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8. 연애와 육아의 공통점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만화책이었습니다. 지금도 만화책을 치워버리는 부모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책으로 세상을 배운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나는 지금도 틈틈이 만화책을 봅니다. 만화책을 찾는 까닭은 재미도 재미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진리’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재밌게 읽었던 <마스터 키튼>이라는 만화에는 명탐정 배넘 부인이 나오는데 특유의 추리력으로 주인공 '마스터 키튼'을 능가합니다. 키튼에게 “당신은 아직 멀었수.”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이 분이 육아를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배넘 부인 : 명탐정이 될 비결을 가르쳐 드릴까요?
마스터 키튼 : 네?
배넘 부인 : 연애를 많이 할 것!
마스터 키튼 : 네에….
- <마스터 키튼> 16. 루너딜의 석양





사랑은 한편으로는 유치하고 한편으로는 톡 쏘는 맛입니다. 연애도 그렇죠. 연애 전문 용어 중에 ‘밀땅’이 있습니다.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이죠. 감정의 신축과 이완을 이용해서 그야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술이 밀땅인데, 연애 고수들은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 앞에 와서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내 한몸 바칠게요. 뭐든 해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매달린다면 당신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이 질문을 받은 분들은 모두 거절하겠다고 했습니다. 거절의 이유는 “내가 왠지 손해보는 장사인 것 같아서.” “너무 매달리면 재미없어서.” 등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매달리는 남자, 누구랑 닮지 않았나요? 아이들을 대하는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저렇게 비춰진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사람은 재미와 긴장을 추구하고, 아이들은 더 하기 때문에 지루하게 만들면 교육 효과가 떨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말이 ‘잔소리’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연애할 때의 감정을 최대한 동원해서 육아를 한다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연애든 육아든 사람과의 관계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고, 희노애락이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쌍둥이와 같죠. 공자도 맹자도 밀땅을 즐겼습니다. 공자의 수제자 안연의 고백을 통해서 공자가 얼마나 ‘밀고 당기기’의 달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안연이 한숨지으며 말하였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보면 앞에 계시는 듯하더니, 홀연히 뒤에 계신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유도해 주시어, 학문으로써 우리를 넓혀 주시고, 예로써 우리를 단속해 주신다.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어, 나의 재능을 다하고 나니, 자신 속에 우뚝 선 바가 있는 듯하다. 비록 선생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고자 하나, 찾아 들어갈 수가 없다." 
- 논어9-10

공자에 대한 평가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글인데, 때로는 공자가 마치 신(神)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신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순수한 ‘밀땅’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자 선생님이 자신을 밀고 조이고 앞에 갔다 뒤에 왔다 하니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고 그만둘 수도 없었던 안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공자는 연애의 기술을 교육에 적용한 경우입니다. 내 강의를 무척이나 집중해서 듣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은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대요. 그런데 너무 강한 신념을 가져서 그런지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발로 차거나 심한 장난을 치면 어떻게 하세요?” 하고 물어 봤더니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마 아파’ 한데요. 나는 이 분께 ‘밀땅’의 기술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아이가 심한 장난을 할 때는 엄격한 표정으로 “안 돼!”하고 따끔하게 말하면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이 분위기가 계속 되면 아이가 주눅 들 수 있으니 다시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엄마랑 장난 치고 싶었어? 우리 배게 놀이 할까?” 하면서 이완을 시켜줍니다. 그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해보고 나서 효과가 있었다고 말해줬습니다. 다만,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자신의 방법으로 응용하고 업데이트를 해줘야 합니다. 육아는 바이러스와 백신의 관계와 같습니다. 좋은 백신을 소개 받아서 바이러스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또한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를 진화시키면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부모님 강의 할 때 연애 이야기를 예시로 드는데, 그 때마다 졸던 분들도 눈이 반짝 반짝 빛납니다. 그게 바로 연애의 힘이 아닐까요? 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밀땅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공자께서 무명에 가셨는데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 자유가 대꾸하였다. "전에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었는데,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다스리기 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언(偃)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었다."
- 논어17-4

'언'은 자유의 이름입니다. 가족이 생활하다 보면 인상 쓸 일이 많습니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농담을 던지면 분위기가 달라지죠. 요즘은 특히 ‘연예감’이나 ‘개그감’이 강조되는데, 바로 ‘재미’가 삶의 활력소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장난감을 만들어냅니다. 둘째 민서가 간밤에 열이 있어서 해열제를 먹였는데, 다음날 어린이집에서 풍선으로 허리띠를 만들어서 허리에 둘러 왔습니다. 풍선 허리띠 틈에 해열제통을 넣어서 칼처럼 휘둘렀습니다. 이번에는 밀땅을 통해서 교육을 시킨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자가 제나라를 떠나 시내에 머물렀다. 어떤 사람이 제나라 왕을 위해 맹자의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러 찾아와 꿇어앉아 말을 했으나, 맹자는 대답도 않고 침대에 기대어 누웠다. 
손님은 얹짢아 하며 말했다. "제자가 목욕재계한 뒤에 감히 말씀드리는데, 선생님은 누우시고 듣지도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지 않겠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편히 앉으시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소. 옛날 노목공은 자사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안심시킬 수 없었고, 예류와 신상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들 자신을 편안하게 할 수 없었소. 당신이 나이든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있으나, (목공이) 자사를 만류한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니, 그대가 나이든 사람을 거절한 것이오? 나이든 사람이 그대를 거절한 것이오?"
- 맹자4-11

맹자를 만류하러 찾아온 사람에게 진정 제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만류하는 것인지, 아니면 맹자를 만류한 공로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만류하는 것인지 밀땅의 기술로 물어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로서 설득할 수 있고, 말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스승들은 그 사람들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말로 안 되면 행동이나 농담이나 밀고 당기기의 기술로 뜻을 전달하는 데 달인이었습니다. 맹자가 드러누운 것은 요즘 말로 하면 ‘비언어 소통 방법’입니다. 육아를 할 때 비언어가 참으로 중요한데 미국 UCLA 대학의 명예 교수인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연구에 의하면 완전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된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언어적인 요소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절반이 넘는 55%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비언어적인 요소로는 얼굴 표정, 시선, 눈 맞춤의 정도, 몸의 자세, 태도, 몸놀림, 숨결의 정도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연애를 할 때 무척이나 활성화됩니다. 마셜 매클루언은 연인들끼리 대화할 때는 말을 더듬는다고 하는데, 사랑의 감정은 여러 감각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1년 정도(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아내는 아이와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연애할 때 나를 보던 눈빛을 아이에게 보내니 남편으로서는 섭섭하고 아기에게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요. 맹자는 “먹여주고서도 사랑하지 않으면, 개를 먹이는 것같이 그를 대하는 것”(13-3)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와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지 얼마나 되었나요? 사랑하는 마음이 강할 때 사랑한다는 말로 나타납니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의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크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배우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바닥난 경우가 참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랑이나 연애감정이란 것이 물잔처럼 비는 게 아니라, 풀 베는 예초 기계처럼 먼지가 덮여 있을 뿐이므로 먼지를 걷어내고 조금만 수리하면 금방 되살아나는 감정입니다. 가족들에게 ‘칭찬놀이’를 하게 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처음에 부모님들은 “내 아이에게 칭찬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뭘 칭찬하라는 거죠?”라는 항의를 했지만, 나는 “칭찬할 게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칭찬하세요.”하고 맞섰습니다. 아이들이 써 낸 책놀이 종이에 부모님 대신 칭찬을 하는 일을 한동안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조금씩 칭찬에 눈을 떴습니다. 나중에 부모님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한 말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칭찬놀이를 통해서 아이를 다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입니다. ('칭찬놀이'의 사례와 방법은 졸저 <책 놀이 책>을 참조하세요)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일 때 종이를 펼쳐 놓고 서로 칭찬을 한번 적어보세요. 사랑의 감정 위에 아무리 오랫동안 시간의 먼지가 쌓였다고 하더라도 툭툭 털면 그 온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연애 적 추억을 떠올리며 부부생활과 육아를 연애하듯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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