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욕망공화국>의 저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더욱 강하게,
혹은 요즘 선택하는 삶과 선택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일관되게 둘 중의 하나의 팔자를 갖고 태어나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선택하는 삶보다 선택되는 삶이 더 많거나 결정적이었을 때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류'라는 것은 대체로 선택된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주류의 세계에서부터는 매뉴얼이라는 게 존재하며,
로얄급 주류로 가면 갈수골 매뉴얼이 촘촘하고 비정해진다.
진중권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 있은 후에 TV에 나와 이를 전면 부정하는 홍보실 삼성맨을 비유하여 '로봇'이라고 말했다. 이때 그는 철저히 선택된 삶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그가 달리 말할 여지는 전혀 없다. 매뉴얼이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피노자 식으로 표현하면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길은 주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길이다. 비근한 예로, 영어공부도 목숨걸고 하지 않고 사교육과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사람, 사회의 관례에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치와 독립만큼 위협당하기 쉬운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은 대체로 20세가 될 때까지 누가 자동으로 선택을 해주는 삶을 살아간다. 문제는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핸들을 잡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에 의해서 자동 선택이 된다는 점이다.이렇게 선택되는 삶은 A~Z까지 매뉴얼이 확실한데, 문제는 선택하는 삶에 대한 정보는 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선택하는 삶에 대해서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이미 매뉴얼이 서 있는 선택된 삶에서 벗어나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사실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므로 어느 지점까지 가다 보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일탈에 대한 공포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것 같다.
선택하는 삶과 선택되는 삶은 가려져서 잘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와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선택하는 삶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욕망이란 고유한 생명에너지인데, 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판이하게 같다면 혹은 집단적으로 그 욕망에 열광한다면 나의 인생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다.
※ 100분토론의 분위기가 활기차서 좋았다. 이들의 올망졸망한 모양의 욕망들이 한결같지 않아서 좋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함께 밤새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에 흠칫 놀란 하루였다. 나의 욕망은 안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