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공까지 잡아내는 이모션 캡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미래세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영감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다.
중학생 시절에 보았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지배했다. 기계가 지배한 세계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터미네이터1, 인간과 기계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터미네이터2는 영상기술과 '액체인간'이라는 발상 역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천재란 기존의 언어에 새로운 언어를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 도스토예프스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모션 캡쳐 기술 및 가상 카메라(Virtual Camera)를 개발, CG 캐릭터들을 감정이 살아 있는 실제 인물과 같이 생생하게 탄생시켰다.

 



이모션 캡쳐는 배우들이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쓰고 연기를 하면 카메라가 얼굴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쳐해 모공의 움직임까지도 CG화하는 기술이다. 그간 분장 기술과 모션 캡쳐를 이용했던 영화들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핏줄이 비치는 피부의 투명성을 표현하지 못해 사실성이 떨어졌던 것에 반해 이모션 캡쳐 기술은 동공 크기의 변화, 눈썹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카메라가 잡아내는 것이다.
판도라라는 미지의 공간에 서식하는 생물체와 신기한 나비(Na’vi)인들의 언어가 볼거리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언어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판도라의 토착 종족만을 위한 언어를 만들었다. 언어학자 폴 프롬머는 13개월 만에 나비(Na’vi) 족의 언어를 탄생시켰고, 그것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배우들을 가르쳤다.
특히 물과 땅, 하늘을 통틀어 하나의 생태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한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존, 감정이입 등 동양적 미덕이 물씬 풍기는 헐리우드 영화

헐리우드 영화의 특징은 액션이나 CG 등 기술적인 화려함 외에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액션이나 CG가 좋으면 극본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마치 특정한 기술을 선보이려고 영화라는 형식을 사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바타>는 세계관에 주목한 영화다. 나비 인들은 판도라 전체의 생태계와 연결돼 있다. 인간처럼 말로만 자연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가슴으로 자연을 느낀다.

"맹수들을 내쫓아줘서 고마워"(제이크 설리)
- 그것(맹수를 죽인 것)은 정말 좋지 않은 행동이었어!(네이티리)
"그러면 왜 나를 구해준 거지?"(제이크 설리)
- 너는 심장이 강해(네이티리)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제이크를 구해주고 나서 네이티리가 한 말이다. 네이티리는 죽어 가는 맹수를 포근히 감싸며 고통을 줄여주면서 신의 품으로 갈 것이라는 위로한다. 그리고 그 생명을 자신이 이어받겠노라고 약속한다. 마치 종교의식을 보는 듯했지만, 사실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판도라 별의 나비족이 지구의 인간과 같은 지위에 있다면 동식물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인간은 자연의 소비를 당연시하는데, 나비 족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특히 헬 게이트에 주둔하는 미군에 의해서 터전이 공격당하고 나무가 부서지자 네이티리는 극도의 슬픔에 어지러워한다. 영화에서 자연에 대한 이토록 심대한 감수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2에서 그려준 '공존'이 인간과 로봇이라는 인위적인 공존이었다면, <아바타>에서 보여준 공존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궁금한 것은 카메론 감독이 보여준 미래상과 아바타의 미래상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바타>의 미래상 역시 자원이 고갈되고 전쟁이 끊이지 않지만, 약자들이 힘을 합해 자신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으로부터 땅을 지킬 수 있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아바타>라는 영화를 통해 제임스 카메론의 철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에서부터 보였던 약자들의 의기투합,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경고메시지에서 더 나아가 불안한 미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자연과 토착인, 손님인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영화다.  

나바족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법, 지구인이 나바족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바로 감정이입이다. 판도라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 모습, 사소한 맹수 한 마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깊이 슬퍼하는 네이티리, 나바족을 배우고 느끼며 '침투'라는 최초의 명령과 새로 사귄 친구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제이크가 나비 족을 지키기 위해 자기 종족(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모두 감정이입에서 비롯된다.

"이웃과의 공동체 활동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감정이입'이다. 이웃과의 감정이입의 경험은 시민공동체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벤자민 바버(B.Barber)

감정이입, 공감과 같은 공통언어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관계관은 인종, 혈연관계라는 전통적인 관계와 궤를 달리하는 성격이다. 친구를 잃으면 슬프고 새 생명을 얻으면 한없이 기뻐하는 것은 종의 벽을 뛰어넘는 공통언어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협소한 관계망은 온난화 등 불안한 미래를 부채질할 뿐이지만, 인간과 자연, 생명체의 공감대는 그 불안을 희망으로 바꿔놓기 충분하다. 제임스 카메론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바타>를 보고 눈과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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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0-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안땡기는 영화였는데 승주나무님 글 보고 나니 확 땡기는데요. ^^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승주나무 2010-01-02 12:05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좋게 써서 그런 것 같아요.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좀 모나게도 한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stella.K 2010-01-0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별론데 한번 봐야하려나?
난 왜 너 같이 글을 못 쓸까?
새해 복은 많이 받았니?ㅎ~

승주나무 2010-01-02 12:06   좋아요 0 | URL
아니.. 글쓰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느끼는 대로 쓰는 거지^^ 누나 정도 경지가 되면 잘쓰고 못쓰고는 없어지는 거지요 ㅎㅎ 리뷰 기대할게요~~

순오기 2010-01-02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좋았어요~ 나혼자 보고 와서 뽐뿌질을 했더니 우리 가족은 이다 오후에 보러 가기로 했어요.^^

승주나무 2010-01-03 23:22   좋아요 0 | URL
나도 우리 아기 민준이에게 뽐뿌질을 해볼까요 ㅎㅎㅎ 가족이 함께 영화보는 날을 저도 손꼽아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