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리말
- '자공리뷰'란 뭐란 말인가?

리뷰에는 두 가지 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목적성'을 가진 리뷰이며, 다른 하나는 '무목적성'의 리뷰이다. 하지만 무목적성의 리뷰라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목적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무목적' 자체도 하나의 '목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목적을 생각하지 않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목적성'을 가진 리뷰, 아니 목적을 가진 모든 글이다. 목적은 '결과'를 전제하기 때문에 목적에 대한 값어치가 결과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며, 결과에 관계 없이 목적 자체가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이런 말들이 '자공리뷰'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자공리뷰'라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며, 방금 전에 태어난 단어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나밖에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독점'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만 소용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살았던 '자공'이라는 사람을 모델로 '소설'을 계획하고 있다. 만날 수 없는 두 단어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어색한 조우를 했기 때문에 서로 친하지는 않겠지만, 이 글에 보탬이 되는 책에는 '자공리뷰'라는 타이틀이 들어갈 것이다. 모델이 될 만한 책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좌구명의 '국어', '춘추좌전', 유향의 '전국책', 조엽의 '오월춘추', 여불위의 '춘추좌전', 최인호의 '유림1~2', 안영의 '안자춘추', 그리고 '공자가어', '논어'이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대체로 '자공'이라는 카테고리에 담긴다. '달과 6펜스'는 매우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설'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합당하다. 이 예외적인 작품을 굳이 '자공리뷰'에 담은 이유는 자공이라는 인물을 '소설'로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1인칭의 힘

1인칭 관찰자 시점 :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보조인물안 "나" 가 주인공의 외면을 관찰하여
서술하는 방식


소설을 쓸 때 '시점'(視點)은 항상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1인칭으로 쓸 것인가, 3인칭으로 쓸 것인가. '주인공 시점'으로 쓸 것인가, '관찰자' 시점으로 쓸 것인가? 아예 '신'이 되어버려?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한 작품을 쓸 수도 없는 일이다. 유력한 방법이라면 그런 시점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작품들을 분석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달과 6펜스'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작중인물은 독자들에게 '감질'이 오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측불허로 몰고 가는 이른바 '끌고 당기기'의 귀재다. 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도스또옙스끼의 '악령'과 비교할 수 있는데, '악령'에 비해서 관찰자의 성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소설 속에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관찰자'가 아닐까 한다. 그 외에도 '관찰자'가 주인공이 경멸하는 '인습'에 동참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좇는 '절대성'의 진리를 꿰뚫어보기도 하고, 온갖 모순을 덮어쓰기도 하는 점, 화자로서의 한계를 낱낱이 '드러내'려 한 점, 중간에 '직접적인 역할'을 끝내고 구전에만 의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 그 역시 '믿거나 말거나' 또는 '허허실실'의 비기를 발휘하며 리얼리티를 존중하면서도 '어렴풋한 진리'를 조준하고 있다는 점 등은 아마도 1인칭 관찰자 시점, 혹은 '달과 6펜스의 시점'이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일 것이다.

1인칭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자공 이야기'는 1인칭의 서술 방법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일단 2,500년이라는 시간적인 간극을 '현대화'하는 어려움이 있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소설을 전개하는 방법은 '소설'과 '半 소설'이 있겠지만, 나는 '반 소설'의 색채를 예상해 본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전(傳)'의 형식을 취하려 하기 때문에 1인칭과 애초에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매우 사소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결정적일 수 있겠다. 당시에는 철통같은 예법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존재인 '관찰자'가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한정돼 있다. 만약 그의 위치에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접근한다면 소설이 끝나기도 전에 '참수형'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찰자 시점 몹시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지인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꼼수'를 쓸 수는 있겠으나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시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소설에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귀담아 들어야 할 몇 가지 미덕이 있다.

1. 정황묘사

나 같이 습작기를 벗어나지 못한 초보 작가들이 가장 빈번히 저지르는 잘못은 '순차적인 서술방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와 정반대에 있는 '선수'나 '꾼'들은 그것을 너무 습관적으로 '계산'한다는 점과 더불어 '과유불급'이 되기도 하지만, '달과 6펜스'는 특히 정황묘사에서 어떤 '양념'을 곁들여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결혼을 해서 십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사람이 처자를 버렸다면, 아내 되는 사람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무슨 문제가 될 만한 점을 짐작이라도 했을 것 아닌가 말이다. (46쪽)
회사원과 여점원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노인들,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먹고사는 갖가지 직업의 남녀들이 있었다. (60쪽)
사실, 나로서는 잔뜩 호기심이 당기는 인물인데 그 사정을 조금밖에 알 수 없어 정말 감질이 났다. 마치 훼손된 원고를 읽어나가는 기분이었다. (107쪽)
그는 이제 탈진한 상태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말을 그치려 하지 않았다. 싸울 때 주고받았던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서 하지 못했던 말도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어리석음을 또 한탄하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속상해하고, 왜 그 말을 빠뜨렸을까 하고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154쪽, 백배공감)
캡틴 니컬즈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그때 스트릭랜드는 내가 여기에 적은 대로 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가정에서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희생시키는 면이 있더라도 집안에서 익숙하게 여겨지는 표현을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240쪽)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나는 이미 소멸해버린 동물을 뼈 하나만 가지고 그 형상뿐 아니라 습성까지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물학자와도 같은 입장에 있다. (246쪽)

위와 같이 원전을 시시콜콜하게 나열한 것은 글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함이다.
인도의 현자들이 '경전'을 만들 때 한 글자를 줄일 때마다 '큰절'을 했다고 한다. 글자수를 줄이는 것은 정신의 정수를 가다듬는 것이므로 지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구질구질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몇 마디만으로 몇 페이지에서 수십 페이지까지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과감히 차용할 것이다.

2. 인물묘사

소설가들의 인물묘사는 대개 '골상학 전문가'들처럼 해박하고 치밀하지만 그런 수준에 오른 사람은 '중급' 정도라고 생각한다. 인물묘사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외모와 분위기와 주제와 내면과 개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 주는 묘사가 아닐까. 정보값이 많은 묘사일수록 글자수도 경제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그 자체로 품위도 있다. 그런 인물묘사를 나는 '정황적 인물묘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방안의 대화가 고루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25쪽)
그는 무감정한 미소를 띠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그 미소를 제대로 묘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매력적인 미소였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되, 아무튼 평소의 침울하던 표정을 사라지게 하고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놓는, 짓궂긴 해도 천성은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주는 그런 미소였다. 눈자위에서 시작하여 때로는 눈자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그런 느릿느릿한 미소였다. 그것은 육감적이면서도, 잔인하다거나 다정하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인간이 아닌 목신(牧神)의 환락 같은 것을 연상시켰다. (112~113쪽)
더크 스트로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꼴은 우스꽝스러웠다. 좀 초췌하고 여위기라도 했더라면 동정은 살 수도 있었으련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뚱뚱한 데다 불룩한 뺨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불그레했다. ... 게다가 배까지 나오는 중이어서, 슬픔의 흔적이라곤 도무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감성은 유별나게 섬세하면서도 행동은 투박했다. 남의 일에는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면서도 정작 자기 일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처럼 허다한 모순을 안겨주고선 이 사내로 하여금 당혹스럽고 냉엄한 세상에 맞서게 한 걸 보면, 조물주의 장난이 잔인하기만 하다. (163~164쪽)

이 외에도 '달과 6펜스'의 작가(서머셋 몸)는 '모순'과 '대비' 또는 '모순적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 만약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지고지순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존재였다면 이 작품이 나에게까지 전달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몹시 파렴치한 행위를 밥먹듯이 해대는 인물임과 동시에 '절대적 아름다움'을 평생 쫓아다닌 예술가의 혼이다. 이러한 '모순관계의 현실화'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에 '리얼리티'를 '현실'과 구별짓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현실 세계의 모습을 대충 본따서 보여주는 것이 '리얼리티'가 아니라 현실과 당당히 대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이 리얼리티라고 생각한다. 시사저널 사태와 기자실 폐쇄 국면은 각각 개별적인 '현실'이지만, 이것을 '언론자유'의 판 아래서 '언론자유의 과잉, 언론자유의 빈곤, 언론자유의 왜곡'의 모습으로 무리없이 그려낸다면 그것은 현실과 구별되는 '리얼리티'가 아닐까.

'자공 이야기'를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소설이 재료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이론에서 방법을 강구하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이론을 만들어낼 것. 스트릭랜드와 같이 시행착오를 오랫동안 하더라도 그 '시행착오'는 바로 나의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7-07-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이 책을 참 재밌게 읽었는데, 너에게서 이렇게 활어를 회쳐먹는 느낌을 갖게될 줄은 몰랐다. ㅎㅎ
음. 자공리뷰라...! 알듯 모를 듯. 어쨌든 너의 리뷰는 생각해 볼만하다.^^

승주나무 2007-07-1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누나//ㅋㅋ 자공리뷰는 아직 베일에 감싸 있어요. 실은 알맹이가 별로 없어서.. 거시기해요 ㅋ 앞으로 이런 '불온한' 리뷰를 많이 올릴 테니 많은 기대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