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가족의 사계 컬러링북 - 색칠할수록 행복해지는
전선진 지음 / 마음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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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곧 만나게 될 긴 겨울. 올해는 유난히 더 추울 거라는 소식이 들리는 걸로 봐선, 역시 집콕, 방콕이 최고일 듯하다. 그리고 그런 방구석 생활을 즐기기 위한 핫 아이템 중 하나로, 컬러링 북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한다.

사각사각 스케치에 맞게 색칠하며 힐링의 시간도 가지고, 나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또 파릇한 새봄을 맞을 시기가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이번에 만나 볼 컬러링북은 <판다 가족의 사계 컬러링북>으로, 사계절을 보내는 판다 가족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봄에는 꽃과 어우러지는 판다의 모습, 여름에는 물장구치며 여름을 나는 모습, 가을에는 낙엽에 뒹굴며 풍경을 즐기는 모습, 겨울에는 썰매 타고 눈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모습들 하나하나에서 어떤 이들은 나처럼 바오 가족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케치를 살펴보면 실제로 바오 가족들을 연상시키는 여러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아이바오가 아가들을 배 위에 올려두고 둥가둥가 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모습, 생일이면 할부지들이 준비해 주던 대나무 생일 케이크의 모습, 해먹에서 늘어져 노는 모습,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풍경을 즐기던 푸바오의 모습, 눈을 유난히 좋아해 썰매 타듯 미끄러지던 모습, 쌍둥이를 연상시키는 모습 등.

현실 속에서는 다섯 가족이 함께 할 수 없지만, 이 스케치에서만큼은 모두 함께 행복한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더 미소가 지어졌다.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사계절 안에서 행복한 판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개구지고 귀여운 아기 판다의 모습부터, 모성애가 돋보이는 판다 모습, 매 계절마다 가족이 함께 계절을 만끽하는 모습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특히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지금은 멀리 중국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푸바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스케치들이었는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라 유난히 더 애틋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상상을 더한 판타지 세계 속에 있는 판다들의 모습은 유쾌하고, 유난히 더 신나 보였는데 색칠하는 나도 덩달아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각 페이지는 간단한 소개글과 함께 저자가 색을 입힌 색칠본과 스케치가 짝을 이루어 마주 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참고해서 비슷한 컬러감으로 색을 채워도 되고, 나만의 개성 있는 컬러로 옷을 입혀도 된다.



누군가 '판다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던데, 그림을 통해 보는 판다도 역시 사랑인 것 같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사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편, 온 가족이 모여있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부산스러움이 한껏 느껴진다.

우당탕탕, 정신없고 어수선해 보이지만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은 여전한 것 같다.


이제 판다들의 사계절을 나만의 컬러로 채워줄 시간이다.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기 판다, 나무 위에서 한껏 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판다, 생일을 맞이한 판다, 겨울 눈썰매를 타며 신나게 즐기고 있는 판다를 당신만의 감성으로 꽉꽉 채워보자.


캠핑을 떠난 판다 가족의 하루는 어땠을까? 캄캄한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엄마 판다는 아기 판다를 재우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을까?
달콤한 사과를 유난히 좋아하는 판다들. 만약 사과가 잔뜩 열린 과수원에 갈 수 있다면, 분명 이들은 온갖 사과들을 섭렵하며 점령하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판다들의 습성을 고려해 보면, 풍월을 즐기는 판다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

힐링 포인트 저격하는 판다 가족의 사계절을 하나하나 채워가며, 나의 사계절을 돌아보고 또 새로운 사계절을 계획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런 생각들만으로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때론 기분이 꿀꿀하거나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의 기분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가벼운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컬러링북이 그런 취미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색을 칠하며 슬픔 한 줌 지우고, 거기에 행복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말이다.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컬러링북을 활용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날리고 기쁨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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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
서달 지음 / 온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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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이 감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 자발적 시한부 기간을 정해두고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처럼, 현재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버텨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이 책에는 당시 저자가 겪었던 감정적 고충이 그대로 담겨 있다.


덤덤하게 써 내려간 그 글에서는 아픔, 상처, 외로움, 힘듦, 상실, 허무함 등의 감정이 엿보이는데, 그 끝에 자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


저자는 꼭 육체적인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인생에 끝없는 고난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또한 매일, 매 순간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매 순간 자발적 시한부로 살며, 시한부 기간을 스스로 늘려오며 살아왔다고 전한다. '이때까지만 버텨보자', '미래의 나는 과연 해냈는지 궁금해서 버티자'라고 되뇌는 스스로의 다짐과 결심 덕에 현재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저자만의 감정적 변화를 계절에 빗대어 담고 있다.


봄은 지독한 외로움을, 여름은 여러 가지의 불안을, 가을은 무뎌짐을 넘어 초연함을, 겨울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왜 계속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혐오로 인해 자기 자신을 해하거나 혹은 삶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하고는 하는데, 저자처럼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한다. 꼭 다른 이들처럼 멀고 먼 미래를 꿈꾸거나 계획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끝날 때까지 삶을 약간 미루고, 또 궁금해서 조금 미루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하며 조금 더 연장하는 삶을 살아봐도 괜찮다.


그렇게 조금씩 연장하다 보면 언젠가 자기혐오가 자기애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조금 오래 걸려도 말이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면서 내가 혐오했던, 실수하는 순간조차 사랑하고 안아줄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면 어떨까?



=====

그 아이는



뭐든지 혼자 힘으로

버텨왔던 그 아이는,


장녀로서 책임감을

가장 먼저 깨달아버린 그 소녀는,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그 어른은,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어려질 곳이 없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서

나는 어디로 무너져야 덜 아플까.

26페이지 中

=====


요즘은 외동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아이가 둘 이상이던 시절, 유독 첫째들은 일찍이 어른이 된다. 자발적 혹은 타의적으로 은연중에 지어지는 책임감은 그들을 일찍이 성숙함에 도달하게 만들어 버린다.


허울은 아이인데, 속은 어른인 아이들을 우리는 애어른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자신을 돌보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어른이 되어서는 이제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다. 어른의 외형을 가지고 내면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가 머물며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라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조금씩 내면의 아이를 성장시켜 보면 어떨까? 나를 보듬고 돌보는 것부터 천천히 그렇게 '여기까지만'이라는 나만의 명제를 정해두고서 그렇게 조금씩 연장해 가는 것이다.



=====

방황하는 일기



초등학교 때 의무감으로 썼던 일기.

그때는 써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미뤄서 쓰기 바빴다.


이제는

기록의 소중함을 알아서

일기를 쓴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 지구에서 잠시 존재했다는 사실은

남기고 싶어서.


아니, 사실은 생전에 전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도망쳐서.


도망친 내가 할 수 있는 건

처절하게 할 말을 적어 가는 것.


그렇게 모인 일기의 조각들은

지금 읽어보니 죄다 유서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못다 한 말들이었다.


이렇게 공허하게 떠돌아다니는

유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이렇게 한 줄기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서가 또 있을까.

29~30페이지 中

=====


어딘가에 마음을 풀어둘 곳이 없을 때 일기를 활용해 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상처받고 힘든 날들을 기록하면서 담아둔 응어리를 풀어내고, 하고 싶은 일, 하지 못한 일을 적어내려가면서 새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또 새삼 누군가에게 풀어놓지 못한 나만의 목표나 계획을 적어가면서 또 다른 희망과 목표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이 공허하게 떠돌아다닐 때는 나만의 기록으로 부유하는 마음을 다잡아 보면 어떨까 한다.



=====

위험한 위로의 땔감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 같죠.

뭘 해도 다 실패하고,

되는 일 하나 없고.


좋아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온 힘을 다해 몸을 내던지고 있죠.


맞아요.

맞는데, 다른 사람도 그래요.


자기 연민에 빠져서

타인의 힘듦을 함부로 측정하지 마세요.


타인의 위로를 땔감 삼아

자기 연민을 점화하지 마세요.


(...)

우리는 위로의 땔감 없이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101~102페이지 中

=====


'위로'가 대체적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때론 위험하게 작동할 때가 있다. 바로 '연민'으로 변화할 때다. 특히 자기 자신에 '연민'이 붙어 버리면 갇힌 생각에 살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불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다. 마치 깊은 우물에 빠져든 것처럼 자신만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니 부디, 타인의 위로에 깊이 빠져들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대신 스스로 자신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어차피 인생은 내가 꾸려 가는 것이다. 타인의 위로는 멀리서 보면 삶은 작은 유희이자 약간의 양념일 뿐이다. 그저 감사하는 것으로 그 마음은 곱게 접어두면 된다.



=====

다정한 물음표



(...)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에는 그저 굶고 다니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해낸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깨달아서,

그래서 저는 자신에게 물음표를 마구 던집니다.

(...)

밥을 먹었냐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에게 질문해 주는 게 애틋하거든요.


다정한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던 저는

사실 저를 가장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56~157페이지 中

=====


나를 제외한 주변에는 너무 쉽게 물음표를 던지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다정한 물음표를 건네는 이는 잘 없다. 사실 이런 질문을 가장 먼저 챙기고 질문해야 할 이는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오늘부터라도 '밥 먹었어?', '잘 잤어?', '오늘은 즐거운 하루를 보냈니?'와 같은 다정한 안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일분일초,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깨닫는다면, 아마 당장 그런 질문은 절로 하게 될 것이다.



=====

도망가자



그냥 도피하고 싶을 때,

저는 잠을 택해요.


잠이 너무 안 와서 괴로우면,

청소를 택하고요.


이제 괴로움이라는 감정에서

저를 해방하게 하는 방법을 알았거든요.


그렇게 도망가요.


그다음에 돌아와도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76페이지 中

=====


무엇이든 항상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망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삶이다. 그러니 도망가는 것에 대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컨대, 피곤할 때만 꼭 잠을 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나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을 때 잠으로 도피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불면증으로 힘들어할 때 꼭 누워서 잠들기만을 바랄 필요는 없다.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 도망쳐도 된다.


그렇게 빙 둘러 돌아와도 늦지 않으니, 도망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


모두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다. 직진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이상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사는 사람들도 있으며, 빙 에둘러 굳이 먼 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남들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꼭 나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금 내 삶이 어딘가 불행으로 점철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저자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난을 넘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여기까지'라는 자신만의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정해두고,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처럼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으로 분명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만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니 부디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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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바다면 더 좋고
이도훈 지음 / 일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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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안아주는 문장들의 향연"


읽으면서 포근한 품에 폭 안긴 듯한 느낌이 들었던 책이 있는가? 여러 에세이 책을 읽어봤지만, 글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책은 여태 없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마음으로 다가오는 문장을 만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들을 만나면 멈춰 선 적은 있어도 폭 안아준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다정하게 안아주었고, 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꽉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상처를 이야기할 때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가볍게 포옹하여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으로 위로를 이야기할 때는 한 템포 높은 목소리로 공감해 주며 토닥이는 느낌이 들었다.

살다 보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한껏 날카로운 것들에 상처를 입어 너덜너덜 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찾게 되는 것이 책이고, 그중에서도 위로를 담은 에세이 책인데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계절의 이미지에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다정한데, 각 장마다 담고 있는 키워드는 조금씩 다르다.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봄 바다
-느낌: 따뜻함
-키워드: 사랑

●여름 바다
-느낌: 고난
-키워드: 삶

●가을 바다
-느낌: 상처
-키워드: 관계

●겨울 바다
-느낌: 공감
-키워드: 위로

내용을 살펴보면, 살면서 한 번쯤 듣고 싶었던 말이나 이야기들을 작가만의 문체로 담아냈는데 가슴을 옥죄게 하거나 마음이 술렁이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왈칵 눈물을 쏟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 말해주고 토닥이는 이야기가 있어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차분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의 글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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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쓴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쓴맛이 날 테지, 그럴듯한 가벼운 위로를 섞지 않으려 노력해야지.
프롤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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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글에서 쓴맛이 나는 글을 마주할 때면 어딘가 텁텁하고 개운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 허울뿐인 글이 그렇지 않을까 한다.

위선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가끔은 내 마음마저 차게 식어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얼어버린 손과 발을 녹여주고, 텅텅 빈속을 따뜻하게 데워 줄 무언의 문장들을 만나면 금세 언 몸은 풀리고 금세 온기를 되찾게 된다.

혹여 지금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굳이 타인에게서 어쭙잖은 동정을 얻기보다, 이 책에서 온기를 나눠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톡톡 건드리는 문장들이 당신의 얼어붙은 심장을 감싸 안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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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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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으면


나였으면 좋겠다.
잠에서 덜 깬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힘든 일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술기운이 올랐을 때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늦은 밤이 되면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네가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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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문장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하고 싶고 늘 생각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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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여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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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잠깐 멈추는 거, 쉬었다 가는 거 많이 불안하지.
너 자신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감 있는
강한 사람이라 그래.

네가 잠시 힘내지 않더라도, 잠깐 멈춰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너의 존재가 가치 있다는 걸 알까.

나무처럼 멈춰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에겐 바라만 봐도 믿음직한 등으로,
누군가에겐 그늘로,
누군가에겐 보금자리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너의 휴식은 다시 살아갈 힘과 에너지를
산소처럼 만들어내는 충분히 생산적인 하루이고
시기라는 걸.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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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조금은 덜 불안하지 않을까?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렇기에 속도 조절이 필요한 법이다. 물도 마시고,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부디 쉼에 대해 죄책감이나 불안감은 내려놓자. 대신 스스로에게 책임감 있고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자. 그리고 쉬는 동안 힘과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해 두자. 그 또한 인생의 마라톤에서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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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
겪어보니 알게 된 것. 최선을 심은 자리에
꼭 최선의 결과가 맺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 모든 것들에 나의 탓을 하며 아파하는 건
나의 진심 어린 최선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것.

이제는 전부를 쏟아냈다면, 하늘에 맡겨 두고서
운명에 따를 줄도 알아야겠지.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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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대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최선의 노력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더 그렇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어찌 됐든 하늘에 맡겨두자. 그리고 진심을 다한 나를 격려하고 안아주자.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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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기


흘러갈 것.

꿈과 야망을 위해 열심히 헤엄치다 보면
반드시 숨 가쁜 순간이 온다.
번아웃이 오면 시간과 함께 그저 흘러갈 것.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시간의 물살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천천히 헤엄칠 것.

흘려보낼 것.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일이라면,
나의 결정을 믿어줄 것.
그 선택은 한순간의 결정이 아님을 꼭 기억할 것.
같이 웃고 울었던 수많은 과거의 나와 자주 불안해하는
미래의 내가 함께한 결정이니 놓았든 놓쳤든
보내줬으면 뒤돌아보지 말 것.
누군가 그건 최선이 아니었다 탓해도
나의 최선을 다했다면
미련 두지 말 것.

내 손을 떠난 것들을 주워다 가슴에 담아두지 말 것.

흘려들을 것.

생각보다 사람들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을 자주 내뱉는다. 하지만 가벼운 말이라도 가슴에 꽂히면 그 상처가 오래간다. 되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점점 작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엔 내가 실 한 올만큼도 없다.
내 머릿속에만 그들이 실타래처럼 가득할 뿐.
내 예쁜 마음에 그들이 더는 머무르게 두지 말 것.

흘릴 것.

마음속 어딘가 숨어서 누군가 발견해 주길 기다리는
눈물을 꺼내줄 것. 가끔은 시간 내서라도 울어볼 것.
슬픈 노래에 기대도 좋고 다정한 글에 기대도 좋고
기댈 곳 없어 사무치는 외로움에 기대도 좋으니
울어볼 것. 밤이 깜깜해지면 후련함과 덤덤함이
선물처럼 찾아올 테니.

87~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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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포함해 소중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인생 조언이다.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숨죽이며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낼 것, 어떤 것을 오래 고민한 끝에 결정했다면 스스로를 믿어주고 그 외의 것들은 흘려보낼 것, 누군가 상처가 되는 말을 하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한다면 흘려들을 것, 가끔은 마음속에 쌓인 울분과 외로움을 눈물로 흘릴 것.

이 네 가지만 잘 해도 왠지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
페인트칠


(...)
넘어져도 괜찮아. 많이 쓰라리고 아플 테지.
두려움은 다치기 전이기에 존재하는 것이니.
다친 순간엔 아픔만 남을 뿐 더 이상 두려움은 없지.
이 기회에 밴드 붙여 두고 잃을 것 없는
사람처럼 뛰어가자.

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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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는 넘어질까 봐 너무 서둘러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막상 다치고 넘어져 보면 사실 넘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싹 사라지고 없는데 지레 짐작으로 두려움을 앞세워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다친 곳은 툭툭 털어내고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면 되는데, 그까짓 것을 못해서 여태 주저앉아 있었다. 넘어진 김에 밴드하나 붙이고 하니처럼 힘차게 뛰어보자.


=====
3장. 가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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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인연


(...)
모든 인연엔 때가 있다는 것.
삶 자체가 원래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든
인연도 그렇다는 것.

그러니 지나간 인연에 메이지 말 것.
앞으로 내게 다가올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리며 그들에게
좋은 향기로 남을 수 있도록 그저 나를 가꿔나갈 것.

1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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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억지스럽게 벌어진 인연을 엮으려고 하면 자칫 충돌사고가 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굳이 지나간 인연에는 메이지 말자.

진짜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엮일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인연을 위해 나를 가꾸며, 공간을 새롭게 단장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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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오해받는 게 싫어
하고 싶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날들.
소심하게 비춰질까 눌러 담기만 했던 날들.

이끼 낀 마음에 퍼렇게 독이 스며드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의 유지를 더 중요시했던 날들.

왜 그리 몰라줬을까, 내가 내게 전하는 말들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나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껴주는 이가
내 마음속에 사는 작은 나인 줄을
기어코 몰랐던 것이다.

17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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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단, 무리가 더 소중하게 여겨져 나를 소홀히 대하는 때가 꼭 한번은 있기 마련인데, 후에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많이 움츠러든 모습처럼 보인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보다, 타인에게 맞춰진 일정을 살다 보니, 내 안에 진짜 나는 점차 작아진 것이다. 조금만 지나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님을 알 텐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제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껴주는 이가 나 자신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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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겨우 그 정도로도
서운한 게 사람 마음이지만

겨우 그 정도로도
풀리는 게 사람 마음이더라.

1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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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데 되게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더불어 공감 가는 문장이다.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이 상하고, 또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이 풀리는 우리 마음. 참 쉽고도 어렵다.


=====
4장. 겨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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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더 걸을 수 있겠어? 어디 좀 보자.
이거 봐, 상처가 곪았잖아.
엄살 한번 부리지 않고 이제껏 어떻게 걸어온 거야.

너, 정말 잘하고 싶었구나. 강한 사람이고 싶었구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구나.

어쩐지 너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네 온몸에 배어 있는 배려가
나를 편하게 만들어 주더라.

18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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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오글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어릴 적 엄마가 우리들에게 하던 말의 뉘앙스처럼 느껴지는 말들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이가 없는데, 어쩌면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이런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라고 염려하며 물어봐 주는 말.
'대단하다'. '잘하고 있어', '노력하고 있구나'라며 격려해 주는 말.

결과보다 과정을, 허울보다 진심을 건네는 따뜻한 말. 어쩌면 우리는 이런 말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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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지만


누구에게나 조금 울고 싶은 날이야 있다지만
요즘의 네겐 그런 일이 자주 있었구나.

네가 약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겠지만 사실은
네가 강한 사람이라 그래. 다 잘 해내고 싶어서.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단단한 돌멩이처럼
굴러가다가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부딪힌 거야.
너의 균열은 당연한 거야.

그러니 조금 뒤처진다고 조바심 내지 말고
다시 천천히 조금씩 굴러가면 돼.

작은 일 하나씩 하나씩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으니까, 모두 잘 알 테니까.

2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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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어지고 약해지는 날, 사실은 네가 더 잘 해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오히려 너무 당연한 거라고 토닥이며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방황의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만약 그런 말을 해주는 이가 곁에 없다면 스스로에게 건네보면 어떨까? 잘 해 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조바심 낼 필요 없으니 천천히 나아가라고.


*****

나를 안아주는 문장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은 위로와 온기로 가득 찼다. 덕분에 나를 상처 주고 작아지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때론 알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기 마련인데, 여기 담긴 문장들을 삶에 적용하다 보면 나를 괴롭히는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엇이 옳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 도래하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주자. 천천히 나아가도 괜찮다. 충분하다.

섣불리 두려움에 떨기보다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혹여 넘어지면 상처에 밴드하나 붙이고 씩씩하게 나아가자. 내가 나를 믿고 나아가는 만큼 나는 더 잘 해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희망과 위로를 건네며 삶을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론 다정하게, 때론 힘껏,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토닥이듯 안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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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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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놀라운 인체의 신비를 탐험하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의사가 아니고서야 인체 내부의 모습을 직, 간접적으로 살펴볼 일이 없는데, 이 책에서 인체 내부 장기의 모습은 물론 5000년의 해부 역사까지 확인할 수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살펴보면, 150여 권의 책을 집대성하여 해부학의 역사를 담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내용도 방대하다. 저자는 대략 천년 단위로 나눠서 해부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해부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의사만 거론되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화가, 조각가) 들과 천문학자, 동물학자들도 거론된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해부학의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해부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들을 중심으로 고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 현미경의 시대, 계몽의 시대, 발명의 시대로 나눠서 담고 있는데, 이 안에는 의사에 대한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그들이 연구하고 실험한 내용들을 주로 책을 통해 게재하여 업적을 알리고 홍보하고는 했는데, 그래서 이들이 쓴 책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 보통 그냥 슥 보고 넘기고 말 책들이 이 책에 안에서만큼은 꼬박꼬박 언급된다. 그리고 그 책 안에 담긴 내용도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연구성과나 실험에 대한 내용을 알리다 보니, 인쇄술에 대한 내용도 살짝 언급된다. 또 무엇보다 해부학은 텍스트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화가를 통해 삽화를 그려 넣는 작업들이 함께 진행되었는데, 그래서 의사뿐만 아니라 화가도 함께 거론된다.


여기에 더해 해부학의 핵심인 인체에 대한 내용은 예술가들에게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라 화가나 조각가에 대한 내용도 함께 언급된다. 또 해부학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현미경이 등장하면서 곤충학자와 천문학자로까지 확장된다.


꼭 텍스트로 언급되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삽화를 통해 인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흘러왔는지 확인할 수 있어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밖에 5000년의 여정 동안 수없이 겪은 오류와 실수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종교와 건강을 분리하는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또 해부를 위해 시체를 도굴하거나 남의 그림이나 연구 내용을 표절한 내용들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기괴한 그림과 얼토당토 하지 않은 낭설도 함께 했다.


그동안은 조각조각 특정 부분만 쪼개서 배우거나 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흐름과 연결고리를 알 수 있어 미술사나 과학, 의학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해부학자들이 해부학 이론에 대한 종교의 입김에서 벗어나기까지 많은 이의 용기와 고난이 있었다. 특히 중세에 가톨릭교회는 사회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는데, 추후 과학은 교회와 국가에서 서서히 분리되게 된다.


이렇게 해방된 해부학자들은 순수하게 지식을 좇아 인체를 탐구할 기회를 얻었다. 근대 해부학은 16세기에 탄생했는데 인체에 관심을 보인 사람이 외과의사만은 아니었다. 조각가와 화가도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해부 구조를 배워야 했다.


해부용 시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해부학 역사 내내 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켰는데 사회적 관습은 주검에 칼을 대는 행위를 불법이나 신성 모독, 또는 적어도 불쾌하게 여겼다.


예술과 해부학은 서로 공생 관계였고, 시대를 불문하고 해부학 책에서 삽화는 텍스트만큼이나 훌륭하게 정보를 전달했다.


시대마다 해부학은 인체의 안팎을 보여주기 위해 최신 시각 기술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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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예술가 / ◆기타

형태로 구분하여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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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고대 세계의 해부학

(기원전 3000 ~ 기원후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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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크마이온

4체액설 주장(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히포크라테스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촉진, 시진, 청진 시스템을 개발


▷히포크라테스 덕분에 건강을 종교로부터 분리할 수 있었음


▷히포크라테스에게 있어 건강한 육신은 알크마이온이 말한 체액의 균형에 의해 안에서부터,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통해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접근이며,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인 중국에서도 미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감염, 질병, 전염병에 대한 논문, 치핵과 궤양, 관절 부상과 골절, 머리 외상에 대한 논문이 실려 있다. 또한 몇 권은 부인과와 비뇨기과에 할애했다.


인체의 다양한 체강과 구멍, 그리고 그 사이의 연결을 심도 있게 다루었고, 힘줄과 혈관을 포함해 폐쇄 경로와 누공(두 개의 빈 공간 사이의 비정상적 연결)에 관한 책도 있다.


당시 신경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히포크라테스는 뇌에서부터 기관의 양쪽으로 이어지는 모호한 신경을 식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 개의 통통한 끈'이라고 부른 것이다.



■디오클래스

▷'해부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최초로 동물 해부학 설명서를 썼다.


▷수술 도구의 일종인 '디오클레스의 스푼'을 발명했는데, 이것은 살에 박힌 화살촉을 제거할 때 쓰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다친 눈을 안구에서 뽑아낼 때도 사용했다.



■프락사고라스

▷처음으로 정맥과 동맥을 구분했으며 정맥은 혈액을, 동맥은 프네우마를 운반한다고 추정했다.


▷프락사고라스의 관심 덕분에 맥박은 유용한 진단 도구로 격상되었다.



■헤로필로스

▷프락사고라스의 제자


▷헤로필로스는 유일하게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체 해부가 허용되는 것을 적극 활용해 최초로 광범위한 인체 내부 조사에 나섰다. 덕분에 오늘날 그는 해부학의 창시자로 받들어진다.


▷그는 특히 눈과 뇌에 열정을 쏟았고 '망막'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선사하게 된다.


▷최초로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을 식별했고, 두뇌에서 대뇌와 소뇌의 서로 다른 기능을 인지했다.


▷동맥과 정맥의 논란에 대해서는 해부를 통해 두 혈관 모두 혈액만 운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갈레노스

▷재능 있는 내과의이자 솜씨 좋은 외과의


▷순환계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정맥의 혈액은 어두운 붉은색이고 동맥의 혈액은 밝은 붉은색이라는 차이를 최초로 언급한 해부학자로 몸에는 별개의 두 순환계가 있다고 결론 내림


▷추가로 그는 뇌를 중심으로 감각과 사고를 책임지는 세 번째 신경계가 있다는 옳은 제안을 했다.


▷갈레노스 연구 중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정확한 부분은 척추로, 그는 살아 있는 돼지를 대상으로 서로 다른 지점에서 척수를 잘랐을 때의 증상을 정리했다.


이 연구는 인간의 척추와 신경 손상이 근육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실질적인 지식을 제공했고, 이로써 그는 주동근(움직이게 하는 근육)과 길항근(어떤 근육과 반대 작용을 하는 근육)을 처음으로 구분하게 된다.


▷그도 체액과 프네우마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을 버리지 못함


▷갈레노스는 정보에 근거한 실험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과거의 그 누구보다, 그리고 사실상 이후 1000년 동안에 등장한 그 어떤 해부학자보다도 해부학을 잘 이해했다.



■아부바크르 무함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라지

▷의학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영웅


▷그는 대단히 박식한 인물로 문법에서 천문학까지 다양한 주제로 200여 권의 책을 썼다.


▷바그다드 최고의 의사였던 알라지는 지역 사회에 헌신하는 교사이자 치유사로도 잘 알려졌다. 그가 쓴 여러 책 중에서도 <의료 낙후 지역 주민을 위한 책>은 의사의 진료를 받기 어려운 빈곤층이나 오지에 사는 주민을 위해 쓴 세계 최초의 가정의학 안내서이다.


▷알라지는 의학에 다방면으로 공헌했다. 그는 특별히 소아 질병을 치료하는 최초의 논문을 써서 소아과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천연두에 대해 권위 있는 책을 썼고 이샤크처럼 인간의 눈에 매혹되어 동공이 밝은 빛에 반응하는 현상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알라지는 갈레노스의 사상이 더 동쪽 세계로 퍼지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 원소의 존재를 제안했다.


▷그 시대에는 알라지를 감히 갈레노스에 도전하려는 오만한 바보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중세 최고의 의사라고 칭할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븐시나

▷기원후 두 번째 밀레니엄 최초의 위대한 의학서는 알라지의 동포인 이븐시나가 쓴 것이다.


▷다섯 권까지 <의학정전>은 그리스, 로마, 아시아, 중국의 전통 의학을 집대성해 1025년에 완성되었고, 18세기까지 유럽과 이슬람 세계 양쪽에서 표준 의학 참고서가 되었다.


▷<의학정전> 제3권에서는 머리부터 발까지 인체의 해부 구조를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백내장이나 뇌졸중, 동맥 협착 등 여러 병증에 대해 상당히 현대적인 이해를 보여준다.


▷신경계 전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신경성 턱과 뇌전증, 좌골신경통과 뇌막염까지 폭넓은 신경학적 장애에 대한 치료를 발전시켰다.



■이븐 알나피스

▷이슬람 황금시대의 마지막 해부학적 시도는 이븐 알나피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븐 알나피스는 인간의 시신을 직접 다루었다는 점에서 알라지나 이븐 시나보다 유리했다. 해부 실험으로 그는 서양보다 훨씬 앞서 폐순환(소순환)을 발견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사망할 당시 그는 <의학종합서>라는 걸작을 집필 중이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300권 중에 80권까지 완성했고 이집트에 아직 남아 있는 전집 두질을 포함해 그 일부가 전 세계의 도서관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이슬람 황금시대에 그는 과거 그리스-로마 교리의 철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해부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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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중세의 해부학

(1301 ~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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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디노 데 루치

▷<인체의 해부>는 몬디노 데 루치가 1316년에 쓰고 1478년에 출간된 책이다.


▷몬디노의 책은 인체의 해부 구조를 상세히 기술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해부 과정까지 설명했다. 그는 인체를 하찮은 것에서 고귀한 것까지 세 구역으로 나누었다.


▷몬디노는 이미 볼로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옛 이론을 끌고 왔는데, 중세 초기에는 자궁에 7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태아가 발달한다고 믿었다. 오른쪽 3개의 남자 아기, 왼쪽 3개는 여자 아기용이며 가운데 있는 방은 자웅동체가 잉태될 경우를 대비해 남겨둔 것이다.


▷이런 부정확성에도 불구하고 몬디노의 <인체의 해부>는 기념비적인 출판물이다. 이 책은 해부학을 철학의 실례가 아닌 과학으로 다루었다.



■귀도 다 비제바노

▷해부학에 삽화를 활용한 선구자는 몬디노의 학생이었던 귀도 다 비제바노이다.


▷귀도의 삽화는 자신과 몬디노가 쓴 글의 이해를 높인 공이 있지만 확실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묶일 수준은 아니었다.



■히로뉘무스 브룬슈비히

▷그가 사망한 해에 출간된 유작 <화합물 증류법>은 중류, 여과, 확산을 통해 단일 또는 복합 성분의 약을 만드는 방법서이다. 이 책은 시대 풍조에 따라 환부의 해부학적 그림까지 수록한 사실상 본격적인 약초 의학서였다. 브룬슈비히는 식물학과 연금술 지식을 의사로서의 경험과 잘 조합했다.


▷라틴어로 쓴 <수술서>는 총상을 비롯해 주로 전장에서 발생하는 부상의 처지를 다루었다. 그는 독일어로 '분트아르츠트', 즉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였다.


▷그의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정식 해부도라기보다,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한 목판화이다.


▷브룬슈비히의 두 의학서는 16세기 내내 권위 있는 저술로 인정받았고, <수술서>는 독일어권을 벗어나 1517년에 네덜란드어, 1527년에 영어, 1559년에는 고대 올로모우츠대학교에서 체코어로 번역되어 장수했다. 브룬슈비히는 이탈리아의 사상을 독일에 가져와 해외에 전파하는 결정적인 교량 역할을 했다.



■마그누스 훈트

▷16세기 초 개별 신체 부위를 그린 최초의 해부학자


▷훈트의 그림에는 원근, 깊이, 선의 경제성과 과감함이 드러난다.


▷이 그림들은 특정 부위에 초점을 맞추어 머리, 손, 몸통, 그리고 여러 개별 기관이 확대되었다. <인간학>은 새로운 세기에 어울리는 야심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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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

(1501 ~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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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는 인체에 대한 이해가 어지럽게 펼쳐진 시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창의력과 지성의 정점에 올랐고, 해부학의 예술적, 의학적 걸작이 모두 이 시기에 생산되었다.



■한스 폰 게르스도르프

▷전시에 부상자 치료가 전문인 군의관으로 외과 처치법이라는 외과 의학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는 팔다리 절단법이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기술 등 오싹한 목판 삽화가 풍성하게 실려 있다.


해부학자는 신체기관과 기관계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추구했지만, 예술가들은 초상화의 진실성을 갈구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와 조각가들은 해부학이 인간의 겉모습에 미치는 영향에 더 관심을 보였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형상에 점점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존의 종교적 우상만이 아니라 일하거나 유희를 즐기는 현실 속 인물의 삶과 죽음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

▷동생인 피에로와 함께 가죽이 벗겨지고 해부된 주검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졌다.


▷안토니오의 결과물은 종종 인간의 고통을 묘사한 폭력과 잔혹함이 특징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의 제자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9년에 처음으로 두개골을 구입했고, 1507년에 처음 인간의 몸을 해부했다.


▷<모나리자>의 화가이자 헬리콥터의 설계자인 다빈치는 능숙한 해부학자이기도 했는데, 그의 스케치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날카로운 눈과 안정된 손놀림으로 시체가 부패하기 전에 재빨리 관찰하고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1510년에서 1511년으로 넘어가는 많은 그림이 겨울에 파비아의 델라 토레와 함께 그린 것이다.


▷1511년 델라 토레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협업은 무산되었고, 다빈치는 밀라노 동부의 빌라 멜치로 거주지를 옮겼다.


▷시신을 구해다 주는 델라 토레가 없었으므로 대신 그는 새와 동물을 해부했다. 다빈치는 황소의 심장을 보고 혈관계의 중심은 간이 아닌 심장임을 확인했다. 심지어 그는 혈류를 공부하기 위해 유리로 대동맥 모형을 만들고 물에 곡식의 낟알을 넣어 흐름이 눈에 보이게 했다. 이 연구로 그는 마침내 120년 뒤에 영국의 해부학자 윌리엄 하비가 성취한 혈액 순환의 발견에 극도로 가까워졌다.


▷다빈치는 뇌에서도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는 왁스로 뇌실의 주형을 만들어, 전통적인 해부 지식과 달리 그 안에 체액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죽상동맥경화증을 처음으로 기술했다.


▷그는 여러 번의 뇌졸중 끝에 오른팔이 마비되면서 해부학적 탐구는 마침표를 찍게 된다. 1519년에 그는 또다시 뇌졸중이 와서 사망했다.


▷해부학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분야에서 초인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 해부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미켈란젤로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자란 미켈란젤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예술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제자가 된다.


▷동시대 사람들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의 해부학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방대한 결과물에 나타난 설득력 있는 인체 묘사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얼굴과 동작이 친숙해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자세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근육과 힘줄을 통해 실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고 긴장된 순간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는 회화의 거장이었지만 조각의 천재이기도 했다.


▷현재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보관된 조각상 <피에타>는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비애를 표현했다. 힘없이 늘어진 예수의 몸에서는 모든 근육의 긴장이 사라져버렸다.


▷미켈란젤로는 삶의 후반부에 시스티나 경당의 <최후의 심판> 작업을 맡게 되었다. 세상이 끝나고 모든 이가 신의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되는 이 거대한 장면은 인체의 초상을 무한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그는 망자의 자세와 감정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그는 생전에 수시로 해부를 시도했고, 노년에는 파도바 출신 해부학자 레알도 콜롬보와 함께 프로젝트를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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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현미경의 시대

(1601 ~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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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을 해부학이 근대 과학으로 거듭난 빅뱅의 순간으로 본다면, 17세기는 해부학적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는 시기였다.


해부학의 성장으로 해부학자들은 전문 분야에 탐닉하는 사치를 누렸고, 그 결과 17세기에는 개별 기관을 심층적으로 다룬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화가와 외과의 모두를 위한 훌륭한 일반 해부학 책의 수요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요한 레멜린

▷레멜린의 <소우주의 거울>은 1613년에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먼저 플랩북으로 출판되었고, 1619년에 본문이 추가되었다. <소우주의 거울>은 17세기 내내 여러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라틴어 원본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로 번역되었다. 번역된 언어를 보면 해부학 연구가 유럽 대륙의 북쪽으로 확산한 것을 알 수 있다.


▷레멜린은 과거에 출간된 플랩북에 영감을 받아 더 야심찬 버전을 준비했다. 그는 피부와 골격 사이에 플랩을 여러 장 끼워 넣었다.


인쇄에 사용된 8개의 동판 가운데 5개는 여러 단계의 해부 구조를 새겨서 종이에 인쇄한 다음 일일이 오려내어 책에 붙였다. 레멜린은 책의 형식에 더 집중한 것으로 보이는데, <소우주의 거울>에는 당시 이미 구식으로 취급받은 내용이 버젓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쇄술의 걸작이고, 오류를 무시한다면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비전문가에게 시각적 참고서로 유용했다.


특별히 남성의 상체와 여성의 생식계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초판에서 여성의 생식기관은 플랩 덮개에 악마의 머리를 그려놓았다가 후속 판본에서는 좀 더 순결한 베일로 바꾸었다.



※해부도

오늘날 <해부도>는 17세기 해부학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남은 17세기에 이 분야를 이끌었고 카세리의 그림은 '덜' 중요한 수많은 작품에서 모방되었다.


이 삽화들은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우하하고 유쾌한, 대단히 뛰어난 이미지이다. 해부된 남녀는 최소화된 풍경 안에 있다.


이 배경은 보는 이의 시선이 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세부 묘사를 절제하면서, 눈 요깃거리로 강가의 배나 분류학적으로 정확하게 묘사된 식물 등을 보여준다.



■윌리엄 하비

▷1615년 럼리 강좌의 강사로 임명되면서 경력이 크게 도약한다. 럼리 강좌는 영국 의학계에서 해부학 지식의 발전을 위해 1582년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럼리 남작의 이름을 붙인 강의이다.


▷하비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발견을 처음 발표한 것도 1616년 럼리 강좌의 첫 번째 학기에서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해부학자들의 골칫거리였던 문제를 해결했다. '혈액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하비는 여러 선임자가 해결 직전까지 갔던 순환계를 밝혀냈다.


▷이후 12년 동안 하비는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고 발전시켜 마침내 1628년에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를 출간했다. 72쪽짜리 이 논문에서 하비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반박해가며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심장이 영혼의 자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대신 하비는 몸을 순수한 기계적 관점에서 조사했다. 심장은 신의 사원이 아니라 펌프이다. 혈관은 프네우마가 아닌 혈액을 심장으로 또는 심장 밖으로 운반한다. 맥박은 혼자서 뛰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수축하면서 뛰는 것이다.


하비의 접근법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이고 분석적이었다. 그는 온갖 동물을 해부하고 그 결과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 순환계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시험했다.


그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좌심실과 우심실이 따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혈액이 순환한다는 가능성에 이르게 된 후 그는 동물, 그다음에는 인간으로 실험했다.


▷하비는 부푼 정맥에서 작은 돌기를 보았는데, 그건 스승인 파브리치가 발견한 판막이었다. 판막은 혈액 순환이 일방통행 시스템이라는 증거로서, 그는 정맥으로 피가 거꾸로 흐르게 하는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하비의 책은 그가 알아낸 내용 못지않게 발견의 과정으로도 감탄을 자아냈다.


▷하비는 온몸을 돌고 심장으로 돌아온 혈액이 다시 몸으로 내보내기 전에 폐를 돌고 온다는 이중 순환계를 식별했다.


▷그가 자신의 눈과 현미경만으로 증명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순환이 더 있는데,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한 모세혈관이 동맥에서 정맥으로 혈액을 운반한다는 사실은 그도 가설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 초에 현미경은 아직 유아기 상태였다.



◆조반니 바티스타 오디에르나

▷1644년 출간한 <파리의 눈>에 최초로 미세 해부 이미지를 실었다. 그는 원래 한가할 때 밤하늘을 연구하던 사제였는데, 그러다가 팔마의 공작 줄리오 토마시에게 발탁되어 천문학자로 임명되었다.


▷그에게 해부학은 별다른 관심거리가 아니었고 <파리의 눈>이 출간된 해에 그는 무게와 측정으로 불순한 금과 은을 가려내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썼다.


▷책을 구매하는 대중에게 현미경 해부학은 그저 참신한 눈 요깃거리일 뿐이었지만, 해부학자들은 서서히 그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았다.



◆얀 스바메르담

▷레이던 대학교를 졸업한 네덜란드 대학원생 얀 스바메르담이 현미경 분야의 선구자로 그는 일찍이 곤충의 생활사를 연구했으며 세상을 떠난 후 한참 뒤인 1737년에야 출간된 <자연의 성서>는 해부와 현미경으로 관찰한 종합 곤충해부학 책이었다.


▷스바메르담의 현미경 연구는 무엇보다 이탈리아 미생물학자 마르첼로 말피기로부터 자극을 받았다. 말피기는 볼로냐에서 해부학을 연구했지만 인체만큼이나 식물과 곤충에도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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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계몽의 시대

(1701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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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대변혁과 17세기 발견의 골드러시 이후에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해부학은 흔해빠질 위험에 처했다. 영국에서는 외과의사의 지위가 높아지고 해부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겼으며, 공개 해부 덕분에 해부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커졌다.


그러자 자연히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졌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신을 구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18세기 초, 영국 해부 학계는 상인 길드인 이발사-외과의 조합이 장악했다. 메스 기술을 익히기 위해 외과의는 해부학을 배우기 전에 이발하고 면도하는 법부터 배웠다. 특히 수술받은 환자의 생존율이 아주 낮았던 터라 내과의는 일반적으로 모든 형태의 수술을 멀리했다.


이후 해부학 지식이 발달하고 전쟁에서 부상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이발사-외과의의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수습생으로든 자격 있는 의료진으로든, 외과의는 전쟁에서 엄청난 경험을 쌓았다. 해부를 독점한 이발사-외과의 조합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100년 전에는 네 건만 허용되던 해부를 1년에 열 번씩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 외과의사가 이발사와 독립하게 되는데, 이는 기능직에서 전문직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마침내 이발사-외과의사의 독점체제가 무너졌다.



■윌리엄 헌터

▷1746년에 스코틀랜드 해부학자 윌리엄 헌터는 해부 실습이라는 참신한 수업을 제공했다. 파리에서 해부학을 배우면서 그는 젊은 의과의들이 죽은 자로 먼저 실습하면 산 자를 덜 죽일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헌터는 외과의가 독립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해부학 교사의 물결 중에서도 처음이었다.


▷그는 1764년에 샬럿 왕비의 담당 산과의가 되었다. 1774년에 출판한 <그림으로 보는 임신의 자궁 해부학>은 그가 해부학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다.


▷헌터는 여성이 지배하는 직종에서 최초의 남성 산파가 되었다. 스멜리는 독학으로 산과학을 익히고 수년 동안 런던에서 성공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후에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정식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이 일에 과학 정신을 도입해 직접 고안한 인체 모형으로 학생들이 출산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왔고, 학생들의 참관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아기를 무료로 받았으며, 덜 침습적인 분만 겸자를 개발했다.


1759년에 은퇴하고 스코틀랜드로 돌아갈 무렵, 그는 1000명 이상의 아기를 받았고 300여 개 강의에서 가르쳤다.


▷은퇴하면서 그는 평생의 역작인 <조산학의 이론과 실제>를 완성했다. 출산이라는 은밀한 순간에 남성이 개입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쌓은 경험의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아 따로 <해부학 표 모음>을 냈는데 상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쟈크프랑스수아마리 뒤베르네

▷해부 학계의 관심은 눈의 모서리에서 눈물관을 통제하는 근육을 처음으로 기술한 쟈크프랑스수아마리 뒤베르네에게 집중되었다.


▷쟈크프랑스수아마리 뒤베르네의 연구는 큰 인정을 받지는 못했어도 해부학자의 서재에 중요한 이정표로 꽂혀 있다. 단, 삽화가 자크 파비앙 고티에 다고티의 이름 아래로 들어간다.



■자크 파비앙 고티에 다고티

▷고티에는 인쇄업자이자 판화가이자 화가이자 해부학자였다. 그는 1708년에 노랑, 빨강, 파랑의 음각 인쇄판을 사용해 컬러 인쇄를 발명한 독일 화가 야코프 크리스토프 르 블롱 밑에서 배웠다.


▷고티에는 해부학 책을 여러 권 썼는데 첫번째 책은 1746년에 출간된 인간 근육에 관한 연구로 20개의 도판을 수록한 <실물 크기로 보는 원색 근육학 완성: 해부학 에세이와 그 후속편이 인쇄된 표로 구성되어 있음,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아마추어 과학자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책>이다. 2년 뒤인 1748년에는 8개의 도판이 실린 <머리의 해부학>이 출간되었는데, 그 완전한 제목에서는 뒤베르네가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았다.


▷뒤베르네가 사망한 뒤인 1752년에 출간된 세 번째 책 <내장 기관의 일반 해부학: 인체의 각 부위에 대한 맥관학 및 신경학과 더불어 실물 크기와 컬러 해부도>. 18개의 도판을 수록한 이 책은 고티에 최고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고티에는 세 번을 제외한 모든 해부를 직접 수행했다.


▷원색의 삽화가 당시에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을 테고, 해부학적 이미지에 예술적 재능을 결합해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지만 그 결과 이 그림은 해부도가 아닌 정물화처럼 보이고 '학생들에게 정말 유용하고 필요한' 세부사항은 부족했다.


▷고티에는 그가 1752년에 창간한 학술지 <자연사 관찰>로 더 많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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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발명의 시대

(1801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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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해부학에 대한 축적된 지식은 18세기를 거치며 강화되었고, 19세기에는 이를 성문화하고 보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전문가 집단과 정부가 수련 과정을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대중은 해부 관행에 대한 의심을 유지했다.



■하나오카 세이슈

▷유럽의 해부학을 뒤늦게 접한 일본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서구를 앞질렀다.


▷하나오카 세이슈는 당대 최고의 일본 외과의사였다. 고토에서 태어나 전통 한의학을 훈련받은 그는 난학을 통해서 해부학을 공부했다.


※난학이란 서양 지식과 문화 등을 통칭하는 말로서 직역하면 '네덜란드의 학문'을 뜻한다. 일본이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서양 문물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1804년에 그는 자신이 제조한 통선산을 60세 유방암 환자에게 먹이고 유방 절제에 성공했다. 환자는 최대 24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 하나오카의 유방 절제술은 마취를 시도한 최초의 현대적 수술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사건이 서양에서는 40여 년 후에 일어났다.


▷당시 일본에서는 책을 출판하는 대신 학생이나 그밖에 흥미 있는 독자를 위해 원고를 쓰고 일부를 베껴가게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나오카는 다작하는 사람으로 18065년에 쓴 <유방치험록>에서 첫 유방 절제술에 사용했던 절차를 설명했다.


▷하나오카가 사망한 지 20년 후인 1854년에 비로소 일본이 베일을 들어 올렸을 때, 서양에서는 다른 마취 기술들이 발명되고 있었다.



■그자비에 비샤

▷1801년에 <해부학 총론>을 출간


▷비샤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도 오래 산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알프스 혁명군의 외과의사로 복무했다. 프랑스를 뒤흔든 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해부학에 비샤가 기여한 내용은 여러 해 동안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1800년에 출간된 첫 번째 책에서 그는 인체 해부학을 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막에 관한 논문>에서 그는 인체의 21가지 조직을 정의하면서 신체기관은 별개의 단위가 아닌 저 조직들의 각기 다른 조합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단일 원소가 결합해 화합물을 만드는 화학에 비교했다.


▷같은 해 말에 출간된 <삶과 죽음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는 동일한 관점에서 신체기관의 병리학적 측면을 설명했다.


두 책 사이에 비샤는 파리 오텔디외 병원의 의사로 임명되어 병든 조직이 기관에 미치는 영향과 약이 조직에 작용하는 효과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약물의 효과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였다.


그는 6개월 만에 시신 600구 이상을 해부해 방대한 데이터를 생산했고, 이를 <삶과 죽음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와 <해부학 총론>에서 논의했다. 이 연구에서 비샤는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의 병리학적 발상을 발전시키면서 이 새로운 과학에 상당히 기여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에서 그는 생명을 해부학적 측면에서 정의했다.


▷병들고 썩어가는 수백 구의 시체에 둘러싸여 일하던 그는 결국 장티푸스에 걸려 고작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해부학 총론>을 출간한 지 1년 만이었고, 당시 그는 질병을 분류할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조직론은 오늘날의 조직학, 즉 현미경 해부학의 근간이 되었다. 비샤의 연구는 그가 현미경 사용을 거부했기 때문에 더욱 놀랍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아 세포 수준에서 조직을 보았다면 얼마나 더 대단한 발견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필리프 보치니

▷대 프랑스 동맹 전쟁 중에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외과의사로 복무. 그는 마인츠 대형 야전병원의 어둡고 열악한 환경에서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함. 그곳은 때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두침침했다.


▷보치니는 체강에 조명을 비추고 이미 상처가 심한 부상병에게 탐색 수술을 진행하지 않고도 진찰할 수 있는 도구를 고안


▷이 도구는 안에 있는 촛불의 불빛이 강철관을 따라 반사되어 다양한 부속물을 비교적 고통 없이 삽입할 수 있었다. 보치니가 발명한 것이 최초의 내시경이다.


▷1806년 자신이 발명한 기구가 의료용으로 사용 허가를 받은 뒤에는 이것을 '리히트라이터(도광기)'라고 부르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1807년에는 <리히트라이터. 살아 있는 동물의 몸 내부의 체강과 틈새를 비추는 간단한 기계와 그 사용법>이라는 논문으로 전 세계에 소개했다. 이 책은 가히 해부학자의 서재에 한자리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


▷보치니의 리히트라이터는 시대를 훨씬 앞선 발명품이어서 이후 50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다.



■앙토냉 장 드소르모

▷1853년에 앙토냉 장 드소르모는 테레빈유와 알코올을 섞어서 태운 램프로 촛불을 대체했다.



◆프랜시스 크로즈

▷10년 뒤, 더블린의 비뇨기과 전문의 프랜시스 크로즈는 드소르모의 리히트라이터를 개선해 요도 절개 및 기타 수술에 사용했다.



◆토머스 에디슨

▷1879년에 토머스 에디슨의 믿음직한 백열전구를 발명한 이후 근무 시간이 늦은 밤까지 연장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영원히 달라졌다.


또한 전구는 수술 방식과 해부학 연구를 바꾸었으며, 더 작은 전구가 개발되면서 20세기 초에 내시경에 사용되었다. 보치니의 리히트라이터 이후 불과 1세기 만이다.



■리처드 콰인

▷1844년에 리처드 콰인 자신도 많은 찬사를 받은 <인체 동맥의 해부학>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관찰한 약 1040건의 해부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삽화는 런던에서 일하는 아일랜드 화가 조지프 맥리즈가 그렸다. 해부된 시신을 여전히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관심 부위의 주변 지역은 선을 부드럽게 처리하고 대략의 윤곽만 그려, 보는 이의 시선을 중요한 부위에 집중시키는 아름다운 책이다.




<마취술>

19세기 후반부에 해부학은 계속해서 발명의 수혜자가 되었다. 1804년에 하나오카 세이슈가 통선산으로 유방 절제술에 성공한 이후 서양에서 환자를 마취해 수술하기까지는 40년이 더 걸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치과의사 호러스 웰스는 1845년에 보스턴에서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공개 시연을 시도했는데, 투여량을 너무 적게 잡은 바람에 환자가 고통스러워했다.


1846년에는 미국 조지아주의 외과의사 크로퍼드 롱이 디에틸에테르(에테르)로 마취한 학생의 몸에서 2개의 종양을 제거했다.


같은 해 말에 호러스 웰스의 치과 병원 파트너인 윌리엄 모턴은 롱의 성공을 알지 못한 채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한 환자에게 디에틸에테르를 처지하고 목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스코틀랜드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영 심프슨은 1847년에 최초로 환자에게 클로로포름의 효능을 선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클로로포름은 가연성이 높고 종종 구토를 일으키는 에테르를 대체했다.


안전한 마취술은 수술을 응급 치료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수술 과정도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살리기 위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준비해서 실시되었다.


이 기술이 해부학이라는 순수 과학에 가져온 가장 큰 이점은 살아 있는 몸의 내부 시스템과 기관을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과거에는 전투가 한창일 때, 또는 검투사의 싸움 이후에만 가능하거나 아예 실행 불가능한 것이었다.



<냉장기술>

해부학 교사와 학생이 아주 오랫동안 겪어온 가장 큰 문제는 시체가 금방 부패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해부 수업은 날씨가 추운 겨울에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해부학 발전에 가장 보탬이 된 발명은 냉장 기술이었다.



<시신 방부처리>

시신을 보존하는 오래된 방법 중 하나는 방부 처리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해부학이 인기를 누리고 상대적으로 적절한 시신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아주 현실적인 필요가 되었다. 초기 해부학자들은 몸에 밀랍을 주입했고, 한때는 비소를 방부제의 필수 재료로 여기기도 했다.


18세기 윌리엄 헌터와 존 헌터 형제는 근대 최초로 시신의 보존 기간을 연장하는 방부 기름을 개발해 혈관과 체강에 주입했다. 이 관행은 해부극장에서 시작되어 고인을 최대한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하고 싶은 유가족의 바람에 따라 장례 업계로 퍼져나갔다. 장의사는 19세기에 탄생한 새로운 직업이었다.


방부 처리 기술이 발달하고 철도 체계가 확장하면서 유족은 사망한 곳이 아닌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 묻히고 싶은 망자의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방부 기술은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도 널리 사용되어 병사의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있었다.


독일 화학자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호프만이 1869년에 발견한 포름알데히드는 보존 성질이 뛰어나다고 밝혀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피부를 자극하는 특징도 있다.


이 외에도 폴란드 해부학자 지그문트 라스코프스키는 1866년에 페놀과 글리세린의 혼합물로 시신 보존에 성공해 이 주제로 1885년에 <해부학적 표본의 보존 절차>, 그 이듬해에 <표본의 방부 처리 및 보존, 그리고 해부 준비 과정>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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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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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인체 해부학에 대한 거시적 이해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부위에 이름이 붙여졌고, 각각의 기능과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화는 발붙일 곳을 잃었다. 멀리 고대 이집트 이후로 해부학자들이 밝히려고 했던 해부학 연구는 이제 완료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18세기 현미경 선구자들에 의해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 의학 연구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다. 해부학의 새 시대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아세포 수준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지속적인 기술 발전으로 모든 사람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풍부한 과학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다.


지난 120년 동안 가장 위대한 기술 발전은 필리프 보치니가 제작한 최초의 내시경, 리히트라이터였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1817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1895년에 빌헬름 뢴트겐이 엑스레이를 발견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의료계가 이 놀라운 도구를 사용하게 된 시기에 출간된 첫번째 교과서는 1938년에 아서 애플턴, 윌리엄 해밀턴, 이반 차페로프가 공저한 <표면 해부학과 방사선 해부학>이다. 30년 뒤에 이저도어 메샨은 <방사선 촬영 위치 및 관련 해부 구조>에서 원하는 신체 부위를 잘 보이게 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문제를 탐구했다.


하지만 엑스레이도 이제는 구식이 되었고, 지난 세기말 더 상세한 촬영 기법이 개발되었다. 오늘날 컴퓨터 단층 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은 흔한 기술이고, 주사전자현미경(SEM)은 300만 배로 확대가 가능해 해상도가 1나노미터(1미터의 10억 분의 1)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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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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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건강이 함께 맞물려 갈 때만 해도 건강에 관련된 학설들이 어딘가 좀 어설퍼 보였는데, 확실히 분리된 이후에는 눈에 띄게 발전되어 가는 모습이 육안으로 보인다.


중세 초기 여성 자궁을 7개 그려 넣은 그림을 보고서는 '헉' 소리가 나왔는데, 이후 뇌, 혈관, 심장, 뼈, 근육 등이 해부학을 통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상상력과 집념, 그리고 끊임없는 학구열에 혀가 내둘러졌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어떤 기술이나 서적, 도구도 없던 시절이니만큼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무(無)의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을 통해 직접 보고, 실험하고, 연구를 지속해 가면서 쑥쑥 성장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물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는데, 해부학 연구를 위해서 남의 무덤을 파헤치거나 범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가도 덕분에 이만큼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공을 생각하면, 당시 희생된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함과 미안할 따름이다.


더불어 당시 무에서 유를 창출한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던 외과의와 신의 손을 가지고 있던 화가와 조각가들의 노력도 높이 산다. 여기에 더해 인쇄술의 발달로 후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으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상들 덕분에 큰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신경이나 뇌, 여러 병증 관련해서는 발견하고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앞서 5000년 동안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낸 만큼 미래의 의학 또한 새로운 방면에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책을 읽으며 무궁무진한 뇌를 가진 놀라운 인간의 능력에 새삼 다시 한번 감탄했다. 또 매 단계별로 무언가를 창출해 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절로 환호성이 터졌다.


역사 속에 감히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을 일궈낸 이들이 있었음을 되새기며, 마음 깊이 찬사와 감사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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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행복이 좋습니다
인썸 지음 / 부크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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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핑크한 색감과 화려한 꽃들로 장식된 표지 디자인, 여기에 더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제목과 수식어들을 보고 내심 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나 다정한 글들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첫 파트를 읽는 순간부터 '어?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온통 누군가를 향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했는데, 전혀 공감 가지 않는 모르는 사람의 러브레터를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진, 2파트~4파트까지의 내용은 위로의 내용보다 오히려 자기 생각 속에 빠져 홀로 독백하는 느낌의 글들이 가득했다.


독자와 소통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나 홀로 쓰는 일기장에 남겨진 생각의 파편들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어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좁은 방안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총 4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위로의 문장을 담았다는 소개글과는 다르게 저자 개인의 감정적 호소에 대해 쓴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조금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내용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공감 못할 내용들만 담긴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침침하고 또 무겁게 느껴진다.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에 대해 자유롭게 쓴 에세이인 만큼 내용상 부정적인 내용이나 어두운 과거의 이력이 충분히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여타 에세이들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확고하게 굳어진 개인의 신념과 소통보다는 내 감정을 그저 토해내듯 발설하는 글, 여기에 더해 닫혀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생각으로 인해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선지 같은 내용인데도, 다른 에세이에서 만나본 문장이나 내가 경험한 일들이 어쩐지 이 책의 내용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소통보다 불통의 느낌이 강해 공감이라는 말보다는 독백, 공허한 메아리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중간 부분에 저자의 글에서 이와 같은 맥락의 글을 만나볼 수 있는데,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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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지웠다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은 더는 관심이 없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책을 엮는 것도

사실은 읽는 이를 위해서는 아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을 위해

내 감정을 위해

꼬였다 풀었다 하는 내 생각의 정리를 위해

조금은 더 즐거운 인생을 위한 환기를 위해

쓰다 지웠다 한다

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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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왜 앞서 읽은 글들이 가슴 깊이 다가오지 않았는지, 왜 그리 불편하게 다가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불통의 글이었던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그저 자신의 마음을 위한 글이라면 왜 책으로 만든 걸까?


혼자 쓰는 SNS나 일기장 등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글들이 왜 책으로 나와 독자의 마음과 감정을 어지럽히는 걸까?


단순히 책의 분위기가 어둡거나 내용이 어때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글이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4개의 파트로 나누어진 글들을 나름대로 키워드로 정리해 보면, 파트 1은 사랑, 파트 2는 생각+마음, 파트 3은 추억+기억, 파트 4는 행복(취향이 묻어있는 행복에 대한 글)에 대한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 파트 1은 저자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 특정인을 위한 헌정글처럼 느껴졌는데,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패스해도 좋다. 어쩐지 새벽녘 감상에 젖어 쓰는 글처럼 느껴져 페이지를 빨리 넘기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전 싸이월드 감성으로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와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2~4파트에는 사랑 이야기에서는 다소 벗어났으나 중간중간 어디에도 하지 못한 하소연과 토로의 글들이 담겨 있어 진짜 저자 자신을 위한 글을 썼구나 생각하게 된다.



****


살다 보면 때로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을 겪게 되는 때가 있어 저자가 말하는 관계, 사람, 감정, 상처 등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감정을 좀 추스른 후에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담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파트 1은 개인적으로는 눈 버린 느낌의 글들이었는데, 나 홀로 경험하고, 나 홀로 간직하고 있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굳이 대중에게 굳이 오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애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당사자들끼리만 공유하면 되지 굳이 제3자에게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어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건 마치 여행 다녀온 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을 앉혀놓고 자기가 좋았던 여행이야기를 천 번 만 번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방은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내용상 공감이 갔던(?) 글들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적이 있음 직한 내용이고 글들인데, 읽으면서 사람, 관계가 참 어렵다고 느끼게 된 문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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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지 않은 기분



반짝이는 날이 있는 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요즘은 '기분'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그런 날들은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분은 마음도 생각도 아닌 우연이 만든다


아침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민들레 한 송이 때문에

오늘은 내내 기분이 좋았다


퇴근길에 꺾여 있는 민들레 한 송이 때문에

오늘 밤에는 마음이 캄캄하겠다


보였던 것들이 새벽 위로 아른거린다.


기분이 마음 같지 않아

가끔은 이런 밤들이 어렵기도 하다

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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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순간 아주 쉽게 물든다. 특히 우연으로 벌어진 어떤 것에 따라 하늘로 솟았다가 땅으로 꺼지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한다.


이토록 쉽게 물드는 기분이라면, 내일의 나를 위해 우연을 가장한 무언가 작은 선물을 오늘 밤 준비해 보면 어떨까?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을 가방에 넣어두거나, 쉽게 손이 닿는 곳에 두고 꿀꿀한 기분이 나를 덮칠 때 선물이라며 건네면 빨간 기분이 노랗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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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상처를 만든다



(...)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의 인생보다 내 인생이 더 소중해 진다. 내 인생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를 돕고 싶지는 않아졌다.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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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한창 아무것도 모르고 똥꼬발랄하게 지낼 때는 '함께'가 성립되었다면,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함께'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내 인생과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다방면으로 늘어나는 상처와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겪게 되는 또 다른 상처로 인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이어지는 끈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좁고 깊어진다.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한때 누군가의 '무엇'이었던 사람도 그렇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무것도 ' 아닌 사람이 된다.



=====

그래도 지킬 선은 있어야 한다



소중한 사람은 소중히 대해야 하며,

단지 가깝기만 한 사람과 소중한 사람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

편할수록 막역하게 대하는 것은 소중한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없는 관계일 뿐일 수 있으며,


선을 넘는 것은 그 한 번이 어려운 것인데

한번 넘은 선을 넘나드는 것은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은 끝에 가서는

사람마저 쉬워지는 일이 되고는 한다

1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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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가까운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헷갈려 하며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히려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 더 정중한 태도를 취하고는 하는데, 그런 것을 목격할 때면 사람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엄연히 타인인데(가족도 어떤 의미에서는 타인임) 그들은 너무 쉽게 선을 넘나들며 경계를 없애 버린다.


그러면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는 어느새 쉬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부디 헷갈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가까운 사이는 불편함이 없는 사이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더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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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스스로 보호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가장 간단하고도 기회가 많은 감정 표현


"고마워"


그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마음을 나누면 감정이 고단해진다


그리고 그 고단함이 쌓여

안정된 삶의 균형에 균열을 만든다


안정됨은 바로 감정이며, 마음이다


잘못된 관계는 결국 마음에 이르며,

마음은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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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넘기는 말들 중에는 사소하지만 반드시 건네야 하는 말들이 있다. 이를테면,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들이다.


별것 아니라고 그냥 넘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소함이 때로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은 곧 관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음은 아주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아주 사소한 것에 감동받는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자주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해보면 어떨까?



***


저자 내면의 강한 관념이나 생각들이 버무려져 다소 부정적 느낌으로 다가왔던 이 책을 읽으며, 같은 내용이나 말도 어떻게 표현하고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다가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마음의 문을 콱 닫고 내 이야기만 풀어쓰는 것으로는 타인에게 절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피부로 느꼈다.


최근 출판되는 책들 중에는 독자는 상관없이 오로지 작가 자신을 위한 책을 출판해서 배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추한다.


대중이 보는 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개인의 기록물이나 홍보, 마케팅, 욕심을 채우기 위해 쓰는 책들은 아무리 거한 포장을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책,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로 공허하게 다가오는 책. 이런 책들이 바로 그런 책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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