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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평점 :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에 가장 근접한 글이자, 현실적인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책!"
이 책을 어떻게 선택해서 읽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왔고 그렇게 읽게 되었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책이라 찾아온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조용한 행복과 또 스스로의 의지로 불행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에 있어 꽤 시선이 가는 책이었다.
마침 요란한 세상 속에서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는데, 이 책 덕분에 지금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또 행복을 지켜나가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불행에 잠식 당해 눈앞에 있는 평범함 마저 빼앗기며 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명하게 행복을 찾는 방법과 불행에 대한 수비력을 길러주는 58가지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또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다.
쉽게 쉽게 읽히고, 현실 속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라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더불어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앞서 출간한 다른 책들도 책 목록에 담아두고 추후 읽어보고 싶을 만큼 꽤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불행을 이겨내기 위함이 아닌, 쓸데없는 불행을 거부하기 위해 쓰였다고. 다시 말해 불행에 대한 수비력을 기르기 위해 썼다고.
불행해지지 않는 삶, 즐겁기 이전에 별 탈 없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면, 지금부터 그 방법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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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홍진경 씨는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것." 나는 그게 내가 갖고 싶던 평범함의 정체라고 생각했다. 고민과 걱정이 배제된 사소한 평일. 비교도 열등감도 질투도 분노도 혐오도 걱정도 고민도 불안도 없는 안전한 하루를 살아냈을 때, 나는 비로소 평범히 잘 살아냈다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나의 목표는, 아니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
행복이 더 많아진 삶이 아니라 불행이 더 줄어든 삶이다.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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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담긴 이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찾던 행복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을 좇지만 정작 행복의 정의나 정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는데, 사실은 '평범한 일상' 속에 행복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삶이 지치면 평범함은 어느새 꿈이 되어 버린다. 현재의 내가 소음에 시달리느라 예전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듯 말이다.
자려고 누웠을 때 많은 생각들이 나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날의 하루는 행복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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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단하지 않은 날, 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김치찌개를 끓이는 남편이었고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나는 솔로>도 같이 보며 잘도 조잘거렸다. 그러나 삶이 약간만 삐끗해도 내 다정함은 길을 잃었다. 대답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 무슨 질문이든 건조하게 답하는 날이 많았다.
(...)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은 남이다.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다정함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플랭크를 하고 집 앞을 뛰어다니기로 했다. 멋진 몸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단단해진 마음만은 원한다.
(...)
근육의 크기만큼 다정함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 단단해진 복근과 허벅지는 말랑해진 내 마음도 다시 견고하게 고쳐놓을 것이다.
(...)
내 다정함의 크기는 오늘 내가 버텨낸 1초의 시간만큼 더 커졌을 것이다.
18~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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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공감 가는 이야기라 바로 옮겨 적었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나 역시 경험해 본 바 체력이 떨어지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도. 더불어 사람이 까칠해진다.
시니컬한 내가 툭 하고 튀어나올 때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다. 이미 체력이 고갈돼서 더 이상 누군가를 상대할 티끌만큼의 에너지도 없을 때다.
고로, 앞으로는 내 사람들에게 더 다정해지기 위해 말랑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체력을 더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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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란 게 축하를 받으면 작은 일도 기쁜 일이 된다. 반대로 축하받지 못하면 대단한 일도 당연한 일이 되고.
그래서 우린 서로의 성공에 좀 더 자주 축하할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비록 진심으로 우러나진 않더라도 소중한 사람에게만큼은 큰 박수를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축하라는 건 꼭 마라톤 결승라인과 같아서 축하받지 못한 레이스를 결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
조용한 완주는 멈출 자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숨돌릴 자격마저 빼앗아간다. 자만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삼가기에는 너무 심각한 피해다.
그러니 누군가를 정말로 깊이 생각한다면 그의 고생에 진심으로 성대한 축하를 보내주자.
(...)
"고생했다."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3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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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라인이 없는 마라톤을 계속 뛴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칭찬은 그런 무한대의 마라톤 질주를 하고 있는 나와 우리에게 숨돌릴 자격을 줌과 동시에 멈춰도 된다는 의사를 표시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제라도 소중한 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베풀어 보자. '고생했다고', '네가 해낸 것은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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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인생은 즐겁다. 청년의 인생은 힘겹고 아빠의 인생은 무겁다. 내 인생이 제일 힘겹다고 생각한 시절을 지나 누군가의 아빠가 되려 하는 지금,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나는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
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뜻이었다.
(...)
인생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41~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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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저자는 비로소 본인이 아빠가 되려 하는 지금에서야 아빠가 버텨낸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던 인생이었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래서 치사랑이 내리사랑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이야기 하나보다. 이 기회를 빌어 힘든 날들을 겪어내며 자식을 잘 키워낸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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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되지 않은 기분은 성격이 된다. 작은 짜증으로 시작된 기분은 일상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속속들이 헤쳐 모여 결국 더러운 성격으로 완성된다. 어떤 성격으로 살고 싶은지는 빼곡히 적은 새해 다짐이 아니라 일상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화가 나면 일단 3초를 센다. 3.. 2.. 1.. 숫자를 끝낸 뒤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주문을 외운다. "그럴 수 있지." 이 간단한 주문은 불타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미지근하게 식혀준다.
물론 이따금 이 주문으로도 처리되지 않은 거대한 감정을 만날 때도 있다.
(...)
내일도 내 세상에는 수많은 짜증이 튀어나올 것이다.
(...)
내 하루를 망칠 분노는 꼭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 튀어나와 나를 시험할 것이다. 이래도 화를 안 낼 거냐고. 하지만 그건 내 성격이 아니다. 잠깐의 기분이다.
언제든 화가 날 순 있지만, 언제나 화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 있다'라는 방패 같은 말로 남이 아닌 나의 기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될 것이다. 기분이 성격이 되지 않게.
57~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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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극한 공감을 했다. 해소되지 않은 기분은 성격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면 과거의 내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나는 이것을 내가 내뱉는 목소리 톤을 통해 깨달았는데, 그때부터 나는 나의 기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해 나의 기분을 살피고 어루만져 주려 노력한다.
화를 내야 할 사람에게만 확실하게 내주고, 불필요한 곳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조절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를테면 원인을 제거하거나 돌아가는 방식을 취하는 형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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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너 늙으면 젤루 억울한 게 뭔지 아냐?" 나는 할머니를 동그랗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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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놀아볼라 치니 다 늙어버렸다. 야 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다.
근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그러니까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진 말어. 꽃놀이도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 웃음이란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더 사라지더라."
(...)
어른이란 자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70~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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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짧다. 그러니 부디 좋은 것을 아끼거나 미루기 보다 지금 당장 누리며 살자. 저자의 할머니가 우리보다 앞서 살면서 깨달은 진리를 놓치지 말고 삶에 적용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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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있지 않다. 그들은 학교와 회사와 가정과 동호회 안에 있다. 더 섬찟하고 더 똑똑한 모습으로. 그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도망치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나약해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쳐야 할 때도 있으니까.
(...)
그리고 세상에는 손보다 입으로 칼을 들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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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한다. 진짜 사이코패스는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에 있다. 행동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입에 칼을 물고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
그런 이들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다.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야 나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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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넘치는 시대, 우린 좀 더 운의 힘을 믿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실패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좀 더 넉넉하게 건넬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아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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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때때로 운이 성패를 좌우할 때도 있다. 그러니 실패에 대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넉넉한 인심을 나눠준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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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잤는데도 피곤하다면 마음이 지쳐 있다는 증거다. 먹어도 먹어도 텅 빈 허기가 찾아온다면 마음 한구석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 볼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있다.
지친 마음은 꼭 토라진 아이와 같아서 상처를 곧이곧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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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다시피 아이를 달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히 달래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기분 좋게 재우는 것이다.
그간 우린 자신에 대해 너무 과신해왔다. 신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가 동일하게 먹을 거라 착각해왔지만 마음은 죽을 때까지 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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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린 좀 더 자신의 마음에 따뜻해져야 한다.
충분히 어르고 달래며 먹이고 재워야 한다.
그게 비록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일지라도.
107~1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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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만약 자도 자도 피곤하거나, 먹어도 먹어도 자꾸 허기가 진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럴 때는 아이를 달래듯 적절한 수면, 맛있는 음식,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들을 즐기며 스스로에게 쉼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에 온기가 돌고, 커다란 구멍이 조금씩 메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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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오답을 너무 잘 알기에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같이 불행하고 실패하고 슬프고 우울하기에 반대로 어떻게 살아야 그러지 않을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게 부정이 가진 힘이라고 믿는다. 부정으로도 긍정을 쌓을 수 있다. 오답을 너무 잘 알면 오히려 정답을 잘 찾아낼 수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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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으로도 긍정을 만들 수 있다. 불행하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부정적인 게 아니다. 합리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지."
113~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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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부정을 통해 정답을 알게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많은 오답을 경험하고 보니, 웬만한 것에는 덤덤해지고 어떻게 살아야 나를 지킬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슬프거나 불안한 일, 힘든 일을 겪더라도 이제는 스스로 정답을 찾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성장한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처음 겪는 일들에는 미숙한 점도 있지만,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다른 방법들을 찾으면서 또 다른 길을 반드시 찾을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가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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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경력이 아닌 실력으로 말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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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라는 말로 애써 덮어왔던 폭력적인 질문과 맞이해야 하는 시기가. 그렇기에 나이가 차오를수록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나 어디 나온 사람이야."라는 텅 빈 허세가 아닌, "나 이거 할 줄 아는 사람이야."라는 알찬 증명이다.
"당신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젊음과 과거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남은 답은 무엇인가.
매번 어물쩍 지나쳐버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린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갖고 있어야 한다.
1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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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혼동기를 겪으면서 나는 좀 일찍이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경력이 물경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만나며,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평가하고 가늠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상위의 '무엇'인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토록 믿는 경력, 학연, 지연, 혈연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흐릿해진다. 권력을 잃으면 위상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다. 직장을 잃으면 경력은 한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허상 같은 경력,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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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늘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에 생각이 많을수록 오늘을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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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건 '더 완벽한 생각'이 아닌 '감각'이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머무르는 시간이라면 감각은 온전히 현재를 느끼는 시간이니까.
(...)
그렇기에 불면으로 고생하는 날, 우리가 자기 자신과 옆 사람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전 무슨 생각을 하나요?'가 아닌, '자기 전 무엇을 감각하나요?'로.
126~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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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중심을 두면 앞으로 나가가기가 힘들다.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은 보통 현실보다는 과거나 미래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다시 현실로 시선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감각'에 중심을 두면 된다. 오감을 활용해 지금 내가 느끼는 촉감, 느껴지는 향, 눈으로 보이는 풍경 등 현재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현재에 나를 묶어 둘 수 있다.
그리고 감각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잠시 산책을 간다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지금 내가 당장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놓아두면 보다 쉽게 현실로 나를 데려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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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우리가 원하는 그 보살핌이 혹시 매 순간 조롱 받을까 걱정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히 살 수 있는 상태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정확하고 어려운 진단명이 아니다. '따뜻한 무관심'이다. 통화가 불편하다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콜포비아라는 감정 없는 진단명이 아니라, "그래? 그럼 문자로 하자."라는 다정한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우리가 병이라고 지칭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사는 데 지장 없는 성격이나 개성인 경우가 더 많고, 진짜로 치료가 필요한 건 오히려 그토록 작은 것조차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다.
별것 아닌 것은 별것 아니게 둬야 한다.
늘려야 할 건 포비아가 아닌 성향이다.
우린 그렇게 많은 곳이 아프지 않다.
177~1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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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이상한 별칭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00증상, 00살인마, 00법 등.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공신력 있는 미디어에서조차 흔하게 별칭을 붙여 부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려 본질은 사라지고 이상한 별칭만 남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특정한 별칭을 붙일만한 일이 아니거나, 꼭 이 이상한 별칭을 붙였어야 했나 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데, 그렇게 별칭을 붙여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다 보니 별것 아닌 게 별것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그냥 두는 게 정답일 때도 있는데, 너무 드러내고 파헤쳐서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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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단순한 감성을 넘어 지적 능력까지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요즘 시대의 공감이란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꼼꼼한 이해가 필요한 능력이 됐기 때문이다.
(...)
우린 다 같은 감정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겪고 있을 뿐이다.
고작 2000년대만 해도 우린 모두 같은 것을 보며 자랐다. 같은 드라마를 봤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코미디를 보며 웃었다. 그러나 이젠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하며 산다.
(...)
틀린 건 없다. 그냥 다 다를 뿐이다.
이 와중에도 어떤 이는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며 보기 흉한 우월에 젖겠지만, 사실 가장 저열한 지능의 소유자는 자기 세상밖에 없는 그 자신이다. '판다 한 마리가 뭐길래' 조롱하며 웃겠지만 그 잔인한 논리는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배려 없는 조롱의 종착지는 지금 웃고 있는 나의 입 앞이다.
209~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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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과거와 다르게 현시대 공감력이 떨어지는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대와 환경의 변화라는 것을 알았다.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랐던 세대와는 다르게, 제각각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 세대는 분명 경험치도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 다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이제 공감은 단순한 감성을 넘어 지적 능력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은 왜 그토록 사람들이 공감을 못하고 무정할까 홀로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며 속을 태웠었는데, 이 글을 읽으며 비로소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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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맞이해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처럼 나는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기술과 차츰 멀어지고 있다.
(...)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언 7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의 박정함을 깨달았다. 사람은 겪지 못한 것은 알지 못했다.
배려 받고 싶다. 도움받고 싶다. 그러나 내가 내 가족에게조차 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바랄 수는 없다. 배려 받을 염치가 없기에 나는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창피하지만 오늘도 직장을 피해, 지인을 피해 저기 먼 외딴 카페에 홀로 가 검색을 해본다.
"왕초보 쇼츠 영상 만드는 법"
배려도 배움도 받을 수 없던 그때의 할아버지가 요즘은 자주 생각난다.
221~2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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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점차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박정함이다.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나는 서서히 퇴화하고 뒤처져 간다.
그걸 실감하는 순간, 과거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며 신물물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그토록 후회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현시대는 도움을 바라거나 배려 받을 수 없는 시대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도. 그래서 모든 것을 일일이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ATM기나 키오스크를 활용하지 못해 매장을 서성거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그 증거이며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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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로는 저주가 된다.
(...)
"야 그냥 살아." "너만 힘들어?"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힘들다는 친구에게 건넨 내 무책임한 위로들이 떠올랐고, 그 위로에 또 자신을 탓했을 그들의 모습에 염치없이 내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아닌 저주를 내렸다. 그것도 '다 널 위해서야'라는 명목으로. 너무 가벼워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말이었다.
그래서 사람에겐 때때로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몇 마디 따끔한 말로 구성된 무정한 위로보다 너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다는 깊은 끄덕임과, 진심으로 네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눈 마주침이 우리에겐 훨씬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225~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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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공감에 대해 격한 공감을 하게 만든 글이다. 실제로 힘든 일을 겪어보니, 백 마디 말보다 말 없는 위로가 더 절실하더라.
그런데 사람들은 무한한 신뢰나 따뜻한 손길보다, 날카로운 저주의 말로 찌르고 할퀴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며 차라리 나 홀로 견뎌내는 게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소중한 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디 아무 말이나 하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그럴 때는 입은 닫고, 그냥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자. 그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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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게 좋다. 심심한 건 편안하다. 나른한 건 안정적이다. 짜릿함은 여전히 즐겁지만, 뭐랄까. 조금 피곤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기쁜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숙제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나쁘지 않다. 즐거워할 일은 없지만 실망할 일도 없는 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됐나 보다.
(...)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228~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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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른이 다 됐나 보다. 조용한 게 좋은 것을 보면 말이다. 늘 비슷한 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가기만 바랄 뿐이다. 조용하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유독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이 더 힘들게 다가오나 보다. 여백을 만들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나쁜 일이 없는 하루를 만들고자 나는 오늘도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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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사람이 없는 시간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이 진짜 외로워지는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진심으로 외로워졌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아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옆 사람이 아니었다. 내 사람이었다.
2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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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 손 번쩍! 어릴 때는 몰랐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성장하면서 확실히 알았다. 나를 나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존중해 주는 내 사람이 곁에 있어야 진짜 외롭지 않다는 것을.
나는 특별히 외로움을 타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것을 외로움으로 느끼기보다 보통 '내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역할로 활용했는데, 확실히 내 사람을 갖는 게 더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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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찾아오는 여름 모기마저 수행이라 버텨내는 사람이 아니라, 꼼꼼히 방충망을 치고 모기향을 켠 뒤 잔잔한 밤을 보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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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이 문장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에필로그 글을 일부 가져와 봤다.
나는 내 삶을 버티기 보다 스스로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권하는 불행을 수비하는 방법들을 현실 속에서 적용해 보려 한다.
프롤로그의 글부터 시선을 사로잡으며, 읽는 내내 공감을 자아냈던 이 책을 읽으며, 사실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불행을 스스로 저지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에 깊은 안도와 희망을 품어본다.
불행 앞에 무력하게 당하기보다, 스스로 나를 지켜내며 살아간다면 아마 행복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것을 믿고, 잔잔한 오늘의 조용하고 고요한 일상을 더 많이 늘려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