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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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선생은 미워하되, 철학은 미워하지 마라."

소크라테스의 금언이다. 세상에 피어오른 새로운 교육(논술)이 꽃피기가 무섭게 시장에서 찢기고 짓밟힌 논술을 되돌리기 위해, 최근 몇 달 동안 논술만 생각하고 내달렸다. 이제까지 읽었던 책과 신문기사들을 모두 뒤적여 스무 개 넘는 문제들을 만들거나, 이것저것 기획했다. 정작 나는 탈진해서 독서도 변변치 않고, 독서 소출이 없으니 리뷰나 시시껄껄한 게시판에 찌질이글도 남길 수 없었다. 이미 좋은 논술선생이 되리라는 기대는 버렸다.

하지만 신문은 그래도 꾸준히 읽고 있었으니, 반가운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정민 선생이 다시 책을 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다산의 이야기이다. 나는 과학자로서의 다산보다 경학자로서의 다산을 더욱 존경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다산도 경학자로 불리기를 더 바랄 거라 생각한다. 이것이 책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바탕공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산의 내공이 들어간 '논어고금주'나 '맹자요의'와 같은 책들은 절판이거나 번역이 되지 않았다)

머리말에서 밝힌 정민 선생의 '다산치학 10강 50목 200결'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즉 다산의 학습법을 다산의 방법론으로 설명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10강만 일별해보면 다 '~해라, ~해라' 하는 메시지로 들린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몇 개의 커다란 그릇 안에 다산의 정신과 학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모든 지식을 하나로 관통하라는 금언을 '슬슬주'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전파하기도 했던 것과 같이 하나의 일관된 자세는 다산 학문의 가장 커다란 밑바탕이 된다. 그 안에 스스로를 연마하는 위기지학,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 항상 사랑으로 가득 넘치는 애민의 정신이 정족처럼 버티고 있다. 다산학문의 본령을 꿰지 못하면 다산은 '미신'이 되고 만다.

다산의 학문적 위대성만 말하자면 이는 백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이 책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사람이 가지는 두 가지 커다란 장애물을 극복한 다산의 모습과 함께 이를 생생히 전한 저자의 필치이다. 저자는 다산의 병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이것이 다산의 역량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였다.

첫째, 다산은 성정이 급했다. 그래서 답답한 것을 참지 못하고, 궁금한 것 역시 알 때까지 잠을 이루지 않았다. 현대사회에 살았으면 매우 피곤한 스타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의 길에서는 매우 훌륭한 무기이다. 끊임없는 탐구열이 다산의 초인적인 저작을 가능하게 했다.
둘째, 다산은 대쪽처럼 타협할 줄 몰랐다. 자신을 미워하는 정적에게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전통과 관습이라도 짓궂은 장난에 장단을 맞추지 않아 미움도 많이 받았다. 정조의 곁에서 개혁작업을 잘 이뤄냈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으며, 그 중에서 마지막 4년은 형 집행이 정지되었지만, 정적의 상소 때문에 추가로 귀양했다. 이런 특성은 본인에게는 매우 불행하고 피곤한 성정이 되지만, 후손들에게는 매우 득이 된다. 당시의 실상은 낱낱이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사회문제가 되었던 열녀와 충신의 제도에 대해서 극언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효자를 부모의 죽음을 빌미로 명예를 구하고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 도둑놈이라고 말했다. 분명하게 살펴서 거짓이 드러날 경우 용서 없이 베어야 한다고까지 극언했다.  - 395쪽


셋째, 다산은 고집쟁이였다. 자신이 정의로 믿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공부 욕심을 끝내 버리지 못해 병을 많이 얻었다. 하지만 이것은 존경받는 학자의 숙명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이렇게 할 자신이 없다.

이것이 다산의 내적인 장벽이다. 외적인 장벽은 역시 유배 생활을 빼놓을 수 없다. 18년이라면 지금으로 따지면 군대를 9번 다녀와야 하며, 18개월로 줄어든 것으로 계산하면 15번 가까운 햇수다. 명예도 명예일 뿐더러,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의 생활이라 더 말할 것 있겠는가. 다산의 형 현산(정약전)은 유배지에서 끝내 눈을 감았다. 이 구절을 보고 있자면, 사마천의 궁형이 생각난다.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열정으로 승화시켰으나, 다산은 차분히 하늘이 18년간의 학문 기간을 주어서 매우 행복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장애를 극복한 단계와 열정의 모습이 학문의 여러 면모에 드러나 있다.

특히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은 '결(訣)'마다 마무리되는 저자의 요약이다. 5~6줄로 짤막한 저자의 정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제목 역시 상큼한 게 많다. 예컨대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는 것을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 : 어망을 걷어올려 기러기를 취한다)'고 묘사하였고,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하라'는 조선중화법(朝鮮中華法 : 조선이 곧 중화임)이다. 읽을수록 새기는 맛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학문방법에 너무 치우쳐 대작을 탄생시킨 학문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며, 초입에 인용문을 넣을 때 한문을 병기하지 않은 점도 다소 아쉽다. 그리고 '10강 50목 200결'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그림으로 모아져 있기보다는 나열한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지식의 경영과정을 폭넓고 체계적으로 배열하여, 두고두고 배울 점이 많다. 이 외에 구체적인 학문 방법은 본문 안에서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마다 마치 교열자처럼 축자식으로 오탈자를 검증하는 데 이번 책은 완벽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했다. 몇 쪽인지 모르지만 "불경보다는 잿밥을 탐낸다"는 구절이 있다. 당연히 "젯밥(祭 -"라고 생각해 따지려고 하였다가, 의심스러워 사전을 찾아본 나는 매우 부끄러웠다. '49재' 할 때의 '잿밥(齋-)'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참으로 다양한 다산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어떤 것은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내가 차마 따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산의 위대함과 다방면의 족적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내게는 따뜻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다산은 정치인이다.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사랑한 정치인이다. 이런 사람이 정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 중 지식인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덧 : 제목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논술공부에 당장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다. 차라리 논문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그리고 논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학습과 교육 과정 등을 세부적으로 면면히 살펴봄 직하다. 나도 몇 번이고 훑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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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2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쓰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제가 봐야겠군요! 오랫만여요.

승주나무 2006-12-2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논문 쓰시게요. 요즘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주몽을 볼 때마다 아프 님이 생각났어요~ 아프님도 오랫만이에요.

stella.K 2006-12-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 잘 지내지?
이 책 살까말까 생각중이다.
이달까지 3천원 더 싸게 해준다고 하던데...
너의 리뷰를 보니 더 사고싶네.^^

승주나무 2006-12-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누님 잘 지내시죠.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도 못 드렸네요.
요즘 셤 때문에 정신을 놓고 살아요. 그래도 짬을 내서 이 책을 볼 수 있었던 것은..뭐랄까~ 술술 읽혀서요^^ 재밌어요 ㅋㅋ

woosunhye 2021-05-1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는 부분에서 감동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