는 면접 자리에 나온 담당 교수로 부터 콜로라도 촌놈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일본 신문과 방송을 능숙하게 번역하고 통역하는 실력으로 단번에 합격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 한 후 남자는 전쟁 당시 그림자 조차 목격한 적 없었던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사이자 외교관 자격으로 다시 일본 땅에 밟는다.

끝없이 밀려 드는 서류 작업과 전범 재판소 기록물을 번역하는 일에 싫증을 느낀 남자는 2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외교관을 그만 둔 남자는 대학에서 일본어 강의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 한다.

1956년 미국 포드사가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남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에서 헤이안 시대 문학과 일본 현대 문학을 공부 한 후 예수회 재단 학교인 소피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일본 현대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강사 월급으로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번역 작업은 곧바로 미국 출판사에 출간 되어서 1960년대 미국 독자들은 일본 문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영어로 읽게 되었다.

8년의 시간이 흘러 1968년 이 남자는 스웨덴 스톡홀롬 왕궁에서 열리는 노벨문학상 수여식 자리에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바로 옆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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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수상 소감에서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고 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재단에서 받은 상금 6만 크로네에서 절반을 뚝 떼어서 '설국'을 영어로 유려하게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1921-2007)에게 주었다.

일본 언론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큰 기여를 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일본 건국 기념일인 2월 11일에 태어났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노벨 문학상 발표 당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 지리산 노고단을 등정 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습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도쿄에 집을 마련하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 유물을 수집했다.

불운한 경제 대공황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본어 공부로 인생 역전을 맞이했어도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이였다.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싸우기를 좋아하고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목소리가 크고 마늘 냄새가 나는 더러운 종족이라 비하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선 백자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밀 반출한 도자기를 일본 정부가 마련해준 도쿄 저택에 숨겨두기도 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만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다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갖춘 심성이 부드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그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 하지 않았다면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린 1등 공신은 그녀의 작품 <채식주의자> 영어로 처음 번역한 영국 출신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다.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채식주의자Vegetarian >는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기 전에는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수상 이후 비평가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부커 상 수상 이후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책은 프랑스어 독일어를 비롯해 스웨덴어로 번역되어 출판 되는 동안 많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면서 원본을 왜곡하고 한국문학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영어 번역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원본에 충실한 번역의 잣대로 문학번역에서 오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충실한지 아닌지, 정확한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어와 한국어 두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1대 1 직역 번역을 하게 될 경우 한국어 맛을 살리는 번역은 실제 영미권 독자들에게 와 닿지 않게 된다.

한국 학자들은 해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이 한강의 작품을 한국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서 읽지 않고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작품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도 과감하게 의역을 해서 한동안 일본의 영문학자들 사이에 비판이 일어 났지만 일본 내에서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어 번역을 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한 번역가의 공로는 높이 칭송했다.

1937년에 출간된 <설국>은 일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1960년대까지도 1쇄를 넘기지 못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시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미시마 유키오였다.

바둑대전이 열리는 날이나 바둑 전문 잡지에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이 실렸을 뿐 일본 독자들은 시적인 언어로 함축된 그의 작품을 지루 하다고 생각했다.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 명문대인 스탠퍼드·미시간·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하며 최고의 교수로 이름을 날렸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1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일본 최고 고전인 '겐지이야기'를 영역을 완수한다.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출간한 회고록에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려면 뭔가를 끊임없이 내다 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일"이라며 “작품을 시작하고 끝 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강 작품의 영어 번역을 원본과 한 문장씩 대조 하면서 오역을 지적하는 세미나를 열었던 영문학자들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지대한 공을 세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 깊이 있게 분석한 논문을 쓴 학자들이 없다.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수여하는 부커상 수상식에서 데버라 스미스는 단어를 선택할 때, 그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지, 독자들이 읽었을 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를 생각하면서 원문에 있는 함축적 의미와 이미지들을 깊이 고민하면서 번역한다는 말을 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하기 전까지 그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해외토픽에 실릴 만큼 기이한 장면이 여러 매체에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시인의 집 앞으로 기자가 대거 몰려가 있는 모습이라든지 이번에도 한국의 **시인의 수상은 유력한가?라는 기사 제목부터 영국의 한 도박 사이트에 **시인은 몇 번째 올라가 있는가?라는 기사까지 노벨 문학상 발표 직전까지 쏟아졌다.

이런 장면들이 20년 동안 이어지는 동안 한국 학자들과 학계는 번역가들을 양성하는데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번역가의 자질과 오역을 지적해 왔다.

한강의 기적이 일으킨 K문학의 르네상스가 더 넓게 뻗어 나가려면 번역을 창작으로 보고 번역가에게도 문학적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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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노벨상 계절이 시작 되었다.

10월  5일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     12일  경제학상이 발표 된다.

발명으로 거부가 된 노벨의 기부로 시작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철저하게 후보를 공개 하지 않고 어떻게 후보를 선정하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어서 영국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odds)에서 유력 후보를 선정해서 배당률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

 미식축구, 야구, 경마, 아이스하키 등 유럽 스포츠 결과를 예측해서  순위별로 집계한 배당률에 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 멀티숍인  나이서오즈(Nicerodds)는  매년 10월  한시적으로 '노벨문학상 배당률'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꽤 적중률이 높고 배당률 후보에 오르는 후보 중 상당수는 몇 년 안에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서 전 세계인들이 이 사이트를 클릭 하며 실시간 후보 배당률을 살펴서 출판사를 비롯해 언론사들이 수상 시기에 맞춘 기사와 출판물을 쏟아 내기 위해 예의 주시 하고 있다.

철저하게 후보작 선정 과정 부터 심사까지 베일에 쌓아 놓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노벨상 주최국이자 위원회인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선정에 있어서 정치적 색채가 농후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지만 노벨상은 1901년 첫 시상 이후 123년의 세월 동안  가뭄의 콩 나듯 여성들에게 상을 수여 해왔다.

 물리학 분야 같은 과학 분야는 각각 3명 정도의 여성 수상자에게 영광이 돌아갔고 문학상은 2024년까지 121명의 수상자 가운데 2024년 한국 작가 한강을 포함해서 여성 수상자는 불과 18명에 불과 하다.

역대 노벨 수상자들 성비율로 비교 해보면 각 분야 수상자 8명 중에서 7명 정도가 남성이라면 여성 수상자는 단 1명에 그치고 있고 8년에 한 번 정도 노벨상에 여성 수상자들이 포함 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특히  백인 수상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서구 보수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노벨상은 정치 경제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선심을 쓰듯 비 서구권에서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비난을 의식 했는지 2012년 부터 남성 수상자와 여성 수상자에게 번갈아 상을 수여 했던 스웨덴 한림원은 2019년 미투 운동 촉발로 2년 동안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에 남성이 연달아 수상한 것을 제외 하고 2022년 아니 에르노가 상을 받은 다음 해에 노르웨이 남성 극작가 욘 포세가 수상했다. 

1945년 남미 출신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칠레 태생의  혼혈 백인이었고, 2007년에  수상한 도리스 레싱은 이란 태생이지만  영국인 부모를 둔 백인이었다.  

1993년 흑인 최초이자 여성인 토니 모리슨이 수상 한 이후로 아시아 여성으로서 첫 수상이자  백인, 남성이 주류인 세계 문학계에서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수상은 의미가 크다. 

성별 안배를 고려한 영국의 베팅 사이트들은  2026년 노벨 문학상 유력한 수상 후보로 중국의 카프카와 보르헤스로 불리고 있는 <찬쉐>를  내세웠다.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도 “중국에 노벨상 수상의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면 그는 바로 찬쉐”라고 평가한 적 있어서 현재 찬쉐 수상 가능성에 가장 높은 베팅을 하고 있고 래드브룩스 기준으로 유력 후보 2위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그 다음 순위로  미국의 토머스 핀천과 호주의 제럴드 머네인이 차지 하고 있다.

찬쉐와 하루키를 제외 하고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 모두 90세를 바라 보고 있어서 이번 수상 기회가 생애 마지막 일 수 있다.

영국 베팅 사이트들은 물론이고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 '한강'의 수상 예측을 한 영미권 언론은  없었다.

1890년에 사망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문장을 남겼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이 유언장에 언급한   '이상적인 방향(스웨덴어 idealisk riktning)'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여러 갈래의 해석을 하며 수상 후보를 골라 왔다.

노벨이 유언장에 언급한 '이상적인 방향(스웨덴어 idealisk riktning)'은  '예술적 이상' 일 수도 있고 '인류의 삶에 기여할 이상적인 정신성'으로 넓게 해석 할 수 있지만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노벨 문학상은 한없이 가벼운 통속적인  스토리나 영어권 국가 출신에 백인 남성 작가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많은 유럽, 북미 작가들에게 상을 집중적으로 수여해 왔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 특히 영어나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를 정기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언어가 최근 3년간 헝가리어, 한국어, 노르웨이어 작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엔 영어·프랑스어 작가일 가능성도 있다.
 
예술적 이상의 추구든 이상사회의 구현이든, 문학을 통해 자기만의 이상과 신념을 일생에 걸쳐 펼쳐온 작가가 202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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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노벨상의 계절이라니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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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12월 26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예시라는 작은 마을 광장 천막안에서 세상 밖을 나왔다. 

붉은 수염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와 황후 콘스탄체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난 아이, 성탄절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의 왕관을 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움브리아 지방에서 세살까지  살던 꼬마 프리드리히 세례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인리히를 만난다. 

1년 후  하인리히 황제는 건강 이상으로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유럽 전역에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반란이 종교계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 교황의 죽음으로 더욱 혼란이 가중된다.

 황후 콘스탄체는 이제 네살이 채 안된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권력의 왕좌에 앉히기 위해 왕실 최고 회의를 소집한다. 

1198년 1월, 로마 교황으로고 서른 여덟 살의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선출되고 황후 콘스탄체는 그에게 접근해 교황이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린 프리드리히의 왕위를 인정해 주면 혈통상 프리드리히에게 권리가 있는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교황 입장에서는 골치 덩어리 독일을 관리 하지 않아도 되니 황후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1198년 5월 17일, 겨우 네 살이 된 프리드리히는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 한다. 

나폴리까지 공략해온 로마 교황의 영토와 국경을 접한 남부 이탈리아 전역의 통치권이 4살짜리 프리드리히 황제 손에 들어갔다.

 반년 후 1198년 11월, 황후 콘스탄체는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아들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한다. 



교황은 죽음이 임박한 황후에게 다음과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시칠리아 왕국이 로마 교황의 영유지 라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후견인 비용을 낼 것. 

단, 후견 비용의 납부 시기는 성인이 된 다음에 할 것


황후 콘스탄체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며칠 후 눈을 감는다.


자, 이제  천애고아가 된 4살 꼬마황제 프리드리히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황후가 사망 한 후 교황의 신경은 온통 제 4차 십자군을 동방에 보내는데 쏠려 있었다.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 옆에는 성직자나 학자 출신도 아닌 굴리에모 프란체스코라는 일반인에게 맡겨진다.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10년 동안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신의 호기심이 가는 데로 거의 전 분야를 독학해 나간다.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했던 꼬마 황제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를 차례 차례 익혀 나간다. 황제 프리드리히는 수행원이나 시종 없이 팔레르모 시내를 마음껏 돌아 다니며 서민들의 언어와 문화까지 익힌다.

황후의 사망 이후 단 한번도 꼬마 황제 프리드리히를 만난 적이 없었던 교황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카푸아 대주교의 보고서를 통해 꼬마 황제가 어떻게 성장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푸아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키는 중간 정도로  또래들 보다 크지 않다. 단단한 체격에 지구력이 강하다.

-칼과 창, 활을 평균 이상으로 잘 다룬다.

- 무술에 집중 하고 있을 때 자세가 유연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써서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다.

-승마를 아주 즐긴다. 아무리 거칠고 성질 머리가 나쁜 말 위에 올라 타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세로 말을 길들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 까지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고 돌아 다닌다.

-유일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독서를 할 때 뿐이다. 역사 책을 주로 탐독 하지만 뭐든 손에 잡히는 데로 읽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새벽까지 이어진다.

-피로 하다 거나 지겨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황제 의복으로 갈아 입고 나면 순식간에 근엄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이마는 넓은 마음을 드러내고  눈빛은 소년의 눈빛이지만  상대를 바라 볼 때는 강한 열정을 드러낸다. 단, 가끔 황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서민들 언어로 말해서 시종들을 난감하게 만들때가 있다.

- 무엇이든 미리 정해진 데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시종이나 하인을 부리지 않고 어떤 곳도 스스로 찾아가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척척 해낸다.


소년 프리드리히 황제가 살던 시기에 팔레르모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뒤섞인 무법지대로 독일과 이탈리아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살해 될지 모르는 곳이였다.

황제의 후견인 교황도 이곳은 손도 대기 싫은 곳이지만 황제 프리드리히를 자신의 손안에 쥐고 흔들며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첩자로 파견한 사제들과 대주교들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24시간 감시 하며 수시로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완벽하게 감시 당하면서 완전하게 방치돼 버린 황제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 무렵 독일 세력들에 의해 납치 될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기거 하고  있는 노르만인의 궁전으로 쳐들어온 독일 세력들 앞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마구 할퀴며 짐승처럼 큰 소리로 울부 짖었다.

소년 프리드리히가 미쳐 버렸다 생각했던  독일 세력들은 곧바로 현장에서 줄행랑을 치고 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교황의 비밀 첩자 사제는 이날의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년 황제가 독일 세력들 앞에서 보인 행동은 극도의 공포심이 아닌 이름만 황제 뿐인 자신의 처지를 절망과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팔레르모 전역에 세워진 예배당의 서고들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 하기 시작한다.

1208년 소년 프리드리히가 13살 생일날 삼촌 필립이 살해 당하고 소년은 호엔수타우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1209년 12월 26일  14살 소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견인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란다.

'그 꼬마가 자신의 나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키웠군, 소년의 모습이지만 인지 능력은 성인을 넘어 섰다니.'


가만히  14살 황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  마흔 아홉 살의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어린 황제의 대응에 맞서기 보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취한다.

 14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공손하게 한 발자국 물러서는 교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동태를 살피는 동안 교황은  황제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를 눈앞에 데리고 와 결혼을 종용한다.

당시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는 헝가리 왕과 결혼 했지만 아들이 죽자 자신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 간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헝가리 왕과 이혼 절차를 마치게 한 교황은 1209년 8월 15일 자신의 꼭두각시 콘스탄체와  황제 프리드리히 결혼 혼사를 직접 주관하며 14살 짜리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략을 짠다.

황제 프리드리히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콘스탄체는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오백명의 기사를 끌고 온다.

14살의 황제 보다 삶의 경험이 많았던 콘스탄체는 교황의 검은 꿍꿍이를 꿰뚫어 보았고 그의 바람대로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국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콘스탄체가 이끌고 온 오백명의 기사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교황은 황급히 독일 작센주 지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 한다.

당시 독일 작센 주는 황제 프리드리히의 삼촌 필립이 죽고 난 후 그 자리에 작센공 오토가 물려 받았다. 

작센공 오토는 교황파의 우두머리이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손과 발이 였다. 

교황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오토가 절대로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1209년 10월, 스물 일곱 살의 오토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에 올라서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쪽 독일은 오토가 남쪽 시칠리아 왕국은 14살의 프리드리히가 통치 해야 자신의 안위도 챙기고 권력도 자신이 쥐락 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오토는 대관식을 마치자 마자 교황청 영토의 북쪽과 국경을 맞댄 토스카나 지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 지역인 남부까지 진격한다.

이 사실에 교황은 크게 격노 하지만 일개 종교인으로  군사력이 없으니 오토를 암살 할 첩자 사제들을 급파 한다.

 이를 절대로 모를 일이 없었던 황제 오토는 첩자들을 색출해 내고 교황청의 북쪽 영토 카푸아, 나폴라, 살레르노, 아말피 까지 차례 차례 점령하며 교황의 암살단 사제들에게 에워 쌓여 있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사제를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것에 크게  분노한 교황은 1210년 10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를 파문 시킨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교황청 영토를 정복 한지 1년을 넘겨 버린 시점이라 황제 오토는 파문 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토가 교황과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층 여유가 생긴 황제 프리드리히는 남유럽 전체의 방위군을 키우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암살단 사제들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 지역의 충직한 대주교인 서른 세 살 배라르도를  팔레르모 대주교로 임명한다.

교황이 대 주교 배라르도에게 준 임무는 팔레르모 땅을 지배 하고 있는는 열여섯살 짜리 황제 프리드리히를 곁에서 보좌 하며 감시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 할 것을 명했다.

교황은 일개 지방 구석진 곳에서 벼락 출세한 배라르도가 자신에게 충성 하기 위해  야생마 같은 황제를 노련하게 조련 할 것이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던 베라르도는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교황청에도  교황에게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교황은 베라르도의 보고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게 되자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열여섯살짜리 황제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이 로마 교황청에 홀로 고립된다.

과연  베라르도 대 주교는 야생마 같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온갖 뇌물에 포섭 당해 버린 것이었을까?

서른 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는 열 여섯살 황제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1년 후 황제 프리드리히는 북부 독일로 향하고 그의 곁에 동행 하는 사람은 바로 베라르도 대 주교, 그는 이제 황제 프리드리히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파트너가 된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최대 적은 자신의 후견인인 교황도 아니였고 국경 너머 이교도 군대들도 아니였다. 

그가 이룩하려는 법치 국가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 했고 그 법치 국가를 이룩 하려면 절대적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만 했다. 

'평화'는 꿈 만으로 유지 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의 분쟁이란 꿈을 꾸듯 평화롭게 해결 할 수 없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꿈꾸는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평정의 상태로 만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 했다.

중세 시대에 병력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봉건 '제후'들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사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서 법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까?

1236년 마흔 한 살에 접어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시간'은 그가 설계하는 미래를 재촉하고 있었다.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내가 명심한 것은 아래 한 가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본 그대로 쓸 것

왜냐하면 이 방침을 관철해야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해보고 처음으로 이해한 지식의 통합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고찰 (De Arte Venandi cum Avibu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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