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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산다 - 저마다 생긴 대로, 열심대충 곤충 라이프
주에키타로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평점 :
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터 곤충을 직접 채집했다.
나비는 눈에 보이는 데로 채집했고 여름이면 매미와 메뚜기들을 가을이면 잠자리들이 내 표본집 속으로 들어 왔다.
친 할머니 집 마당에서 목격한 쇠똥꾸리와 말똥구리들의 부지런한 모습은 일기장에 그림으로 남겼고 여름 밤마다 형제들, 사촌들과 함께 사슴벌레와 장수 풍뎅이를 찾으러 다녔다.
우연히 우리 집 마당에서 펄쩍 뛰어 다녔던 개구리 한 마리는 투명 유리관에서 내가 잡아다 주는 먹이들을 먹고 8년이나 살았고 함께 키웠던 두꺼비는 정말 오래 살아서 결국 고등학교 입학 할 때 산 속 어느 사찰 개울가에 놓아 주었다.
학교 과제로 키우기 시작한 달팽이와 귀뚜라미들은 자고 일어나면 너무 많이 태어나 우리 집 마당 생태계를 위협 할 지경까지 이르러서 결국 달팽이의 천적인 새까지 키우게 되었다.
삼촌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앵무새와 구관조까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어 나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 까지 이들을 돌보고 관찰하는데 빠듯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매일 두 눈으로 목격한 곤충들의 생태를 빼곡하게 일지에 적으면서 각각의 곤충들이 즐겨 먹는 양식들, 번식 습성, 천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방어 하고 죽음의 순간을 모면하는지 알게 되니 우리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반 친구의 집에 40년 정도 산 거북이가 있었고 그 친구는 유리관에 개미굴까지 있어서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4학년에 올라가서 친구가 준 나비 알에서 애벌레가 부활해서 2주 후 고치로 변해 비 바람을 견뎌내고 새들의 위협에서도 살아 남은 단 두 마리 고치가 늦은 저녁 드디어 두 날개를 펴고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친구가 준 40개 나비 알에서 10개 애벌레가 부활해서 단 두 개의 고치만이 나비로 태어났다.
나비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곤충을 채집해서 표본집에 넣지 않았다.
직접 키웠던 포유류와 곤충들 모두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와 공기의 움직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 했고 항상 무언가에 대비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귀가 찢어 질 정도로 매미가 울어 대는 날이 몇 일 지속 되다가 더 이상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하루 종일 먹이들을 물고 다녔던 개미들은 인간처럼 일요일에는 움직임 없이 자신들이 파 놓은 미로 같은 공간에 꼼짝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마당 한 가운데 움푹 패인 곳에 물이 고이면 개미 떼들은 잎사귀를 움직여서 물 웅덩이를 무사히 건너 갈 정도로 갑작스런 위기를 빠르게 헤쳐 나갔고 꿀 방울을 채취하는 개미를 호위하고 있는 개미 군단까지 있을 정도로 서로 협력했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집 마당에서 펄쩍 뛰어 다녔던 새끼 개구리를 유리관에서 키웠었다.
나는 날마다 개구리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커다란 개미를 잡아 허리를 낚시 줄로 묶어 개구리가 있는 유리관에 넣었던 적이 있었다.
개구리의 혀가 나올 때 마다 낚시 줄에 허리가 묶여 있던 개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로 저항을 했고 결국엔 개구리가 먼저 지쳐 버려서 그 개미는 용캐 낚시줄을 빠져나와 유리관 밖으로 나갔다.
대학 졸업 후 고된 직장 생활 중에 곤충들의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주에키타로는 세밀하면서 독특한 화풍으로 일본 오카모토타로 현대예술상에 입선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년 동안 곤충 생태계를 그린 작품을 연재 한 주에키타로의 그림에는 인간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마치 시트콤 에피소드 장면처럼 웃음을 유발한다.
연재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림들이 수록된 <느긋하게 산다>에는 저마다 각자 주어진데로 열심히 사는 곤충들과 이번 생에는 대충 살다 떠나는 곤충들의 모습들이 마치 한국 드라마 <미생>을 연상 시키듯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저는 초등학교 때 부터 생물 사육과 관찰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사육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장수풍뎅이, 사슴벌레를 비롯해 개구리와 송사리를 기르고 그 생물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관찰합니다. 개구리는 네 마리 기르는데 한 마리 한 마리 성격이 다릅니다. 개구리 뿐만 아니라 곤충인 오이사슴 벌레는 의외로 얌전하고 톱사슴벌레는 폭군입니다. 장수 풍뎅이는 촐랑대서 자신의 먹이인 곤충젤리를 뒤집어 엎기도 합니다.'-주에키타로
아버지가 사다 준 자라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던 나는 어느 날 굵은 펜으로 자라 배에 '불'이라는 이름을 새겨 주었다.
애지중지하게 키우니 그 자라는 어느 날 알을 20개정도 낳았고 그 알에서 부활한 자라의 새끼들은 친 할머니 손에 의해 방생으로 차례 차례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총 네 마리 자라 새끼들에게 만-수-무-강이라는 글자를 배에 새겨 주었다.
나날이 만-수-무-강이 크는 모습을 지켜 보셨던 친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는 절 바로 앞 개울가에 만-수-무-강이를 자유롭게 살게 해준다며 내가 스카웃 야영을 떠난 날 모두 방생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할머니가 만-수-무-강의 어미를 방생 하고 몇 달 후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법당 입구에 벗어 놓으신 신발에 자라 몇 마리가 모여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할머니는 눈이 침침하셨지만 분명히 자라 무리들 중 한 마리 배에 만( 卍)이라고 새겨져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솔직히 내가 키웠던 '만'이 할머니 신발까지 기어 갔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자라의 평균 수명은 30년으로 운이 좋으면 이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
만일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만-수-무-강이가 부디 어디에선가 마음껏 많은 자손을 낳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