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 -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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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악'에 주목하는가.

'악'은 음습하고 지저분하고 두려운 존재다. 눈을 부릅뜨고 '악'을 주시한다는 것은 한낮에 '태양'을 주시하는 것만큼이나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나 가까이 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악을 이렇게 멀리 하는 사이에 '악'은 그 '공포감'을 십분 활용한다.

나의 악에 대한 생각도 뭇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악에 대한 사고관에 전환을 가져온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이 책의 초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저자로 하여금 '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서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는 어둡고 음습한 범죄나 추리, 법정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드러나는 불안정한 인간의 심리와 여러 가지 악의 유형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몬스터'라는 만화책에서 완전무결한 '악'의 상징인 '한스'의 천사같은 생김새는 나로 하여금 '악'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군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신문읽기를 하면서 우리 사회가 '악'에 얼마나 무방비한지를 절감했다. 이렇게 시작한 블로그 스크랩이 벌써  1년째다. '악학(惡學)'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서 세상의 '악'의 이야기들을 모아 왔는데, 벌써 5페이지를 넘었으니 300건 정도의 '악행'이 쌓인 셈이다. 이 이야기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으나, 다행히 이 책의 저자가 20년에 걸쳐 '악'의 전모를 밝혀놓은 역작을 만나게 되었다.

악의 이데아는 없는가

저자에 의하면 '악'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실존적'이다. 즉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일부분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유착'에 주의를 하라는 말이다.
플라톤은 "거짓말이 악인 이유는 그 말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말 안에 진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는 말로 악을 '결여'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선이나 신과 같이 이데아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그 완결성에 흠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총체적 악'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근원이 없는 생명은 없다. 만약에 '악'이 완결성을 상실한 '결여'일 뿐이라면 이토록 사람을 옥죄고 세계에 '치밀한 고통'을 안기는 시스템은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악마는 하느님의 작품이다?

악마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똘히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악'이 탄생한 목적이 있을까. 그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그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악은 필연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나는 악이 '설계자의 의도' 또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 원소'로 보기에 이르렀다.

신의 아들들은 하늘의 판관들이고 주가 거느리는 만신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이 욕망과 자만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 자만심 때문에 죄를 지은 경우에는 하늘에서 내던져졌고, 욕망 때문에 죄를 지은 경우엔 자발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그 죄의 대가로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지상(계곡 안이나 땅 밑에)에서든 공중에서든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꾀어 죄를 짓게 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유혹자의 대장이다. 때로 모든 죄는 그들에게 귀속되지만, 야훼는 분명히 그들에게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를 권한을 준다. <본문 중에서>

악은 '파괴'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동서양의 '파괴'의 양상을 보면 '완전한 파괴자'와 '완전한 재건자'로 나뉜다. 완전한 파괴자는 그야말로 대상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재건자'는 시바 신과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한 후 그 위에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이 논리를 기독교에 적용시킨다면 '사탄'(악)은 인간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품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목동이라 할 수 있다.

사탄이 유다를 선택해 악마의 영을 유다에게 집어넣은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를 택해 자신의 영을 예수에게 보낸다. 이러한 유비 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 구원이라는 커다란 계획 안에서 신은 항상 예수가 구세주이고 유다가 배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위해서는 유다의 배반이 필요했으므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의 과정에서 예수뿐만 아니라 유다도 자기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는 '원죄'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타락'과 '원죄'라는 말은 신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악마'가 신약성서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신의 왕국과 악마의 왕국이 싸움을 벌여 급기야 신의 왕국을 이기게 된다고 설파함으로써 신약성서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세상의 악을 뿌리칠 메시아를 예견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가졌던 불만은 악을 보면 화들짝 덮어버리려는 예민함이었다. 기독교에서 악은 배제의 대상이지 '연구'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것은 반면에 '음성적인 악'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가 배교(背敎)죄로 기소돼 사형 위기에 처한 압둘 라흐만(41,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교에 유연성이 없을 때 얼마나 많은 병폐가 생기는지 절감하게 된다.

바보야, '약(弱)한 것'이 '악(惡)'한 것이야!

지하세계는 죽음뿐만이 아니라 다산성과도 연관되고, 신화나 제의 안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악마는 성과 연관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 마그나 마터, 키벨레, 미트라, 이시스, 피타고라스주의와 연관된 의례들은 진위가 얼마나 의심스럽든지 간에 이후에 이교도와 마녀의 의식에 규범이 될 만한 요소들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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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비록 철학(다이아드)이나 종교(헤카테, 에리니스, 라미아스)로부터 여러 근거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성의 원리가 악의 원리로 인정된 적은 없다. 라미아스는 셈족의 릴리트와 쉽게 합쳐져, 밤에 나타나 남자를 유혹하거나 영아를 살해하는 음란하고 흉악한 여성성을 가진 영으로 창조되었다. 이 이미지는 중세에 점차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자연적인 영역으로 바뀌어, 결국 마녀라는 개념으로 고착되었다. <본문 중에서>

한 과학자는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난소에 비해 생명 탄생에 기여하는 바가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여성에 대한 탄압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과학자는 미래에는 남성 없이 여성만으로도 임신이 가능하여, 남성이 '잉여존재' 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견을 내놓았다. 사실 역사는 '편견'의 역사이다. 특히 권위 있는 자의 편견은 수천 년 동안 철옹성의 지위를 차지한다. '약'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니 '악'이 되어버리는 유행가같은, 장난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미친 듯이 흘러갈수록 '악'은 왜곡된다.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은 '집단이기주의'로 오독되고, 농업포기정책을 추진하며 미국의 시커먼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여정부는 '구국(救國)의 결단'으로 미화된다.

이제는 언론과 기득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동투쟁'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지하철 파업이라는 것은 아침 출근을 엉망으로 만들고, 유통 마비로 인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괘씸한 행위일 뿐이다. 프랑스 노동계와 고교생, 대학생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26세의 사회 초년생을 위해 투쟁하고 '여론 지원'을 보내는 것을 우리 식으로 보면 '거대 집단이기주의'라고 해야 할까. 

'악'을 잘못 이해한 죄로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은 크다. 특히 악은 조직화가 가능하므로, 공동으로 연계한다면 멀쩡한 개념조차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악의 개념이 혼동된 시대야말로 '악'에 대한 개념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기에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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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벌써 다 보셨군요. 이거 정말 어렵던데. 먼 소린지 모르겠어서 발췌독 하고 있답니다.

승주나무 2006-04-0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가 짜증이 나서 불평을 좀 늘어놓으려고 했죠. 근데, 쓰다 보니 할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류사 2006-04-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끝내신 것, 감축드리옵니다. ^^

승주나무 2006-04-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니 류사 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다음 숙제는 이미 제출해 놓았는뎁쇼
ㅋㅋ 2권으로 진군해야죠^^;;

stella.K 2006-04-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류사님이...! 이거 우리끼리 흉도 못 보겠군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