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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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대체로 억압받는다. 투쟁을 하는 것도 항변을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때문에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억눌린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고용주들은 비록 수개월째 월급을 밀리더라도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모순된 관계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당연시된다. 체불 임금 회사를 ‘채무자’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면 서민들을 갉아먹고 사는 사채회사들은 ‘채권자’라는 말인가? 여기에는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힘의 논리’이다. 빚을 졌건 빚을 주었건 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다. 대한민국 최대 경제권력인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실패해 수조원의 빚을 지게 되었지만 채권자에게 당당한 것은 바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대체로 일반 백성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화식열전)고 하여 자본의 본질을 꿰뚫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요원한 말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누리는 사람,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안건모 씨가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저자는 순수하게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찾은 것이지만, 그는 동시에 노동자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의 거침없는 활동을 바라보고 있으면,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무지의 문제도 아니고 약한 힘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의지의 문제이다. 정확히 말해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약한 의지와 단결하지 못하는 마음을 먹고 산다. 노동자가 한마음으로 저항하면 커다란 목소리가 생기지만, 슬슬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이익을 찾기 시작하면 영원히 고용주의 폭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몸소 증명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일하는 사람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거칠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 안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겪는 폭력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때로는 낯 뜨거울 정도로 거친 용어나 육두문자가 튀어 올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버스운전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처절한 상황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외면했던 사소한 문제들에서부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궤적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립과 투쟁을 펼친다. 이 책의 저자만 해도 삶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다. 더욱이 그것이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향한 쟁취라면 그들에게 더욱 힘을 주고 연대를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 파업 때문에 버스가 늦게 온다거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만 잔뜩 늘어놓기 전에 가공할 만한 불합리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따져보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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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6-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읽었구나. 저자가 글을 너무 잘 쓰지 않니?^^

승주나무 2007-06-1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래요. 그리고 징계위원회에서 법리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 엄청나더군요^^

비로그인 2009-07-0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뒤늦게 리뷰를 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때 징계위원회에서 싸우던 생각이 생생하네요. 막 몰아부칠 때는 신이 났지요.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 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구독 신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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