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만명이 보게 된 사연---------------------------------
블로그에 가끔 책 이야기를 쓰기는 하지만
포스트가 책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면 인기가 떨어지더라구요.
예컨대 블로거뉴스에 '책 카테고리'에 뉴스를 송고하면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조회수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같은 뉴스 사이트, 알라딘이나 예스 같은 인터넷 서점 블로그 외에는 책 관련 글을 잘 안 올리게 됩니다.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글은 실생활 관련된 이야기나 시사, 외신 번역 기사 같은 거죠. 특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광적인 흥미를 보였습니다. (예 "한국VS쿠바 야구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 조회수 10만 이상)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직하게 책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책에다가 생활이나 시사, 외신 같은 것을 덧붙이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책으로 세상보기'라는 코너인데,
책의 내용 중 세상과 통하는 부분을 추려서 생각을 덧붙여 쓰는
일종의 퓨전리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전파는 전쟁파를 이길 수 없을가?
위 글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의 책 내용에 인터뷰 내용, 제 생각 등을 덧붙여 쓴 글인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약 8천명 정도면 적지 않은 숫자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40만명!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현실문화)라는 책에 나온 사진 한 장이 문제였습니다. 이 글을 본 지인들은 대체로 '낚시글'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만, 요즘 외교의 상황이 쇄국정책의 상황과 맞닿아 있어서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책의 내용과 무관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여름 강화 광성보에 갔다가 찍은 처참한 사진을 덧붙여 나름대로 성의 있게 썼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이번 건은 블로그가 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방향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시험이 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현실문화>에 의하면 특별히 홍보를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블로그 파워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인 셈이죠.
첫 출발은 좋습니다.
8월20일 알라딘 세일포인트가 1,180이었는데,
8월21일 하루만에 500이 올라 1,680이 됐습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8월 20일 알라딘 세일포인트 : 1,180>

<8월 21일 알라딘 세일포인트 : 1,680>
책이 팔려서 제게 득될 것은 하나도 없지만,
좋은 책을 퍼뜨렸다는 자긍심은 제게 소중한 가치입니다.
만약 책을 읽고 후회를 한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반응이 나온다면
저는 그야말로 역적이 되는 것이니만큼 책을 엄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값이 32,000원이나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니 즐겁게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생 소베가 1806년에 그린 한국 남녀의 모습입니다.
무슨 멕시코 원주민 같죠?
출판사에 의하면 조선에 왔던 프랑스인들이 바라본 조선인의 이미지를 프랑스의 화가가 전해듣고,
상상해서 그린 게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쟈수도 있고 복장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인이 해석한 최초의 한국인 이미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놓는 것은 주로 하층민에서 볼 수 있는 풍습으로
아들을 낳았을 때 보이는 자신감의 상징일 수도 있고,
신선한 젖을 물려주려는 모성과 실용의 관점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서양인이 자의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녹색 부분은 출판사에서 밝혀온 부분과 댓글에서 교정된 부분을 반영한 것입니다.)
----------------------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사람은?------------------------
15세기 이래로 식민지를 개척하던 '대항해 시대', '지리상의 발견의 시대'를 거치면서 동양은 서양에 의해 규정되었습니다. 인문학자 사카이 나오키에 따르면, 근대적 동양은 서양의 침략을 받고 패배하고 착취되었을 때 탄생했습니다. 서양의 침입과 착취로 인해 근대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불행한 출발이었던 셈이죠.
조선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서 서양의 접근이 늦었던 나라였는데, 우리는 그것이 조선인들의 완강한 저항과 불굴의 의지 때문이라고 선전을 하지만, 서양인의 눈에서 볼 때 조선은 그다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그려진 '지팡구'(일본)처럼 황금이 지천으로 널린 황홀한 나라가 아니었죠.
한중일은 개방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하게 봉쇄정책을 고수했다고 하는데, 다만 '일본'의 경우 유일하게 교류하던 네덜란드에게 당시 서양의 선진화된 문물과 '난학'(蘭學)을 받아들여 중국과 조선보다 더 근대적인 모양을 갖춰갈 수 있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더욱 완고해지고 결국 처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얼마 간은 봉쇄정책이 통하겠지만, 물이 엄청 불어난 둑을 막고 있었던 것처럼 한번 터지니까 거칠것없이 쓰나미가 불어닥쳤죠.


인천 강화에 있는 광성보 흔적입니다. 1871년 6월 11일 신미양요 기간 동안 미군과 조선군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는데, 결과는 조선인의 참패였습니다. 위는 해안을 점령한 미군이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처참하군요.
※ 붉은 색 부분은 최초에는 '섬멸'이라고 썼다가, 한 네티즌 님(자구에 신경을..)의 지적을 받아 '참패'로 수정하였습니다. 적절치 않은 용어를 쓴 점 사과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옛날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청나라와 명나라의 자리를 미국이 대신할 뿐이죠.
미국만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이번 그루지야-러시아 전쟁 사태를 보더라도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밑천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기력한 미국·유럽…러 외교·경제 압박수단 없어(경향, 8월12일)
그루지야-러시아 전쟁 최후 승자는 푸틴·사르코지(경향, 8월13일)
다변화된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인데, 막힌 봇물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외교는 예부터 한번도 위태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무방비였던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이상의 내용은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참조했습니다.쪽수가 상당히 부담되긴 하지만(808쪽), 동서양의 자료와 그림, 사진 등을 총망라해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눈이 즐거운 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