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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평점 :
"읽기 전부터 보이콧하고 싶었던 책"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한 번씩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서평단 모집을 해놓고 막상 책을 보내지 않거나 잠수타는곳,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는 곳,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압박하는 곳 등.
이번에 만난 이 책의 출판사 역시 비슷한 류의 경험을 안긴 곳으로 이번에는 몇 가지를 믹스하여 '뭐 이런 곳이 다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다.
처음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교보 이주의 북모닝'이라는 평소 보지 못했던 수식어가 덧붙여져 있었으나 나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한 가지 더해 특정 기간 내 서평을 작성해 달라는 내용이 강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그것 역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기간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고 평소와 같은 약 2주간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출판사에서 실수로 제때 책을 보내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서평 마감 기일은 연장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어쩌라는 거지?)
한 번씩 책의 출간이 늦춰지거나 일정상 늦게 책이 도착하는 경우가 있어 이제는 그냥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던 것이다.(이럴때 보통 함께 마감기한도 변경된다)
마감기한은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픽스해놓고, 책은 출판사의 실수로 약 일주일 후에 보내면 결국 똥줄 타는 건 누구다? 바로 책을 읽고 써야 하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뒤늦게 보냈다는 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쨌든 중간에 연락을 받은 게 있고, 일정은 빠듯해서 일단 책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 한밤중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발견한 버려진 택배 봉투 하나. (참고로 주말이라 오늘 받지 못하면 다음 주에 받는 상황이었음)
혹시나 싶어 살펴봤는데, 기다리던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아니, (말을 잃음) 뭐 이런 @#$@% 같은. 송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화번호가 다른 번호로 잘못 기재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하. 늦게 보낸 것도 모자라 또 다른 실수까지. (이게 실수인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진짜 드물게 보낸 사람이 자기가 도착한 거 확인하려고 자기 번호를 써넣는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급하다는 택배를 확인할 방법이 있나? 별도로 송장번호나 택배사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동동거리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이거 안 하면 안 되나? 다시 반품하면 안 되나? 진짜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더불어 꼭 일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중간에 이벤트를 진행한 분께 들었는데, 마케팅을 하기로 한 일정이 정해져 있었던 것. (사실 독자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출판사에서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을 꼭 이렇게 독자가 맞춰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음)
그런데 정작 작가나 출판사가 이렇게 신경을 안 쓴다고? 이거 작가가 교보 안티인가? 아니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해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했는데 작가가 창비에서 책을 냈다가 문제가 있어 1인 출판사를 냈고 거기서 이 책을 재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인 출판사라고 하니, 직원이 작가 혼자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케팅 일정 잡아놓고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행동을 취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똥 싸질러 놓고 엄한 사람에게 수습해 달라는 꼴이 아닌가?
실수는 한 번도 피해야 할 상황인데, 연달아 두 번이나 해놓고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도 없다. 이미 짜인 일정은 빡빡한데, 내 몸 상하고, 시간 버리고, 노력을 해가며 왜 이 책을 무리하게 읽고 써야 하는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2017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후 베스트셀러까지 오르며 꽤 승승장구했던 것 같은데, 아마 지금의 상황을 두고 '초심을 잃어버린 배부른 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런 마인드로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고 유통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주변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책에 쓴 내용까지 솔직한 진심을 다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 세 개의 작가의 말을 실었는데, 어쩐지 마지막 세 번째 작가의 말에 쓰인 글은 위선 혹은 가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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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과 오해, 누군가를 악인으로 몰거나 쉽게 판단해버리는 일들이, 많은 경우 이성과 감정의 혼돈과 오용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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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만 질책하는 사람은 어쩌면 작가(혹은 출판사) 자신이 아닐지.
물론 안타까운 오해와 누군가를 몰아서 악인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다즐링이라는 출판사와 작가는 그 범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문제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과 기업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전문가를 쓰시길, 그러라고 각종 전문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송받기까지 지난한 과정, 일정에 쪼이며 맞춰야 하는 상황, 덕분에 어그러진 나의 삶과 일정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 (별도 원고료를 받아도 이렇게는 하고 싶지 않음. 하물며 책 한 권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음)
어쨌든 순전이 나의 책임감과 중간에서 소통을 잘해준 분을 위해, 그리고 하루빨리 손에서 털어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책도 읽고 글도 남겨본다.(이제 그만 빠이 하자)
나의 루틴을 깨기 위해 마치 독처럼 다가왔던 <아몬드>. 이제 시작합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터미아)를 앓고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프롤로그에서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을 뚫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간략히 각 장마다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1장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배경 설명(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가족에게 일어난 대형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2장에서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가족을 잃고 주인공의 주변에 새로 나타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새로운 보호자, 친구, 사랑)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3장에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성장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4장에서는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방황을 멈추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잃어버린 감정의 회복, 가족의 귀환, 친구와의 만남 등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결핍을 가지고 있다. 어른의 부재, 사랑의 부재, 감정의 부재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를 쓴다. 한 아이는 엄마의 감정 교육을 착실히 따르고, 또 한 아이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달리기를 하며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통해 우리 삶에 진짜 결여된 것은 무엇이고, 또 우리의 의식 저편에 자리한 진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불어 어떤 의미로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뉴스를 통해 흔하게 들려오는 칼부림 사고,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피해자, 목격자, 가해자 등의 상관관계를 다른 각도와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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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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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윤재)
-선천적인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앓고 있음
-엄마의 교육과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움
-가족은 나, 엄마, 할멈 세 명(아빠는 태어나기 전 돌아가심)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로 매번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함
-크리스마스 이브 생일에 가족이 함께 외식을 나갔다가 칼부림 사건을 경험하면서 할멈을 잃고,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짐
■엄마(지은)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엄마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음
-자두맛 사탕을 좋아함(유일한 할멈과의 공통점)
-반대하는 결혼 후 임신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남편의 좌판을 덮치면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음
-그렇게 7년이 흐른 후 버티고 버티다가 혼자서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할멈에게 연락
-할멈과 함께 살게 된 이후 안정을 찾음(헌책파는 직업과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하게 됨)
-헌책방은 수유동 주택가 골목에 열었음. 집은 가게 뒤에 딸려 있어 직업과 생활을 자유롭게 오고 감
■할멈
-자두맛 사탕을 좋아함(유일하게 딸과 통하는 부분)
-윤재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 삶에 지친 엄마가 SOS를 치면서 만나게 됨
-엄마와는 반대되는 스타일
※추후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인해 윤재는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됨
■심재영
-심박사라고 불림
-책방이 있는 건물 주
-과거 대학병원 심장외과 의사였음
-50대 초반이지만 머리가 눈처럼 하얀색임
-새로운 윤재의 보호자가 되어 도움을 줌
-엄마가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부탁해 놓았음
-바쁜 일정 속에 가족을 신경 쓰지 못하던 그는 아내와 모처럼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아내가 심장을 부여잡고 사망하게 됨. 이 일로 그는 병원을 떠남
-그리고 항상 자신을 위해 빵을 구워주었던 아내를 생각하며 빵집을 열게 됨
■윤권호
-윤재와 괴물을 만나게 한 사람, 윤재의 삶에 그 아이를 끌어들인 사람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
-윤재에게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아들을 대신해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함
-부유하고 탄탄한 직업을 가진 그는 13년 전 아들을 잃어버렸고 그 일로 아내는 몸져눕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남
-얼마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보호소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아 다시 아들을 만나게 됨
■윤권호 아내
-한때 잘나가던 기자
-모처럼 휴가를 내고 아이와 둘이 놀이동산에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림
-스스로를 책망하다 서서히 병들게 됨
-아들 대신 윤재를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
■윤이수(=곤이)
-키가 작고 깡마른 외모
-얼마 전에 온 전학생
-윤권호의 아내 장례식장에서의 윤재와 두 번째로 만남
-소년원을 나와 윤재와 같은 학교에 전학 오게 된 것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 대림동 쪽방촌에서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살았음
-그러다가 출입국 관리소에서 검문이 나오면서 노부부는 도망가고 남아있던 곤이는 이집 저집 전전하다 아동 보호 시설로 감
-결국 이런저런 사고를 치면서 소년원을 들락거리게 됐고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스스로 '곤이'라는 이름을 짓게 됨
■이도라
-곤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
-윤재의 첫사랑
-안경을 쓰고 있음
-달리기를 좋아함
■철사형
-곤이의 소년원 선배
-미의 상징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잔인한 일을 많이 저지름
■찐빵
-곤이와 어울리기 시작한 나쁜 무리 아이들 중 하나
-후에 윤재가 곤이를 찾는데 철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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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의 병 '감정 표현 불능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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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전혀 웃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생후 3일이면 아기들은 웃기 시작하는데, 100일 가까워지도록 꿈쩍도 안 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그래선지 엄마는 단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무뚝뚝한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하려 했다. 하지만 돌이 지날 무렵 진짜 걱정할 만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엄마가 분유를 타느라 잠깐 뒤돌아 있는 사이 윤재가 뜨거운 물이 든 빨간 주전자에 손을 뻗었고 다음 순간 주전자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화상을 입게 된다.
엄마는 이후 윤재가 뜨거운 물이나 빨간 주전자를 무서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도 주전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아랫집의 애꾸눈 영감도, 영감이 빌라 화단에 매어 놓은 커다란 검둥개도 윤재에게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는데, 심지어 그 개가 옆집 아이를 물어 피가 나게 하는 걸 본 뒤에도 그랬다.
그런 몇몇 일들을 겪으며 엄마는 때때로 윤재의 지능이 낮은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그럴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윤재라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린 엄마는 엄마답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자 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만 네 살이 지나도록 좀처럼 웃지 않던 아이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한 엄마는 윤재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게 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사진을 보여주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윤재는 답을 몰라 옆에 앉은 엄마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얼마 후 엄마는 우주여행을 간다며 윤재를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도착한 장소가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머리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는 어쩐 일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이후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윤재의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하고, 윤재에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는데, 그래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봤다.
아몬드는 엄마가 기대는 희망 중 하나이자,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윤재는 아몬드를 먹을 때마다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며 먹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윤재의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윤재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윤재에게 있어서는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윤재에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터미아로, 다른 자폐 소견은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 보단, 잘 느끼질 못하는 것을 말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윤재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것인데 윤재는 운이 더 나빴다. 공포심 둔화 외에 전반적인 감정 불능까지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렇게까지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도 딱히 지능 저하의 소견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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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 엄마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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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의 엄마가 윤재를 위해 한 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사들의 솔깃한 제안 거절
-뇌에 관한 여러 책을 섭렵하며 공부
-아이가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따로 감정교육
-절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음
엄마는 색종이에 여러 개의 문장을 쓴 다음 커다란 전지에 그것들을 일일이 붙였다. 엄마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고,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습득할 '본능적인' 규범들을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암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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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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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소년이다. 수유동의 한 주택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엄마의 헌책방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헌책방은 생각보다 엄마의 수완이 좋은 건지 장사가 잘되고 있었고 덕분에 크게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이브, 윤재의 생일을 맞아 세 가족은 시내로 외식을 하러 간다. 모처럼 즐겁게 웃으며 냉면을 먹고 나오던 길, 엄마와 할멈은 먼저 나가 눈 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고, 윤재는 두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자두맛 사탕을 두 손 가득 받아들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어떤 남자가 길거리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칼부림하고 있었는데, 그 피해자 중에는 엄마와 할멈도 포함돼 있었다. 엄마는 첫 번째 희생자로, 할멈은 문 앞을 가로막으며 내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는데 그 자세로 사망하게 된다.
가해자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유서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는데, 그저 그날 웃고 있었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던 것이다.
희생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엄마였는데,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합동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는데, 할멈을 홀로 보내며 윤재는 울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숙덕거렸으나 윤재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장례를 모두 마친 윤재는 매일 엄마의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의사는 엄마가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매일 방문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윤재, 그럼에도 그는 할멈의 사망 보험금이 어느 정도 나와 당장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던 어느 날 중년의 남자가 책방에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는데, 2층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그는 같은 건물 2층의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 '심재영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심박사라고 불리는 헌책방의 건물주였다. 그는 엄마와 친분이 있었고, 살아생전 엄마가 부탁을 한 일이 있다며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그리고 고민 끝에 윤재는 보호자를 자청하는 그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한편, 윤재는 이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을 엄마를 위해 학교에 열심히 다니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다.
첫 학기부터 담임의 말실수로 인해 윤재의 사생활이 소문나며 윤재는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유명세를 타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데 학교를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심박사와 의논한 끝에 학교는 계속 다니기로 한다.
여느 날과 같이 엄마 병실에 가던 어느 날,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뒤로도 병원에 갈 때면 남자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책방으로 직접 찾아와 뜬금없는 부탁을 하게 된다.
죽어가는 아내에게 함께 가서 잃어버린 아들 역할을 대신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평소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주라는 할멈의 말을 되새기며 윤재는 그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아줌마를 만난 후 얼마 후 아줌마는 사망하게 되고 윤재는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얼마 전 전학 온 전학생 곤을 두 번째로 마주하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곤은 자신이 마지막에 아들 노릇을 했던 아줌마의 친아들로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곤은 윤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지속적으로 윤재를 괴롭히지만, 윤재는 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친 그는 공식적인 결판을 선언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나오라고 한 장소가 평소 점심을 먹고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윤재를 낚아챈 곤은 윤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 일이 알려지면서 곤이는 1주일간 정학을 받게 된다.
자신의 부탁으로 윤재가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곤이의 아빠 권호는 사과를 하며 다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지만 윤재는 이를 거절한다.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던 윤재에게 곤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곤이는 자주 책방에 들렀고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친구가 된다. 본격적으로 곤이의 사정을 알고 가까워진 때는 여름방학 때로, 이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며 곤이가 16년간 살아왔던 삶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된다.
윤재는 곤이를 통해 세상과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기기 시작했는데 이 말을 들은 심박사는 매우 기뻐했다.
윤재는 여러 번 버려진 곤이와 다르게 끝까지 자신의 손을 놓지 않고 이끌어준 할멈과 엄마의 온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곤이 외에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도라'다. 도라는 입학식 날 처음 마주치고, 4월 초까지 도라가 자주 수업에 빠지면서 학교에서는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개학 후 가을을 맞이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도라를 만나며 윤재에게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도라는 육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전학을 가지 않으면서 우연히 도서실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렇게 친구가 된다.
한편 엄마는 누워 지낸 지 아홉 달 만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러나 말 그대로 눈꺼풀을 여닫는 것뿐이지 깨어난 건 아니었다. 책방은 손님이 끊긴지 꽤 되면서 이제 그만 접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윤재는 심 박사에게 책방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추후 고시원 방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책방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학교에 기증할 책을 도서실에 방문하면서 혼자 몸을 풀고 있는 도라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후 도라가 책방에 찾아오고 서서히 윤재는 마음에 평소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심박사는 이를 두고 자라고 있는 거라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도라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곤이에게는 비밀을 만드는 기분이 들었는데 둘이 우연인지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어 더 그랬다. 그러다 둘이 입맞춤하는 장면을 곤이가 목격하게 되고, 곤이는 2학기 때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 곤이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제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는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음에도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굳이 정정하거나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았다.
한껏 날이 서서 사람들이 믿는 대로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내 강해지고 싶다며 집을 떠나 철사형이라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그때만 해도 곤이는 새로 찾은 친부에게서도, 친구인 윤재에게서도 믿음이나 안정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였는데,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추스르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 강한 사람을 찾아 떠난 것이다.
추후 도난 사건의 범인은 다른 아이로 밝혀졌는데,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목적은 돈이 아니라 누명을 씌우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상황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고, 곤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윤 교수는 야위어 있었는데 친아들을 찾아놓고도 한꺼번에 닥친 불행을 감내하지 못해 아들에게 마음을 써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곤이에게 연락받으면 꼭 알려달라며, 다시 시작해 볼 기회를 얻고 싶다는 소망을 윤재에게 전한다. 윤재 또한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는데, 곤이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곤이를 대신해 아들인 척해서 미안하다는 말, 비밀을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말, 너를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말이다.
결국 윤재는 곤이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최근 곤이와 어울려 지내던 찐빵이라는 녀석을 찾아가 곤이의 행방을 묻는다. 찐빵은 쉽게 곤이의 행선지를 알려주고 이로써 윤재는 철사형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그전에 도라에게 들려 곤이와 친구가 된 과정을 설명하고 곤이가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밝힌다. 그렇게 곤이를 찾아간 어느 지하 공간에서 곤이는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혼자 무릎을 껴안은채 구석에 박혀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곤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던 중 철사형이 나타나게 되고 그는 곤이에게 칼을 주며 위협을 하라고 시킨다. 이에 곤이는 윤재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벽에 밀쳐진 윤재는 벽에 찔려 다리에서 피가 흐르게 된다.
이를 본 곤이는 흐느끼기 시작하고, 윤재는 계속해서 곤이를 설득하며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울음을 삼키며 욕을 해대기 시작하는 곤과 계속해서 설득하는 윤재를 바라보던 철사는 그냥 보내줄 수 없다며 어디까지 친구를 위해 견딜 수 있는지 보겠다며 직접 윤재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울부짖으며 그만두라고 말하는 곤이를 향해 철사는 칼날을 들이밀었고, 이를 저지다가 윤재는 곤을 대신해 칼을 맞게 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곤이가 철사를 찔렀다고 한다. 다행히 철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곤이는 정당방위로 처리될 것 같다는 내용까지 듣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윤재는 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입원해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가슴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탁,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더니 마침내 둑이 터진 듯 울컥, 윤재의 안에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깨어났다 잠에 들었다를 반복하며 윤재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완전히 회복해서 다시 걷게 되기까지는 몇 달 가량이 걸렸는데, 눈을 떴을 때 눈 앞엔 심박사가 있었고, 그를 통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된다.
윤 교수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오직 곤이만을 위해서 살아보는 것으로 삶을 바꿔보기로 결심했고, 윤 교수는 끝까지 애쓸 거라고 다짐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도라는 메모를 하나 남기고 떠났는데, 육상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소식이었다. 곤이는 편지를 남겼는데, 진심 어린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윤재는 표정이 풍부해졌고 그런 변화를 감지한 심박사는 MRI 를 찍어보자는 권유를 하게 된다. 어쩐지 처음부터 병명이 의심스러웠다며, 어쩌면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 그는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는데 그곳에는 환히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윤재가 누워 있는 동안 거짓말처럼 엄마가 깨어난 것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엄마가 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게 말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윤재가 해냈다고. 어느새 두 모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필로그>
스무 번째 봄. 윤재는 학교를 졸업했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 곤이를 보러 갈 예정이다.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던 착한 친구를. 윤재는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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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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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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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 대해서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그리고 곱씹다가 내린 결론은,' 반복한다'가 어쩌면 '익숙함'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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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엄마와 할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할멈은 영혼과 육신이 모두, 엄마는 껍데기만 남은 채로. 이제 내가 아닌 누구도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야 했다.
장례가 끝난 다음, 정확히 내 생일로부터 여드레 후, 새해가 됐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았다. 이제 완전히 혼자였다.
70~7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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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그동안 들인 엄마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앓으며 혹여나 남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까 매우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래서 적어도 남들 사이에 섞여 살수 있도록 기본적인 감정 표현에 대한 교육을 끊임없이 한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보듬어 주고 아껴주었던 엄마와 할멈을 위해 끝까지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교육을 통해 학습된 상황으로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실행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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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앨 좋아하는 걸까요?
(...)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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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텍스트를 읽듯 감정을 교육으로 배우고 인지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마저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거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심박사는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얘기한다며 정정해 준다.
어쩌면 이 문장은 아이가 심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머리'를 '감정'으로 치환함으로써 텍스트로 보여준 문장이 아닐까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과 감정을 느끼는 못하는 아이의 갭 차이를 분명히 나타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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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23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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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와 곤이는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타인이 느끼는 이수와 곤이는 다른 사람이다. 더불어 이수 자신이 느끼는 이수와 곤이도 분명 차이가 있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의미를 말하지만 다른 수백 가지의 언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전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가 같은 것을 공유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언어로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윤재의 엄마는 그 어려운 걸 매번 고민하고 공부하며 아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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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26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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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여태껏 서술된 문장들이 보통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진행되었다면, 이 문장만큼은 윤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이론적으로, 교육을 통해 감정을 배운 윤재가 봤을 때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고 위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모두 목도한 윤재는 아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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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쉽게,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고,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사실에 분노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내 생각은 조금 더 합리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람들이 쉽게 감사의 마음을 잊는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명심하고 새겨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288페이지 中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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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아니고 본편과 연결되는 외전의 단편에 실려있는 문장인데, 어쩐지 공감 가는 내용이라 함께 가져와봤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라,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터라 이 심정이 너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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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올바르게 쓰이기 위해서는 이성의 기능이 선행돼야 하고, 적절한 온도로 이루어진 이성과 감정의 쓰임은 오로지 교육이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세 번째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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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을 절실히 공감한다. 감정이 올바로 쓰이지 못하기에 여기저기서 칼부림이 일어나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다른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이 모든 것은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감정이 앞선 세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한쪽의 과함 혹은 쏠림 현상이 곧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교육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공교육이 무너진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의 시스템을 다시 세우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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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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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더 좋은 순간,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도 있었던 책이지만 한순간에 그것은 무너져 내렸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여겨져 버린 <아몬드>.
감정, 교육, 인간됨, 사랑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나와의 만남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그저 허물뿐인 한낱 거짓 혹은 위선적인 이야기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글을 쓴 이가, 출판사가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준 행동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저 입바른 소리를 쓴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어른들의 행동양식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독자도 작가를 통해 영향을 받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은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인 윤재만큼은 힘든 일을 겪고도 혼자서 꿋꿋이 살아간다. 도움을 청할 줄도, 받을 줄도 아는 아이로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로는 부족함 속에 최선을 다한 할멈과 엄마의 온기와 노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지만, 체온을 통해 전해지는, 행동을 통해 알게 되는 무언의 그것을 머리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면, 부자에 멀쩡한 부모를 두고도 곤이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어쩌다 엄마를 따라간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박하고 거친 모습을 가지게 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후 어렵사리 친부모를 찾았지만 이미 엄마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태로 숨을 거둔 이후였고, 아빠는 자신의 슬픔에 젖어 아들을 돌보지 않게 되면서 또다시 곤이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더 강해지는 방법을 택한다.
도라는 잘 달리고픈 꿈을 가지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는 부부 싸움으로 바쁘다. 아이는 부부들의 방치 속에 죽을뻔한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느 선량한 시민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다.
이후 고등학교를 육상 전문학교로 전학 가고 싶어 하지만 좌절된다. 도라는 또래에 잘 섞여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의 방어막을 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롯이 달리는 것에 투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살던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이 달라지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절대 일어나지 못할 거라던 윤재의 엄마가 결국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줬고, 커리어에 온 힘을 쏟던 아빠가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곤이를 위해 온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도라의 부모님은 결국 아이가 원하는 육상 학교로 도라를 전학시켜 준다.
이처럼 어른이 변하면 아이가 변한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변하면 독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의 진심, 필력, 문체로 작가를 만나기 때문이다.
처음 <아몬드>가 출간된 2017년과 지금 2024년도의 <아몬드>가 과연 같은 아몬드일까? 문득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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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특별부록으로 담겨있는 외전은 별도로 이 기록에 담지 않았다. 본편과 연결되면서도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입장을 오가며 우리 또한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복잡 미묘한 심리가 얽혀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도 들어 남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숨겨진 도라의 이야기, 그리고 상자속에 숨어사는 현대인들의 감춰진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공감가는 사람도 많을듯 하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