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 무엇인지 묻자 캄파넬라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수줍음이 많은 조반니는 들다 만 손을 황급히 내린다.

선생님의 질문에 은하수라고 대답한 캄파넬라는 친구 조반니가 머뭇거리고 망설일 때마다 곁에서 챙겨주는 따스한 친구로 은하 축제의 날에 하늘타리 열매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등불을 넣어 강에 띄우는 놀이를 하러 함께 간다.

캄파넬라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가난한 조바니가 엄마를 위해 우유를 사 오던 그날 놀이에 끼워주지 않아 조반니는 홀로 언덕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본다.

'은하정거장, 은하정거장.'

언덕 풀 밭 위에 누워 있는 조반니의 눈 앞에 갑자기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 날아오르듯 불빛이 쏟아지고 정신을 차린 조반니는 어느새 기차 안 열차석에 앉아 있다.

이곳과 저곳의 세상을 가로 질러 달리는 은하철도

은하 열차에 탑승한 조반니는 세상을 초월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아들과 나란히 버스 맨 뒤에 앉아 버스가 습지대 남쪽을 크게 우회 하는 동안에 셸터 콘크리트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셸터의 위치를 그와 같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까? 그것은 세계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폭발의 열과 충격파가 이 도시를 엄습하기 전에 냉정함과 끈기를 가지고 진과 함께 걸어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심한 열로 콘크리트의 외벽이 번쩍거린 다음에 이어질 충격파는 어린아이의 귀에도 울릴 것이다. 이사나는 그때 평온하게 속삭이는 듯한, ‘세계의 끝, 입니다’라는 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오에 겐자부로의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중에서

핵전쟁의 위기 속에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진과 함께 아버지 이사나는 핵 방공호로 짓던 지하에 건물을 쌓아 올린 형태의 '핵 셸터'에 은둔한 채 세상과 단절한다.

은둔하는 남자 이사나는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들 진의 미래를 고래에게 부탁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라 믿고 버려지기 쉬운 존재인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의지로 세상에서 낙오된 청년들과 연대 해서 정부와 맞선다.

이사나가 쥔 총엔 정확히 다섯 발의 총알만 장전 되어 있다.

그 다섯 발의 총알로 무력으로 진압 하려는 정부를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핵전쟁의 위협에 처해 있는 세상을 구원하지도 못한다.

당신은 나라의 미래가 닫힌다 해도 자신은 나이가 들어 얼마 못 살 테니, 책의 지식만은 어떻게든 지닌 채로 죽자, 라고 말할 사람 아닌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 중에서

2023년 3월 3일 오에 겐자부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책장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모조리 꺼냈다.

몇 편의 단편집과 장편집은 추가로 해외 주문을 해 놓고 그의 초기작 부터 읽기 시작해서 전부 완독 했다.

오에는 생전에 인터뷰도 활발하게 했지만 주요 매체에 기고글도 많이 남겼다.

아들 히카리와 함께 나온 다큐부터 노벨상 수상식을 하러 스웨덴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영상까지 보면서 나는 오에가 세상에 남긴 글을 읽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던 날 밤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1994년 10월 13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 였지요.

전세 승용차에서 전화를 받은 교도통신 기자가 '아앗!'하고 다소 만화적으로 외치는 바람에 도쿄의 세이조 자택 앞에 모여 있던 저희들은 순간적으로 수상이 결정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삼사십 명이 있었던가요?

''일본 현대 작가들이 쌓아 올린 업적 덕분에 살아 있는 내가 수상한 것이다...'

이 말이 제 입에서 떨어지자 마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받아 적던 기자들 모습이 제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두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고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서있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뉴스에 제 얼굴과 목소리로 전부 도배 되고 온갖 신문 잡지 마다 제 얼굴이 표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기자들 40명 정도가 저희 집에 찾아 왔고 그리고 몇 달 후 마침내 수상식이 열리는 스웨덴으로 날아갔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 와서 앞서 인터뷰 예약을 한 기자들과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뜬 저는 거울을 보고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세상을 향해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자.'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일본 사회를 향한 발언과 행동에 거침 없었고 어떤 협박과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아베가 죽기 몇 달 전 어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선한 눈빛과 미소 뒤에 숨은 결의가 섬짓 했다는 말을 했고 정확히 100살을 채운 헨리 키신저는 미소를 띄우며 유창한 영어로 자신에 맹렬하게 질문을 퍼붓던 오에 겐자부로를 어디서든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었다고 회고록에서 언급 했을 정도로 인간 오에 겐자부로는 어떤 국가, 어떤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외쳤다.

'내가 쓴 소설이 인쇄되고 있는 이상,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이 미래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어 사람들이 열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때 나는 유령이 되어 나타나서 '그렇습니다. 나는 재미있는 것을 썼습니다 ! 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가 남긴 책을 전부 완독 하고 난 후 중국의 대 문호 '루쉰'이 남긴 글을 차례 차례 읽어나갔다.

인류의 멸망은 매우 외롭고도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의 멸망은 결코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생명의 길은 진보 하는 것이다.

항시 무한한 정신이라는 삼각형의 빗면을 따라 올라가니 어떤 것도 그를 방해 할 수 없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부조화는 여전히 많다. 인간 스스로 시들고 타락하고 퇴보한 것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이 때문에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의 절박하고 완벽한 잠재력은 어둠이 몰려와 대세를 막아도 비참함이 사회를 습격해도 죄악이 사람의 도를 더럽히더라도 항상 이런 철가시를 즈려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의 면전에서 웃으며 뛰며, 멸망하는 사람들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길인가? 바로 길이 없던 곳을 밟아 길을 만들어 낸 곳이다. 가시덤불만 있던 곳을 개척하여 만들어 낸 곳이다.

이전에도 길이 있었으니 이후에도 영원히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는 외로울 리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향상적이고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생명의 길 중에서

1945년 8월 15일, 정오 뉴스에 방송된 일본 제국의 종전 선언을 한지 78년의 시간이 흘러 2023년 8월 24일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자신들부터 살겠다며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하자 전문가들은 앞다퉈 실시간으로 방사능 오염 진단 키트를 꺼내 들고 문제 없다고 외치고 있다.

맑은 샘물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샘물은 전과 다름 없이 맑고 투명하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연달아 핏물을 쏟아 부어버리면 어디선가 엄청난 양의 조류가 닥쳐 오지 않은 이상 샘물은 어느새 붉은 핏물로 가득 차 버리고 차츰 시간이 흘러 악취가 나는 오염수가 된다.

​

제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습니까. 그런데 제가 잡아먹히게 되자 도망치다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왕에 죽을 거라면 족제비에게 잡아먹혀 족제비가 오늘 하루 목숨을 잇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신이여, 다음엔 이렇게 쓸모 없이 버려지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중에서

​

은하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정거장에서 하나 둘 내리고 마지막 조반니와 그의 유일한 친구 캄파넬라 친구만 덜렁 기차 안에 남겨진다.

'캄파넬라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 어디까지든 함께 가자 나는 이제 그 전갈 처럼 정말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따위는 백 번이고 불에 탄다고 해도 상관없어.'

1924년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를 때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의 밤>을 썼다.

' 나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이라도 두렵지 않아.

정말로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가겠어.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우리 함께 나아가자.'

​

마침내 마지막 탑승권을 손에 쥔 조반니는 친구 캄파넬라는 죽어서 은하 끝 하늘나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깨닫는다.

무시 무시한 무기로 세상의 반을 불태우며 이웃 국가의 무고한 생명들을 마구 짓밟은 일본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 하고 있다.

핵과학자들(미국 핵과학자회보·BSA)이 인류 멸망까지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만든 '운명의 날 시계'가 2023년 1월 1일 '자정 90초 전'으로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그리고 8월 24일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으로 10초 더 앞당겨졌고 휴먼노보이드로 대륙 굴기를 하고 있는 중국은 전기 먹는 인공지능 제국을 꿈꾸며 매년 원전 건설 10기의 기록을 세울 태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 걷어가는 루팡들에게 유리지갑을 탈탈 털리는 시민들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앞날을 걱정 한들 이 세상은 이전 시대로 회귀 하지 않을 것이고 '운명의 날 시계'는 지금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상처투성이인 나를 벌거벗기고,

당신이 따온 약초 기름을 발라주면서 어머니는 탄식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고 말해도 되나?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오랫동안 수수께끼가 될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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