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ㅡ 나는 다음 번에 강아지를 키운다면, 반드시 "카레닌"이라 부를 것이다. 지금 키우는 시추의 이름이 "MC 포니"이니 돌림자(?)를 써서 "MC 카레닌"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ㅡ 제목이 괜히 멋있어서, 책장 한 번 들춰보지 않은 주제에, 여기저기 제목을 인용하곤 했다. 기가 막히게 멋들어진 제목이라 어디에 갖다 붙여도 꽤 폼이 나곤 했는데, 그렇게 수박 겉만 할짝할짝 핥아대기를 10여 년. 제목은 그렇게도 야금야금 갉아먹었으면서도 정작 책 내용은 어려울 거라 속단해 감히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왠지 모를 용기(CF에서도 그러더라, "MUST HAVE 용기"라고. 도대체 어느 나라 문법인지 모르겠지만서도)가 생겨 집어들었는데... . 한 챕터 끝날 때마다 한숨짓기 바쁠만큼 빠져들었다. 어렵다고 생각해서 안 읽어본 사람들 부지기수일텐데,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권해주고 싶을 정도다.

ㅡ 추석 때,  3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고향에 내려가기가 아쉬워 기어이 가방에 넣어갔다. 돌아올 때 부모님이 챙겨주실 물건들이 꽤 무거울 거라 짐작은 됐지만 일주일 동안 토마스와 테레사의 행방을 놓치고 있기가 싫었다. 집에 도착해 가방 속 물건을 이리저리 꺼내 헤집어놓다가 거실에 이 책을 두고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아빠가 묻더라. 저 책 다 읽었느냐고. 당신도 젊었을 때 저 책 참 재미있게 읽었노라고... 가끔 이렇게 책 한 권으로 누군가와 교감하는 일도 참 괜찮다. 이외수의 '산목' 이후로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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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구판절판


그는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올린 아이처럼 보였다.-13쪽

에로틱한 우정이 공격적인 사랑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고정적 애인들 하나하나를 긴 간격을 두고 만났다. 그는 이 방법이 완벽하다고 믿고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3자법칙을 지켜야 하지. 짧은 간격을 두고 한 여자를 만날 수도 있지만 3번 이상은 안 되는 거야. 혹은 수년 동안 한 여자를 만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3주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해.> 이 법칙 덕분에 토마스는 고정적 애인들과 결별하지 않으면서도 수많은 하루살이 애인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19쪽

토마스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22쪽

테레사와 함께 산 7년이란 세월은 이제 과거지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 시절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39쪽

그리고 다른 뭔가가 있다 : 테이블 위에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이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놓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테레사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특히 소설들. 그녀는 필딩에서 토마스 만까지 무더기로 소설을 읽었다. 책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상적 도피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녀는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책은 그녀에게 19세기의 멋쟁이들이 들고 다녔던 우아한 지팡이와도 같았다. 책을 통해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지었다.-58쪽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했다.-60쪽

그들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뉴욕을 거닐었다 : 환상적인 경치 사이로 꾸불꾸불 이어진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구경거리가 바뀌었다 : 젊은 남자 하나가 인도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예쁜 흑인 여자가 나무에 기대어 졸았다 :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향악단을 지휘하듯 손을 내저으며 길을 건넜다 : 분수의 수반 속에서 물이 졸졸 흘렀고, 그 주위에 석공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흉측하게 생긴 붉은 벽돌집의 벽을 타고 철재 사다리가 달려 있었고, 이 집들은 너무 추한 나머지 그 추함 때문에 아름다워 보였다 : 그 벽돌집 아주 가까이에 거대한 유리 마천루가 높이 솟아 있고 그 뒤로 탑, 회랑, 금빛 기둥이 있는 아랍풍의 조그만 궁전이 꼭대기에 있는 또 다른 건물로 이어졌다.-118쪽

「어느 날 한 철학자는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증명할 수 없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글을 쓰면서 나를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소크라테스>라고 불렀어요. 나는 지독하게 모욕감을 느껴 분노에 차서 그에게 답장을 썼지요. 이 우스꽝스런 일화가 내가 겪은 가장 심각한 갈등이었어요! 당시 내 인생은 드라마틱한 가능성 중에서 최고조에 도달한 거지요. 우리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척도에 따라 사는 겁니다. 내 인생에 들어온 당신은 마치 난장이 왕국에 온 걸리버 같은 거예요 」-120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탄 자세로, 두 사람 모두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원하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되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138쪽

그가 사비나에게 바치는 숭배는 사랑이라기보단 종교에 가까웠다.-149쪽

이 남자는 책상다운 책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수백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었다. 테레사는 그게 기뻤다 : 여기 오면서 그녀를 따라다녔던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책에서 은밀한 동지애의 징후를 보았다. 이런 책꽂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녀에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었다.-177쪽

낭만적 호색한은 항상 같은 유형의 여자를 쫓아다니기 때문에 정부를 갈아치워도 사람들은 눈치조차 챌 수 없다 : 친구들은 정부들의 차이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이름으로 불러대는 바람에 그것이 그에게 항상 골치 아픈 문제를 야기한다.
바람둥이 호색한(물론 토마스는 이 부류로 분류해야만 한다)은 여자를 사냥하면서 점차 관습적인 여성미(금세 싫증을 느낀다)를 멀리하고 십중팔구 기이한 것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된다. 그들 자신도 이를 알고 조금은 부끄러운지라 친구들을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좀처럼 애인을 동반하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231쪽

당신의 한쪽 손을 잘라 다른 사람에게 접합했다고 가정해 보라.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 당신 앞에 마주 앉아 당신 코앞에서 이 손으로 제스처를 하고 있다. 당신은 이 손을 공포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 손을 아무리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당신 자신의 손이라 해도 당신 몸에 닿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249쪽

토마스는 어릴 적에 쥘 베른의 유명한 소설 <2년 간의 휴가>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사실 2년이란 세월은 휴가로서 최대한의 기간이다. 토마스가 유리창 닦는 노동자가 된 지도 머지않아 3년에 접어든다.-259쪽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나는 진공 속에 놓여져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281쪽

그래서 그녀는 시신을 화장하고 재를 뿌려달라고 명시한 유언장을 작성했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무거움의 상징 아래에서 죽었다. 그녀는 가벼움의 상징 속에서 죽고 싶었다. 그녀는 공기보다 가벼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른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311쪽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갔다 : 테레사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역에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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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일시품절


"좋긴 좋은데, 잘 못할까 봐 걱정돼요."
"걱정은요. 스키를 처음 배운 날이라면서 '난 한 번도 안 넘어졌어' 하는 사람은 '난 아무것도 안 배웠어' 하는 거죠. 누구든지 넘어지면서 배워요. 나도 그렇고....."-26쪽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주었다.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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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구판절판


"하지만 이곳에 이러고 있어도 그다지 멀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데. 참 이상해요."
"비행기 탓일 거예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하고 시마오 양이 말했다. "몸은 이동해도, 그에 맞춰 의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지."
- 쿠시로에 내린 UFO --34쪽

"우리 어머니는 연어 껍질을 제일 좋아하는데, 껍질만 있는 연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어. 그러니까 알맹이 같은 건 없 없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을지 몰라. 안 그래?"
껍질만 있는 연어를 고무라는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만일 껍질만 있는 연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연어의 알맹이는 '껍질 자체'가 된다는 얘기 아닌가?
- 쿠시로에 내린 UFO --46쪽

잭 런던의 <모닥불>
- 다리미가 있는 풍경 --58쪽

"마사키치라는 이름의 곰은 아무리 먹어도 먹어 치울 수 없을 만큼 많은 벌꿀을 따서, 그걸 양동이에 담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와 시장으로 팔러 갔다는 거야. 마사키치는 벌꿀 따는 덴 도사였거든."
- 벌꿀 파이: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171쪽

열려진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유행가가 은은히 귓전에 맴돌았다. 이 노래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쥰페이는 생각했다. 사지만 실제로는, 훗날 아무리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 보아도 그 곡의 제목이나 멜로디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 벌꿀 파이: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185쪽

"... 아마도 네겐 너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바지를 입은 채 팬티를 벗으려 하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지만 말야. 팬티를 벗어야 하는데 바지라는 체면만 생각하면 되겠어?"
- 벌꿀 파이: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197쪽

생각해 보면 쥰페이의 사요코의 관계는 시종일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는 늘 수동적인 입장에만 서 있었다. 사요코와 그를 서로 만나게 해준 건 다카쓰키였다. 다카쓰키가 그의 동급생 중에서 두 사람을 선택해서 3인조를 구성했다. 그후 다카쓰키는 사요코를 유혹하여 결혼했고, 아기를 만든 후, 이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쥰페이에게 사요코와 결혼하라고 권하고 있다.
물론 쥰페이는 사요코를 사랑하고 있다.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금이 그녀와 결합할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아마도 사요코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물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절묘하다, 고 쥰페이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결정할 사항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머릿속으로 계속 헤아렸다. 그러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진이 들이닥쳤다.
- 벌꿀 파이: 소설가 쥰페이의 사랑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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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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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자 집 주인이 "차 한 잔 하시죠" 하면서 내 방으로 건너왔다. 차 한 잔 하자고 하길래 나는 차 대접을 하려나 생각했더니 컵만 들고 들어와서는 내 방에 있던 차를 자기 찻잔에 덜어서 혼자 마시는 게 아닌가.
'저 사람 하는 품을 보니 이거 내가 없을 때도 저 혼자서 차 한 잔 하시죠 하면서 방문 열고 들어와 남의 차를 덜어 마시겠군' 하고 생각하는데 집 주인이 차를 홀짝거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42쪽

'일본 제일의 기분으로 안녕히' 란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지금 나의 기분이 꼭 그런 느낌이었다.
-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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