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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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27일 뉴욕 '빌리지 보이스'에 기사 한 편이 게재 된다.

그 기사의 제목은 '역사의 다음 위대한 순간은 그들의 것이다'(The Next Moment in History Is Theirs)


'그들은 각자 만의 불을 품고 모였다. 나는 이들의 손에 들려진 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임을 믿는다. 신은 알 것이다. 나의 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노라고.'

-1970,11.27 빌리지 보이스, 비비언 고닉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은 비비언 고닉으로 서른 세살의 기자가 쏘아 올린 불길은 뒤이어 '여성 해방 운동가들'인 티그레이스 앳킨슨,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필리스 체슬러, 엘런 윌리스, 앨릭스 케이츠 슐먼 운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1970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인터뷰들이 매회 연재 될 때마다 신문사 '빌리지 보이스'는 온갖 협박 전화와 지지자들의 응원 전화들이 쉴새없이 울렸다.

수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 비비언 고닉에게 달려가 진실의 여부를 판명 해 달라고 빗발치듯 항의를 했고, 의문의 백인 남성들은 그녀의 가족, 친지들의 이름을 알아내 협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기자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을 뒤로 하고 지난 수 세기 동안 고통을 당한 여성들의 자유, 인권을 울부짖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학에 갔지만 학위가 미드 타운의 직장을 구해주지는 못했다. 예술가와 결혼했지만 우리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살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14번가 윗 동네에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류 회사의 문 따위는 열리지 않았고, 휘황찬란한 세상도 내내 멀기만 했다.'


기자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 하기 위해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달려가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주며 열띤 취재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에 담았다.

취재를 나가기 전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책상 앞에 안톤 체호프의 문장을 단단하게 고정 시켜 놓았다.

'남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었지만 나는 내게서 그 노예 근성을 한 방울 또 한 방울 짜내야만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 문장을 응시하며 현장을 누볐던 고닉은 영혼의 노예 상태가 될 때 마다 저 구절을 되새기며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이 불러 일으킨 상실과 허탈감을 견뎌내며 1970년 세상을 뒤흔들며 강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그녀들의 음성을 떠올렸다.


비비언 고닉에게 페미니스트들은 세상과 맞서는데 필요한 검이자 방패였고 삶의 위안과 위로를 주는 존재였지만 1980년대로 넘어가자 단단하게 보였던 페미니스트 연대가 해체 되기 시작했고 서로 연대 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무너져버렸다.




시간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성폭력, 언어 폭력,감금, 폭행등의 피해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추가 발생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운동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페미니즘 물결의 선봉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취재 했던 기자 '비비언 고닉'의 이름이 언론과 출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2015년 비비언 고닉이 몸 담았던 신문 '빌리지 보이스'는 폐간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4년 후 고닉은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에 관한 회고록<사나운 애착>으로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뉴욕타임스가 뽑은 '지난 50년 간 최고의 회고록'으로 선정된다.


마흔다섯 살 딸과 일흔 일곱 살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던 그곳 ,뉴욕의 한 거리를 어느 새 팔십 세에 접어든 딸이 걷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들린 약국에서 아흔 살 베라를 만난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없는 인근 4층 짜리 건물에 살고 오래전부터 트로츠칼 의자로 늘 가두 연설이라도 하듯 절박하게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이다.'


조제 중인 처방 약을 기다리는 동안 팔십 세 고닉은 아흔 살 베라에게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 남편의 사망 이후 찾아 온 새로운 사랑, 그리고 이제는 혼자 살고 있음에도 딱히 우울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굶주림과 전쟁을 피해 미국 땅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고닉은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주지였던 브롱크스의 다세대 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한 살 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뉴욕 구석 구석을  탐험하듯 맨해튼 북부와 남부 서부와 동부를 가로질러 다니며 수 많은 이들을 관찰하고 목격했다.


'나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공동 주택 이웃들의 우정, 그저 모든 게 상황에 좌우되던 그 관계들을 자주 떠올린다. 필요한 순간마다 말없이 알아주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검고 동그란 눈의 여자들...'


서른 다섯이 되기 전 결혼을 두 번 했고, 이혼도 두 번 했던 그녀의 인생에서 사랑은 '궁극'의 순간으로 나타났다.


'우정에는 두 가자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비비언 고닉은 20년 지기 친구 레너드를 만날 때면 반나절의 시간을 훌쩍 보낼 정도로 대화가 끊이지 않으면서도 뉴욕이라는 대 도시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서 쉽게 '우정'이 싹트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쉽게 내어주기도 하다가 돌연 미세한 감정 선을 건드려서 그 우정이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사이처럼 되어버린다.


'삶이 불능의 총합처럼 느껴지려 할 때면 나는 타임스 스퀘어까지 산책을 나선다. 세상에서 가장 요령 넘치는 하층민들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면 금세 통찰이 회복된다.'


그녀는 평생 동안 뉴욕에 살면서도 지난 시절의 그들이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안부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으로 뉴욕 곳곳을 걷던 중 불쑥 브롱크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웃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불쑥 말을 거는 사람들과 쉼 없이 대화를 나눈다.


영미 문학계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불렸던 '제임스 설터'처럼 에세이와 회고록 분야에서 비비언 고닉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에 비견 되는 문학비평가이자 회고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큼 자전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책들은 일찌감치 절판 되어 일반 서점에서 찾을 수 없었다.


2020년 영미권 에세이와 회고록 출간 리스트에 자전적 글쓰기의 고전으로 재 평가 받은 <사나운 애착>이 올라가자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록산 게이,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이 칭송 하면서 비비언 고닉은 이 시대 최고의 회고록 작가로 새롭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출간된 책들이 새 판형으로 출간 되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고닉은 여러 매체 인터뷰를 통해 '세상이 이제서야 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비비언 고닉은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글과 창작 수업에 관한 글을 발표하는 동안 심장병 수술을 받고 유쾌한 목소리로 회복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아흔 네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불법 낙태를 한다며 십 달러를 빌려 달랬던 이웃집 아줌마가 낳은 딸 역시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페미니즘 물결에 올라 탔던 1933년생 수전 손택, 1934년 생 조앤 디디온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1970년 서른 세 살의 비비언 고닉이 걸었던 5번 애비뉴, 그곳에 몰려 들었던 군중들은 흰색이였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 2023년의 5번 애비뉴는 검은색과 갈색 군중들로 뒤덮혀 있다.

비비언 고닉은 평생 동안 단 한번도 흰색의 군중, 화이트 컬러 부류가 아닌 항상 블루 컬러들 옆에 서 있었다.

그녀가 걸어 왔던 길에는 불법 체류자, 배우, 범죄자, 반 체제 인사, 게이들, 전문 시위꾼들, 정치 선동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이들 중 절반은  범죄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비비언 고닉,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로 오늘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걷는 이들이다.



나는 그녀의 글을 학부 시절, 창작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로 각 대학 창작교재로 쓰이고 있는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비비언 고닉은 이렇게 말한다.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여서는 안된다.

기억력이 뛰어난 이들이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 세상에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일반인들은 이들과 차별 될 수 있게 이런 저런 유명 작가들의 조언이나 철학적 어법에서 벗어난 생생한 어휘로 채워진 자서전을 완성 해야 한다.

좋은 글에는 두 가지 성격이 포함 되어야 하는데 매 페이지 마다 살아 있는 어휘,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로 채워져야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어 글쓴이의 삶의 여정을 따라 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시인이나 소설가 그리고 회고록을 쓰는 이들 주제를 명확하게 잡지 않으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지 못한다.

글에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

작가들마다 각기 다른 어조, 시점, 문체가 있다. 독자들은 첫 문장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어떤 삶이 펼쳐질지 판단하기에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는 걸 고심하는 것 만큼, 자신의 색깔, 어떤 문장으로 써나갈지 부단한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한다.

허구의 이야기에서 화자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스토리의 중심을 이끌어가면서도 그 또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이야기, 경험등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반면, 자서전과 회고록에서 화자는 절대적으로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한다. 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된다.

독자들은 단 몇 페이지만 읽고 알아챈다.

'이 인간이 말하는 게 진짜야.'

'나랑 같은 세대 인데 이런 생각을?' 이라며 문장과 문장, 매 페이지 마다 독자는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쓴 저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와 함께 써나가는 각자의 회고록이 완성 되면 나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 써 있는 것이 사실이였어?, 진짜 네가 경험한 거야?']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걸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날카로운 메스로 체험한 것 경험한 것을 날 것의 언어로 도려내듯 썼다면, 비비언 고닉은 자신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타인과 나, 시대와 경험, 감정과 기억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질문 한다.

그러기에 그녀의 글, 자전적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한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모습과 세계를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녀가 이야기 하는  세계는 인간의 내밀 하고 모순적인 욕망들이 느껴지고 거대한 도시 속에서 고된 노동으로 지친 이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고 그리고 마음 속에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비비언 고닉은 지난 반 세기 동안 타고난 논쟁자로 어떤 단체에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라면 용감하게 맞섰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양한 매체에 기사와 에세이를 써내며 세상이 공격하면 논리적으로 맞받아쳤고 어떤 권력이나 특정 단체 하고도 타협하거나 슬그머니 뒤로 빠지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01년 뉴욕 한 복판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며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고 그리고 혼자 걷고 있다.

고닉은 걸으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며 고통을 흘려 보냈고 그럭저럭 거대한 도시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하루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낸다.




뉴욕 컬럼버스 애비뉴에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매일 다양한 공연이 펼쳐 진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구경하는 이들 모두 세상의 한 부분처럼 각기 다른 피부색과 부의 크기로 나눠진 거대한 도시 뉴욕에 몰려든 이들로 공연이 열리는 순간 만큼은 한 곳을 바라 보고 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앞을 보며 똑바로 걷지 못한다.

때로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주저 하거나, 멈칫거리거나, 멀리 도망쳐 버리거나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기도 한다.

거리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도시 속에서 숨을 쉬는 이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도시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살아 가야 한다.


2021년 윈덤 캠벨 문학상 논픽션 부문 상을 수상한 후 뒤이어 발표한 에세이와 비평집, 회고록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비평 부문 후보에 오른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도시를 걷는다.

그리고 6번 애비뉴 버스에 올라타 아흔에 가까운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7번 애비뉴 정류장에 내린다.

그녀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민 한 흑인 남성 '천지가 적이네!'라고 내뱉자, 고닉은 '저야 모르죠' 라고 대꾸한다.

그녀는 걸으면서 머릿속을 비우며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쉼없이 떠오르는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지난 시절 엄마와 나눴던 대화, 대학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우연히 알게 된 억만장자 상속인의 딸의 모습을 떠올린다.

쉼 없이 걷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 속에 사람들은 서로 사랑했고, 헐뜯었고, 비아냥 대면서도 각자만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맞이한 마흔, 오십, 예순, 일흔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여든 살,  비비언 고닉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은 몇 년일까...


혼자 남겨진 친구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웃들, 먼 곳으로 떠났던 이들 중에 영영 돌아오지 못한 곳으로 가버린 이들의 모습을 하나 둘 씩 떠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20년 지기 친구 레너드는 '외로움이라는 습관은 질기기 때문에 쓸모 있는 고독으로 바꾸지 않은 이상 너는 영영 엄마 딸'이 라는 말을 한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삶의 한 부분을 의지하고 지탱해 줄 사람이 없어도 비비언 고닉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봐 주며  말과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지적해주는 친구, 그 모든 친구를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찾아냈고 만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이후로 페미니스트들은 반세기를 주기로 '해방된' 여성,' 자유로운' 여성으로 불려졌지만 비비언 고닉은 이에 동의 하지 않는다.

1897년 남성 작가 조지 기싱이 발표한 소설 <짝 없는 여자들>의 나오는 서른 살의 로다 던은 사랑과 결혼을 노예제에 빗대며 경멸하며 남자와 여자는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엇이 되려 하는지 묻는다.


비비언 고닉은 <짝 없는 여자들>의 로다가 외치는 열정적인 화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내어 1970년 대 급진 페미니즘의 과격한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외치며 현실과 이론의 간극에서  좌절하면서도 걷고 또 걸었다.

2023년 미국 전역에서 폭발 하고 있는 분노와 외침은 권력의 한 축에서는 듣지 않고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범죄와 차별은 지난 반 세기 전 1970년대 현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월의 어느 날 저녁, 비비언 고닉은 워싱턴 광장에 서서 백 살을 훌쩍 넘긴 오래된 나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곳에 왔을 때도  서 있었던 나무를 바라본다.

그 시절 이곳 광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백인이였다. 그녀는 그 광장을 지나 자신의 삶을 이어주는 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든 여덟의 비비언 고닉은  계속 걷는다. 아니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걸으면 워싱턴 광장을 지키고 있는 그 나무의 나이를 뛰어 넘을 것이다.


나란히, 묵묵히, 끊임없이 걷고 있는 비비언 고닉은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이들 중 한 명으로 그리고 21세기 반세기 최고의 회고록을 쓴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며 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어있다. 하나같이 몇 백 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 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삶이라는 건 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 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2015년 비비언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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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09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읽게 된다면 비비언 고닉을 소개해주신 scott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scott 2023-03-09 23:38   좋아요 2 | URL
앞선 출간 된 <사나운 애착>은 그냥 그랬지만(뉴요커 특유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싫어서 ㅎㅎ) 이 책은 정말 좋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오랜 세월 살았던(한 때) 도시를 걷는다면 이라는 상상을 할 정도로 시대의 목소리, 지성이 넘치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머리통을 후려 치게 만든 책입니다 ^^

2023-03-09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11 0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은 비비언 고닉 일찍 알았군요 길을 걸으면 지난 일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비비언 고닉은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글로 썼네요 그때가 그립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살아가는 건지...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겠네요

scott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03-1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1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 에세이 한 권만 사다 놓았었는데,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으니 읽고 싶다! 생각이 들었는데, 스콧님 글도 읽어야겠다!란 생각이 드네요^^

2023-03-11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3-11 14:00   좋아요 1 | URL
~~~공연을 한다. 제목이에요.
리뷰는 안 써도 고닉의 도시 이야기랑 사악한 애착 이야기 두 권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2023-03-14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4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3-14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에 대한 풍부한 글이네요. 책 전체의 흐름을 알려주는 스캇 님의 리뷰, 사진과 정보가 첨가된 멋진 리뷰를 통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뉴욕이 펼쳐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cott 2023-03-14 11:03   좋아요 0 | URL
고닉의 글을 읽다보면 그 시절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살아 숨쉬죠

봄날 목련님도 고닉과 함께 걷고 읽고 쓰고 ^^

그레이스 2023-03-18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우울한 내용은 너무 재밌게 그렸어요
결국 그들 대화를 듣던 그 옆에 남자가 함께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은 그냥 한컷의 만화나 영화의 한장면으로 다가왔어요
보고 또 펼쳐 보게 되는 페이지!

2023-03-19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