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9. 노자가 말하는 아빠의 생존전략


노자 <도덕경>에 아빠는 없지만 엄마와 아기 이야기는 숱하게 나옵니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아빠 이야기나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살펴봤지만 노자는 당최 아빠 생각이 없나 봅니다. 노자의 '엄마 예찬론' 들어보실래요?

큰 나라는 하류라, 천하가 모이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다. 암컷은 가만히 있음으로써 수컷을 이기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는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얻고 어떤 나라는 아래에 있어서 얻는다. 큰 나라는 남을 함께 기르려고 하는데 지나지 않고 작은 나라는 들어가서 남을 섬기려고 하는 데 지나지 않으니 두 나라가 저마다 바라는 바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 노자, <도덕경> 61장

노자와 공자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노자와 공자의 생몰연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공자는 C551년~BC479년, 노자는 BC604년~BC53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노자에게 도에 대해서 물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자의 사상과 노자의 사상을 비교해 보면 노자가 공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과 양 중에서 공자는 양, 노자는 음을 상징하고 여성과 남성 중에서 노자는 여성, 공자는 남성을 상징하는데, 노자가 볼 때 공자가 추구하는 이상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인입니다. 세상이 공자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만큼 혼란이 심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묵점 기세춘 선생 같은 학자들은 <도덕경>이 <논어> 이후에 완성된 것이고, 여러 명이 저술에 참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방각본 고전문학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된 것이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개인이 아니라 직책이거나 여러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도덕경>은 일대 혼란기를 살았던 민중들의 울분과 통찰이 담긴 철학으로 읽힙니다. 당시 민중들이 보기에 권력자들이나 지식인,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편협해 보였던 거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장자>를 저술한 '장주'라는 철학자는 <도덕경>의 취지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언어로 노자의 철학을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장자를 노자의 주석가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엄밀히 보면 노자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차이점도 많습니다. 노자의 철학에 동의하는 장자의 <장자>라는 책에는 공자와 노자가 대화를 나누는 우화가 담겨 있는데, 실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장자의 '소설'로 읽어 주십시오.

노담이 "어디 묻겠는데, 인의가 인간의 본성일까요?" 라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란 어질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의롭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인의는 정말 인간의 본성입니다. 또 무엇을 할 게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묻겠는데, 무엇을 인의라 하는 거요?" 공자가 대답했다. "진심으로 즐기며 기뻐하고 널리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 이것이 인의의 참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아, 말세의 쓸모없는 소리로다. 저 널리 사랑한다는 따위는 너무도 먼 일이 아니겠소. 사심을 없앤다는 게 곧 사심이오. 당신이 만약 이 천하의 순박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면 말이오. [저 자연을 보시오] 곧 천지에는 본래부터 일정한 법칙이 있고, 해와 달에는 애초부터 밝은 빛이 있으며, 별은 본래부터 하늘에 즐비하고, 새와 짐승은 애초부터 무리를 이루며, 나무들은 본래부터 대지에 서 있소. 당신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어도] 덕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도를 따라서 걷고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오. [더 이상] 또 억지로 애써서 인의를 내걸고 북을 두드리며 도망자를 찾는 따위 짓을 어째서 할 필요가 있단 말이오? 아, 당신은 인간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소."
- 장자, <장자> 13-8

'노담'은 노자의 다른 이름입니다. 공자는 고대의 가치를 회복해 세상을 평안하게 하고 개인적으로는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전형적인 '남성'입니다. "사십이나 오십이 되어도 성취한 바가 없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도 두려워할 게 못되는 사람이다."(논어9-22)라는 말은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노자는 이와는 많이 다르죠. 노자가 <도덕경>에서 어떻게 엄마를 찬양하고 아빠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 가정생활과 육아의 관점에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가사와 육아. 이 두 글자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엄마라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사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은 어느 정도 추측만 할 뿐이죠. 집안일은 무한반복됩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요리도 해야 하고,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입맛에 맞게 바꿔줘야 하고,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합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사람 수만큼 빨래가 쌓이는데 세탁기 돌리고 탁탁 털어 널고 마르면 걷어서 개킨 다음에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자리에 놓아야만 옷을 다시 꺼내 입을 수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는 쌓여만 갑니다. 틈틈이 쓸고 닦고 청소하지 않거나, 이불을 털어서 일광욕을 시켜주지 않으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콜록콜록 기침하고 열이 납니다. 아이가 어리면 이런 주사 저런 주사를 맞으러 다녀야 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크고 작은 '앓이'를 하면 병원에도 자주 갑니다. 반복되는 일을 한번이라도 넘기면 악취와 아비귀환이 벌어집니다. 자기 옷을 찾아서 헤매는 아이들, 양말을 못 찾아서 방황하는 아빠들. <돼지책>이라는 그림책을 보면 집안일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홀로 우뚝 서서 바뀔 줄을 모르고 두루 행하되 잠시도 쉬지를 않으니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도덕경 25장)는 구절은 마치 고단한 엄마의 심정을 알고 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엄마가 있는 집에서는 마치 자동으로 모든 집안의 사물들과 옷가지와 음식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엄마의 노동이 다 들어간 거죠. 그래서 가정이 편안해집니다. 남편이든 아이들이든 모두 집안의 엄마에게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고마워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죠. 이렇게 엄마는 집안의 주인이 됩니다. 일을 하면 주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되는 게 인생의 법칙이니까요. 

강과 바다가 넉넉히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은 그것들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백성 위에 오르고자 할 때에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할 때에 반드시 몸을 뒤에 둔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백성 위에 오르지만 그들이 무거워하지 않고 백성 앞에 서지만 그들이 해를 입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온 세상이 그를 기꺼이 받들어 모시되 싫어하지 않거니와 다투지를 않으므로 세상이 그를 상대하여 다툴 자가 없다.
- 노자, <도덕경> 66장

아빠들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회사 생활 힘들다, 때려 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집안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가뜩이나 힘든 엄마에게 아빠의 '회사 때려 치겠다'는 말은 무척 스트레스를 줍니다. 아빠가 회사 일 힘들다고 말할 때는, 회사 일을 하는 자신에 대한 은근한 과시가 담겨 있습니다. 푸념조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의 과시가 있는 거죠.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합시다! 노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한다.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는 자는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옳다 하는 자는 인정받지 못하며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도에서는 일컬어 찌꺼기 음식이요 군더더기 행동이라 하여 도는 언제나 이것들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24장

지금도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남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자가 볼 때 이런 모습은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빠의 권위가 얼마나 갈 것 같으신가요? 가정의 권력관계는 생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중심으로 힘이 이동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가장 많이 돌보고 아이가 편안해하는 사람이 이른바 '실세'가 됩니다. 아이가 편안해하는 사람이 꼭 엄마일 필요는 없지만, 아빠가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도덕경>에는 집안에서 큰소리치고, 유세 부리고,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에게 경고를 해놓은 구절이 무척 많습니다. 두 개만 소개합니다. 

자연은 거의 말이 없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러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 노자, <도덕경> 23장

모든 사물은 강장(强壯)해지면 노쇠하니 이를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 
- 노자, <도덕경> 30장

나는 <도덕경>을 읽으면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생존전략을 찾았습니다. 아빠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셔닝, '신의 한 수'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석 시인의 '오라 망아지 토끼'라는 시에는 압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린 백석이 망아지를 달라고 조르면 아버지는 길가에서 "매지('망아지'의 함경도 방언)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를 커다랗게 외치며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백석 시 곳곳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나는 백석의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다정다감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권위적이었습니다. 집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가 많으셨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기가 꺾이고 영향력이 어머니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편과 아버지가 젊고 힘이 있을 때 해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가족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 살, 다섯 살인 아이들인 20년쯤 지났을 때는 저보다 힘이 강성해질 것입니다. 그때 약해진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아이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할까? 그것은 지금의 나 하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눌려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철학적으로 확정해준 사람이 바로 노자입니다. 아빠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에게 살 길을 마련해준 노자는 역시 요물입니다. 아빠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강한 것은 곧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말이거든요. 약하고 부드럽고 낮은 것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양의 족속들', 즉 강하고, 남성적이고, 지위가 있고, 경제력이 있고, 여러 가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생존할 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한 노자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만물 초목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다가 죽으면 바싹 말라 단단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이런 까닭에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이나니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있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다. 
- 노자, <도덕경> 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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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에 아빠는 없지만 엄마와 아기 이야기는 숱하게 나옵니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아빠 이야기나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살펴봤지만 노자는 당최 아빠 생각이 없나 봅니다. 노자의 '엄마 예찬론' 들어보실래요?

큰 나라는 하류라, 천하가 모이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다. 암컷은 가만히 있음으로써 수컷을 이기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는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얻고 어떤 나라는 아래에 있어서 얻는다. 큰 나라는 남을 함께 기르려고 하는데 지나지 않고 작은 나라는 들어가서 남을 섬기려고 하는 데 지나지 않으니 두 나라가 저마다 바라는 바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 노자, <도덕경> 61장

노자와 공자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노자와 공자의 생몰연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공자는 C551년~BC479년, 노자는 BC604년~BC53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노자에게 도에 대해서 물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자의 사상과 노자의 사상을 비교해 보면 노자가 공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과 양 중에서 공자는 양, 노자는 음을 상징하고 여성과 남성 중에서 노자는 여성, 공자는 남성을 상징하는데, 노자가 볼 때 공자가 추구하는 이상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인입니다. 세상이 공자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만큼 혼란이 심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묵점 기세춘 선생 같은 학자들은 <도덕경>이 <논어> 이후에 완성된 것이고, 여러 명이 저술에 참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방각본 고전문학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된 것이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개인이 아니라 직책이거나 여러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도덕경>은 일대 혼란기를 살았던 민중들의 울분과 통찰이 담긴 철학으로 읽힙니다. 당시 민중들이 보기에 권력자들이나 지식인,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편협해 보였던 거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장자>를 저술한 '장주'라는 철학자는 <도덕경>의 취지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언어로 노자의 철학을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장자를 노자의 주석가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엄밀히 보면 노자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차이점도 많습니다. 노자의 철학에 동의하는 장자의 <장자>라는 책에는 공자와 노자가 대화를 나누는 우화가 담겨 있는데, 실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장자의 '소설'로 읽어 주십시오.

노담이 "어디 묻겠는데, 인의가 인간의 본성일까요?" 라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란 어질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의롭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인의는 정말 인간의 본성입니다. 또 무엇을 할 게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묻겠는데, 무엇을 인의라 하는 거요?" 공자가 대답했다. "진심으로 즐기며 기뻐하고 널리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 이것이 인의의 참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아, 말세의 쓸모없는 소리로다. 저 널리 사랑한다는 따위는 너무도 먼 일이 아니겠소. 사심을 없앤다는 게 곧 사심이오. 당신이 만약 이 천하의 순박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면 말이오. [저 자연을 보시오] 곧 천지에는 본래부터 일정한 법칙이 있고, 해와 달에는 애초부터 밝은 빛이 있으며, 별은 본래부터 하늘에 즐비하고, 새와 짐승은 애초부터 무리를 이루며, 나무들은 본래부터 대지에 서 있소. 당신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어도] 덕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도를 따라서 걷고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오. [더 이상] 또 억지로 애써서 인의를 내걸고 북을 두드리며 도망자를 찾는 따위 짓을 어째서 할 필요가 있단 말이오? 아, 당신은 인간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소."
- 장자, <장자> 13-8

'노담'은 노자의 다른 이름입니다. 공자는 고대의 가치를 회복해 세상을 평안하게 하고 개인적으로는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전형적인 '남성'입니다. "사십이나 오십이 되어도 성취한 바가 없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도 두려워할 게 못되는 사람이다."(논어9-22)라는 말은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노자는 이와는 많이 다르죠. 노자가 <도덕경>에서 어떻게 엄마를 찬양하고 아빠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 가정생활과 육아의 관점에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가사와 육아. 이 두 글자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을 엄마라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사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은 어느 정도 추측만 할 뿐이죠. 집안일은 무한반복됩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요리도 해야 하고,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입맛에 맞게 바꿔줘야 하고,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합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사람 수만큼 빨래가 쌓이는데 세탁기 돌리고 탁탁 털어 널고 마르면 걷어서 개킨 다음에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자리에 놓아야만 옷을 다시 꺼내 입을 수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는 쌓여만 갑니다. 틈틈이 쓸고 닦고 청소하지 않거나, 이불을 털어서 일광욕을 시켜주지 않으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콜록콜록 기침하고 열이 납니다. 아이가 어리면 이런 주사 저런 주사를 맞으러 다녀야 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크고 작은 '앓이'를 하면 병원에도 자주 갑니다. 반복되는 일을 한번이라도 넘기면 악취와 아비귀환이 벌어집니다. 자기 옷을 찾아서 헤매는 아이들, 양말을 못 찾아서 방황하는 아빠들. <돼지책>이라는 그림책을 보면 집안일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홀로 우뚝 서서 바뀔 줄을 모르고 두루 행하되 잠시도 쉬지를 않으니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도덕경 25장)는 구절은 마치 고단한 엄마의 심정을 알고 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엄마가 있는 집에서는 마치 자동으로 모든 집안의 사물들과 옷가지와 음식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엄마의 노동이 다 들어간 거죠. 그래서 가정이 편안해집니다. 남편이든 아이들이든 모두 집안의 엄마에게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고마워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죠. 이렇게 엄마는 집안의 주인이 됩니다. 일을 하면 주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되는 게 인생의 법칙이니까요. 

강과 바다가 넉넉히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은 그것들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백성 위에 오르고자 할 때에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할 때에 반드시 몸을 뒤에 둔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백성 위에 오르지만 그들이 무거워하지 않고 백성 앞에 서지만 그들이 해를 입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온 세상이 그를 기꺼이 받들어 모시되 싫어하지 않거니와 다투지를 않으므로 세상이 그를 상대하여 다툴 자가 없다.
- 노자, <도덕경> 66장

아빠들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회사 생활 힘들다, 때려 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집안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가뜩이나 힘든 엄마에게 아빠의 '회사 때려 치겠다'는 말은 무척 스트레스를 줍니다. 아빠가 회사 일 힘들다고 말할 때는, 회사 일을 하는 자신에 대한 은근한 과시가 담겨 있습니다. 푸념조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의 과시가 있는 거죠.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합시다! 노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한다.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는 자는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옳다 하는 자는 인정받지 못하며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도에서는 일컬어 찌꺼기 음식이요 군더더기 행동이라 하여 도는 언제나 이것들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24장

지금도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남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자가 볼 때 이런 모습은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빠의 권위가 얼마나 갈 것 같으신가요? 가정의 권력관계는 생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중심으로 힘이 이동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가장 많이 돌보고 아이가 편안해하는 사람이 이른바 '실세'가 됩니다. 아이가 편안해하는 사람이 꼭 엄마일 필요는 없지만, 아빠가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도덕경>에는 집안에서 큰소리치고, 유세 부리고,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에게 경고를 해놓은 구절이 무척 많습니다. 두 개만 소개합니다. 

자연은 거의 말이 없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러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 노자, <도덕경> 23장

모든 사물은 강장(强壯)해지면 노쇠하니 이를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 
- 노자, <도덕경> 30장

나는 <도덕경>을 읽으면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생존전략을 찾았습니다. 아빠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셔닝, '신의 한 수'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석 시인의 '오라 망아지 토끼'라는 시에는 압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린 백석이 망아지를 달라고 조르면 아버지는 길가에서 "매지('망아지'의 함경도 방언)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를 커다랗게 외치며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백석 시 곳곳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나는 백석의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다정다감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권위적이었습니다. 집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가 많으셨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기가 꺾이고 영향력이 어머니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편과 아버지가 젊고 힘이 있을 때 해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가족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 살, 다섯 살인 아이들인 20년쯤 지났을 때는 저보다 힘이 강성해질 것입니다. 그때 약해진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아이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할까? 그것은 지금의 나 하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눌려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철학적으로 확정해준 사람이 바로 노자입니다. 아빠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에게 살 길을 마련해준 노자는 역시 요물입니다. 아빠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강한 것은 곧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말이거든요. 약하고 부드럽고 낮은 것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양의 족속들', 즉 강하고, 남성적이고, 지위가 있고, 경제력이 있고, 여러 가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생존할 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한 노자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만물 초목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다가 죽으면 바싹 말라 단단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이런 까닭에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이나니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있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다. 
- 노자, <도덕경> 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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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8. 연애와 육아의 공통점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만화책이었습니다. 지금도 만화책을 치워버리는 부모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책으로 세상을 배운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나는 지금도 틈틈이 만화책을 봅니다. 만화책을 찾는 까닭은 재미도 재미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진리’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재밌게 읽었던 <마스터 키튼>이라는 만화에는 명탐정 배넘 부인이 나오는데 특유의 추리력으로 주인공 '마스터 키튼'을 능가합니다. 키튼에게 “당신은 아직 멀었수.”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이 분이 육아를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배넘 부인 : 명탐정이 될 비결을 가르쳐 드릴까요?
마스터 키튼 : 네?
배넘 부인 : 연애를 많이 할 것!
마스터 키튼 : 네에….
- <마스터 키튼> 16. 루너딜의 석양





사랑은 한편으로는 유치하고 한편으로는 톡 쏘는 맛입니다. 연애도 그렇죠. 연애 전문 용어 중에 ‘밀땅’이 있습니다.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이죠. 감정의 신축과 이완을 이용해서 그야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술이 밀땅인데, 연애 고수들은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 앞에 와서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내 한몸 바칠게요. 뭐든 해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매달린다면 당신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이 질문을 받은 분들은 모두 거절하겠다고 했습니다. 거절의 이유는 “내가 왠지 손해보는 장사인 것 같아서.” “너무 매달리면 재미없어서.” 등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매달리는 남자, 누구랑 닮지 않았나요? 아이들을 대하는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저렇게 비춰진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사람은 재미와 긴장을 추구하고, 아이들은 더 하기 때문에 지루하게 만들면 교육 효과가 떨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말이 ‘잔소리’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연애할 때의 감정을 최대한 동원해서 육아를 한다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연애든 육아든 사람과의 관계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고, 희노애락이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쌍둥이와 같죠. 공자도 맹자도 밀땅을 즐겼습니다. 공자의 수제자 안연의 고백을 통해서 공자가 얼마나 ‘밀고 당기기’의 달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안연이 한숨지으며 말하였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보면 앞에 계시는 듯하더니, 홀연히 뒤에 계신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유도해 주시어, 학문으로써 우리를 넓혀 주시고, 예로써 우리를 단속해 주신다.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어, 나의 재능을 다하고 나니, 자신 속에 우뚝 선 바가 있는 듯하다. 비록 선생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고자 하나, 찾아 들어갈 수가 없다." 
- 논어9-10

공자에 대한 평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글인데, 때로는 공자가 마치 신(神)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신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순수한 ‘밀땅’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자 선생님이 자신을 밀고 조이고 앞에 갔다 뒤에 왔다 하니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고 그만둘 수도 없었던 안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공자는 연애의 기술을 교육에 적용한 경우입니다. 내 강의를 무척이나 집중해서 듣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은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대요. 그런데 너무 강한 신념을 가져서 그런지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발로 차거나 심한 장난을 치면 어떻게 하세요?” 하고 물어 봤더니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마 아파’ 한데요. 나는 이 분께 ‘밀땅’의 기술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아이가 심한 장난을 할 때는 엄격한 표정으로 “안 돼!”하고 따끔하게 말하면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이 분위기가 계속 되면 아이가 주눅 들 수 있으니 다시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엄마랑 장난 치고 싶었어? 우리 배게 놀이 할까?” 하면서 이완을 시켜줍니다. 그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해보고 나서 효과가 있었다고 말해줬습니다. 다만,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자신의 방법으로 응용하고 업데이트를 해줘야 합니다. 육아는 바이러스와 백신의 관계와 같습니다. 좋은 백신을 소개 받아서 바이러스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또한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를 진화시키면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부모님 강의 할 때 연애 이야기를 예시로 드는데, 그 때마다 졸던 분들도 눈이 반짝 반짝 빛납니다. 그게 바로 연애의 힘이 아닐까요? 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밀땅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공자께서 무명에 가셨는데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 자유가 대꾸하였다. "전에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었는데,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다스리기 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언(偃)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었다."
- 논어17-4

'언'은 자유의 이름입니다. 가족이 생활하다 보면 인상 쓸 일이 많습니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농담을 던지면 분위기가 달라지죠. 요즘은 특히 ‘연예감’이나 ‘개그감’이 강조되는데, 바로 ‘재미’가 삶의 활력소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장난감을 만들어냅니다. 둘째 민서가 간밤에 열이 있어서 해열제를 먹였는데, 다음날 어린이집에서 풍선으로 허리띠를 만들어서 허리에 둘러 왔습니다. 풍선 허리띠 틈에 해열제통을 넣어서 칼처럼 휘둘렀습니다. 이번에는 밀땅을 통해서 교육을 시킨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자가 제나라를 떠나 시내에 머물렀다. 어떤 사람이 제나라 왕을 위해 맹자의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러 찾아와 꿇어앉아 말을 했으나, 맹자는 대답도 않고 침대에 기대어 누웠다. 
손님은 얹짢아 하며 말했다. "제자가 목욕재계한 뒤에 감히 말씀드리는데, 선생님은 누우시고 듣지도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지 않겠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편히 앉으시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소. 옛날 노목공은 자사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안심시킬 수 없었고, 예류와 신상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들 자신을 편안하게 할 수 없었소. 당신이 나이든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있으나, (목공이) 자사를 만류한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니, 그대가 나이든 사람을 거절한 것이오? 나이든 사람이 그대를 거절한 것이오?"
- 맹자4-11

맹자를 만류하러 찾아온 사람에게 진정 제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만류하는 것인지, 아니면 맹자를 만류한 공로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만류하는 것인지 밀땅의 기술로 물어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로서 설득할 수 있고, 말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스승들은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말로 안 되면 행동이나 농담이나 밀고 당기기의 기술로 뜻을 전달하는 데 달인이었습니다. 맹자가 드러누운 것은 요즘 말로 하면 ‘비언어 소통 방법’입니다. 육아를 할 때 비언어가 참으로 중요한데 미국 UCLA 대학의 명예 교수인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연구에 의하면 완전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된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언어적인 요소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절반이 넘는 55%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비언어적인 요소로는 얼굴 표정, 시선, 눈 맞춤의 정도, 몸의 자세, 태도, 몸놀림, 숨결의 정도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연애를 할 때 무척이나 활성화됩니다. 마셜 매클루언은 연인들끼리 대화할 때는 말을 더듬는다고 하는데, 사랑의 감정은 여러 감각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1년 정도(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아내는 아이와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연애할 때 나를 보던 눈빛을 아이에게 보내니 남편으로서는 섭섭하고 아기에게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요. 맹자는 “먹여주고서도 사랑하지 않으면, 개를 먹이는 것같이 그를 대하는 것”(13-3)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와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지 얼마나 되었나요? 사랑하는 마음이 강할 때 사랑한다는 말로 나타납니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의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크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배우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바닥난 경우가 참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랑이나 연애감정이란 것이 물잔처럼 비는 게 아니라, 풀 베는 예초 기계처럼 먼지가 덮여 있을 뿐이므로 먼지를 걷어내고 조금만 수리하면 금방 되살아나는 감정입니다. 가족들에게 ‘칭찬놀이’를 하게 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처음에 부모님들은 “내 아이에게 칭찬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뭘 칭찬하라는 거죠?”라는 항의를 했지만, 나는 “칭찬할 게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칭찬하세요.”하고 맞섰습니다. 아이들이 써 낸 책놀이 종이에 부모님 대신 칭찬을 하는 일을 한동안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조금씩 칭찬에 눈을 떴습니다. 나중에 부모님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한 말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칭찬놀이를 통해서 아이를 다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입니다. ('칭찬놀이'의 사례와 방법은 졸저 <책 놀이 책>을 참조하세요)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일 때 종이를 펼쳐 놓고 서로 칭찬을 한번 적어보세요. 사랑의 감정 위에 아무리 오랫동안 시간의 먼지가 쌓였다고 하더라도 툭툭 털면 그 온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연애 적 추억을 떠올리며 부부생활과 육아를 연애하듯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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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7. 정지 신호를 잘 지키면 육아의 길이 행복해진다


동양철학을 읽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첫 구절’부터 내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예 ‘동양철학의 첫 구절을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쓸 때 제목이나 소제목 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글을 시작할 때 주제를 충분히 드러냅니다. 그래서 <논어>나 <맹자> 같은 경전의 소제목은 글이 시작하는 단어인 경우가 많습니다. 첫 구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경전 <대학>은 '큰 배움'이라는 뜻이지만 모든 교육자와 부모님들께 '교육'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 첫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치는 데에 있다. – 대학경문


밝은 덕을 밝힌다는 명명덕(明明德)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고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왜 밝을 명(明)이 두 번 들어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양철학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인문학인데, 밝은 덕이란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잘 들여다 보면 밝은 덕의 요소가 있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맑은 마음, 또를 밝은 도리가 있는데 이걸 명확히 확인시켜주는 게 명명덕의 정신입니다. 예컨대 아이가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려고 할 때 부모는 먹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는 눈에 보이는 음식을 왜 먹어서는 안 되는지 몰라서 부모에게 “왜?”하고 물어봅니다. 


“땅에 떨어진 것 먹으면 아파.” 

- 왜? 

“아프면 병원 가야 해.”

- 왜? 


이렇게 아이의 질문이 반복되면 부모는 슬슬 짜증이 나며 “먹지 마!”하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아이가 장난으로 자꾸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 하고 물어봐주는 아이가 정말 예쁜 아이 아닌가요? “네가 땅에 떨어진 것 먹고 병원 가면 아빠 마음이 아파. 아빠 마음이 아프면 좋겠어?” 하고 되물으면 아이는 “아니!”하고 대답하며 땅에 떨어진 음식으로부터 관심을 끊습니다. 아이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밝혀 주는 것이 명명덕입니다. 엄마가 뭔가를 잘못 말하거나, 오해해서 혼내고 나서 나중에 사과하는 것도 일종의 명명덕입니다. 아이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이는 알 거라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죠. 우리는 가끔 아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나 싶습니다. 마치 빈 그릇에 물을 붓듯이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가 쌓이고, 과학을 가르치면 과학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그런 식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에게서 배웁니다.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읽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치 아이를 '반쯤 켜진 전구'로 보고 나머지 스위치를 찾아서 켜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아이의 인식 수준을 마음속으로 어림해서 행동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양심에 물어보고 최선의 대답을 해줍니다. 


재신민(在新民)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달려 있다는 뜻인데, 여기서 ‘백성’을 ‘아이’ 또는 ‘가족’과 바꿔도 뜻이 통합니다. ‘아이와 새롭게 만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이루고 오랫동안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많이 모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는 나날이 새로워지고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집니다. 하지만 부모인 우리 어른들은 역동적인 현실이 어지러워 자기만의 관념의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관념이 때로는 보호막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념이 그물처럼 자신을 조여 온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실제 자기의 모습을 봐달라고 계속 요구를 합니다. 바로 ‘새로움에 대한 요구’입니다. 혹시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내 아이나 가족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제3자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실제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관념 속에 오랫 동안 가둬놓았다면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집니다. 계모가 아이를 죽도록 때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몰랐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갇힌 채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한때 드라마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나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는 어떤가요? 실제 부부나 애인 관계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아내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 동료를 오프스 와이프, 남편처럼 친하게 지내는 남성 동료를 오피스 허즈번드라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새로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관념 속에 갇혀 있으면 숨이 막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회사나 집 밖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이것은 단지 변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피스 와이프가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 데에는 서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을 만나다 보니 부부 사이가 최악인 경우, 이혼한 경우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 동료와 바람이 나서 동거를 하고 자기와 아이는 돌볼 생각도 하지 않는 남편의 이야기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내 슬퍼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에 대한 분노만 키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인생 자체가 혼자 살아가는 거잖아요. 연애를 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결혼을 했다가 헤어질 수도 있지만 ‘다시’ 나의 인생을 시작할 뿐입니다. 이것 또한 새로움입니다. 만약 이 경우 ‘나 질문법’으로 물어볼 수 있다면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 먼지와 사무실 먼지 속에서 보냅니다. 하지만 가끔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가족을 새롭게 만난다’, ‘내 아이를 새롭게 만난다’는 것은 바로 이 느낌입니다. 

대학의 첫 번째 구절에서 가장 오묘하고 강력한 말은 바로 지어지선(止於至善), 멈출 때를 안다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는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과 같습니다. 축구 스타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팀을 은퇴했을 때, 초롱이 이영표 선수가 축구선수 생활을 은퇴했을 때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주 적절한 시점에 멈췄기 때문입니다. 최적의 타이밍에 멈출 줄 아는 감각이야말로 인생을 빛내주는 기술입니다. 


육아서를 읽으면 자주 볼 수 있는 구절이 ‘아이의 마음을 만져주라.’는 말입니다. 마치 진리처럼 남용되는 말이지만 모든 상황에 다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을 읽고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의 마음을 만져주려고 노력합니다. 어느새 아이는 부모의 머리 위에서 장난을 칩니다. 벽을 만났으니 멈춰야 할 때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때리거나 심한 장난을 할 경우 따끔하게 “안돼”라고 경고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원칙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구절 역시 어떤 경우에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역시 이 구절을 읽은 부모는 원칙을 세운다고 이거 하면 “안 돼”, 이거 해도 “안 돼”라고 합니다.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행동을 할 때마다 부모의 눈치를 볼 지도 모릅니다. 결국 마음을 만져주려 해도 벽을 만나고, 엄격하게 해도 벽을 만납니다. 벽이란 다름 아닌 아이의 마음이죠. 그건 아이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릅니다. 벽을 만났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돌아가야 합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정지 신호를 만나면 차를 멈추고 신호를 기다립니다. 축구 경기를 할 때도 반칙이 심한 경우는 ‘레드 카드’를 받는데 이 카드를 받는 사람은 그날 경기를 거기까지 하고 퇴장합니다. 인생도 이렇게 친절하게 정지 신호가 적절히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정지 신호 없는 도로를 위태롭게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하지만 육아에서는 분명한 정지 신호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반응과 표정입니다. 아이는 집에서 ‘새로움’을 담당합니다. 부모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기도 합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병사합니다. 임종의 순간 제갈량은 심복인 조자룡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주면서 위기의 순간에 열어보라고 합니다. 나도 부모님들께 드리는 비단주머니가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꺼내보라고 하는 주머니 속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혹시 내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온갖 압박을 받습니다. 학부모 모임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상담에서, 심지어 동네 아줌마들과 키즈카페에 가서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웃들이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거나 무엇인가를 가르치거나 오르다 같은 고급 용구를 들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서 교육을 시키려고 하면 주위의 지인으로부터 "미쳤어?" "너 제정신이야?" 하는 핀잔을 듣습니다. 이때는 동양철학에 말하는 '일시정지' 카드를 활용하세요. 


공자가 말했다.  

"길에서 들은 말을 길에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

- 논어17-14


만약 길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아이에게 적용하면 100% 아이에게 피해를 줍니다. 일단 정지한 후에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거죠. 예컨대 오르다 세트를 구입한 친구 집에 갔다가 오르다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당장 우리에게 사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친구 집 아이는 오르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고, 우리 아이도 그런 놀이를 마음에 들어할 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는 상품 중에서 오르다보다 더 저렴한 것은 없는지, 우리 가정 형편에 구입해도 좋은지 등등을 따집니다. 이 고민을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한다면 훨씬 더 좋아집니다. 다만 마음에 이미 결정을 하고 나서 통보 식으로 말하거나 배우자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더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동양철학이 그리는 인간상은 “반성하는 인간”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용기’라는 중용의 말이나,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인간도 아니다’는 맹자의 말도 반성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반성을 하게 되던가요? 사람은 거울을 볼 때만 반성합니다. 동양철학에서는 다른 사람을 나의 거울로 이용합니다. 부모 역시 자기 스스로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행동을 바라볼 때만 자신이 틀릴 수 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반성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거울로 삼아서 되돌아보지 않으면 결국은 더 큰 문제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밥 안 먹고 딴짓하는 민준이의 식판을 치우고 나서, 민준이가 동생의 식판을 치워버리는 모습을 거울 삼아 나의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문제가 나를 찾아왔을까요? 생각만 해도 오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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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는 동양철학6] 냉장고 위에 장난감을 올리는 부모님께 (3)

동양철학과 육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답은 없고, 다만 정성이 있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면 항상 강조하는 말은 ‘제발 육아서 읽고 감정이입하지 말라’입니다. 육아서는 아동심리학 등 심리학 연구 결과에 근거하는데, 심리학 연구는 인간의 일반적인 평균값을 말합니다. 평균값이 뭔가요? 어떤 반의 수학 성적 평균이 70점이지만 한 친구는 0점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친구는 100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특별하고 특수합니다. 육아서에 감정이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죠? 동양철학을 쓴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어서 남자의 시선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 여자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이 가끔 있습니다.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기를 끌어안은 듯 한다'고 하였으니 마음으로 정성껏 추구한다면 비록 실정에 딱 드러맞지는 않더라도 가까이 갈 수는 있을 것이니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후에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 
ㅡ 대학9장
※ 강고(康誥)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篇名)

가끔 일본에서 조카가 머물렀다가 갑니다. 조카는 우리 첫째 민준이보다 한 살이 많은 형입니다. 조카가 네 살이던 여름이었습니다. 덥기도 덥고, 조카는 아토피까지 있어서 엄마에게 짜증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새벽 3시 정도만 되면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에게 침대에서 내려가라고 하고, 텔레비전에서 뽀로로 틀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갑자기 배고프다고 밥상을 차려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황당한 투정이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떠나가라 울어댔습니다. 조카의 엄마는 밤마다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통에 해쓱해졌습니다. 나도 새벽까지 일을 하는 올빼미족이라 조카 모자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처음에는 성가셨지만 나중에는 안타깝고 측은했습니다. 하루는 울고 있는 조카를 안고 창가로 갔습니다. ‘하루라도 편안하게 잠을 자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고 조카를 꼭 안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애가 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름날 밤이었지만 방충망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살갗에 닿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카를 봤더니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옆에 있는 부채로 살살 흔들어 주면서 달랬더니 천사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 이날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성(誠)’이라는 글자를 무척 강조합니다. <중용>에는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정성이 없다면 세상에 어떤 것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성[誠]은 하늘의 도요, 정성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니, 원래 성[誠]은 힘쓰지 않고 중심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고 얻으며 조용히 중도에 합치되니 성인이요, 정성[誠]에 힘쓰는 자는 착함을 택하여 굳게 잡는 자이다. 
- <중용> 20장

정성은 마치 태양의 내리쬠과 같은데, 훌륭한 사람은 태양을 닮으려고 한다는 동양철학의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들인 정성을 생각해 보시면 성(誠)의 의미가 다가옵니다. 먹고싶은 것 참고, 먹기 싫은 것도 참고, 감기약도 참아가며 열 달을 버텼습니다. 그 옆에서 아빠도 전전긍긍하면서 보낸 세월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뭇 생명들이 이런 정성스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은 생명에 대해서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의 손이 가는 모든 것에 아이의 숨결이 있습니다. 아이의 감정 역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것만이 죽는 게 아니고 아이의 기가 푹 죽는 것 역시 일종의 죽음으로 볼 수 있겠지요. 정성이란 것은 이런 것들에 세심히 신경 쓴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서점에서 육아서를 찾아가며 배운 것도 일종의 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천여 명의 부모님을 만나면서 참 고맙고 행복했던 것은 부모님의 마음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선의가 충만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사랑과 선의가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방해 때문에 아이에게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갈 곳을 잃은 부모님의 사랑, 길이 끊어져 버린 선의를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이에 대한 해답도 정성에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어쩌면 자신의 관념을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관념 속에 갇힌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부모의 사랑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배신감에 사무칩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부모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부모와 아이는 계속 멀어집니다. 아이에게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아이의 주변을 살핀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아이가 노는 공간, 걷는 길, 좋아하는 책 등 아이의 손길이 닿는 곳에 대해서 세심하게 신경 쓴다는 의미입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는 물건에 담긴 영혼 하우(hau)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증여론>은 마르셀 모스가 아메리카, 멜라네시아, 뉴질랜드의 원시인의 생활방식을 인류학적으로 연구해 증여(선물)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초라는 걸 밝힌 책입니다. 

증여자가 내버린 경우에도 그 물건은 여전히 그에게 속한다. 그는 그것을 통하여, 마치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것을 훔친 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수익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우(hau)'는 그것을 소지하는 자를 쫓아다닌다. 
- 마르셀 모스, <증여론>(한길사), 68쪽

하우는 '바람'과 '영혼'을 동시에 가리키는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길을 가다가 쓸 만한 의자나 가구를 발견해서 집에 들이면 가끔 아이가 병이 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어른들은 ‘동티’가 났다고 말합니다. 민준이와 민서가 사촌형에게 옷을 물려 받았다면 옷의 주인으로부터 양도되었고, 옷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 때문에 동티가 나지 않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아이 옷가지나 장난감을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내서 물건을 양도 받았고, 물건 주인의 신원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쓸 만한 물건을 발견했을 때는 양도 받은 것도 아니고 물건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혼이 가녀린 아이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부모님들에게 책놀이를 가르쳐주면 부모님들은 집에 가서 아이와 즐겁게 책놀이를 즐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부모님이 아이가 책놀이를 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몇 일 동안 고민을 하며 이유를 살펴봤지만, 뚜렷이 알 수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그 부모님이 고백했습니다. 

“아이랑 함께 읽는 책은 어른이 보기에 좀 따분하잖아요. 그래서 주말에 아이 책을 옆에 놓고 소설책을 읽었는데 아이가 그 모습을 봤나 봐요. 그때부터 아이가 책놀이하는 책을 거부하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읽는 책에 아이의 영혼이 담겨 있는지 그 부모님은 몰랐던 겁니다. 아이의 영혼은 부모님의 영혼보다 더 맑고 민감해 합니다. 특히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에 대해서 무척 예민합니다.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다뤄주면 아이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한 어머니는 아이가 학습만화에 빠지는 것이 싫어서 집에서 학습만화를 다 치워버렸습니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더욱 학습만화에 집착했습니다. 아이에게 학습만화는 생명과 같이 애착이 있는데, 엄마가 집에서 학습만화를 치워버리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뜩 주눅이 들고 수동적인 아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아이는 그나마 건강한 편입니다. 이렇게 정성의 세계는 무척 복잡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눈을 뜨는 순간 아이와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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