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 촬영 기념 정모에서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 알라디너에게 '사상검증'을 하겠노라고 농을 떨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검증국면이 몰아쳤다.
알라딘에 풍파가 잦다.
요즘 바깥 일로 가끔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주제가 생긴다.
어느 분은 '세계대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나는 '대전'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그렇고, '전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하다.
'국지전'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전쟁은 이러저러한 변화를 몰고 오기 마련이지만,
최근 몇몇의 국지전은 '알라딘의 관습(?)'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자극을 준 것 같다.
다만 먼 발치에서 '조롱'의 노랫말이 가끔 들리기는 한다.
굳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상황을 진정시킬 위치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정'을 '두둔'보다 더 못된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커뮤니티에 대해서
표시를 좀 해두고자 한다.
1. 두둔주의
천박하게 '두둔주의'라고 표현해 보았지만, 이러한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사발면' 님은 이에 대해서 어느 절도 적절히 포착한 듯하다.
3) 평소에는 논리를 강조하다가 특정인을 보호하고자 할 때는 다른 이를 희생양 삼아 물타기를 하거나 시스템 탓을 하는 등 논점을 흐리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 논쟁을 통해 알라딘을 알다(http://blog.aladin.co.kr/740924123/1610514)
알라디너들에 대해서 '병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지적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두둔주의'는 그 표현과 같이 간단하게 성립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알라딘이라는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싸이 등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온라인/오프라인 커뮤니티 모두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특정 비판'을 거부한다. 만약 이 결론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알라디너가 이웃 알라디너에게 '반론'을 제기할 때 어떤 방법을 쓰는지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관찰해 주기를 요청한다. 여기서 '반론'이라는 개념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이른바 '환대의 반론'과 '여야의 반론'이다. '여야의 반론'이야 우리나라 국회의 여당과 야당의 밑도끝도 없는 논쟁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마 '환대의 반론'이 비판자들에게 받는 혐의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알라디너 이웃들이 '패거리'를 이뤄 방어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봐왔던 비판자라면 시간을 그 당시로 돌려서 지나친 점이 없는지 환기하기를 바란다. 패거리주의 자체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패거리주의 외에도 혹시 중요한 문제를 빠뜨리지는 않았는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예컨대 '위서가'라는 사람이 '중복리뷰 등의 논쟁'을 불러왔을 때 '패거리주의'가 포착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애초에 그 논쟁은 '논쟁'의 요건을 성립시키지 못한 채 알라디너의 방어기제를 자극했다. 1. 특정인을 공격했고, 2. 정당한 논쟁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고, 3. 반론을 경청하지 않고 귀를 닫았을 뿐만 아니라 '이럴 것이다' 하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이 모습을 통해 이미 짐작했겠지만 '여야의 논쟁'이 그려진다. 결국 이 사람은 논쟁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알라디너들은 현안마다 방어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방어자세를 취할 때는 특정한 어떤 상황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방어자세를 위한 방어자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알라디너 역시 팔이 안으로 굽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해보라, 대화를 해보라, 경청을 해보라.
왜 굳이 아웃사이더 혹은 방외인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일까.
한 번 들어와 볼 수는 없을까?
당신이 생각하는 벽 외에
'당신'이라는 벽은 왜 감안을 안 하나?
(당신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에 대한 문맥이 있으니 추가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거리주의'라는 프레임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