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주맛이 너무 달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빨리 취한다. 카프카는 마음만 먹고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술술 읽힌다. 작년에 변신과 소송을 읽고 실종자는 이월된 상태에서 오늘 완독했다. 고독의 3부작이라고 하는 <성>을 남겨 놓고 있다.

나는 '실종'이라는 의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왜 실종인지 나온다. 그래서 '아메리카가 낫지 않나?'고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주인공처럼 나도 소설책 읽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스윽 보는 습관이 있는데 거기서 본 문장 때문에 읽는 내내 제목 가지고 불평을 했다.

<그들은 밤낮 기차를 탔다. 카알은 이제야 비로소 미국의 크기를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일기에서 '실종자'라는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메리카가 대세였다고 한다. 군 입대와 함께 14년 동안 서울(정확히 말하면 수도권) 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돌아오는 시간이 생각났다. 14년 동안 나도 성실히 버텼으나 '교묘하게 추방'된 느낌이다. 나의 어떤 부분도 분명히 실종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제주도 쫓겨나기 전에 제주로 질주했다는 점에서 <실종자>의 주인공 카알과 달랐다. 누군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기 직전에 스스로 점프한다고나 할까?

지금 쓰려고 하는 소설이 카프카의 색깔을 강하게 담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으니 조금 더 집중하고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는데도 주인공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도 죽었고, 소송의 K도 죽었고, <성>의 주인공도 죽는다는데 카알은 죽지 않았다니. 이것도 일기에 적혀 있다고 하는데, 카프카는 카알이 죽을 것이라고 썼다. <실종자>가 미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극적으로 살아 있는 건데, 그렇다면 그건 더욱 곤란한 일이다. 독일 동화 <유령선>의 선장처럼 "영원히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하는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카알의 머리에 흙을 뿌려줄 이는 누구인가? (동화 유령선에서는 주인공이 선장의 시체를 널빤지채로 뜯어 육지에 뉘고 이마에 모래를 부으면서 저주가 풀린다) 독재자 아버지와 방관자 어머니의 원체험이 가장 강하게 녹아 있어서 카프카의 자전소설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실종자>의 주인공 카알이야말로 가장 저주받은 인물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카알의 이마에 모래를 뿌릴까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솔 출판사의 2017년 개정판은 2000년판에서 커버만 교체한 것 같다. 만약 구판이 있다면 굳이 신판을 살 필요는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출판사는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도 구판이 있는 경우 굳이 구판을 구매하지 않았다. 도서관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글이 첫 리뷰라는 것도 놀랍다. 카프카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카프카한테 미안해지려고 한다. 나라도 부지런히 읽어서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솔 출판사 전집 <실종자>의 몇몇 장은 제목 없이 편집자가 첫 구절을 이용해 하단에 제목을 표시했다. 이 리뷰의 제목도 그런 방식을 따랐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9-01-11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자의 여유가 느껴지는군.ㅎㅎ
어렵지. 나도 이번에 새로 나온 책중 두 권을 가지고 있는데
넘 어려워서 중고샵에 넘길까 생각중인데
너의 리뷰를 읽으니 또 마음이 약해지는 걸.

지금 쓰고 있다는 소설 궁금하다.
만일 책으로 나온다면 이번엔 꼭 사 보도록할께. 퐈이팅!!

승주나무 2019-01-11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카프카를 읽을 때가 되었나봐요.
저도 일단 고독의 삼부작 읽고, 해설서를 좀 읽은 다음에 단편전집은 나중에 도전하려고요.
혼자 쓰는 소설은 아니니까 쉽다면 쉽겠지만 어렵게 흘러갈 수도 있어요.
암튼 열심히 해볼게요. 고마워요^^

뚜유 2019-01-12 0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기 직전에 점프한다는 표현이 참 좋아 보입니다. ^^
건필하시길 ~

승주나무 2019-01-12 10: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글쓰기는 슬럼프중이라 읽기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벽으로 떨어지기 싫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