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세게 내리는 날이었다.
매일같이 거리로 출근하고 있는 나였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하지만 비가 억수로 오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집에 갈 수 없었다.
마침 시사IN 거리편집국이 오늘 섰다고 하니 안 가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다시 거리로 간 까닭

시사IN이 창간되고 나서 독자들이 가장 기뻤을 때는 신입기자를 공채로 뽑았을 때였습니다. 마치 아이가 귀한 집안에서 자손을 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신입기자를 뽑는다는 것은 회사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축하를 받았을 신입기자 3명 천관율, 변진경, 박근영 기자는 그만큼 많은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사IN 안희태 기자에 따르면 6월 2일 월요일 아침 전체 기획회의할 때 신입기자들이 A4 한 장짜리 기획서를 내밀더랩니다. 촛불집회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지요. 모두들 기겁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촛불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주진우 기자가 강력하게 지원사격을 해주었습니다. 나도 촛불집회에서 안희태 기자, 천관율 기자, 주진우 기자를 자꾸 만났습니다. 기자들은 현장에서 살다시피하는 기자들이 하는 주장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결국 주진우 기자는 상황실장과 거리편집국 데스크를 하게 되었고, 안희태 기자는 붙박이 요원에다가 온라인/오프라인 편집국 총괄, 신입기자들은 거리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것은 시사IN의 오랜 관습인가 봅니다.


백승기 사진팀장(오른쪽)이 박근영 기자(왼쪽)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현장출동이라 그런지 사진팀이 총동원됐습니다. 백승기 팀장, 윤무영 기자, 한향란 기자, 안희태 기자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에 눌러앉기란 예나 지금이나 녹록치 않습니다. 건물주의 지시를 받은 요원이 철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건물 앞 거리는 건물의 소유이므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이력이 난 기자들이 잘 대처하겠지만, 거리생활이란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주진우, 변진경, 안희태, 박근영 기자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변진경 기자는 두 선배 기자의 데스크를 받고 있고, 박근영 기자는 전화제보를 받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함께 한두 시간 정도 있었는데, 집회참여 시민들이 직접 와서 제보하는 경우도 많고, 전화제보도 많이 왔습니다.


시사인 현수막이 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사람들은 억수로 비가 오는 날 거리편집국을 개시한 시사인을 보면서 "공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비오는 날 사람들의 마음이 축축해지고 나른해졌을 때 오히려 뜨거워지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한 시민이 촛불시위에 갔다가 물대포를 흠뻑 맞고 난 후 가방에서 꺼낸 시사IN입니다. 잡지 안에서 고개 숙인 사람은 몹시 민망해 보이지만, 비에 젖은 시시IN은 왜 이렇게 운치 있어 보일까요? 이래저래 시사IN은 비에 잘 어울리는 매체인 것 같습니다.



장대비를 맞으면서 견디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시사IN 거리편집국 맞은편에는 민주노동당 천막이 있습니다. 강기갑 의원과 천영세 대표, 방승흡 대변인 등이 거리시위에 나섰습니다. 펼쳐놓은 신문지들은 모두 젖었고, 앞에 놓아 둔 신발들도 몹시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정치인들은 고생하는 군중들 앞에서 입만 놀리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싸늘한 거리로 내몰아 국정이 이렇게 파탄난 데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통감하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기갑 의원이 강달프라는 애칭을 받은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민주당은 당사로 다 숨어버렸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자유발언대에서 민주당 의원이 끝내 발언을 거부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향란 기자가 거리편집국 맞은편에 있는 민노당 천막에 촬영하러 가는 길에 따라갔습니다.  강달프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느라 바빠 보였습니다. 한 기자가 시사IN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소라광장 앞에서 한 농성단은 천막도 없이 돗자리만으로 위태롭게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가 온다고 집에 갈 수 없는 절박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가 왔기 때문에 더욱 뜨겁게 빛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정부쪽에 계신 분들은 비가 와서 안도했을지 모르겠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끝내 돌아가지 않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끝내 외면한다면 큰코 제대로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빗속에서도 자리를 지키신 분들 수고하셨고, 감기 안 걸리게 몸조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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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6-0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들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 저도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랄께요!

승주나무 2008-06-05 09:58   좋아요 0 | URL
네~ 비가 와서 더 고생이 많으셨어요^^

순오기 2008-06-0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울컥하네요~~~ 다들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저 건강 조심하시고요...

승주나무 2008-06-05 09:58   좋아요 0 | URL
울컥하지 마세요. 앞으로 더 험한 것을 많이 볼지도 모르는데요^^;

웽스북스 2008-06-04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훗~ 강달프님 포쓰짱!

승주나무 2008-06-05 09:59   좋아요 0 | URL
네~ 강달프 님은 자유발언대 할 때 완전 쨰진 목소리이지만 주위의 신망을 한몸에 받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