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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하는 여자들 - 마르고 싶은 욕구로 오인된 거식증에 관한 가장 내밀하고 지적인 탐구
해들리 프리먼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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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내가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인줄은 몰랐고(실제 겪어본 거식증은 절대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다) 다만 그 상황에서 내가 도망가면 동생이 죽을 것 같다는 강력한 느낌에 그냥 버텼더랬다(실제로 거식증은 사망률이 10%나 되는 위험한 병이다). 그 당시 동생의 행동은 나에게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 부모님들도 동생이 거식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에게 왜 힘든 동생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나무랬었고, 결국은 나 또한 이제까지 내가 앓고 있는 공황장애와 전환장애를 그 당시 얻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때 얻은 병으로 인해 나의 직장 생활도 결국 파탄이 났고.(분명 내가 100% 당한 상황인데, 사람들은 내 병을 이유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ㅡㅡ:::)

이런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같은 다이어트 상황에서도 왜 누군가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거식증으로 가게 되는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사회에서는 날씬한 몸을 희구하는 여성의 욕망이 그녀를 거식증으로 몰고간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왜 그녀가 자신의 본능적인 생존욕구를 무시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를 못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거식증 관련 책을 읽어봐도, 그들의 설명은 너무나 피상적이었고, 내 체험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 '먹지 못하는 여자들'을 보고서야 왜 내 동생이 그런 상황에 빠져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 해들리 프리먼은 스스로가 거식증 환자였고,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를 거식증과 싸워왔다. 그녀는 마침내 거식증과 정면으로 대면했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선택을 했으며, 결국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이건 정말 중대한 사건이다. 내 동생 또한 3년을 월경을 안했던 것처럼, 거식증 환자에게는 생명이 깃들지 않는다) 다행히 저자는 세계적인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그 저널리스트의 정신과 실력으로 자신이 겪은 거식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저자의 글에서 강한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은 바로 거식증 환자의 통제욕구다. 내 동생도 자신의 몸에 엄청난 통제를 가했고(식욕만큼 본능적인 것이 없는데, 그 욕구를 통제하는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자신 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나한테도 강력하게 통제력을 행사했다. 즉, 나는 내 모든 행동에 대해 동생에게 통제받았고, 마음대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했으며, 사소한 소비조차 동생에게 통제받았다.(동생이 어머니에게 자신이 번 돈으로 언니에게 용돈을 주겠다 했고 어머니는 흔쾌히 수락했다ㅡㅡ;;;) 지금도 집에서 엄마랑 통화하다가 전화가 길어진다고 동생이 화를 내면서 나한테 던졌던 철제필통이 눈앞에 선연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통제 욕구 안에는 강한 불안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춘기에 접어들 때 성인이 된다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면서 식사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내 동생은 (내 짐작이긴 하지만) 자신의 동갑내기 사촌이자 영혼의 친구가 자살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에 일이 벌어진 듯 싶다. 갑작스럽고도 엄청난 불안이 그녀들에게 닥쳤고, 그들은 자신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그 불안을 컨트롤하려 하거나 혹은 그 불안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 책이 훌륭한 것은, 거식증 환자들이 단순히 예뻐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한다는 것을 거식증 환자나 그 보호자가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환자들의 치료가 단순히 식사량의 조절 만이 아니라 그 불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거식증을 극복한 과정을 이야기함으로써 환자나 보호자가 희망을 가지고 그 힘든 과정을 함께 겪어낼 수 있음도 말한다.

사람들은 거식증이 환자 혼자만의 일인 줄 알지만, 사실 보호자들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특히 그 통제력을 보호자에게 폭력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을(아마 이것이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타인에게 이야기했을 때, 겨우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핀잔을 들을 확률이 높다(특히 내가 의지해야하는 부모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ㅠ.ㅠ)

이제까지 나름대로 거식증을 다룬 책들을(많이 있지도 않지만 그나마 출판된) 읽어왔지만, 실제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해봤던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책이 단연코 큰 도움이 된다고 확언할 수 있다. 사회의 편견 속에서 잘못 이해되온 거식증에 대해 이만큼 정확하게 말하는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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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홍대용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4
홍대용 지음, 김아리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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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은 역사 시간에 주구장창 외웠던 조선말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특히 천문학을 위시한 과학자로서의 학문업적이 있는(조선에서 과학을 하는 선비라니!) 대표적인 실학파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에는 홍대용의 우주관에 대해 체계적으로 저술한, 조금은 전문적인 책으로 파악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본 바, 이 책은 오히려 홍대용이 쓴 여러 글들을 일반 대중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은, 일종의 한국고전에 대한 대중서의 성격이 강했다. 즉 홍대용이 쓴 글 중에서 유학자로서의 마음가짐, 학문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세손(미래의 정조)을 지도하면서 적은 문답의 내용, 청나라 학자와의 교유, 조선의 현실에 대한 고민등 보다 쉬운 글들이 보다 많이 들어있었고, 마지막 챕터에서야 우주와 지구에 대한 인식을 다룬 글이 있었다.

일단 우주와 지구에 대한 인식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그 당시 서양의 과학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기는 한다. 하지만 주자 이후 실제 세계가 아니라 추상적인 이기론의 세계관에 빠져 있었던 성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파격적이긴 할 듯 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에서는 아무래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느껴져서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고, 앞부분의 여러 잡문들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야말로 18세기에 살아있던 조선의 지식인의 모습을 보았달까? 특히 청나라에서 지우를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교류하며 아끼는 모습은 지금같이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독서가 깊어지면서 참 많이 느끼는 것이, 한민족은 이 땅에서 5000년을 살아왔는데,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에 훌륭한 글들이 대단히 많이 나왔을 텐데, 일제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문으로 쓰여진 과거의 훌륭한 글들이 제대로 후손들에게 알려지지 못한게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다. 우리 민족이 한글을 주로 쓰게 된 것이 일제 시기 이후 겨우 100년 정도인데, 그 100년안에 우리가 성취해낸 문학적 성과를 볼 때, 과거의 글들 또한 엄청나게 훌륭할텐데 그 글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래도 이렇듯 예전의 고전들이 보다 쉽게 번역되어 일반인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져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선조들의 문학적 성취를 더욱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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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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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는 '모스크바의 신사'로 처음 만난 작가인데, 너무나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시대상황을 소설에 잘 녹아내는 좋은 작가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우아한 연인'을 만나고는 전혀 망설임없이 구매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에이모 토울스는 주로 20세기 초반의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는데, '모스크바의 신사'가 공산혁명 당시의 소련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 '우아한 연인'은 대공황 이후 제2차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뉴욕 월가가 배경이 된다.

사실 얼핏 보기에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 당시 미국은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라였고, 신분상승욕구는 부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그야말로 사회 전체가 '부'를 찬양하는 세계였으니.

하지만 에이모 토울스는 '위대한 개츠비'처럼 비인간적인 사람들을 그리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욕구 속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고자 고민하는 세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부유한 자들이 흥청망청 사는 세상에서, 그 세계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삶을 고민하는 이 세사람은 '모스크바의 신사' 속 주인공처럼 우아하다. 그러면서도 작품 속에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있고, 인간은 한 가지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진실이 있다.

사실 이 '우아한 연인'은 '모스크바의 신사'보다 앞선, 무려 작가의 정식 데뷔작이다. 이런 글솜씨를 가지고 있으니 20년 일한 금융업 때려치고 전업작가가 되었겠지. 정말 너무너무 부럽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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