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이경신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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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세대 차이를 아우르는 공감, 소통, 삶을 담고 있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았는데, 나는 과거에 현재의 나이를 떠올리며 이 책에서 논하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

함께 나누는 주제나 흐름이 긍정적이거나 건설적, 혹은 미래지향적, 희망적이기보다 깎아내리거나, 하소연, 부정적, 회피 등과 같은 형태로 흘러가다 보니 이상과 현실은 매우 다르구나 느끼게 되었다.

특히 그 갭이 크게 느껴졌던 경우는 미혼자와 기혼자가 만나는 자리였는데, 가족에만 뜻을 두고 있는 기혼자와 그보다는 삶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미혼자는 확실히 구분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와 전개 방식에 흠뻑 빠져들었다. 52년생 '논나'와 82년생 '경신'의 이야기는 내가 과거 꿈꾸던 형태의 대화였으며, 또한 지금의 나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옆에 곁다리로 끼어앉아 관찰하듯이 흥미롭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게 되었다. 한없이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어른의 이야기를, 자기다움을 지키는 방법을,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를 관심 어린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52년생 '논나'와 82년생 '경신'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잘 늙는 법, 마음 다스리는 법, 대화법, 생각법, 의식주 생활법, 함께 일하는 법, 사랑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30년이라는 세대 차이를 넘어서서 이들은 서로가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고, 정성껏 답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소신 있게 전하는데, 현실적인 삶의 주제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 여러모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논나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내가 종종 그녀의 유튜브를 즐겨보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현시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어른'의 이야기라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경신의 경우는 비슷한 또래의 입장이라, 그녀가 하는 질문과 답변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는데, 취향, 비혼, 나이 듦, 번아웃,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그러했다.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 무언의 뭔가를 주고받고 있다는 느낌,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들의 대화는 그래서 더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배우고, 숙고하고 그러면서 나의 존엄성은 지키되 함께 사는 방법을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공감, 소통,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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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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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2년생 '밀라논나' 장명숙과 1982년생 유튜브 <밀라논나> 제작자 이경신이 교환한 산문, 편지글, 문자 메시지, 대면 대화를 바탕으로 했다.

두 저자는 2019년 여름 처음 만나 5년간 청년과 중년, 노년의 삶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빛과 어둠을 나누며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다.


■논나 이야기
세파에 시달렸다는 핑계를 대며 순수함을 잃고
성숙하지 못한 궤변을 늘어놓는
중늙은이가 된 듯해
제 자신에게 혐오를 느끼는 순간이
점점 잦아져 염려스럽습니다.

이제 제게 잘 되라고 책망하는 어른들이
주변에 계시지 않고
제게 조언을 구하는 인생 후배만 늘어나니
혼자 자주 탄식합니다.
어른들이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삶의 지혜를 여쭤볼 것을....
이제야 철들 준비를 하는가 봅니다.
철들자 망령이 될까 겁이 납니다.


■경신 이야기
현재를 등한시하고 미래를 사느라
늘 불안하고 초조했던 저에게
선생님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도록
손을 잡아주신 어른입니다.
그런 선생님의 온기는 제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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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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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경신>
좋은 취향을 갖는 것은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29페이지 中)


<논나>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매 순간 저 자신에게 물어요. "명숙아, 지금 즐겁니? 행복하니?" 이렇게 묻고 제게 귀 기울이지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의 나'와 '슬프고 불행한 순간의 나'가 곧 나 자신이잖아요. 그런 순간이 누적되어 내 취향을 만들고요.

내가 지금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
내가 오랜 시간 무엇을 체득했느냐가 내 취향이 아닐까요? 물론 취향은 바뀔 수 있고요.

내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지요. 내 에너지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쓰라고 권하고 싶어요. 남들이 하는 것, 사는 것, 먹는 것을 따르지 말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귀 기울여보세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 취향이 생길 거예요.

(29~30페이지 中)


■비혼

<논나>
요즘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길을 걸어보기도 전에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모두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42페이지 中)


<경신>
한마디로 모든 곳에서 위기 상황이라고 사이렌이 울리고 있어요. 위험하니 도망치라고요. MZ 세대에게는 그 도망이 비혼이고, 비출산인 듯합니다. 내 삶이 불행한데 나라를 지탱하자고 자식을 낳고 싶은 젊은이는 없을 테니까요.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지원해 준다'라는 정책은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분명 도움을 줄 테고 또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데 그 지원금을 받자고 아이 낳을 결심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이제 좀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43~44페이지 中)


■늙음

<논나>
저는 젊은이들이 어떤 경우에 늙음이 혐오스럽지 않고 '아! 나도 저런 어른처럼 나이 들고 싶다'라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66페이지 中)


<경신>
젊은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시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은 이미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세요.

그런 연유로 답을 모두 알고 계실 선생님에게 따로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다만 저도 이 기회에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①저는 나이 듦을 무기 삼지 않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②저는 젊은이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기쁘다" "행복하다" "축하한다" 같은 긍정적 표현을 많이 하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③마지막으로 외적 노화를 부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멋지게 느껴집니다.
(...)
제가 그리는 노년의 모습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네요. 어디서 봤는지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67, 69~70페이지 中)


■자존감

<논나>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을 들볶지 말고 자기 한계를 긍정할 때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이래야 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발목 잡히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익히 들은 말일 수 있지만 정말 그렇다고.

(82페이지 中 )


<경신>
그런데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지요.

저는 그 방법을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바로 매 순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아, 그건 제가 서른일곱 살 때 읽은 책이에요." "마흔다섯 살 때 두 달간 탱고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 바느질은 중학교 때 가정 시간에 한 거예요."

처음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지난 일을 다 기억하시는 거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여쭤봤지요.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시냐고요.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살아온 날을 나는 기억해 줘야지. 나는 내 하루를 최대한 정성껏 산다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메모장에 쓴 문장이 있어요.
"내가 내 삶을 극진히 대우해야겠구나. 내가 나에게 예의를 갖춘 시간이 모여 내 가치가 소중해지고 빛나는 것이구나."

(82~83페이지 中 )


■인연

<경신>
시절 인연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지요. 불교에서는 모든 인연에 다 때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관계도 잘 풀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엇나가면 그때를 인연이 다한 시기로 여긴다고 합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이야기를 하니 떠오르는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저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지요.
(...)
어느 날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문제로 다퉜습니다. 그때 서로를 찌르는 말을 했지요.
(...)
우리는 그날을 끝내 봉합하지 못한 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
그 친구와의 인연이 그리 끝난 것은 제게도 큰 상처였습니다. 10년 넘도록 추억이 떠올라도 고개를 저으며 생각하지 않고 덮어두려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이제는 억지로 기억을 덮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는 뜻일까요.

(104~106페이지 中)


<논나>
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여기곤 합니다.
(...)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삶의 열차가 있습니다. 어떤 속도로, 어느 인연을 중시하며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내 삶의 열차에 탑승했다가 인연이 다해 하차한 인연은 그들의 삶을 향해 가게 내버려두고, 나와 여행을 떠나려고 승차한 새로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합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고 다시는 친구와 만나는 허탈한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답니다.

(107~108페이지 中)


■상처

<경신>
상대에게 진심을 주면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버릴 나이가 됐건만 여전히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만 진심인 상황은 늘 속상합니다.

(117페이지 中)


<논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다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냐면 기대가 있으니까요.
(...)
두 개체 간의 에너지가 동일 질량이 아닐 때 무척 버겁고 상처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경신 씨가 상처받은 경우도 두 개체 간의 에너지 밀도가 달라서 발생한 현상이 아닐까요? 경신 씨는 이른바 너울이 넓어서 많이 품을 수 있고 또 속내도 꺼내놓는 성향이지만, 친구는 자신의 문제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데 익숙지 않은 내향적 성격일 수 있잖아요.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친,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17~119페이지 中)


■말의 힘

<경신>
저는 종교가 없지만 말로 기도를 하곤 해요. 말에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거든요.
(...)
부정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결국 부정적 삶을 살게 되더군요. 반대로 긍정어가 입에 밴 사람은 뜻밖의 행운을 얻지요.
(...)
오늘도 제 인생을 위해 우주에 에너지를 보냅니다.

(131~132페이지 中)


<논나>
특히 자신에게 하는 말은 자기 암시가 되잖아요. 말이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에너지라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 말을 쓰면 좋은 에너지가 모이고, 좋은 에너지가 모이면 좋은 일이 찾아올 거예요.

(133페이지 中)


■충고

<경신>
충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도 맵습니다. 충고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해도 떨립니다. 상처를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는 말이니까요.

(145페이지 中)


<논나>
잔소리는 듣기 싫게 꾸짖거나 시시하게 참견하는 말이고, 쓴소리는 듣기에 거슬리지만 도움이 되는 고언이지요.
(...)
저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만약 제 견해가 듣고 싶다고 요청하면 마지못해 입을 열지만 그전에 일종의 사탕을 준비하지요. 그 사탕이란 아주 부드러운 말투와 칭찬입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충조평판' 금지를 이야기합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실 충고나 조언은 상대방 행동을 평가하고 판단한 후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듣는 이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쓴소리는 쓴 약과 같아서 상대의 상태와 기질을 잘 살펴서 해야겠지요.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하면 효험이 떨어지니까요.

(145~146페이지 中)


■환불 메이크업

<경신>
환불 메이크업은 사람보다는 돈, 규정보다는 힘으로 사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152페이지 中)


<논나>
이참에 저도 환불받으러 갔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보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한창 일할 때 큰맘 먹고 장만한 유명 디자이너의 코트가 생각나네요.
(...)
훗날 취업한 저는 밀라노 첫 출장길에 업무를 마치자마자 그 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진열장에 걸려 있는 호피 무늬로 안감을 댄 호박색 캐시미어 코트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무려 한 달 월급을 지불해야 하는 고가였지요.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차마 구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밤새 그 코트가 눈앞에 아른거려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
밤새 고민한 저는 결국 그다음 날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코트를 구입했습니다.
(...)
그날 저녁, 거래처 대표의 저녁 초대가 있어서 착복식을 겸해 큰맘 먹고 그 코트를 입고 나갔습니다.
(...)
한데 걸음을 뗄 때마다 코트 안감과 함께 입은 니트 원피스가 뒤엉켜 옷이 말려 올라가는 게 아니겠어요?
(...)
이런 날벼락이!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또다시 날밤을 지새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산 코트에 문제가 있다니요.
(...)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코트를 포장해서 들고 갈까 하다가 일부러 니트 원피스 위에 입고 갔습니다.
(...)
어디나 문제 상황에서는 매니저가 등장하지요. 제 모습을 본 매니저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이 원단을 안감으로 사용하면 이런 불편이 생기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안감 교체든, 교환이든, 환불이든, 뭐든 고객 입장에서 처리하겠다며 제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
환불 메이크업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큰소리로 윗사람을 불러오라며 화내지 않아도 상식선에서 서로 대화해 해결하는 것이 표준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첫눈에 반했지만 종국에는 입지 못한 그 코트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정중하게 사과하던 매니저의 응대가 떠오르네요.

(152~154페이지 中)


■번아웃

<경신>
저도 번아웃을 경험한 적 있습니다. <밀라논나>를 촬영할 적이었어요.
(...)
문득 회사가 제 업무를 인정하는지, 제가 제대로 보상받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그 무렵 선생님도 제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제 몸과 마음을 정비할 시간을 주었지요. 일터에서 멀리 떨어져 일을 지켜보니 다시 중심이 잡히더라고요.

(169페이지 中)


<논나>
과로가 누적되면 번아웃이 생기지요.
(...)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제게 길을 물어온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상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까지 자신을 다독이며 기다리라고요.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요. 샘물도 다 퍼 올리면 다시 차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169~171페이지 中)


■갑질과 참어른

<논나>
철없이 함부로 촐싹거리며 날뛰는 사람을 '천둥벌거숭이'라고 하지요. 옛 어른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인간 유형을 천둥벌거숭이라고 부르셨어요. 순진함이 남아 있으면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아갈지 한편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잠시 침묵하다가 "허허" 웃었다니 그분은 '참어른'이네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하룻강아지에게 무슨 대꾸를 하리'라고 생각하며 어른다운 인내심을 발휘한 게 아닌지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
갑질 상황을 요령껏 피하는 지혜도 살면서 배워야겠지요. 참으로 삶의 무게가 꽃잎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185페이지 中)


■미움받을 용기

<경신>
직장은 선택해서 들어가도, 직장 내 사람은 선택할 수 없지요. 직장에서는 '미움을 받을 용기'를 내는 것도 '미움을 받아들이는 평정'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254페이지 中)


<논나>
타인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자기 마음도 수습이 안 되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수습하겠어요. 모든 이유를 내게서 찾으며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다만,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어요. 왜 나를 싫어하느냐고 직접 물어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든 혼자 생각하는 겁니다.
'어차피 너는 나를 못 이겨!'

(254~255페이지 中)


■용서

<논나>
제가 생각하는 용서는 타인을 무조건 이해하고, 그가 내게 한 잘못을 무작정 받아들이자는 게 아닙니다. 저는 내 마음속의 부정적 쓰레기를 버리는 과정이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그 상황을 피하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분노와 원망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저는 스스로를 향한 분노의 감정을 먼저 정리하고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힘들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내 내면아이를 안고 위로해 주세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나를 가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266페이지 中)


■어른의 예의

<경신>
'어른의 예의'라는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첫째, 남의 서랍은 열지 않는다(사적인 비밀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둘째, 뭔가 지르면 부러워해준다.
셋째, 지나간 일을 꺼내지 않는다.
넷째, 조언하기 전에 감탄부터 한다.
다섯째, 친구를 사귀려면 칭찬과 선물을 한다.
여섯째, 뭔가가 좋다고 말할 때 찬물을 끼얹지 않는다."

이 글에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른의 예의란 무엇인가요?

(275페이지 中)


<논나>
당연한 예의가 회자되고 있다니 재미있지만 씁쓸하네요. 예의를 갖춘 어른이 많지 않나 봅니다.

첫째, 저는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둘째,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셋째,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되 그것을 흉내 내거나 평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도움을 줄 때 공치사를 하지 않고 그 일을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합니다.
(...)
나이 듦을 긍정하며 그 과정에서 품격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76~277페이지 中)


■사랑

<논나>
사랑을 시작하든 종결하든 연장하든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을 기억해 보세요. 결국 애지욕기생. "사랑한다는 것은 그게 살게끔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그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끔 해줘야 하지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320페이지 中)


=====
마무리
=====

살아온 시대나 나이는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진정한 '대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두 명의 저자는 서로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조언하거나 충고하지는 않되, 깊이 사유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 더해 논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에 지혜를 더해 건넴으로써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꼰대처럼 굴지 않는다. 상황적인 부분에 있어 직설적으로 이야기는 하되, 선택은 본인에게 맡긴다.

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논나와 경신의 대화 속에는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해법들이 많이 담겨 있다.

혼자 최소한 먹고사는 법부터 둘이 최대한 사랑하는 법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은 지키면서 내일의 어른다움은 키워갈 수 있는 노하우가 가득하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에서 건네는 대화들이 당신의 물음에 지혜를 더해줄 것이다.

어떻게 나를 지키고, 어떻게 너를 대하고, 어떻게 즐기며 살 것인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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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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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간, 한정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핀레이의 '싹쓸이' 찾기 프로젝트!"


핀레이의 '어쩌다 킬러'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 쭉 이어진다. 전편의 '싹쓸이'를 찾아내라는 펠릭스의 협박성 메시지가 이번 편에서 이어지며, 핀레이는 또 한 번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그가 맡게 되는 사건과 함께 그녀의 로맨틱 스릴러 소설 집필도 함께 이루어지는데, 소설이 막힐 때마다 기가 막히게 찾아오는 사건들은 마치 단짝처럼 함께 한다.

'어쩌다 시리즈'의 3편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는 앞선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1편과 2편에서 다룬 사건들도 다시 한번 거론되며, 인물 간의 관계성과 심리를 더 주의 깊게 파고든다.

말 그대로 '어쩌다' 킬러로 오인받아 시작된 일이 어쩐지 '어쩌다'가 아닌듯한 조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자세히 알아갈수록, 관계를 파고들수록, 사건을 살펴볼수록 수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끝난 것 같은 사건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핀레이에게 주지시키는 통에 핀레이는 하루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결국 어떤 일이든 덮어두고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려는 건지, 저자는 지속적으로 수상쩍은 사건들에 핀레이를 투입시키며 그녀가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추리하도록 이끈다.(아니 어쩌면 핀레이 입장에서는 강요일지도)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관계는 복잡 미묘해지고, 스토리는 더 깊은 집중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쩌면 7권까지 이어질 이 시리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게 될 가장 큰 목표는 아마도 핀레이의 평범한 일상 되찾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다 킬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로, 당신의 비밀을 묻기 위해 거침없이 진실을 파헤쳐야만 하는 핀레이와 베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편으로, 전편의 사건과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사이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다.

전체 시리즈 7편 중 중반에 들어서는 지점에 있는 이번 이야기는 본격적인 사건의 서막에 발을 들인 느낌이다. 앞선 1편과 2편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깔아둔 밑밥이었다면 3편부터는 안면을 튼 진짜 악당들과 한판 뜨기 전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래선지 전편에서는 스쳐 지나갈 법한 인물들이 이번 편에서만큼은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악당과 직접적으로 엮이는 것은 물론, 악당 가까이에 있는 인물과 직접 대면하는 일도 생긴다. 또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관계성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꺼림직한 '무언가'를 감지하게 된다.

이제 그만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고 싶은 핀레이와 베로지만, 작가는 그들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복주머니를 풀어놓듯 서서히, 그리고 보다 집요하게 이들을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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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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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레이 도너번
-'어쩌다' 킬러로 이미지가 굳혀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건을 맡게 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 로맨틱 스릴러 소설을 쓰며 아이 둘을 기르고 있음

■베로니카 루이스(베로)
-핀레이의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이자 회계 일을 도와주고 있는 조력자로,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
-여학생 클럽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치다 사채업자에게 20달러를 빚짐. 그 일로 사채업자 마코와 여학생 클럽 자매들에게 쫓기고 있음


<베로를 쫓는 사채업자>
■마코
-고리대금업자로 베로에게 20달러를 빌려준 후 돈을 돌려받기 위해 압박 중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음

■아이코
-마코가 보낸 똘마니로 핀레이와 베로를 죽이려는 듯 집요하게 쫓음
-애스턴마틴을 보자마자 차를 가져가려고 실랑이를 하다 결국 차에 깔려 사망


<핀레이에게 관심 있는 남자들>
-닉: 형사
-웨이드: 사격을 가르치는 교관
-스티븐: 전남편
-줄리언: 로스쿨 학생으로 전남친


<악당 일당>
■펠릭스 지로프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 중의 거물
-전편에서 핀레이에게 싹쓸이의 정체를 밝히라며 협박

■에카타리나 리바코프(캣)
-펠릭스 지로프가 총애하는 변호사
-아이코가 차에 깔려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핀레이에게 협박


<주요 용의자>
■싹쓸이
-펠릭스 지로프의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던 의문의 살인 청부업자
-웹사이트 폐쇄로 자신이 입은 손해를 물어내라며 마피아를 협박했고, 펠릭스는 그 모든 책임을 핀레이에게 돌림
-압박을 느낀 핀레이는 결국 싹쓸이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도맡게 됨


<경찰 조직>
■조지아
-핀레이의 친언니이자 경찰

■닉 앤서니
-형사이며 조지아와 동료
-전작에서 다리를 다쳐 금속 지팡이를 짚고 다님
-핀레이와 썸 타는 사이

■찰스 콕스(찰리)
-닉의 옛 파트너
-구강암 진단을 받으며 결국 퇴직했지만 여전히 경찰 조직에서 일하고 있음

■조지프 밸러펀트(조이)
-닉의 현 파트너
-의문스러웠던 조이의 일부 정체의 이번에 드러남

■로디
-전작에서 핀레이의 집 앞을 지켰던 형사

■타이리스
-수습 형사, 신참

■새머러 베커(샘)
-유일한 여성
-첨단범죄팀 소속
-마약조직범죄 수사팀과의 합동 태스크포스에 얼마 전에 합류
-조지아와 썸 타는 사이

■웨이드 코피
-사격 교관
-전 형사
-14년 동안 경찰생활을 하며 마약조직범죄 수사팀에서 위장요원으로 근무 중 무릎을 다쳐 그만둠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음
-일반인과 경찰 관계자들의 사격을 지도

■모하메드 샤리프 박사(모)
-총기 조사관
-월마트 화장실에서 핀레이 아들 재크와 에피소드가 있었음

■스튜어트 커비(스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음
-해당 경찰서를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


<그 외 인물들>
■하비
-하비, 베로, 라몬은 어릴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 사이
-잠긴 문을 잘 따고, 베로가 얼굴을 붉힐 정도로 화를 돋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베로와는 과거 연인 사이로 추측 됨
-이번에는 라몬을 대신해 하비가 핀레이와 베로의 조력자 역할을 함

■스티븐
-핀레이의 이혼한 전남편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고 먼 곳에 있다가 다시 최근에 돌아옴
-미스터리한 행보를 보임

■캠
-한 달 뒤면 열여덟 살이 되는 소년으로, 해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경찰의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
-현재는 그의 해킹 실력을 알게 된 펠릭스 지로프의 제안으로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음
-실상 정확히 어느 편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
-캠을 정보원으로 쓰던 경찰과의 진짜 관계가 이번 편에 드러남

■라일리 / 맥신
-방송을 하는 팟캐스터
-경찰 아카데미 교육신청자

■줄리언 베이커
-핀레이의 전 연하 남친
-로스쿨 3학년 학생

■파커
-줄리언의 룸메이트
-줄리언에게 호감이 있는 듯 보임
-검사실 수습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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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레이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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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주 안에 싹쓸이 정체를 밝혀 마피아 보스 펠릭스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2. 애스턴마틴을 처리하여 돈을 모아 사채업자 마코에게 돈을 갚는 것

3. 실비아의 원고 수정요청을 마무리 지어 원고료를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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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이 알려주는 싹쓸이에 대한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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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인 것은 분명함
●싹쓸이를 찾기 위해서는 경찰들이 잘 가는 장소부터 시작할 것
●싹쓸이는 정직하고 깨끗한 형사들, 자기 일에 가장 걸림돌이 될 법한 형사들과 친하게 지내며 늘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감시하고 있을 것임
●그들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장소를 우선 찾아볼 것
(예: 경찰서, 술집, 도넛 가게 등)

캠으로부터 싹쓸이에 대한 힌트를 들은 핀레이는 마약조직범죄팀의 일원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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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풀 핵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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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다루는 방식(어떤 총을 가지고 다니는지)
◎관계성
◎도청&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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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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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인 핀레이는 어느 날 '어쩌다 킬러'로 오인받으면서 청부살인 의뢰를 받게 된다. 실제로 핀레이가 살인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우연이 겹쳐 핀레이가 마치 처리한 것처럼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핀레이는 베로와 짝을 이뤄 사체를 처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경찰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급 인사인 펠릭스 지로프와 엮이게 되고, 그는 자신을 협박하는 '싹쓸이'를 처리하기 위해 핀레이를 협박하며 2주 안에 정체를 알아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에 더해 베로의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베로를 찾아다니는 무리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다. 한 무리는 베로에게 20달러를 빌려준 고리대금업자 마코이며, 또 다른 무리는 여학생 클럽으로, 과거 베로가 애틀랜틱시티에 살 때 절도 혐의로 누명을 썼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 도망치면서 이들이 베로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일단 몸을 피해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핀레이와 베로는 아이들을 곧 돌아올 전남편 스티븐에게 맡겨두고 일주일간 경찰 아카데미에서 머물며 3가지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첫째, 닉의 파트너인 수상한 조이의 정체를 확인할 것
둘째, '싹쓸이'의 정체를 파헤칠 것
셋째, 수정요청이 들어온 원고를 수정하여 발송한 후 원고료를 받을 것

무엇보다 현재 핀레이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찰 조직, 특히 마약 조직범죄팀과 가까워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 경찰 아카데미에 잠입하여 경찰들과 친분을 쌓고, 경찰 교육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핀레이와 베로는 경찰 아카데미에 입성하여 경찰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한편, 싹쓸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수상한 일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도 펠릭스의 협박과 사채업자들의 위협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원하는 않는 상황에 놓인 핀레이는 지속적으로 펠릭스와 엮이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들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전남편 스티븐은 다시 합치기를 원한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평소 호감을 표했던 닉을 포함해 전남친 줄리언, 그리고 새로운 인물까지 핀레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 와중에 고리대금업자 마코의 돈을 갚기 위해 핀레이와 베로는 그동안 골칫거리로 남아 있던 애스턴마틴을 팔기로 마음먹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베로를 돕기로 한 하비는 차를 팔기는커녕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마침내는 애스턴마틴을 도난당하기에 이른다.

경찰들이 가득한 경찰 아카데미 안에서 조차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핀레이와 베로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면밀히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찾는 싹쓸이와 그리고 의심스러운 조이의 정체를 과연 밝혀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핀레이의 대처가 돋보였는데, 갑작스럽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모두에서 핀레이는 상황을 수습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의심은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단정 짓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덕분에 누군가는 목숨을 구하고, 또 누군가는 호감을 가지게 된다.

1편과 2편에서 우리가 무심코 넘겼던 이야기와 인물들을 저자는 이번 편에서 한 번 더 언급하며, 좀 더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예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남편 스티븐의 수상한 행동, 닉과의 로맨스, 사라진 하비와 애스턴마틴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에 핀레이는 모든 일이 끝나고, 따뜻한 목욕, 깨끗한 속옷, 포근한 잠옷, 소파에서 아이들을 껴안고 뒹굴거리는 시간, 길고 긴 휴식을 원했지만 하비와 애스턴마틴이 사라진 것을 보고 곧장 애틀랜틱시티로 가게 된다.

아마 다음 이야기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그동안 꽁꽁 숨겨져 있던 베로의 과거, 그리고 하비와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이 갈수록 추리력이 날로 늘어가는 핀레이의 스릴 넘치는 일상 속 이야기는 읽는 독자들마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게 만든다. 그런 한편 너무 조심성이 많아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던 로맨스는 이번에 미약한 진전을 보여주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이 부분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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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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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나도 새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범죄자도 살인자도 아니다. 적어도 자의로 누구를 죽은 적은 없다.

석 달 전, 내 미니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해리스 미클러라는 추잡한 회계사 역시 결코 내 손에 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아내, 퍼트리샤는 기어코 내게 수고료를 지불했다. 나는 살인 청부업자가 아니라고 미클러 부인에게 몇 번을 설명했는데도 자꾸만 비슷한 일감이 찾아왔다.

2주 전, 나는 새해를 맞으며 세 가지 중요한 결심을 했다. 정크푸드 끊기, 남자 멀리하기, 내 차에 시체 싣지 않기. 딱히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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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웃픈 새해 결심이다.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새해 결심은 아니다. 원치 않지만 '어쩌다' 자꾸 벌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핀레이는 남자가 꼬이고, 시체를 자꾸 차에 싣는 일이 발생한다.

소설에서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암시가 아닐까?

우선순위를 떠나서 이 중 몇 가지는 이번 편에서 이미 어겼다. 핀레이의 결심을 무너뜨리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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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너번 씨,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요. 딱 2주 드리죠.

-Z

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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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어 하는 핀레이에게 왜 자꾸 이런 악당들이 꼬이는 걸까? 이번에 핀레이는 제대로 악당에게 코가 꾀었다.

덕분에 내내 협박에 시달리며, 그가 원하는 '싹쓸이'의 정체를 밝혀내지만, 결국 그는 핀레이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들었다.

언제쯤 핀레이는 악당과 시체에서 벗어나 편안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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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요? 스스로 그 남자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잖아요.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해리스, 안드레이, 칼, 아이크에게 닥친 일에 죄책감을 느끼잖아요. 그중 한 명도 안 죽였는데 말이죠. 당신이 한 일은 전부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한 일이에요. 아이들, 어머니, 전 남편, 그런데 아무도 몰라주죠..."
(...)
"닉은 그냥 당신을 원하는 거예요, 핀. 그러니까 당신한테 자격이 없다는 소리는 집어치워요."
298~299페이지 中
-----

자꾸만 움츠러들고 피하기만 하는 핀레이를 보다 못한 베로가 핀레이를 다그치는 부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앞서 핀레이의 감정이나 생각은 무시하고 마구 밀어서 은근히 베로의 태도가 짜증 났는데, 이 장면만큼은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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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을 유발하게 만들었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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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짜증 유발자: 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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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은 뭔데요?" 나는 방으로 들어온 순간에 본 베로의 표정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내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
"실비아가 새 결말이 마음에 든대요."
(...)
"결말을 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새 결말이 마음에 들 수가 있죠?" 싱글거리는 베로를 보니 심장이 철렁했다.

"우리가 점심 먹고 있을 때 실비아가 당신 휴대전화로 결말을 어떻게 고치고 있느냐고 물었죠. 마침 당신이 줄을 서 있기에 내가 답장을 보냈고요. 주인공들이 황홀한 섹스 후에 멕시코의 뜨거운 해변에서 마르가리타를 마시고 있다고 했어요."

"아니, 안 돼요!" 나는 양말을 벗어 그녀의 머리에 던지며 소리쳤다.
(...)
"방금 당신이 어떻게 수정할지 요약한 자료를 실비아에게 보냈어요." 베로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마감일을 미뤄달라는 요구도 했고요. 감사 인사라면 접어둬요."
혈압이 치솟아 머리까지 쿵쿵 울렸다.
208~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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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작가는 핀레이다. 그리고 그것을 집필할 권리와 스토리 진행 방법 역시 핀레이에게 있다. 그런데 자꾸만 주변 사람들은 핀레이의 로맨스에 있어 딴지를 건다. 소설과 현실 모두를 감놔라 배놔라 하다가 결국에 선을 넘어 베로는 자신이 핀레이를 대신해 저질러 버린다.

나라면 엄청 짜증 났을 것 같은 장면이다. 특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이런 게 허용되는지가 의문이다.

내가 없을 때 함부로 내가 쓴 소설의 원고를 읽고, 출판 담당자에게 맘대로 답장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번째 짜증 유발자: 스티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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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숙인지 훈련인지 뭔지가 끝나면 말이야, 우리는 가족으로서 이 문제를 상의해야 돼." 그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명함을 내밀었다. "상담 전문의 연락처야. 내 변호사가 몇 달 전에 소개해 줬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의 면전에서 명함을 구긴 다음 쓰레기통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전문가 따위는 필요 없어, 스티븐!"

"가족 상담 전문의야, 핀레이. 우리 둘이 같이 가야 해! 가이도 그게 좋겠대." 나는 구겨진 명함을 스티븐에게 던졌다. 그는 그것을 다시 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정신이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보자고." 스티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289~2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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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바람을 피워 이혼까지 해놓고 다시 핀레이에게 재결합을 원하는 전남편 스티븐의 행동은 뻔뻔함을 넘어 폭력적이다.

'가족으로서'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여기에 핀레이에게 무자비하게 굴었던 그의 친구이자 변호사 '가이'는 절대 핀레이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가족 상담은 양쪽 모두 마음이 있을 때, 수락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면, 스티븐의 일방적인 구애 혹은 폭력적인 요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가뜩이나 사는 것이 고달픈 핀레이인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더 한 고통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짜증이 났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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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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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저트를 원했다. 결과야 어찌 되든.
32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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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에서도 닉과의 관계는 언제나 디저트 혹은 후식으로 비유된다. 그만큼 달콤한 것, 달달한 것, 계속 생각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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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으로 남은 사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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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궁금증 중 3가지는 이번 편에서 해소되었다.

▶'싹쓸이'의 진짜 정체
▶의뭉스러운 '조이'의 정체
▶스티븐을 죽이려 했던 쉐보레 세단을 모는 사람의 정체

그렇지만 또다시 새로운 궁금증이 배로 늘었다.

▷바버라가 있는 웨스터버의 집 숲에서 찰리는 정말 덤불에서 핀레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마코의 진짜 정체
▷캠은 누구의 편일까?
▷전 남편 스티븐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핀레이는 펠릭스와의 관계를 제대로 끊어낼 수 있을까?
▷폐차장 입구에서 남색 아우디에 뉴저지 번호판을 달고 몰래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의 정체는?
▷조이의 정체는 밝혀진 게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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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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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레이의 소설은 핀레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인다. 그래서 소설과 실제 현실 속 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 잡게 된다.

사건은 언제나 핀레이의 소설이 막힐 때쯤이면 어김없이 벌어진다. 그리고 현실 속 사건이 해결되면 소설도 빛의 속도로 마무리가 되며 출판사 담당자의 오케이 사인과 함께 원고료가 지급된다.

여기에 더해 핀레이의 추리력과 촉은 점점 더 발달하며, 현직 경찰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추측하기에 이른다.

덕분에 하나 둘 목숨을 빚지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핀레이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비밀을 만들고, 추리를 하고, 목숨을 건 사투를 이어 나간다.

늘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는 그녀지만, 현실은 그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이번에 그녀는 또다시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건 해결을 위해, 하비를 구하기 위해, 빼돌린 차를 되찾기 위해 애틀랜틱시티로 가게 된다.

부족한 잠도, 갈아입을 옷도, 아이들도 챙기지 못하고 또다시 베로와 함께 여행 가방을 싸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이제는 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에서 시체를 보는 것, 그것을 처리하는 것,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 누군가를 구해내는 일이 얼마나 큰 피로감과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지 알기에 더 그렇다.

물론 독자인 나는 그녀들의 버라이어티 한 일상과 스릴러 넘치는 추리를 한껏 즐기겠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보자면 좀 쉬는 타이밍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킬러'로 오해받아 벌어진 이 해프닝의 끝에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숨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핀레이의 행복을 응원하며 다음 편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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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들의 가을 소풍 컬러링북 - 색칠할수록 행복해지는 색칠할수록 행복해지는 컬러링북
전선진 지음 / 마음책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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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을 이것저것 살펴보다 보니, 은근히 테마별로 스케치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떨 때는 특별한 날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귀여운 그림들을 보며 힐링하는 날들도 있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꽃들이 그려진 스케치를 볼 때면 꽃의 이름과 꽃말을 배우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 스케치를 볼 때면, 새삼 여행을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꼭 색칠을 잘하지 않아도, 꼭 무언가로 채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냥 즐거움을 주는 취미생활이라 방구석에서 즐기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는듯하다.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을 테마로 하고 있으며, 개화시기에 따라 총 30종의 다양한 스케치를 분류하여 담고 있다.

하나하나 보다 보면, 마치 꽃구경 나온듯한 느낌이 들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귀여운 냥이와 이곳저곳 다니며, 풍경도 감상하고, 가을도 즐기며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페이지의 왼쪽 상단부를 살펴보면, 꽃 이름, 개화시기, 꽃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름만 알고 있거나, 꽃의 모양만 알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모양과 색깔을 익힐 수 있다.





견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알록달록 꽃들로 가득 찬 이색적인 풍경들은 어딘가 새로운 여행지를 떠올리게 한다. 새삼 꽃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냥 보기만 하지 말고, 이제 직접 나만의 느낌과 감각대로 색을 칠해보자. 좌측의 견본 샘플과는 다르게 오른쪽에 배치된 스케치들은 조금 더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샘플을 참고해서 비슷한 컬러를 입혀도 되고, 나만의 디자인을 스케치에 담아 무늬를 넣거나 모양을 다르게 변형시켜 봐도 된다.


그냥 색만 칠하기 말고, 색종이, 물감, 다꾸 용품들을 적절히 활용해 오리고 붙이며 채워 넣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짠! 위의 스케치에 책을 채워 넣어보았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재미있는 무늬나 홀로그램, 스티커 등을 조금 더 더해 꾸며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더하면 더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치지 않을까 한다.


예전보다 한층 더 짧아진 가을. 아쉽다고 붙들 수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지만 이렇게 그림으로나마 들여다보고 추억하다 보면, 조금은 천천히 가는 느낌만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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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배우는 시간 - 말이 넘쳐나는 세상 속, 더욱 빛을 발하는 침묵의 품격
코르넬리아 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서교책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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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침묵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너무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어서인지, 가끔은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꿈꿀 때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는 보통 층간 소음을 비롯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생활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개인적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를테면, 휴대폰을 무음으로 변경하는 것과 같은 조치 등을 통해 최소한의 소음만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소음에는 이처럼 기계적 소리, 생활하면서 내는 소리 외에도 '말'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요즘은 과한 말로 인해 더 많은 소음이 발생하는듯하다.

이 책은 '말'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침묵이 보여주는 품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 위력이 얼마나 큰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말을 많이 소비해야만 내 가치가 올라간다거나 상대방이 내 말에 경청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오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 더불어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이 책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말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침묵이 가지는 힘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말 비우기 연습부터 시작해 침묵이 소통의 방식인 이유, 우리가 말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비울수록 커지는 말의 무게,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 대화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침묵할 권리, 고요한 관조의 힘까지 말을 아낌으로써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침묵의 여러 장점과 방법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침묵은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여기에 더해 적절한 타이밍에 임팩트 있는 단어나 문장을 요약해서 짧게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더 그렇다.

더군다나 둘 이상이 함께 하는 공간에 머물게 되면 사람들은 어색감을 견디지 못하고 보통은 침묵보다 말하기를 선택한다.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해 침묵에 더 무게를 싣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통의 사고와 관념부터 수정해야 제대로 된 침묵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이미 많은 소음에 노출되어 있기에, 오히려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부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가정, 사회, 직장 어디서든 침묵의 위력은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침묵을 배운다는 자세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침묵함으로써 삶에 어떤 장점과 즐거움이 있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함께 경험해 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침묵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필요한 때는 적재적소에 맞게 말을 내뱉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말의 습관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의 이런 기호에 딱 맞는 책이었는데, 단순히 입 닫는 침묵을 말하기보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말을, 제대로 내뱉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은 아무리 스스로 다짐을 하고 노력해도 실질적으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툭 튀어 나간다. 이 책에서는 말을 어떻게 하면 컨트롤할 수 있는지, 또 침묵의 시간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어 여러모로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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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면 좋을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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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의 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침묵 훈련'. 그리고 장의 끄트머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침묵 수업'을 통해 다짐과 복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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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관련된 유익한 명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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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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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려거든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피타고라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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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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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서 침묵이 효과적인 이유>


■침묵은 상대를 당황하게 한다
침묵은 갈등 상황에 바람을 빼는 역할을 한다.

■침묵은 생각을 자극한다
침묵은 상대의 지성은 물론이고 책임감과 이해심, 관심, 참여까지도 활성화시킨다. 제 아무리 좋은 말로 떠들어봐도 외부에서 온 동기는 효력이 약할 수밖에 없고, 지속력도 약하다. 내부에서 오는 동기가 훨씬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법이다.

■침묵은 최고의 코칭이다
자문과 코칭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자문은 상대에게 선의의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 최악의 적은 선의다"라는 말이 있다. 코칭은 이 사실을 깨달아 조언을 줄이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침묵은 최고의 협상을 이끌어낸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말수가 적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를 싣는다. 수다쟁이들보다 두 배는 더 자주, 더 길게 침묵한다. 그리고 두 배는 더 성공한다.

■침묵은 동기를 부여한다
현명하게 말을 선택하면 적은 말로도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말이 많다는 것은 할 말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라 게을러서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말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다.

■침묵은 책임감을 일깨운다

■침묵은 학습을 돕는다
말을 잘하는 비결은 언어적인 표현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적절한 순간에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말을 잘하는 비결이다.


침묵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소통 방식의 일종이다. 그러니 당신 혼자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할 마음이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입을 다물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는 당신을 더욱 존중하고 한층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할 것이다.
23~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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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실천하기에 앞서 우선 침묵의 긍정적 효과를 먼저 살펴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대화를 함에 있어 나의 말이 성공적으로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기억을 되짚어보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 항목에 각각 대입해 보며 확인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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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침묵에 앞서 일침을 놓을 필요가 있다. 그때 써먹을 수 있는 몇 마디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예를 들어 "그쪽 말이 옳아요. 그렇지만 여기까지만 하죠. 해결책을 찾는 게 우선일 것 같거든요." 또는 "어디까지 하실 건가요?",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떻게 하라는 거죠?" 같은, 멋지고 간결한 말들을.
52~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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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말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끊어내는 데 이것만큼 좋은 팁은 없다. 장황하게 늘어지는 말들은 때로 심한 피로감을 가져온다.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도록 나만의 획기적인 몇 마디를 미리 준비해 보자.

꽤 이성적이고 스마트한 방법이자 멋지고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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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세상 어디에도 정적은 없다. 그럴수록 절실하게 정적이 필요하다. 특히 협상과 결정의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침묵은 협상과 결정을 돕는다.
●대답하기 전에 잠시 침묵하면 머릿속으로 더 논리적인 결정을 준비할 수 있다.
●잠깐만 침묵해도 상황에 맞는 어휘와 논리를 선별할 수 있다.
●침묵하면 직감이 되살아난다. 직감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침묵하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후회할 일이 없다.
55~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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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고 해서 길고 긴 입 닫음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잠시 잠깐의 침묵 또한 침묵이며, 이 잠깐의 시간벌기가 얼마나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를 것이다.

침묵은 상대방을 나의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나의 결정에 있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또한 적절한 어휘와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주기도 하며, 잠시 잃어버린 이성이나 직감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누군가와의 대화 후 돌아서는 순간 후회한 적이 있다면, 이 잠시 잠깐의 침묵의 시간을 활용해 보자.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실수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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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울 때는 떠들 게 아니라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공감의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부모들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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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사회라고 말하는 가정에서부터 이미 말은 너무 앞서있다. 아이가 울면 부모들은 아이를 다그치기 바쁘다. 안아주고, 기다려주고, 공감의 신호를 보내기에 앞서 그들은 명령과 잔소리만 줄곧 내뱉는다.

아이가 울고 떼쓰는 이유에는 어쩌면 늘 그래왔듯 부모들의 늘어지는 잔소리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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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인 사람들만이 침묵을 난감하게 생각한다. 적극적이고 세상과 대화 상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침묵을 전혀 문제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1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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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침묵 또한 소통의 한 방법으로, 적극적인 사람에게 있어 침묵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수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침묵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호응이 없는 침묵은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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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내가 참아야지'라고 생각한다.
(...)
왜 참는단 말인가? 영국에서는 "바보에게 관대하라!"는 말로 이를 당연시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현명한 사람들이 바보들의 바보짓에 관대하게 눈 감으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바보들의 바보짓과 똑똑한 사람들의 고통이 날로 커지는 것이다.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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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무조건 참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든 참는다고 다 해결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소음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참지 말고 저항해 보자. 단, 지능적으로!

적절한 기술로 말을 끊고, 정리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협상이나 대화, 관계에서 있어서 이것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으로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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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방법을 다 써봤는데도 상대가 말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때는 당신이 침묵하라. 단, 권투선수처럼 공격적으로! 상대의 말을 그냥 '씹어라.' 뭐든 좋으니 다른 생각을 해서 당신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것을 상대가 눈치채게 만들어라. 상대가 어떤 말로 도발을 해와도 대꾸하지 마라. 한 마디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도 꾹 참아라. 상대가 상사라고 해서 쫄지 마라.
2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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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상대방이 말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제는 강력하게 나갈 차례다. 부하직원이라고 해서, 어리다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다 들어줄 필요는 없다.

나의 모든 신체와 표정을 총동원해 '당신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내지는 '듣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라.

다른 생각에 빠진 듯, 호응을 하지 않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면, 상대방도 대꾸 없는 상황에서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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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노력하면 침묵의 오아시스를 만들 수 있다. 절반의 말로 두 배의 의미를 전달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삶의 한층 평화로워질 것이다.
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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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노력하면 누구나 '침묵의 오아시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의사는 전달하면서 두 배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전한다.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당장 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배움에 매진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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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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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심 한가운데서 밤낮으로 시끄러운 소음 속에 사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피로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내 말을 제발 들어달라는 이유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사람들은 했던 말을 반복하고 강조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패턴은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침묵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또 쓸데없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노력한다.

저자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거론하며, 삶에 쉼표를 주라고 말한다. 입에 지퍼를 채우는 침묵이 아니라, 말의 양을 조절하여 침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 말한다.

서로에게 피로함을 주지 않을 정도의 꼭 필요한 어휘와 표현들로 효과적인 대화를 이어가라 말한다. 이것은 사적으로 보면 나의 실수를 줄이고, 말에 힘을 실어주는 동기가 되어 줄 것이며, 관계에 있어서는 원활한 소통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 말한다.

또 우리가 꼭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며, 비울수록 말의 무게는 더 커질 거라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침묵할 권리와 고요한 관조의 힘을 발휘할 능력이 있다.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스스로 노력한다면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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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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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보이콧하고 싶었던 책"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한 번씩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서평단 모집을 해놓고 막상 책을 보내지 않거나 잠수타는곳,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는 곳,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압박하는 곳 등.

이번에 만난 이 책의 출판사 역시 비슷한 류의 경험을 안긴 곳으로 이번에는 몇 가지를 믹스하여 '뭐 이런 곳이 다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다.

처음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교보 이주의 북모닝'이라는 평소 보지 못했던 수식어가 덧붙여져 있었으나 나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한 가지 더해 특정 기간 내 서평을 작성해 달라는 내용이 강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그것 역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기간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고 평소와 같은 약 2주간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출판사에서 실수로 제때 책을 보내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서평 마감 기일은 연장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어쩌라는 거지?)

한 번씩 책의 출간이 늦춰지거나 일정상 늦게 책이 도착하는 경우가 있어 이제는 그냥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던 것이다.(이럴때 보통 함께 마감기한도 변경된다)

마감기한은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픽스해놓고, 책은 출판사의 실수로 약 일주일 후에 보내면 결국 똥줄 타는 건 누구다? 바로 책을 읽고 써야 하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뒤늦게 보냈다는 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쨌든 중간에 연락을 받은 게 있고, 일정은 빠듯해서 일단 책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 한밤중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발견한 버려진 택배 봉투 하나. (참고로 주말이라 오늘 받지 못하면 다음 주에 받는 상황이었음)

혹시나 싶어 살펴봤는데, 기다리던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아니, (말을 잃음) 뭐 이런 @#$@% 같은. 송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화번호가 다른 번호로 잘못 기재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하. 늦게 보낸 것도 모자라 또 다른 실수까지. (이게 실수인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진짜 드물게 보낸 사람이 자기가 도착한 거 확인하려고 자기 번호를 써넣는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급하다는 택배를 확인할 방법이 있나? 별도로 송장번호나 택배사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동동거리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이거 안 하면 안 되나? 다시 반품하면 안 되나? 진짜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더불어 꼭 일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중간에 이벤트를 진행한 분께 들었는데, 마케팅을 하기로 한 일정이 정해져 있었던 것. (사실 독자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출판사에서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을 꼭 이렇게 독자가 맞춰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음)

그런데 정작 작가나 출판사가 이렇게 신경을 안 쓴다고? 이거 작가가 교보 안티인가? 아니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해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했는데 작가가 창비에서 책을 냈다가 문제가 있어 1인 출판사를 냈고 거기서 이 책을 재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인 출판사라고 하니, 직원이 작가 혼자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케팅 일정 잡아놓고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행동을 취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똥 싸질러 놓고 엄한 사람에게 수습해 달라는 꼴이 아닌가?

실수는 한 번도 피해야 할 상황인데, 연달아 두 번이나 해놓고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도 없다. 이미 짜인 일정은 빡빡한데, 내 몸 상하고, 시간 버리고, 노력을 해가며 왜 이 책을 무리하게 읽고 써야 하는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2017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후 베스트셀러까지 오르며 꽤 승승장구했던 것 같은데, 아마 지금의 상황을 두고 '초심을 잃어버린 배부른 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런 마인드로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고 유통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주변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책에 쓴 내용까지 솔직한 진심을 다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 세 개의 작가의 말을 실었는데, 어쩐지 마지막 세 번째 작가의 말에 쓰인 글은 위선 혹은 가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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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과 오해, 누군가를 악인으로 몰거나 쉽게 판단해버리는 일들이, 많은 경우 이성과 감정의 혼돈과 오용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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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만 질책하는 사람은 어쩌면 작가(혹은 출판사) 자신이 아닐지.

물론 안타까운 오해와 누군가를 몰아서 악인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다즐링이라는 출판사와 작가는 그 범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문제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과 기업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전문가를 쓰시길, 그러라고 각종 전문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송받기까지 지난한 과정, 일정에 쪼이며 맞춰야 하는 상황, 덕분에 어그러진 나의 삶과 일정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 (별도 원고료를 받아도 이렇게는 하고 싶지 않음. 하물며 책 한 권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음)

어쨌든 순전이 나의 책임감과 중간에서 소통을 잘해준 분을 위해, 그리고 하루빨리 손에서 털어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책도 읽고 글도 남겨본다.(이제 그만 빠이 하자)

나의 루틴을 깨기 위해 마치 독처럼 다가왔던 <아몬드>. 이제 시작합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터미아)를 앓고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프롤로그에서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을 뚫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간략히 각 장마다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1장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배경 설명(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가족에게 일어난 대형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2장에서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가족을 잃고 주인공의 주변에 새로 나타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새로운 보호자, 친구, 사랑)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3장에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성장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4장에서는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방황을 멈추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잃어버린 감정의 회복, 가족의 귀환, 친구와의 만남 등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결핍을 가지고 있다. 어른의 부재, 사랑의 부재, 감정의 부재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를 쓴다. 한 아이는 엄마의 감정 교육을 착실히 따르고, 또 한 아이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달리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통해 우리 삶에 진짜 결여된 것은 무엇이고, 또 우리의 의식 저편에 자리한 진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불어 어떤 의미로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뉴스를 통해 흔하게 들려오는 칼부림 사고,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피해자, 목격자, 가해자 등의 상관관계를 다른 각도와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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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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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윤재)
-선천적인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앓고 있음
-엄마의 교육과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움
-가족은 나, 엄마, 할멈 세 명(아빠는 태어나기 전 돌아가심)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로 매번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함
-크리스마스 이브 생일에 가족이 함께 외식을 나갔다가 칼부림 사건을 경험하면서 할멈을 잃고,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짐


■엄마(지은)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엄마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음
-자두맛 사탕을 좋아함(유일한 할멈과의 공통점)
-반대하는 결혼 후 임신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남편의 좌판을 덮치면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음
-그렇게 7년이 흐른 후 버티고 버티다가 혼자서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할멈에게 연락
-할멈과 함께 살게 된 이후 안정을 찾음(헌책파는 직업과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하게 됨)
-헌책방은 수유동 주택가 골목에 열었음. 집은 가게 뒤에 딸려 있어 직업과 생활을 자유롭게 오고 감


■할멈
-자두맛 사탕을 좋아함(유일하게 딸과 통하는 부분)
-윤재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 삶에 지친 엄마가 SOS를 치면서 만나게 됨
-엄마와는 반대되는 스타일

※추후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인해 윤재는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됨


■심재영
-심박사라고 불림
-책방이 있는 건물 주
-과거 대학병원 심장외과 의사였음
-50대 초반이지만 머리가 눈처럼 하얀색임
-새로운 윤재의 보호자가 되어 도움을 줌
-엄마가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부탁해 놓았음
-바쁜 일정 속에 가족을 신경 쓰지 못하던 그는 아내와 모처럼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아내가 심장을 부여잡고 사망하게 됨. 이 일로 그는 병원을 떠남
-그리고 항상 자신을 위해 빵을 구워주었던 아내를 생각하며 빵집을 열게 됨


■윤권호
-윤재와 괴물을 만나게 한 사람, 윤재의 삶에 그 아이를 끌어들인 사람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
-윤재에게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아들을 대신해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함
-부유하고 탄탄한 직업을 가진 그는 13년 전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 일로 아내는 몸져눕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남
-얼마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보호소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아 다시 아들을 만나게 됨


■윤권호 아내
-한때 잘나가던 기자
-모처럼 휴가를 내고 아이와 둘이 놀이동산에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림
-스스로를 책망하다 서서히 병들게 됨
-아들 대신 윤재를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


■윤이수(=곤이)
-키가 작고 깡마른 외모
-얼마 전에 온 전학생
-윤권호의 아내 장례식장에서의 윤재와 두 번째로 만남
-소년원을 나와 윤재와 같은 학교에 전학 오게 된 것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 대림동 쪽방촌에서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살았음
-그러다가 출입국 관리소에서 검문이 나오면서 노부부는 도망가고 남아있던 곤이는 이집 저집 전전하다 아동 보호 시설로 감
-결국 이런저런 사고를 치면서 소년원을 들락거리게 됐고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스스로 '곤이'라는 이름을 짓게 됨


■이도라
-곤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
-윤재의 첫사랑
-안경을 쓰고 있음
-달리기를 좋아함


■철사형
-곤이의 소년원 선배
-미의 상징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잔인한 일을 많이 저지름


■찐빵
-곤이와 어울리기 시작한 나쁜 무리 아이들 중 하나
-후에 윤재가 곤이를 찾는데 철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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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의 병 '감정 표현 불능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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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전혀 웃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생후 3일이면 아기들은 웃기 시작하는데, 100일 가까워지도록 꿈쩍도 안 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그래선지 엄마는 단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무뚝뚝한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하려 했다. 하지만 돌이 지날 무렵 진짜 걱정할 만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엄마가 분유를 타느라 잠깐 뒤돌아 있는 사이 윤재가 뜨거운 물이 든 빨간 주전자에 손을 뻗었고 다음 순간 주전자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화상을 입게 된다.

엄마는 이후 윤재가 뜨거운 물이나 빨간 주전자를 무서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도 주전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아랫집의 애꾸눈 영감도, 영감이 빌라 화단에 매어 놓은 커다란 검둥개도 윤재에게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는데, 심지어 그 개가 옆집 아이를 물어 피가 나게 하는 걸 본 뒤에도 그랬다.

그런 몇몇 일들을 겪으며 엄마는 때때로 윤재의 지능이 낮은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그럴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윤재라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린 엄마는 엄마답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자 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만 네 살이 지나도록 좀처럼 웃지 않던 아이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한 엄마는 윤재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게 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사진을 보여주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윤재는 답을 몰라 옆에 앉은 엄마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얼마 후 엄마는 우주여행을 간다며 윤재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도착한 장소가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머리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는 어쩐 일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이후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윤재의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하고, 윤재에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는데, 그래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봤다.

아몬드는 엄마가 기대는 희망 중 하나이자,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윤재는 아몬드를 먹을 때마다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며 먹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윤재의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윤재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윤재에게 있어서는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윤재에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터미아로, 다른 자폐 소견은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 보단, 잘 느끼질 못하는 것을 말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윤재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것인데 윤재는 운이 더 나빴다. 공포심 둔화 외에 전반적인 감정 불능까지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렇게까지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도 딱히 지능 저하의 소견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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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 엄마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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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의 엄마가 윤재를 위해 한 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사들의 솔깃한 제안 거절
-뇌에 관한 여러 책을 섭렵하며 공부
-아이가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따로 감정교육
-절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음


엄마는 색종이에 여러 개의 문장을 쓴 다음 커다란 전지에 그것들을 일일이 붙였다. 엄마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고,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습득할 '본능적인' 규범들을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암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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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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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소년이다. 수유동의 한 주택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엄마의 헌책방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헌책방은 생각보다 엄마의 수완이 좋은 건지 장사가 잘되고 있었고 덕분에 크게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이브, 윤재의 생일을 맞아 세 가족은 시내로 외식을 하러 간다. 모처럼 즐겁게 웃으며 냉면을 먹고 나오던 길, 엄마와 할멈은 먼저 나가 눈 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고, 윤재는 두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자두맛 사탕을 두 손 가득 받아들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어떤 남자가 길거리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칼부림하고 있었는데, 그 피해자 중에는 엄마와 할멈도 포함돼 있었다. 엄마는 첫 번째 희생자로, 할멈은 문 앞을 가로막으며 내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는데 그 자세로 사망하게 된다.

가해자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유서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는데, 그저 그날 웃고 있었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던 것이다.

희생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엄마였는데,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합동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는데, 할멈을 홀로 보내며 윤재는 울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숙덕거렸으나 윤재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장례를 모두 마친 윤재는 매일 엄마의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의사는 엄마가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매일 방문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윤재, 그럼에도 그는 할멈의 사망 보험금이 어느 정도 나와 당장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던 어느 날 중년의 남자가 책방에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는데, 2층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그는 같은 건물 2층의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 '심재영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심박사라고 불리는 헌책방의 건물주였다. 그는 엄마와 친분이 있었고, 살아생전 엄마가 부탁을 한 일이 있다며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그리고 고민 끝에 윤재는 보호자를 자청하는 그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한편, 윤재는 이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을 엄마를 위해 학교에 열심히 다니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다.

첫 학기부터 담임의 말실수로 인해 윤재의 사생활이 소문나며 윤재는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유명세를 타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데 학교를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심박사와 의논한 끝에 학교는 계속 다니기로 한다.

여느 날과 같이 엄마 병실에 가던 어느 날,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뒤로도 병원에 갈 때면 남자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책방으로 직접 찾아와 뜬금없는 부탁을 하게 된다.

죽어가는 아내에게 함께 가서 잃어버린 아들 역할을 대신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평소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주라는 할멈의 말을 되새기며 윤재는 그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아줌마를 만난 후 얼마 후 아줌마는 사망하게 되고 윤재는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얼마 전 전학 온 전학생 곤을 두 번째로 마주하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곤은 자신이 마지막에 아들 노릇을 했던 아줌마의 친아들로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곤은 윤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지속적으로 윤재를 괴롭히지만, 윤재는 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친 그는 공식적인 결판을 선언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나오라고 한 장소가 평소 점심을 먹고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윤재를 낚아챈 곤은 윤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 일이 알려지면서 곤이는 1주일간 정학을 받게 된다.

자신의 부탁으로 윤재가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곤이의 아빠 권호는 사과를 하며 다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지만 윤재는 이를 거절한다.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던 윤재에게 곤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곤이는 자주 책방에 들렀고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친구가 된다. 본격적으로 곤이의 사정을 알고 가까워진 때는 여름방학 때로, 이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며 곤이가 16년간 살아왔던 삶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된다.

윤재는 곤이를 통해 세상과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기기 시작했는데 이 말을 들은 심박사는 매우 기뻐했다.

윤재는 여러 번 버려진 곤이와 다르게 끝까지 자신의 손을 놓지 않고 이끌어준 할멈과 엄마의 온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곤이 외에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도라'다. 도라는 입학식 날 처음 마주치고, 4월 초까지 도라가 자주 수업에 빠지면서 학교에서는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개학 후 가을을 맞이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도라를 만나며 윤재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도라는 육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전학을 가지 않으면서 우연히 도서실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렇게 친구가 된다.

한편 엄마는 누워 지낸 지 아홉 달 만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러나 말 그대로 눈꺼풀을 여닫는 것뿐이지 깨어난 건 아니었다. 책방은 손님이 끊긴지 꽤 되면서 이제 그만 접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윤재는 심 박사에게 책방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추후 고시원 방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책방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학교에 기증할 책을 도서실에 방문하면서 혼자 몸을 풀고 있는 도라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후 도라가 책방에 찾아오고 서서히 윤재는 마음에 평소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심박사는 이를 두고 자라고 있는 거라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도라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곤이에게는 비밀을 만드는 기분이 들었는데 둘이 우연인지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어 더 그랬다. 그러다 둘이 입맞춤하는 장면을 곤이가 목격하게 되고, 곤이는 2학기 때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 곤이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제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는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음에도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굳이 정정하거나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았다.

한껏 날이 서서 사람들이 믿는 대로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내 강해지고 싶다며 집을 떠나 철사형이라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그때만 해도 곤이는 새로 찾은 친부에게서도, 친구인 윤재에게서도 믿음이나 안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였는데,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추스르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 강한 사람을 찾아 떠난 것이다.

추후 도난 사건의 범인은 다른 아이로 밝혀졌는데,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적은 돈이 아니라 누명을 씌우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상황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고, 곤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윤 교수는 야위어 있었는데 친아들을 찾아놓고도 한꺼번에 닥친 불행을 감내하지 못해 아들에게 마음을 써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곤이에게 연락받으면 꼭 알려달라며, 다시 시작해 볼 기회를 얻고 싶다는 소망을 윤재에게 전한다. 윤재 또한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는데, 곤이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곤이를 대신해 아들인 척해서 미안하다는 말, 비밀을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말, 너를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말이다.

결국 윤재는 곤이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최근 곤이와 어울려 지내던 찐빵이라는 녀석을 찾아가 곤이의 행방을 묻는다. 찐빵은 쉽게 곤이의 행선지를 알려주고 이로써 윤재는 철사형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그전에 도라에게 들려 곤이와 친구가 된 과정을 설명하고 곤이가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밝힌다. 그렇게 곤이를 찾아간 어느 지하 공간에서 곤이는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혼자 무릎을 껴안은채 구석에 박혀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곤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중 철사형이 나타나게 되고 그는 곤이에게 칼을 주며 위협을 하라고 시킨다. 이에 곤이는 윤재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벽에 밀쳐진 윤재는 벽에 찔려 다리에서 피가 흐르게 된다.

이를 본 곤이는 흐느끼기 시작하고, 윤재는 계속해서 곤이를 설득하며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울음을 삼키며 욕을 해대기 시작하는 곤과 계속해서 설득하는 윤재를 바라보던 철사는 그냥 보내줄 수 없다며 어디까지 친구를 위해 견딜 수 있는지 보겠다며 직접 윤재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울부짖으며 그만두라고 말하는 곤이를 향해 철사는 칼날을 들이밀었고, 이를 저지다가 윤재는 곤을 대신해 칼을 맞게 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곤이가 철사를 찔렀다고 한다. 다행히 철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곤이는 정당방위로 처리될 것 같다는 내용까지 듣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윤재는 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입원해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가슴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탁,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더니 마침내 둑이 터진 듯 울컥, 윤재의 안에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깨어났다 잠에 들었다를 반복하며 윤재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완전히 회복해서 다시 걷게 되기까지는 몇 달 가량이 걸렸는데, 눈을 떴을 때 눈 앞엔 심박사가 있었고, 그를 통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된다.

윤 교수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오직 곤이만을 위해서 살아보는 것으로 삶을 바꿔보기로 결심했고, 윤 교수는 끝까지 애쓸 거라고 다짐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도라는 메모를 하나 남기고 떠났는데, 육상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소식이었다. 곤이는 편지를 남겼는데, 진심 어린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윤재는 표정이 풍부해졌고 그런 변화를 감지한 심박사는 MRI 를 찍어보자는 권유를 하게 된다. 어쩐지 처음부터 병명이 의심스러웠다며, 어쩌면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 그는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는데 그곳에는 환히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윤재가 누워 있는 동안 거짓말처럼 엄마가 깨어난 것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엄마가 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게 말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윤재가 해냈다고. 어느새 두 모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필로그>
스무 번째 봄. 윤재는 학교를 졸업했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 곤이를 보러 갈 예정이다.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던 착한 친구를. 윤재는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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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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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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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 대해서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그리고 곱씹다가 내린 결론은,' 반복한다'가 어쩌면 '익숙함'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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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엄마와 할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할멈은 영혼과 육신이 모두, 엄마는 껍데기만 남은 채로. 이제 내가 아닌 누구도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야 했다.

장례가 끝난 다음, 정확히 내 생일로부터 여드레 후, 새해가 됐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았다. 이제 완전히 혼자였다.
70~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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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그동안 들인 엄마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앓으며 혹여나 남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까 매우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래서 적어도 남들 사이에 섞여 살수 있도록 기본적인 감정 표현에 대한 교육을 끊임없이 한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보듬어 주고 아껴주었던 엄마와 할멈을 위해 끝까지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교육을 통해 학습된 상황으로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실행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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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앨 좋아하는 걸까요?
(...)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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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텍스트를 읽듯 감정을 교육으로 배우고 인지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마저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거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심박사는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얘기한다며 정정해 준다.

어쩌면 이 문장은 아이가 심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머리'를 '감정'으로 치환함으로써 텍스트로 보여준 문장이 아닐까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과 감정을 느끼는 못하는 아이의 갭 차이를 분명히 나타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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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2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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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와 곤이는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타인이 느끼는 이수와 곤이는 다른 사람이다. 더불어 이수 자신이 느끼는 이수와 곤이도 분명 차이가 있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의미를 말하지만 다른 수백 가지의 언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전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가 같은 것을 공유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언어로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윤재의 엄마는 그 어려운 걸 매번 고민하고 공부하며 아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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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2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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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여태껏 서술된 문장들이 보통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진행되었다면, 이 문장만큼은 윤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이론적으로, 교육을 통해 감정을 배운 윤재가 봤을 때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고 위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모두 목도한 윤재는 아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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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쉽게,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고,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실에 분노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 생각은 조금 더 합리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람들이 쉽게 감사의 마음을 잊는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명심하고 새겨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288페이지 中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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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아니고 본편과 연결되는 외전의 단편에 실려있는 문장인데, 어쩐지 공감 가는 내용이라 함께 가져와봤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라,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터라 이 심정이 너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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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올바르게 쓰이기 위해서는 이성의 기능이 선행돼야 하고, 적절한 온도로 이루어진 이성과 감정의 쓰임은 오로지 교육이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세 번째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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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을 절실히 공감한다. 감정이 올바로 쓰이지 못하기에 여기저기서 칼부림이 일어나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다른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이 모든 것은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감정이 앞선 세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한쪽의 과함 혹은 쏠림 현상이 곧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교육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공교육이 무너진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의 시스템을 다시 세우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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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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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더 좋은 순간,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도 있었던 책이지만 한순간에 그것은 무너져 내렸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여겨져 버린 <아몬드>.

감정, 교육, 인간됨, 사랑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나와의 만남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그저 허물뿐인 한낱 거짓 혹은 위선적인 이야기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글을 쓴 이가, 출판사가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준 행동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저 입바른 소리를 쓴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어른들의 행동양식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독자도 작가를 통해 영향을 받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은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인 윤재만큼은 힘든 일을 겪고도 혼자서 꿋꿋이 살아간다. 도움을 청할 줄도, 받을 줄도 아는 아이로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는 부족함 속에 최선을 다한 할멈과 엄마의 온기와 노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체온을 통해 전해지는, 행동을 통해 알게 되는 무언의 그것을 머리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부자에 멀쩡한 부모를 두고도 곤이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어쩌다 엄마를 따라간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박하고 거친 모습을 가지게 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후 어렵사리 친부모를 찾았지만 이미 엄마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태로 숨을 거둔 이후였고, 아빠는 자신의 슬픔에 젖어 아들을 돌보지 않게 되면서 또다시 곤이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더 강해지는 방법을 택한다.

도라는 잘 달리고픈 꿈을 가지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는 부부 싸움으로 바쁘다. 아이는 부부들의 방치 속에 죽을뻔한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느 선량한 시민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다.

이후 고등학교를 육상 전문학교로 전학 가고 싶어 하지만 좌절된다. 도라는 또래에 잘 섞여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의 방어막을 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롯이 달리는 것에 투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살던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이 달라지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절대 일어나지 못할 거라던 윤재의 엄마가 결국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줬고, 커리어에 온 힘을 쏟던 아빠가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곤이를 위해 온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도라의 부모님은 결국 아이가 원하는 육상 학교로 도라를 전학시켜 준다.

이처럼 어른이 변하면 아이가 변한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변하면 독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의 진심, 필력, 문체로 작가를 만나기 때문이다.

처음 <아몬드>가 출간된 2017년과 지금 2024년도의 <아몬드>가 과연 같은 아몬드일까? 문득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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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특별부록으로 담겨있는 외전은 별도로 이 기록에 담지 않았다. 본편과 연결되면서도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입장을 오가며 우리 또한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복잡 미묘한 심리가 얽혀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도 들어 남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숨겨진 도라의 이야기, 그리고 상자속에 숨어사는 현대인들의 감춰진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공감가는 사람도 많을듯 하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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