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을 통해 알라딘을 알다
안녕하세요. 저는 알라딘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러
충분히 정을 붙인 '승주나무'라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편지를 올리는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사발면 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 문제가 몇몇 알라디너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알라딘 전체에 묻어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데 대해서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편지의 내용은 님에게 국한된 내용이 아니며
이러한 이유로 공개 편지를 올림을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굳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이 글을 작성함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라디너에 대해 약간의 개념적 표시를 해두는 작업 중에서
한 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알라딘에는 '성명성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그것은 특정한 현상에 대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방향'이 없거나 '은근한 방향성'만 가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는 블로그의 병폐이기도 한데,
'공적인 매체'이면서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확한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대화를 살리고 싶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께서 남기신 논평글 안의 다섯 가지의 항목에 대해서
매우 쓰라리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미리 말씀해 둡니다.
그 글을 보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별다르게 반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참고 반 해명 반의 글을 남겼으니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알라딘 단어정리 1.두둔주의(http://blog.aladin.co.kr/booknamu/1611010))
한마디 덧붙인다면 특히 다섯 번째의 지점에서 다소 유감을 표시합니다.
다름아니라 님의 태도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고착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알라딘의 평화를 위해 봉합을 하신 것이라면
더욱 걱정입니다.
반론을 제기하게 된 깊은 취지가 알려지기도 전에
의혹과 원망, 아쉬움 같은 감정들은 방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논쟁을 하지 않을지언정, 만약에 시작했다면
명백해지지 않음이 없게 하라"고 했는데,
만약 상처를 건드리기만 하고 다시 덮어둔다면
더 깊이 곯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성명성 페이퍼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안의 경우는 '특정인'과 관련돼 있으므로
사실 성명서는 비겁한 행위입니다.
수신자가 명확한 데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대상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호응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직접 대화를 통해 공개토론을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편지글이나 대화의 효용성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직접 대화를 통해 불필요한 폭력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사자 알라디너에게 적지 않은 폭력이 가해졌으며 그 분도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2. 1과 관련해서 '호사가'들의 기승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의 경우 수신자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호사가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고, 쓸데 없는 말들이 많이 양산됐습니다. 예컨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성명성 글에서는 '또 그 여자가..'라고 댓글을 달 수 있겠지만, 직접 의견을 전달하는 편지글 형식이라면 '또 이 여자가..'라고 쓰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3. 1,2와 관련이 있는데 님이 표현하신 대로 '전쟁'을 비유하자면, 전선의 성격이 분명해지므로 참관자와 관계자들의 포지션이 명확해집니다. 반대한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옹호한다면 옹호의 입장에서 서로 대화의 장이 가능합니다.
4. 말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됩니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분명 어느 정도는 실례도 되고 상처도 되겠으나, 저로서는 단어를 고르고 조심할 수 있습니다. 우호적인 대화라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 안에서 생겨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알라딘에서 있었던 몇몇 사건의 경우도 '형식'만 제대로 성립됐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했으리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합니다. 옳은 점도 분명 있고 옳지 않은 점도 분명 있었는데, 결국 '모두 옳거나 모두 옳지 않다'밖에 남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대화 당사자들이 불성실하게 대화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편지글이 아니라도 다른 방법은 있습니다. 알라디너 중에서 아이디를 자주 바꾸시는 분이 있는데, 최근에 제가 확인한 바로는 'KJ'(누군가 '굶자'라고 불렀던)님이 있습니다. 예전에 '불멸의 나애리'라는 대화명을 썼던 분인데, 그 분을 보면 '조롱'과 '해학'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해학은 서로 함께 웃으면서 돌아서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승화됨'을 뜻합니다. 님이 '조롱'을 했다고 명확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해학'을 하셨다면 이런 편지는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면에 말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입장을 내놓지 않아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이번 사건에 대해서 꺼내 놓을 입장이라는 게 없습니다.
만약 대화를 재개하신다면
이번 사건이 담고 있는 문제, 즉 문제제기의 요지를 정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알라딘의 패거리주의'라는 게 있다면
님과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제가 알라딘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패거리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좀 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휴전과 전쟁을 반복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님이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