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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Stacy
지피 지음, 강희진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4월
평점 :
"개인의 삶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보내는 SNS의 폐단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며 스릴러인가 아니면 공포물인가 의심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스테이시가 과연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SNS와 거리감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에 대해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가치관도 크게 달라졌다. 공감력은 급속히 떨어졌고, '나'만 챙기는 이기주의 면모도 크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강한 적개심도 늘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또 삶을 망가뜨리는 행위들을 사람들은 이제 너무 아무렇지 행한다.

(스테이시는 만화와 희곡이 섞여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 대상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마치 게임을 하듯이 나와 다른 생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글로 말로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이 책에서는 이런 행위를 '캔슬 컬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인공 지아니를 통해 적나라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
유명 인사로 잘나가던 지아니는 말 한마디로 사회와 자신이 속한 일원에서 배제되고, 이를 견디다 못한 그는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애쓴다.
이 책을 쓴 작가는 '그래픽 노블' 형태의 만화를 통해 구현해 내는데, 초반에는 특히 생략된 대화와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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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문학적 구성과 특성을 지닌 작가주의 만화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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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아니의 세상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행동과 사회적 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 그런 행위들을 억제하는 노력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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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스테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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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는 '취소 문화' 혹은 '제거 문화'라는 말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배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팔로우를 취소하고 거부하는 방식으로 집단적 공격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현상 자체가 어떠한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지극히 위험하고 무서운 것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스테이시>는 이런 '취소 문화'로 촉발된 논란을 다룬 그래픽 노블로, 저자인 지피가 2021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2023년 복귀하면서 2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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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간략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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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는 주인공 지아니가 자신의 순수한 행동으로 야기된 불합리한 결과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감당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내적 갈등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인 지아니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가운데 내뱉은 한마디가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다. 이로 인해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동료, 친구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일상은 무너진다.

(지아니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자아 '악마')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스테이시가 태어난다. 분노의 산물인 스테이시는 곧 지아니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와 적나라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리고 스테이시는 그의 황폐한 감정을 해소하고 승화시키는 출구가 되어준다.
여기에 더해 지아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즉 '악마'를 창조해 내는데 이는 그의 복수심과 원망을 물리적인 형태로 구현해낸 또 다른 인물이다.
둘은 일종에 선과 악처럼 대조되는 형태로 지아니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게 되는데, 스테이시는 정신적으로 지아니를 지탱해 주는 인물, 그리고 악마는 분노와 원망을 물리적으로 풀어내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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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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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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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안에서 '스테이시'라는 허상은 절대적으로 감춰야 하는 존재처럼 표현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내 모습 혹은 하고자 하는 행위이지만 남들의 시선이나 판단이 두려워 드러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스테이시라는 허상은 이처럼 행동 양상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개인이 바라는 욕망이나 감정을 대표하는 존재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어떤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복잡하고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테이시는 어쩌면 나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개성, 혹은 나 자체로 말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지아니는 그래서 정신적으로 많이 기대는 존재를 스테이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보건대, 현시대를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짜 나를 표현할 수 없는 사회가 어쩌면 현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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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는 어디에도 없어. 네 머릿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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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모든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지아니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숨어들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잠식당한 지아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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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는 자기가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환각에 사로잡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촌은 입도 벙긋 못 한 채 홀린 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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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의 상처가 깊었던 탓일까. 그는 한동안 혼잣말을 하며 자신이 만든 자아들과 대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사촌은 홀린 듯 그 모습을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지켜보게 된다.
누군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바로잡아주는 게 아니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는 게 어떻게 보면 서글픈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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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오늘 처음으로 말이지, 널 묶은 쇠사슬을 풀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몇 시간 정도만이라도. 어떻게 생각해?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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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스테이시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다.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스테이시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그는 몇 시간 정도만이라도 잠시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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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는 하루 종일 스테이시의 발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가 하루 종일 빈 의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빈 창고 안의 빈 의자, 그 옆에 빈 그릇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녹슬고 오래된 쇠사슬이 널브러져 있다.
1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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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가 환각에 빠져 스테이시의 발치에 쭈그려 앉아있다는 것은 뭔가 위로를 받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데 그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빈 창고 안의 빈 의자, 그리고 빈 그릇, 여기에 녹슬고 오래된 쇠사슬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다.
그저 공허하고 또 헛된 날갯짓처럼 보이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짠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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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차원이 다른 거야, 스테이시. 이 관계는 오직 육체적인 부분을 의미한다고 보면 돼. 물질세계와 관련된 문제라고. 그러니까 스테이시 너는 정신세계를 뜻하는 거고.
1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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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외면받던 지아니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조금씩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디디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혼란은 계속된다.
스테이시와 현실의 연인 사이에서 지아니는 스테이시는 정신세계, 현실의 연인은 물질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며 강력히 주장한다. 이 모습을 통해 그가 얼마나 혼란을 겪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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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문득 의문이 드는 거다. 이 미친 짓거리, 환영 놀음, 허상으로 만들어낸 가짜 현실, 이런 것들과 함께 내가 몇 개월째 내 삶을 공유해오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망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1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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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자아에 빠져 망상과 환각에 허우적거리던 지아니는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짜 현실 속에서 삶을 지속해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 고통에서 벗어나 망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던 지아니가 이제는 그 망상이 어디까지 지속될지 스스로 의문을 갖게 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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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소위 논쟁을 불러일으킨 그 사건을 계기로 이전부터 줄곧 그의 머릿속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세상 밖으로 풀려나왔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는 대참사 발언을 이용해서 마침내 최악의 본능에 스스로를 내맡겼던 거다. 스테이시라고 하는 이 병적인 환상은, 예전의 그라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그 무엇이다.
비토리오 광장 테라스에서 소위 시나리오 작가라는 친구들과 함께 숱한 여름밤을 보내면서도 결코 꺼내 보이는 법이 없던 어떤 강박과도 같은 것.
175~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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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너무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미처 버리거나 아니면 나를 보호할 어떤 무언가를 창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아니의 상황들을 지켜봤을 때 지아니의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거론되는 또 다른 인격의 창조 혹은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최근 예능에서는 이와 비슷한 소재로, 부캐를 만들어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긍정적인 면모로 풀어 해석한 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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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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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매체가 늘어나고, 또 사람들의 개성이 발휘되는 방법 또한 다양해졌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것이 긍정적인 면모로만 발달되지는 않은듯하다.
사람들이 취향을 쫓아 자기 좋아하는 것만 챙겨보고, 또 그런 집단과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면서, 어느새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면모가 확대된 듯하다.
그러면서 흑과 백 이분법적 사고가 고착화되고 이로 인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또 인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스테이시>라는 책을 통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거나 혹은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고 제거하려 드는지, 또 이런 현상들로 인해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자신 안에 있는 진짜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려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비슷한 것들을 함께 경험하고 나누는 문화가 주를 이뤄 대체적으로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에 반해 지금은 서로 경험치가 다르고, 또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 이해하는 척도 또한 많이 달라진 듯하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내 경험, 내 생각, 내 행동만 옳다고 우기기 보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타인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면 어떨까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