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부대'가 촛불문화제에서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아기엄마가 살수차 2대를 끝내 되돌리기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둔 엄마와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마냥 뭉클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 대해서 엄마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엄마의 경솔함에 대해서 누군가 매질을 한다면 자신은 거기에 반대할 말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편의상 저는 '승주나무'로 아이 엄마는 '엄마'로 했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분은 A로 표시했습니다.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6월 26일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승주나무 : 아이 엄마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살수차 앞을 막아서 2대를 결국 돌려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대단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그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오죽하면 이랬겠냐'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군요.
엄마 : 그 소식을 저도 접했어요. 같은 엄마로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엄마가 아이를 그런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온 점에 대해서 많은 비난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엄마는 아이를 위험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여야 하는데,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거든요.
승주나무 : 유모차 엄마들의 인터뷰 보도를 보면 아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에 데리고 왔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경우 아이의 의사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엄마의 주장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일 수도 있고.
엄마 : 그런 면이 적지 않습니다.
A : 이전에 유모차에 대해서는 경찰이 강력하게 막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확신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승주나무 : 사례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장에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예를 들면, 제 형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어려서 무덤 앞에서 사촌오빠와 장난을 하며 놀았거든요. 아이 엄마는 아빠 무덤 앞에서 절을 하게 하고 흙을 뿌리게 했지요. 아이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과 이미지들이 분명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광우병 문제 역시 1~2년 안에 완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간다면 당사자인 아이들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엄마 : 그것은 승주나무님이 아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엄마는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를 보호해야 하며,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의 상황을 조금만 환기해볼게요. 살수차가 물을 뿌려대기 시작하고, 소화액을 뿌리죠. 그것이 아이에게는 무척 치명적인 거랍니다. 몸에 조금만 닿아도 세포에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오래 가거든요.
소화액이 유모차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유모차 안의 아이는 당연히 소화액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A : 사실 소화액이나 살수차뿐만이 아니죠.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신문에 보면 촛불시위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에 노출된 아이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트라우마)에 빠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이와 촛불시위 현장은 어쨌든 만나서는 안 될 궁합이 아닌가 생각해요.
승주나무 : 그러면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과 아이가 직면할 가공할 만한 위험의 책임 문제, 이성적 판단이 없는 아이에게 현장을 강요한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겠군요.
엄마 :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 역시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문제가 안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파장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엄청날 수 있습니다.
아이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저는 어떠한 것이든 균형을 잃는다면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좌초하고 만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촛불시위를 당연시하기보다는 촛불시위 곳곳에서 보이는 이런 맹점이나 불균형들을 찾아내고 걷어내지 않는다면, 촛불은 경찰이나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민심에 의해 진압될 수도 있다는 오싹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