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좋은 날은 오니까요
한예린 지음 / 부크럼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몸보신'을 위해서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챙겨 먹으면서, 정작 그보다 더 중요한 '마음보신'을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몸보신만큼 마음보신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한 번씩 위안, 위로, 용기, 힐링, 행복, 격려 등이 담겨 있는 책으로 매번 조금씩 생기는 틈을 꽉꽉 채워주고는 하는데, 이 책도 그런 마음보신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 중 하나다.


특히 이런 마음보신을 위한 책들은 외부로부터 받는 충격(상처, 배신, 슬픔 등)들을 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또 타인보다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현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을 주기적으로 접하며, 약간 수행하는 느낌으로 마음보신을 위해 읽고 또 읽는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을 전해주며 우리가 다시 건강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더불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위로의 말들을 건네며 괜찮다, 웃을 날이 곧 올 것이라 말해준다. 또 지금의 시련 또한 더 좋은 날을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라 말하며 힘든 날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넨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확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고 나면, 한 발짝만 멀어져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문장들이 틀리지 않은 말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그럼에도'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조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겠다는 말 같아서. 그.럼.에.도 짧은 네 글자이지만, 이 안에는 농도 짙은 뜻이 들어 있다.

(...)

때로는 간절한 소망이자 애절한 속삭임이 되고, 완강한 다짐과 완곡한 외침이 될 말. 과거가 어떻든 지금을 바라보겠다는 의지이자,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중이다.

14페이지 中

=====


어떤 말에 붙여도 '그럼에도'라는 말은 긍정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말에는 어떤 강인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 이 말을 쓸 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더 강한 다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 말 테야!'



=====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누구도 내 하루와 시간, 마음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 가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나의 꿈과 소망을 억누르면서까지 살아갈 필요는 없다. 억지로 살아가지 말고, 나의 의지로 살아가자. 나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해 움직이는 수동적 태도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는 능동적 태도로 살아가도록 하자. 타인의 첨언은 좋은 것만 흡수하고 좋지 않은 건 흘려보내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믿고 후회 없는, 후련한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19~20페이지 中

=====


내 삶에 나의 비중보다 타인의 비중이 커지면 그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 '함께'라는 타이틀에 너무 매몰되어 나는 없고 타인의 말과 행동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삶에 주인공인 내가 아니라 타인임을 명심하자.


내 인생에 '내'가 존재해야 '함께'도 존재할 수 있다. 나에게 이로운 것, 나에게 적합한 것,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등을 우선적으로 알아야 그때부터 진짜 '함께'를 누릴 수 있다.


타인에게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적합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타인의 이야기는 적절히 걸러듣자. 그리고 나의 의지와 나의 주관에 따라 삶을 설계하고 시간을 쓰자.


그래야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곳곳에 여백을 두어야 한다.


마음에 두면 쉼이 될 것이고,

시간에 두면 여유가 될 것이다.


사랑에 두면 돌아봄이 될 것이고,

나에게 두면 돌봄이 될 것이다.


비우고서야 보인다.

내 하루를, 나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무언가가.

52페이지 中

=====


요즘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여백'에 대한 부분이다. 예전에는 여백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는데, 마음에, 시간에, 관계에, 나에게 여백을 둬보니 진정 왜 여백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틈이 있어야 무언가 들어올 여지가 생긴다. 우리의 삶에 틈을 만들어 여백을 두어보자. 그러면 삶이 한결 더 여유롭고 편안해질 것이다.



=====

놓쳐 버린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유효 기간이 지나 상해 버리면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매사 아끼고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순간을 잡는 것은 나의 몫이고, 놓치면 나의 탓인 거니까. 그러니 부디 주어진 기회 앞에서 망설이지 말기를.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이 멀리 도망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기를.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삼키고 삼키다 이내 잊어버리지 않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접어 버리지 않게.

아끼고 아끼다 끝내 놓쳐 버리지 않게.

63페이지 中

=====


예전에는 아끼고 아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 귀한 것을 가장 마지막에 먹거나 사용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결국 쓰임을 다해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귀한 것일수록 지금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 관계, 음식, 시간 등은 모두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그러므로 멀리 도망가기 전에, 그 쓰임이 다하기 전에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유지하려는 관계는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니다. 진정하고 솔직한 관계는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곁에 남는 법이다.

73페이지 中

=====


한때는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관계를 좋게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먼저 연락하고, 챙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결국 이어질 관계는 이어지고, 애쓴다고 해도 끊어질 관계는 끊어진다는 것을.


타인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려고 애쓰지 말자. 특히 관계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그저 진솔하게 상대를 대하는 것이면 족하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관계와 만남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게 될 것이다.



=====

우연히 본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 강연자가 말했다.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거리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비로소 거리를 두었을 때 보이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

그러고 보면 무언가 내게서 멀어지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

사람의 마음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흙탕물처럼 더욱 탁해진다. 그럴 때면 잠시 거리를 두어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멀어짐은 또 다른 이어짐이 되어 남아 있는 마음을 다시 매듭지어 줄 테니까.


가까이 있으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가지만, 실은 그 대상의 반쪽밖에 보지 못하는 격이다. 가끔은 먼발치에서 그 대상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바라보려는 시각도 필요하다. 관계에 있어서 멀어짐은 이어짐의 끝이 아니라 재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대상의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의 마음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멀어짐의 시간이 지나면 보인다.

진짜 감정, 진짜 사랑, 진짜 인연이 보인다.

101~103페이지 中

=====


'진짜'를 발견하고 싶으면 조금 거리를 벌려보자. 너무 가까이에 붙어 있으면 진짜를 발견하기 어렵다. 내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면,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를 벌려보면 내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볼 때조차도 코앞에 두어서는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를 중심으로 근방 전체를 살펴봐야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목표지점을 향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멀어짐은 지금의 나를 발견하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가끔은 동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관점을 가져보자.



=====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

환하게 웃고 있을 그날의 나를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가자.

그리고 반드시 잘 될 나를 반갑게 맞이하자.

148페이지 中

=====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일로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쓴다. 불안해한다고, 걱정한다고 그 일의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러니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지금 현재의 나에 집중해 보자. 과정을 묵묵히 밟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하자. 그날을 위해 지금은 걱정하기보다 실행해야 할 때다.



=====

삶의 안온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있고, 우리는 그 기본만 충족되어도 보다 여유를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걱정의 양도 줄여야 한다. 기본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큼 주어지지는 않기에, 이 부분은 결국 노력으로 채워야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돌보고 돌아봐야 한다.


기본만 충족되어도 행복의 반은 채워진다. 그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곧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200페이지 中

=====


사람들은 행복을 꿈꾼다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행복은 보지 못한다. 되려 닿지 못할 이상만 꿈꾸고 바라며 현재의 행복은 놓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삶은 기본만 충족되어도 이미 행복한 삶인데, 그 기본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들은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면서 행복의 기본을 깎아먹는다.


먼 이상만 좇을 게 아니라, 삶의 안온을 위해, 안정적인 삶을 위해 매일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상 이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불행이 찾아오는지는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기본을 지키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보자. 나의 튼튼한 오늘과 내일과 더 먼 미래를 위해!



=====

마무리

=====


삶이 무너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상을 되찾는 일이다. 그런데 평소 일상을 엉망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아도 삶을 재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본을 지키면서 사는 것, 나를 제대로 마주하며 내 삶을 사는 것,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것들을 매일 같이 반복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더 빠르고 더 건강하게 다시 삶을 일으킬 수 있다.


걱정과 후회에 젖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과만 그리며 꿈만 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정을 살아내야 한다. 묵묵히, 그리고 덤덤하게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야 내가 원하는 결과와 이상을 맞이할 수 있다.


살다 보면 걷는 구간, 뛰는 구간, 넘어지는 구간, 쉬는 구간 등 다양한 구간을 만나게 된다. 이런 구간을 매번 무사히 잘 건너가기 위해서는 나의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또 그런 특성을 위해서는 나를 발견하기 위한 거리와 여백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이처럼 좋은 날을 위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하는, 우리가 굳건히 지켜내야 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기본을 지키며 살아가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삶의 과정을 성실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바라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한 의사조차도, 가족의 질병 앞에서는 여느 보호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처음 인지하게 된 건 아마도 2004년에 개봉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전에도 들어보긴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질병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 건 아마도 이 영화에서 손예진 배우가 보여준 증상들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 질병은 이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불어 '치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병 중 하나가 되었다. 오죽하면 '죽음보다 무서운 병'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 책은 이처럼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알츠하이머'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병 앞에는 장사 없다'라는 말과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동시에 파킨슨병을 앓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 더해 의사로서 지식을 통해 이 병을 이해하고, 또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던 한 의사 아들의 회고록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의사와 과학자, 지식인들이 수두룩하게 많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긴 병과 소멸되는 기억 앞에서 이들 모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간병기간 7년, 결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는지 이 책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
등장인물 소개
=====

■프렘 자우하르
-저자의 아버지
-나이: 일흔여섯
-인도계 미국인 과학자
-알츠하이머병 투병

■라즈
-저자의 어머니
-파킨슨병 투병

■샌디프 자우하르
-저자 / 심장내과 의사
-나이: 마흔일곱
-아내: 소니아(의사)
-아이들:모한과 피아

■라지브 자우하르
-저자의 친형 / 심장내과 의사
-실용 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
-아내: 반다나

■수니타 자우하르
-저자의 여동생
-남편: 비니

■하윈더
-상주하고 있는 아버지 간병인

■마크 고든
-아버지 주치의


=====
이 책에 들어가기 전에
=====

몇 달 전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과 내가 사는 롱아일랜드로 거처를 옮겼다. 양친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이후, 나는 아버지의 증상이 평범한 노화와 관련된 인지 기능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결국 형과 나는 둘이 합하면 경력이 40년에 달하는 의사들이었음에도 아버지가 전문의의 진료를 요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심장병에 관한 한, 우리 역시 전문의였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문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존경받는 과학자였음에도 아버지는 약물이(혹은 의사가) 당신의 건강을 지켜줄 거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고든 선생에게 다녀온 2014년의 그 가을로부터 우리 가족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몇 해에 걸쳐 우리는 아버지의 상태가 나날이 악화되는 과정을 힘겹게 지켜봐야 했다. 

와중에 나는 독자적인 탐구에 돌입했다. 아버지의 뇌, 그리고 치매에 걸린 다른 환자들의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 특히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마에 무너져 가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간병인 역할을 맡아야 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점과 동기들 간의 유대, 그 유대를 시험하는 난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대화와 논쟁은 사적인 동시에 다분히 보편적이다.

지식이 두터워질수록 나는 아버지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틈을, 내가 평생을 노력했지만 좀처럼 좁히지 못했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길은, 생각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노정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동시에 증오하기도 했다.


=====
저자가 처음 이상을 감지한 때
=====

-----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건 겨우 넉 달 전 아버지의 은퇴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 무렵 양친이 거주하던 노스다코타주로 날아갔을 때였다.
(...)
찌는 듯한 7월의 오후 집 앞에 차를 대는데, 잔디밭에 세워진 '매매' 표지판이 곧장 시야에 들어왔다.
(...)
아무리 봐도 팔려고 내놓은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양친은 거실에서 나를 맞이했다. 라즈,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는 나날이 쇠약해지는 몸을 일으켜 기꺼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 무렵 몇 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어머니는 동작이 어색하고 느릿느릿했다.
14페이지 中
-----

자식들이 자라 독립하게 되면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상태를 점검하는 일에 소홀해지게 된다. 그게 설사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반면, 부모는 자식의 이상함을 금방 감지한다. 이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
기억력 감퇴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때
=====

-----
나는 고든에게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아버지의 기억력 감퇴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건 지난 8월, 그러니깐 석 달 전 아버지가 롱아일랜드로 이사한 이후였다.
(...)
오래지 않아 그저 건망증이라기엔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족 모임에서는 툭하면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
참으로 극적인 변화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버지는 당신의 실험실에서 밀 유전학 연구를 전두지휘하던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과학자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미국과학진흥회 회원이기도 했다.
19페이지 中
-----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증상을 아들이 인지했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로 보인다. 이 병의 경우 보통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아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정도라면 이미 알츠하이머라는 기차에 올라탄 뒤가 아닐까 한다.


=====
알츠하이머를 처음 인지한 사람
=====

-----
아버지를 모시고 신경과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어머니였다.
(...)
9월의 그 저녁 집에서 내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던 어머니는, 그 동안 우리 모두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질문을 마침내 내 귀에 속삭였다. "너희 아버지, 알츠하이머병 아닐까?"
25페이지 中
-----

아버지와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함께 있었기에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억에 문제가 있음을 단번에 캐치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아무도 내뱉을 수 없었던 말을 어머니는 가장 먼저 꺼내들며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
알츠하이머병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

-----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기억은 뇌에서 어떤 식으로 부호화 되고, 치매에 걸리면 무엇 때문에 이것이 황폐해지는 것일까?

이건 내게 단순히 학문적인 질문에 그치지 않았다. 의사로서, 또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나는 뇌의 퇴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파헤침으로써 그러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바라건대 아버지의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그분이 현재 몇 년 후에 겪을 법한 일은 무엇인지를 얼마간 헤아릴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나는 아버지의 기억상실을 직시하는 것이, 소중한 사람의 달라진 인격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정서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나는 사안을 광범위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지식이 내게 상황을 더 깊이 꿰뚫어 보는 통찰력에 더해 공감 능력까지 가져다줄 거라고 믿었다.
(...)
그러므로 아버지의 상태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지식을 축적하는 일은 아버지의 욕구를 파악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더욱 세심히 돌보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56~57페이지 中
-----

비록 전공분야는 아니었지만, 저자는 의사라는 직업에 따라 과학적 지식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동시에, 정서적 실질적인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덕분에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하는데,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아버지를 위한다기 보다 자기 자신을 위함이 더 컸다.

뇌라는 구조와 질병이 어떤 증상과 상황을 만드는지를 머리로 이해하고, 어떤 결정에 있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이 모든 지식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계속 죄책감으로 남았던 부분들을 수용하고 결정 내리게 만든 것은 물론, 자기 면피 혹은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위로, 당위성의 근거로 활용되면서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저자 자신을 위한 공부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적이고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형과는 다르게 계속 감정에 기대에 과거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저자는 그렇게 마지막 결정을 내리게 된다.


=====
병의 진행 과정
=====

●롱아일랜드 도착했을 때 양친의 건강은 내가 파고에 가서 뵈었던 한 달 전에 비해서도 당혹스러울 만큼 악화되어 있었음 신경이 과민했고 건망증이 심했다. 어머니는 부축이나 장비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자잘한 착오가 은퇴와 이사, 익숙한 일상의 상실로 인한 스트레스의 결과라고 믿었다. 상황이 곧 나아질 거라고, 새 집이 더 편안해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라고,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마흔아홉 해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의 모든 일을 함께 했다. 또 그래서인지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어머니도 상태가 갈수록 나빠졌다.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자연스레 아버지의 삶도 팍팍해졌다.


●'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 진단!
경도인지장애는 인지 기능이 동년배의 표준에는 못 미치지만 진성 치매로 분류될 만큼 심각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비록 일부 정신적 영역에서, 특히 기억력과 관련해 몇 가지 눈에 띄는 결함이 발견되긴 했지만,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들이 이상을 쉽게 감지할 정도로 지력이 떨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운전과 같이 비교적 복잡한 활동은 이제 혼자 힘으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경도인지장애의 발생 빈도는 노인 다섯 명당 한 명꼴이었다. 경도인지장애가 본격적 치매로 진행되는 비율은 2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교우관계를 유지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거나 역사를 공유하는 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능력을 상실하면서, 아버지는 바깥 세계에서 흡사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불행히도, 다툼은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장애가 악화될수록 다툼은 심해져 갔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고, 때로는 보호시설로 보내겠다고 을러가며, 우리는 아버지를 지속적으로 회유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아버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감정 폭발을 제어하지도 못했다.

고로 우리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채 하윈더와 해결책을 의논했다. 결국 하윈더는 위험수당 형식으로 주간 보너스를 받는 데 동의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절박하기도 했다. 하윈더가 입주 간병인으로 일해준 덕분에, 우리는 각자의 직장과 가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으려면 하윈더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흡사 회전목마처럼, 우리의 대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빈번히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의사로서 나는 그런 내 노력이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로서 나는, 아버지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나쁜 행동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단 한번도 일정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문제 행동의 심각성을 일깨우려 해도 아버지는 무감하고 냉담하고 무심하고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뇌 질환에서 비롯된 결과일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나는 그해 가을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한 후에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나는 워싱턴대학 의과대학의 젊은 신경학자 그레고리 데이 선생을 만났다. 그는 찰스 F. 앤드 조앤 나이트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의 부센터장이었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 되자, 아버지는 하루에 거의 열여섯 시간을 방에서 지내며 사실상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라지브 형과 나는 갈수록 더 많은 시간을 그 집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그나마 남아 있던 부분까지 급속도로 붕괴되어갔다.

겨울이 되자 아버지는 러닝머신마저 사용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졌다. 결국 그 겨울, 러닝머신은 겨울잠에 들어갔다.

조력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배회벽은 결국 사그라들었고 아버지는 배회하려는 욕구조차 더는 느끼지 않았다. 분노 역시 진정되었다.

알츠하이머 재단의 지지집단 모임에서 나는 그러한 수동성이 치매의 마지막 단계에 흔히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세계가 축소되면서 아버지의 욕구도, 시야도, 가치 있는 존재에 대한 기대치도 축소되었다. 아버지가 당신의 제한된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는 내가 감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는 나를 비롯해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보았고, 어쩌면 중요한 건 그게 전부인지도 모를 일이다.


●금요일 아침,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

아들의 입장에서 서술되어서일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냉정하게 보이는 장면들도 눈에 띈다. 알츠하이머병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감정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모습도 여럿 발견된다.

그래서인지 어떤 면에서는 실용주의자인 형보다도 더 저자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여 안타까우면서도 병 앞에서는 직업이나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모두 똑같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 부모나 가족들의 간병을 하고 있는 보호자들의 모습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병 그 자체보다 내면의 나와 싸우느라 더 지치고 피곤할 것이다.


=====
파킨슨병 vs 알츠하이머병 자기 인식의 차이
=====

▶파킨슨병
기저핵이라는 뇌의 운동 제어 영역에서 시작되었다가 피질 영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병이 어디로 번져 가느냐에 따라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후군의 윤곽이 결정'된다.

짐작건대, 어머니의 뇌에서는 전두엽과 두정엽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장애 범위가 확대되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당신의 장애를 한 발짝 뒤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알츠하이머병
주로 전두엽과 두정엽의 손상을 유발한다. 그러한 손상이 보통은 후기에만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발병 초기에 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인식한 상태에서 기억력 감퇴에 대해 불평하거나 농담을 던질 수도 있다. 심지어 스스로의 결함을 가족들보다 더 확실히 자각할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 중기-통상 진단 후 2년에서 5년사이-에 접어들면 대개는 질병 및 자기 인식 능력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가령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여전히 인지하면서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지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하는 식이다.


***

저자의 어머니는 파킨슨병이 심해지는 와중에도 자기인식은 뚜렷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명이 희미하게 꺼져가는 와중에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반면,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병은 병이 심해질수록 점점 자신을 잃고, 기억을 잃고, 존재 자체를 잃어가게 된다. 마침내는 아들까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고,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때문에 보호자들에게도 끔찍한 병으로 불리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를 간병했던 간병인과 저자의 가족들이 겪었던 것처럼.


=====
기억에 남는 문장들
=====

-----
파킨슨병은 어머니가 평소 즐기던 삶을 앗아갔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기르고 집안을 살뜰하게 돌보는, 늘 힘에 부쳤지만 온전했던 그 삶을 송두리째 거둬가버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결코 '왜 하필 나인가?'라고 묻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왜 하필 어머니인가?'라는 물음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
2016년 초봄의 어느 날 실용주의자인 형은 어머니가 별안간에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146페이지 中
-----

이 문장에서는 두 가지 쟁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첫 번째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인 어머니는 전혀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들은 원망과 물음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는 점이다.

병마저도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태도에서 삶을 어떻게 포용하고 수용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했다.

두 번째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느 날 형은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는 장면에서 '역시 자식은 자식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아무리 큰 병을 앓고 있어도 끝까지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다르다. 어느 순간 탁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그런 마음을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토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이야기 하나보다.


-----
형수 반다나와 이야기하던 어머니는 친목에 소비할 에너지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무뚝뚝하고 담담한 어조로, 끝이 가까워졌다는 말을 꺼냈다.
(...)
다년간 의사로 일한 경험 덕분에 나는 적지 않은 환자가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를 육감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어머니의 예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
그로부터 3주쯤 지나, 어머니는 영면에 들었다.
146~147페이지 中
-----

저자는 이미 수많은 환자를 보며 환자들이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육감적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것을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적용하지 못했다.

때문에 어쩌면 저자는 많은 것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보면 의사라는 직업도 가족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는듯하다.

환자들에게는 예리하게 작용하는 촉이, 정작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작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 예감으로 인해 아들인 저자는 어떤 것을 놓치고 또 잃었을까?


-----
의사로 일하는 동안 나는 심지어 선의에서 비롯된 온정주의도 얼마든지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우리가 누구든, 의사든 자식이든 간병인이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멋대로 결정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196페이지 中
-----

특히 시한부 판정이 내려지는 순간, 당사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어떤 경우, 이를 당사자에게는 숨기고 쉬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멋대로 숨기고 결정을 유보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한다.

나의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는 존엄, 그리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도 의사나 보호자는 반드시 당사자에게 이를 고지해야 한다.

온정주의를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누군가의 기회를 앗아가는 해로운 일일 수도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일단 치매가 발병한 뒤에는, 열차가 이미 역을 떠났고,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고 봐야죠.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거나 돈을 노리는 사기꾼입니다.

이 말이 내게는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
한데 데이의 발언은 효과적인 요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내게 일깨워 주었다. 
220~221페이지 中
-----

세 자녀 중 끝까지 반대하고 또 반대했던 인물이 바로 저자다. 그래서 수면 위에서 볼 때는 가장 부모를 아끼고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밑바닥에는 죄책감 혹은 타인의 비난 등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저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오히려 거침없이 요양원을 알아보자고 말하는 막냇동생 수니타나 아니면 아버지의 유언대로 연명치료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형 라지브가 어쩌면 더 솔직한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여기저기서 모은 과학지식과 실경험들을 통해 자기 안의 감정을 추스르는 것은 물론, 자기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자기감정을 그렇게 하나씩 채워가며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설득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
아버지에게 있어 질병을 인식하는 능력의 상실은 사실상 방어기제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그 병이 병든 아버지를 보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위안이 되는 사실들은 또 있었다. 우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아버지의 불안을 다소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
말다툼 같은 건 대부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아버지는 어떤 일을 부인하거나 그것에 대해 질책할지언정 그 일을 오랫동안 마음에 두진 않았다. 단기기억이랄 게 거의 없다 보니 아버지는 인생을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몇 분 내로, 때로는 더 빠르게 아버지의 기분은 격노에서 체념을 지나 기쁨 비슷한 것으로, 혹은 적어도 익살이나 장난기-그것도 내가 자라는 동안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의 장난기-로 바뀔 수 있었다.
(...)
아버지는 순전히 현재 속에서 살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당신의 병이 빚어낸 결과일지라도. 아버지의 망각 능력은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었다.
230~231페이지 中
-----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던 초창기에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더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이 더 진행될수록 당사자는 점점 더 편안해진다.

기억이 점차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분이 빠르게 변화하고 현재만 존재하게 되면서, 보호자는 점점 괴로워지지만 당사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때문에 망각이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라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이따금 궁금해진다. 그 시절 아는 왜 그토록 끊임없이 아버지와 언쟁을 벌였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상당 부분 존경심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행동이 불합리하고 무의미하게 보일 때조차 아버지가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또한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당연히 이는 부인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다. 비록 의료 전문가로서의 나는 당시에 일어나는 일들을 명확히 이해했지만, 아들로서의 나는 아버지가 얼마간 통찰력을 되찾거나 병세에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좀처럼 놓을 수 없었다. 정신 질환자의 가족이 대개 그렇듯, 나 역시 합리적 논쟁 외에는 달리 소통할 방법을 도무지 떠올리지 못했다.
298페이지 中
-----

아버지가 다시 합리적으로 행동할 거라고, 곧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그토록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말하는 저자.

어쩌면 자신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존경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더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토록 형제들과 대립하며 반대하고,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
"내가 정말, 정말...... 미안하구나."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구나, 버부."

(...)

"사랑한다. 산자." 아버지는 이렇게 속삭였다. 살면서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내 기억으로 그때가 처음이었다.
"저도 사랑해요."
(...)
"한동안 여기 와서 나랑 지내볼래?"
"좋죠."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지금은 가야 하지만, 조만간 다시 올게요."
"그래도 되겠니? 내가 정말, 정말...." 아버지는 다음 낱말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미안하구나. 넌 내 가족이야."
(...)
문득 이번 겨울이 아버지의 마지막 겨울이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309~310페이지 中
-----

아버지는 불현듯 평생 하지 않았던 말을 아들에게 전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 때는 놓쳤던 마지막을 아버지 때에는 인지하게 된다. 기억을 잃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남기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는 간신히 떠올리며 그렇게 전한다.

어쩐지 짠하면서 아들로서는 평생 기억에 남을법한 장면이다.


-----
"급성 질환이 발병했을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요로감염증도 따지고 보면 말기 치매의 합병증이에요." 재스민은 천천히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잠시 그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그때껏 나는 아버지의 급격한 쇠락이 근 일곱 해 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질병과는 어째서인지 무관하다고 여겨온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일찍이 받아들인 질병의 결과라는 간호사의 설명은, 돌연 치료의 중단이 내게 더 합리적인 결정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336페이지 中
-----

자기 위로, 자기 결정의 또 다른 순간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저자는 합리적 시선으로 아버지의 병을 바라보지 못한다. 어쩌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버지가 겪고 있는 증상을 치매와는 별개로 생각한다. 그래서 끝까지 고칠 수 있다, 나아질 수 있다고 우긴다. 그래서 수액을 달고 피검사를 요청한다.

하지만 마침내 마지막을 도와주러 온 간호사의 설명에 저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선택지도 있음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줄곧 한쪽방향으로만 추가 기울어져 있었다. 다른 방향성이나 선택지에 대해서는 줄곧 회피해 왔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는 간호사로 인해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질문들!
=====

◎기억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기억이 사라진 후를 시작으로 다시 인생을 만들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우리 삶에서 기억이 가져다주는 가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존재, 자아, 연결, 관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범주와 시점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적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이 겪고 있는 병보다 내 감정에 더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한부 판정을 받는 당사자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


=====
마무리
=====

아버지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중심으로 회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병이든 가족 중에 큰 병을 앓고 있는 이가 있고, 또 가족들이 돌아가며 간호하는 상황을 맞닥트리게 되면 상상이상으로 힘든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매 순간 일상은 침범당하고, 제때 잠을 자거나 먹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타인의 우려 섞인 시선과 경제적인 부담까지 가중되면 보호자는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언급되는 몇몇 불편한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합당한 이야기다. 그리고 저자가 겪은 일련의 심적 고통과 고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위에서는 다소 비판적인 어투로 이야기했으나, 사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같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어떤 대단한 직업을 갖고 있다 해도 대상자가 나의 가족이 되는 순간 객관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부스러지고, 일반 범주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내 가족은 다를 것이라며 자꾸 특수한 경우에 끼워 맞추게 되고 결국 감정은 더 격양된다.

때문에 환자와 자꾸 갈등을 빚게 되고, 여기에 더해 나 자신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에 도래하면서 평온한 상태가 지속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진짜 소중하게 보내야 할 시간을 헛되게 보내게 되고 결국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부모님 두 분이 동시에 큰 병을 앓는 상황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앞서 과학자의 길을 걸으며 아들에게 있어서는 존경의 인물이자 감히 넘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기억을 잃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은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 암시를 걸며 새로 나타나는 증상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 치매와 연관 짓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내가 알던 사람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며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뇌에 대한 과학지식과 알츠하이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는 형과 동생의 결정에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죽음 앞에 모두는 평등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죽음은 거스를 수 없다.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그렇기에 당사자가 생전 바라던 죽음의 형태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을 존중해 주었듯, 죽음 또한 존중이 필요한 것이다.

7년의 간병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던 방식대로 존중받으며 죽음을 맞았다.

이 책을 읽을 때 기억을 잃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달라지는 여러 가지(존재, 관계, 삶 등) 부분들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병을(어떤 병이든) 대하는 자세,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도 함께 고려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했던 책!"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경이로웠노라고!' 더불어 꼭 읽어보라고,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책은 잠시의 틈을 활용해 읽으려 펼쳐든 책으로, 실상 이 생각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왜냐하면 읽기 시작한 순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대로 끝까지 완주해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곁가지의 비밀을 떨쳐내고 진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독자는 그저 저자의 손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때로 눈앞에 펼쳐지는 눈부신 빛에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빛 너머의 또 다른 비밀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실제 현존하는 이야기에 약간의 허구를 더해 만들어진 팩션으로, 빛과 기억을 주 재료로 설계되었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만 8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만큼 수많은 비밀장치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순간에 꿈과 모험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폐허처럼 보였던 요양병원의 공간은 빛이 스며드는 순간 마치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덕분에 주인공은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비밀을 하나 둘 파헤치게 된다.

또 보상으로 받은 시테섬의 집에서는 따뜻한 기억과 추억들이 먼지 속에서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차마 말로 전하지 못했던 사랑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게 되면 문득 집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저 잠만 자는 공간, 잠시 머무르는 공간, 소유의 목적으로 인식되던 공간에 새로운 의미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기억 속에 저장된 어릴 적 집, 그리고 공간을 거쳐 지금 머무르는 집에 새로운 필터가 씌워진다. 이 공간 안에서 울고 웃으며 쌓은 추억들이 다시금 떠오를 것이다.


=====
이 책에 들어가기 전에
=====

건축가이자 작가인 저자는 프랑스에 있을 당시 길을 지나다가 문득 아름다운 집을 볼 때면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곤 했다.

그러다 간혹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많은 파리의 저택에 발길이 닿았고 그 이야기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저자는 8년 동안 조사해 온 거의 모든 집의 이야기를 책 속에 넣었고 그 이야기를 하나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책 속에 많은 비밀을 넣어두었다. 파리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분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그들만의 비밀, 저자로서 독자에게 보내는 수수께끼까지.

각 챕터마다 작가가 직접 그려 넣은 그림에도 역시 비밀이 숨어 있는데, 집의 이야기를, 집의 기억을 전해준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분들이 소중한 '기억'을 그들만 알 수 있는 표식으로 그렸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분들이라면 그림을 보고 그 챕터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챕터가 시작되는 지점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 대문이 그 해답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이야기를 들려준 분들의 집 대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
등장인물 소개
=====

■뤼미에르 클레제
-건축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에 의뢰해둠
-한 달이 지난 후 부동산으로부터 파리의 중심부에 있는 시테섬에 가격과 조건이 맞는 곳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됨(5만 유로)
-이때부터 집을 얻기 위한 모험과 테스트가 시작됨

■피터 왈처
-현재 왈처요양병원에서 요양 중
-아버지의 숨겨진 비밀을 풀어달라는 요청을 한 의뢰자이자 시테섬의 집 주인

■크리스티나 도브르
-왈처요양병원 원장
-보통 크리스 부인이라고 부름

■프랑스와 왈처
-피터의 아버지
-건축가
-40년 전 사망
-왈츠요양병원을 설계하고 디자인한 건축가

■아나톨 가르니아
-의문의 여성
-종탑 근처 그녀의 무덤이 발견됨
-그녀의 일기장이 숨겨진 도서관에서 발견됨

■이자벨 파이에
-집주인 피터 왈처 씨의 대리인

■알랑 펠리시에
-부동산 중개인

■뱅상
-스위스 루체른에서 빵 배달 일을 함


=====
수수께끼와 힌트
=====

●4월 15일의 비밀
-왈처요양병원은 일 년에 단 한 번 4월 15일에 비밀이 열린다.
-두 일기의 시작일
-왈처요양병원 온실의 이름: 잠들어 있는 보석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등장인물들의 주요 직업이 건축가
-집과 관련되어 있음
-저택의 숨은 매력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종탑 주변의 무덤들(프랑스와 왈처/아나톨 가르니아)
*병원 건물 구석구석
*종탑
*당신의 방에서..... 바라본다.
*5층 복도 끝방(=왈처씨 부인의 방): 침대가 없음
*3층 열쇠 구멍이 없던 비밀의 공간=창문이 없는 공간=숨겨진 도서관
*바니시 칠이 책에 눌린 자국이 있는 나무 책상
*필사책과 알 수 없는 2권의 일기장
*피터 씨의 목에 걸려 있는 열쇠


=====
줄거리 살펴보기
=====

건축가 일을 하고 있지만 늘상 남들을 위해서만 집을 지어주던 뤼미에르는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공간을 스스로 고치고 싶어 5만 유로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부동산에 매매를 의뢰한다.

그리고 어느 날 부동산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시테섬에 가격과 조건이 맞는 집이 있다며 긴급 연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전화로 인해 뤼미에르는 삶이 통째로 바뀌게 된다.

집과의 첫 대면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많았는데, 첫째 매수인이 건축가라는 조건을 붙인 것, 둘째 아무리 방치된 오래된 집일지라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은 점, 셋째 계단 난관의 오른쪽과 왼쪽의 높이가 다른 점이었다.

집주인인 피터 왈처는 대리인인 이자벨을 통해 뤼미에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이고, 이 집이 마음에 드는지.
*두번째, 이 집을 산다면 집을 어떻게 할 건지, 수리는?
*세번째, 집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게 된 대리인 이자벨은 그를 피터 씨가 있는 요양원으로 초대하게 되고 이 또한 매매 조건 중 하나였다.

사실 시테섬에 있는 이 집은 피터 씨의 아버님이 살던 집으로 피터 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소중한 집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이 없어서 방치되고 있는 중으로, 피터 씨는 몸이 아파 계속 요양원에 머물고 있었다.

피터 씨는 이 아끼는 집을 잘 가꿔줄 사람을 찾고 있는 중으로, 판매 가격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이 집을 얼마큼 잘 이해하고 가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런 내용을 듣게 된 뤼미에르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서명에 사인한 후 마침내 집주인인 피터 씨를 만나러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왈처요양병원으로 가게 된다.

이런 사정을 듣게 된 뤼미에르는 어느새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그 집에 살던 집 주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며칠 후 집주인으로부터 기차 티켓과 경비를 받은 뤼미에르는 불현듯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밤기차를 타고 스위스 루체른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잠이 드는데 꿈속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도착지점 역이었고 막 출발하던 참이라 급하게 뛰어내려 역 맞은편 카페에서 요기를 하고 그곳에서 빵을 배달하는 뱅상 씨의 차를 얻어타고 왈처요양병원으로 가게 된다.

가는 길은 매우 험해서 아무나 자주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는데, 가는 길에 뱅상 씨는 왈처요양병원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곳은 최고급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으로 거대한 호텔같이 방이 꾸며져 있으며, 돈이 많이 들어 아무나 갈 수 없는 병원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외로운 부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며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주로 머물고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때문에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그래서 교통편이 많이 없다며, 오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처음 마주한 병원은 마치 아주 오래된 수도원이나 저택쯤으로 보였는데, 건물 주위로 널브러진 잔해들로 인해 마치 로마의 포로 로마노에서 폐허가 된 유적을 접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뤼미에르는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문지방을 넘는 순간 바닥이 잔디밭으로 되어 있어 실내로 들어섰지만 다시 바깥인 느낌을 받게 된다.

놀라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는데, 위에서는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두려움과 따뜻한 빛줄기 속의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요양원은 원장인 크리스 부인이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통해 피터 씨와의 면회를 신청하지만 건강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당장 면회가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뤼미에르는 돌아가기로 마음먹지만, 때마침 대리인 이자벨 씨가 원장 크리스 부인을 통해 전해 온 전언으로 인해 뤼미에르는 그녀와 통화한 후 더 머물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한다.

이자벨 씨는 뤼미에르에게 며칠 더 머물러 주기를 요청했지만 그는 어쩐지 썩 내키지 않는다. 어쩐지 자신을 자꾸 잡아두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화하는 사이 데려다주기로 한 뱅상 씨는 이미 떠난 뒤였고, 차편이 끊겨 오늘은 시내로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하룻밤만 신세를 지기로 하고 요양원에 머물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저곳 둘러볼수록 건축가로서 이 저택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나 커져버려서 탐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고, 그렇게 탐방하면서 이상한 점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뤼미에르는 점점 더 이 병원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살롱에서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그날은 일 년에 단 한 번 비밀이 열린다는 4월 15일이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후 뤼미에르는 피터 씨에게 한 통의 서한을 받게 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
왜 4월 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

뤼미에르는 계속 이 집에서 자의든 타의든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마치 자신만 모르는 무언의 상황들, 그리고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저택에 대한 호기심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면서 이 병원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더불어 이 집의 건축가에 대한 호기심도 더해지면서 이 집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테스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은 면회가 가능해질 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피터 씨께 주면 된다는 말을 전했고 이에 뤼미에르는 서한의 답을 찾기 위해 며칠 더 머물며 병원 곳곳을 더 광범위하게 돌아보기로 한다.

한편 뤼미에르는 자는 동안 꿈을 통해 어떤 남자를 계속 만나게 되는데, 그는 뤼미에르에게 계속 어떤 힌트를 주고 있었다.

노인의 모습은 흰색 와이셔츠, 흰색 넥타이, 흰색 정장 거기에 흰색 수염, 흰머리, 금색 안경, 기품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는데, 오른쪽 얼굴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흉터 자극이 있었다.

병원 곳곳을 둘러보면 숨겨진 힌트를 하나 둘 얻어 가던 뤼미에르는 마침내 피터 씨가 의식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지금까지 그가 얻은 비밀의 조각들은 풀어놓게 된다.

피터 씨는 눈이 먼 상태라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뤼미에르는 읽거나 자세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내용을 전해야만 했다.

여러 비밀장치와 비밀의 공간, 무언의 조각들을 통해 얻은 두 개의 일기를 발견했고, 이에 적힌 내용을 듣던 중 피터 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비밀이 모르는 여인과 아버지의 로맨스 이야기라 오해하게 되면서 끝까지 듣기를 거부하고 이에 피터 씨의 의뢰는 자연스레 종료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3일간 머무르던 병원을 떠나게 되는데, 그날 아침 원장의 방에서 우연히 그동안 자신의 꿈에 나오던 백발의 노인이 프랑스와였음을 알게 된다. 다소 놀랍기는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뤼미에르는 크리스 부인이 건네는 두 개의 서한과 두 개의 일기를 가지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게 된다.

크리스 부인이 준 두 개의 서한 중 한 장은 프랑스와 왈처가 부인에게 남긴 편지였고 또 하나는 피터 씨가 뤼미에르에게 전한 편지였는데, 프랑스와가 남긴 편지는 당장 읽지 않고 안주머니에 넣어두었고, 피터 씨가 남긴 편지에는 돈과 감사의 내용이 적혀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피터 씨는 시테섬의 집도 뤼미에르에게 대가 없이 그냥 주기로 하면서 뤼미에르는 마침내 바라던 파리 중심가에 내 집을 갖게 된다.

집을 손보기 전 그는 먼저 집 구석구석을 살펴봤고 그러던 중 새로운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호기심과 프랑스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면서 뤼미에르는 새로 고칠지 아니면 그의 생각을 온전히 지킬지 고민하다가 결국 전 주인인 프랑스와의 흔적과 역사를 간직해 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흔적을 남겨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기로 결정하면서 프랑스와의 일기와 아나톨의 일기를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숨겨진 인연과 사연을 알게 된다.

같은 날짜(1921년 4월 15일)에 시작되는 일기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프랑스와는 앞으로, 아나톨은 과거로 흘러가고 있었다.

수수께끼 같고, 미스터리한 일기 내용을 통해 뤼미에르는 집에 숨겨진 여러 장치와 비밀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되살려보기 위해 하나씩 흔적을 되새겨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크리스 부인이 건네준 또 다른 편지(프랑스와가 크리스 부인에게 남긴 편지)를 읽어보게 된다. 이를 통해 이 저택도 병원처럼 숨겨진 비밀이 있으며, 진짜 중요한 비밀은 병원이 아닌 이 저택에 잠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프랑스와가 살아있던 시절, 아나톨을 위해 집을 고쳐나갔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촉각, 후각, 온도, 청각들을 활용한 비밀스러운 장치들을 구현해 내기 시작한다.

일기의 내용이 거듭될수록 비밀은 더 큰 비밀을 품고 있었고, 이에 뤼미에르는 피터 씨에게 알리기 위해 다시 스위스 루체른의 요양원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피터 씨에게 집을 돌려주는 것은 물론 그의 부모가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갑자기 프랑스와의 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뤼미에르는 불현듯 그곳을 찾게 된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피터 씨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그 후의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된다. 피터 씨는 뤼미에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그를 초대해 자신의 기억으로만 열 수 있는 다락방에 숨겨진 비밀의 벽 문을 보여준다.

감춰져 있던 벽에는 오래된 글귀가 가득 적혀 있었는데, 아나톨과 프랑스와의 글씨들이었다. 그곳은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곳으로 사랑이 묻어있는 공간이었으며, 셋의 아픈 시간이 기록된 곳이었다.

피터 씨는 비밀의 문을 통해 아나톨이 죽고 난 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프랑스와가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주어야 할지 몰라 자신을 친모에게 맡기고 떠났으며,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덕분에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묻혀 있었던 프랑스와와 아나톨의 깊은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 일로 피터 씨는 계속 이 집에 머물며 여전히 프랑스와와 아나톨이 남긴 메시지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여태까지 본 것 이상으로 곳곳에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결국 이 비밀의 핵심 키는 피터 씨의 기억에 있었던 것이었다.


=====
빛과 건축물이 주는 느낌에 대한 표현들
=====

-----
살롱과 달리 약간 어두운 그녀의 집무실은 차갑고 묘한 분위기였다. 병원의 현관에 감도는 따뜻한 분위기와 내부 복도의 차가운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점이 건축가인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막연한 불안감일지도 모른다. 건물이 주는 느낌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의 심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이 병원을 만든 건축가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이 드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지은 것일까.
61페이지 中
-----

문 하나로 확연히 달라지는 분위기가 결국 그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의 심적 변화에 따른 느낌이라니, 어쩐지 신비로우면서 호기심 어리게 다가온다.


-----
모두가 바라본 것은 테이블로 향하는 빛기둥이었다. 그 빛기둥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난 후 빛기둥이 테이블 모서리에 닿자 모두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식사를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66페이지 中
-----

빛기둥의 이동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곳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 것만 같은 형상들을 떠올리게 된다. 요즘은 집을 지을 때 건축가나 건축주의 의도에 따라 일부러 빛을 들이려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심한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들었는데, 프랑스와 또한 그 모든 것을 계산한 뒤에 만든 공간이 바로 이 살롱이었던 것이다.


-----
왈처요양병원의 정문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표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무섭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비밀의 여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잔디가 덮인 바닥을 보면서 그녀의 비밀이 아주 깊은 곳에 있음을 직감했다.
(...)
그녀는 비밀이 많은 미지의 '여인'이었다. 결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프랑스와라는 건축가가 만든 이 '여인'을 샅샅이 알아보고 싶었다.
71페이지 中
-----

사람이 아닌 어떤 물체에서 표정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별히 의도했거나 혹은 특유의 감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기에 더 그렇다.

왈처요양병원은 아주 특색 있는 건축물이다. 외관으로 봤을 때는 오래된 수도원의 느낌을 하고 있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또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살롱의 모습과 온실은 어떠한가? 여기에 더해 일 년에 단 한 번만 감상할 수 있는 빛의 향연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층마다 자연으로부터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자연의 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왈처요양병원은 비밀이 많은 미지의 '여인'이다.


-----
"그런데 나팔관은 뭐죠?"
"그 공간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고 향기도 맡을 수 있어요.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요.
(...)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음악을 듣는 거예요. 더불어.... 아침 햇살이 그 틈으로 들어올 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답니다. 저희 병원에 계신 분들은 모두 그 공간에서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바라보세요."
(...)
원장이 하는 소리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 몸이 끼어 창피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건축가의 호기심이 곧 발동했다.
83페이지 中
-----

외부에 있는 자연을 그대로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축물이라니, 나 또한 그 장소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상상만으로 도저히 채워지지 않아 더 궁금해지는 나팔관의 모습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겠지?


-----
빛줄기가 거울에 닿자 순식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모두의 탄성이 이어졌고, 그중에서도 내가 지른 탄성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어둡기만 했던 살롱이 갑자기 수많은 빛줄기로 환하게 밝아진 것이다. 벽 쪽 거울에 닿자마자 빛줄기는 반사되어 반대쪽 조금 높은 벽의 거울에 닿았고 그 빛줄기는 다시 반대편 거울에 마지막에는 천장에 닿았다. 어제 보이지 않던 천장은 온통 비스듬한 조각 거울로 이뤄져 있어 어두웠던 공간을 한순간 반사된 빛줄기들로 가득 채워버렸던 것이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내게 떨어진 것은 수천 갈래의 밝은 빛줄기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빛의 반사로 처음에는 시야를 잃었고 이내 주변은 온통 따뜻함으로 감싸졌다. 마치 포근한 엄마의 품속에 안긴 것처럼.
94페이지 中
-----

일 년에 단 한 번, 그것도 운이 좋아야 관람할 수 있는 빛의 향연은 포근한 엄마의 품속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둡던 살롱이 동시다발적으로 환한 빛줄기를 내뿜으며 여기저기 반사되는 모습은 가히 천상에 있는 느낌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빛과 그림자, 조각상과 거울, 여기저기로 뿌려지는 빛줄기를 나 또한 멍하니 앉아 바라보고 싶다.


=====
감정의 변화
=====

-----
원장에게 질문을 건네면서 나는 뜻밖에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건축가로 탈바꿈된 것만 같았다. 묘한 행복감이 나도 모르게 온몸을 휘감았다.
86페이지 中
-----

뤼미에르는 스위스로 오기 전 이미 지쳐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한 달간 장기 휴가를 낸 상태였다.

그때 우연히 만난 시테섬의 집과 피터 씨의 비밀 조각들은 뤼미에르로 하여금 다시 건축가로서 영감과 열정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계기가 되어준다.

덕분에 앞서 거쳐간 세 명의 건축가들과는 달리, 그는 이 모든 비밀과 건축물들에 매료되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
기억에 남은 문장들
=====

-----
모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연이 있듯이 집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 사연을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이에 집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오래된 집은 그만큼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줄 사람을... 때론 몇 십 년, 때론 수백 년을 그렇게 기다릴 것이다.
90페이지 中
-----

빨리빨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조금 답답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느리게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사연을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그가, 당신이, 집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때까지.


-----
만약 천장의 찢어진 틈을 감쪽같이 메웠다면 이 집이 겪었던 격동의 과거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 건물은 과거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새로운 삶을 부여받아 지금의 병원으로 되살아났다.
113페이지 中
-----

보통 사람들은 상처나 부서진 곳을 감쪽같이 메우려고 노력한다. 티가 나지 않도록 덧되고, 비슷한 질감으로 채워 넣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것 또한 티가 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건물이나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 멋스러운 빈티지로 자리 잡을 텐데, 너무 인위적으로 가리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
지금까지 세상에서 찾아낸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이다. 하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
다른 하나는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경계가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도 같다.
116페이지 中
-----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쩐지 유니크함과 멋스러움 모두를 지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프랑스와 왈처가 재현시킨 폐허였던 중세 수도원과 그 폐허에서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유리와 철골 구조는 시간이 흘러 함께 늙어가는 부모와 자식처럼 느껴졌다. 재질은 전혀 다르지만 예전의 석조 공간과 프랑스와가 지은 유리와 철골 구조가 완벽히 결합했고, 현대 건축가인 내게는 둘 다 완벽한 한 편의 역사로 다가왔다.
(...)
폐허가 된 건물을 이렇게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을 고안한 그에게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내게 이 병원은 더 이상 하나의 건축물에 그치지 않았고 보물처럼 느껴졌다. 역사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향기로운 보물 말이다.
128~130페이지 中
-----

이 문장에서 '상생'을 떠올려 보게 된다. 전혀 다른 나와 네가 뭉쳐서 어우러지고 함께 잘 살아가는 모습.

건축가였던 프랑스와는 그런 감각이 탁월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완벽한 결합은 미관도 살리고, 안전도 보장할 수 있었다.


-----
이 세상에서 완벽히 예전의 모습을 지키는 문화재는 박제된 문화재일 뿐이다. 조금씩 변화되면서도 지켜야 할 부분은 지키는 문화재가 지금도 살아 있고 앞으로도 생명력을 보전해 갈 수 있는 존재다. 프랑스와는 이 건물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144페이지 中
-----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그 문화재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보통 '보존'이 잘 되어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말은 곧잘 박제되어 있다는 말과도 같다. 다시 말해 죽어있다는 말이다.

살아 숨 쉬는 문화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와 똑같은 형태,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죽어있는 상태여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모습 또한 그렇지 않을까? 완벽히 어제와 같은 오늘이 매일 이어진다면 그 사람은 죽어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새로운 생각, 일상을 살아야 비로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집은 그렇다. 잠시 자신의 생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공간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219페이지 中
-----

비움과 미니멀에 대한 영상과 책을 보면서 물건을 소유로 생각하기보다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개념들을 많이 봤는데, 집 또한 그 범주에 넣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집에 대한 개념이 좀 다르지만, 외국의 경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가 오랫동안 한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더 그 개념이 자리 잡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100년 된 집,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집 등과 같은 미담들이 속출한다. 우리나라도 이야기가 담긴 개성 넘치는 집들이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
세상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오래될수록 숙성되어 진가를 발휘하는 와인처럼 말이다.
-----

요즘 시대를 보면, 숙성의 묘미를 많이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세상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꽤 많은데,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인내를 잃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
프랑스와가 제게 알려준 것이 있습니다.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위해 그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이제 피터 씨,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흔적을 채워서 당신의 아이들에게 전해줄 차례입니다.
330페이지 中
-----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도 그곳을 채우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공간은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더불어 공간만으로 완벽하다 말할 수 있는 공간 또한 없다.

그렇기에 공간에는 사람이, 이야기가, 추억이 스며들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다. 텅 빈 공간은 많이 부족한 공간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을 나만의 추억과 사랑, 이야기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그러면 어떤 공간에 있든 완벽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
마무리
=====

기억과 공간, 빛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책이 탄생했다. 찬란함 속에 스며 있는 온화함과 따스함 덕에 그 어떤 폐허의 공간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던 시테섬의 집마저도 먼지 속에 온기가 숨어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나만의 집과 공간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외적인 것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갖기' 원하기 때문에 정작 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갖기'보다 '추억'하고 '채워' 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공간 속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심고, 추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지에 따라 공간이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는 보이는 재료에 치중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재료에 더 집중하며 나만의 집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기억의 장소가 집이 될 수 있도록, 집이 기억의 보물창고가 될 수 있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대여와 반납만 하고 쏜살같이 튀어나오던 도서관을 요즘은 그래도 꽤 자주 휘~ 돌아보고 나오는 편이다. 더불어 이곳저곳 어지럽게 붙여져 있는 각종 전단지와 글귀들을 한 자라도 더 눈에 담아보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더 넓은 관점을 갖기 위해 해보는 나름의 방법이자 노력이랄까? 내 바운더리에 갇히지 않으려는 나름의 발버둥이자, 해보지 않았던 경험들을 하나씩 추가해 보고자 하는 도전의식은 그래선지 평소 대비 더 많은 에너지와 피로를 불러온다.

모르는 것은 물어봐야 하고, 또 알게 된 것을 실천으로 연결해야 하기에 눈과 머리는 핑핑 돌고, 손과 발은 늘 바쁘다. 때문에 한 곳에 진득이 앉아 집중할 시간은 부족해지고, 덕분에 몸은 피로를 업고 산다.

그렇게 얻는 것들이 모두 성공 혹은 긍정적 경험만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실패의 경험을 통해 다음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기에 어쩌면 더 귀한 경험이자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그런 활동 에너지를 쓰면서 읽게 된 도서로, 단순하게는 그냥 새로운 책을 읽는 행위였고,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도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이자, 누군가의 추천도서를 읽는 하나의 행위로 연결되는 일이었다.

모르는 작가, 모르는 출판사, 모르는 책 제목일지라도 나에겐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일이기에 더 별생각 없이 집어 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2023년 가을 3개월간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여하게 되면서 겪은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엮어 만든 책으로 일기의 형식을 빌려 자유롭게 쓴 기록물이다.

보통 일기라고 하면 1일 1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이 공식을 깨고 머문 일수보다 일기를 쓴 횟수가 더 많다. 그러니 일기 같은 자유로운 형식을 따랐지만, 실상 보통의 통념상 일기라고 구분 짓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내용 또한 한계 없이 널을 뛴다. 아무 말 대잔치 같은 글들부터 시작해 통통 튀거나 재치 있는 글, 기발한 상상을 불러오는 글까지 다채롭고 흥미로운 글들로 가득하다.

물론 보통의 평범한 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역시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00을 했다'와 같은 글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생각들, 그리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가 나의 전두엽을 자극하며 이마를 탁 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야말로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글들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장문처럼 읽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맥락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리저리 바람에 위치를 바꾸던 종이컵과 창문 사이로 들이치던 샛바람, 아이오와의 골목과 거리들을 꼼꼼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
이 책을 읽기 전
=====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은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열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023년 가을, 저자는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작가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 낯선 언어로 작품을 쓴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 책은 그런 작가들을 마주하면서 변화한 저자 내면의 기록이자 일기, 그리고 성장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아이오와에서의 체류가 인생의 방향을 틀 만한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하며, 이중 언어자로 살아가는 작가들과, 이민자들의 삶을 목격한 경험은 새로운 정체성과 모험의 씨앗을 움트게 했다고 한다.

※엑소포닉: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를 일컫는 말로, 이중언어자라고도 한다.


=====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

-----
사실 이들과 있을 때 가장 편할 때는 이들이 만다린어로 얘기할 때다.
(...)
가령, 닌텐도 미니게임에서 둘이 같은 편이 되었을 때, 혹은 급하게 서로를 이해시켜야 할 때 등이 그러하다. 그럴 때 내 입장에서는 대화에 빈 공간이 생기는 셈인데, 그 검은 심연이 발생할 때면 나는 푹 쉴 수 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 책임도, 구속도 없는 기분.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그 정지의 시간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다.
(...)
나는 만다린어도 광둥어도 일본어도 못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고, 그래서 나만 홀로 자유롭다.
31페이지 中
-----

▼▼▼

-----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로 말할 때 대화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서 좋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의 쏟아짐 속에서만이 나의 귀는 자유롭다고. 그런데 나는 변하고 말았다. 이제 이해하고 싶다. 친구들의 모르는 언어를. 범람하는 언어에 파묻힌 나는 알아듣고 싶다. 내가 살고 싶어 하네. 이제는 미세하게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구나. 변화하고 만 것이다. 이런 내가 조금은 징그럽지만.
244~245페이지 中
-----

저자가 3개월간 아이오와에서 지내며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을 꼽자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초창기에 그녀는 프로그램을 자주 스킵하는 스킵러로 불리는 것은 물론, 소수의 인원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조차 오히려 알아듣지 못해서 편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까운 친구들과 사적인 시간을 보낼 때는 함께 섞이고 싶다, 알아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정말 '변했구나' 느끼게 된다.

사실 위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신선하다 생각했었다. 소수의 인원이 한공간에 함께 있는데 나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두고 '소외감'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느낀다는 것이 어쩐지 좀 정신 승리같이 여겨졌달까?

그런데 역시나 친분이 쌓이고 난 후에는 무리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사람은 역시 '사회적 동물'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탈출 방향을 살펴보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문장이 있었는데, 바로 "내부에서 더 진한 내부로 뛰어드는 것도 일종의 탈출인 셈이다."라고 언급한 문장 때문이다.

일반적인 탈출 방식이야 그렇다고 치고, "막힘+더 막힘=뚫림"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안에서 더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우리는 보통 '도망' 혹은 '갇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그것조차 탈출이라 말하는 발상은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탈출 방향이야 어떻든 탈출만 하면 그만 아닌가? 앞으로는 안에서 안으로 파고든다고 해서 꼭 숨는다거나 도망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의 탈출'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래야 또 다른 도전을 이어 나갈 것이 아닌가?


-----
그런데 'How are you'의 가장 고약한 점은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떻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런 질문을 던지다가 분노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아 맞다. 나 기분 별로지' 하고 잊은 일을 되살려내는 힘이 이 인사말에 있다.. 그러니까, 'How are you'의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56페이지 中
-----

누군가 "How are you?"라고 물었을 때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I'm fine, thank you." 말고 이 물음에 진정성 있는 대답을 하려면 잠시 멈춰야 한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나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How are you?"의 고약성에 대해서는 나 역시 동감하게 된다. 쾌청하고 맑은 기분이었을 때는 괜찮지만,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 물음은 다시 한번 나의 좋지 않은 상태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
아시아인이 특히 취약한 발음인 'r'을 반복 연습했는데, 'word'와 'world' 때문에 애를 먹었다.
-'world'는 혓바닥이 앞니의 뒷면에 닿아야 해.
-세상에 닿기가 힘듭니다.
-입을 열듯이!
-세상이 안 열려요.
-열거라.

(...)

그리고 낭독할 시에 'windy'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웬디는 그 단어를 자신의 이름인 'wendy'와 구분하는 방식으로 발음을 설명했다.
-손으로 입을 가려봐.
-네.
-그리고 'wendy'해봐. 어때? 입에서 바람이 불지?
-제 입 냄새가 나요.
-'windy'는 좀 더 짧고, 입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둘 다 바람이 부는 것 같은데...
-'wound(상처)'도 마찬가지야. 상처를 발음할 땐 약간의 바람이 불도록 해.
-모르겠습니다.
59페이지 中
-----

하하하 이렇게 웃기기 있기 없기?

한국인들이 특히 영어 발음 교정할 때 엄청 애를 먹는데, 그때 모습이 떠올라 더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특히 재치 있게 받아치는 말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당신 역시 발음 교정에 애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 경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혀는 세상에 닿지 않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요.
이젠 어쩌죠? ㅎㅎㅎ


-----
말이 통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언어의 능숙도와는 무관한 것 같다.
102페이지 中
-----

깊게 공감되는 말이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서 같은 언어를 쓴다고, 언어가 능숙하다고 다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떨어지는 이해력, 문해력, 어휘력은 물론, 여기에 더해 타인을 이해하고자 마음, 배려심, 공감 등이 결여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소통으로 연결되지 않고 불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한국말은 외계어로 들리는 현실.

반면 경청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꼭 능숙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의미와 뜻이 통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문득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통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각 언어별로 단어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기도 하고 또 비가 내리기도 한다. 은근히 재밌는 발상이라 읽으면서 새록새록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던 부분이다.

만날지, 피할지, 비켜갈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 아닐까?


-----
오릿의 말마따나 내가 느끼기에 영어는 좀 라이트 하다. 그래서 난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의 톤이 올라간다. 그 말을 하니 오릿이 한국어를 해보란다. "안녕하세요. 최선을 다하십쇼"라고 말하니 나의 완연한 저음에 놀랐다. 다른 사람 같다고. 난 그 점이 좋다. 내가 두 개의 성격, 두 개의 기분을 지닐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두 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겠는가?
190~191페이지 中
-----

다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어별로 목소리 톤과 억양, 높낮이 등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저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같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내 목소리, 이미지, 성격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외국어를 배워보면 어떨까?

어쩌면 또 다른 성격, 다른 이미지의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도전해 보고 싶어지는 동기가 될지도. 이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
"저는 혼자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하루는 어느 농장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농부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친절했죠. 그 사람은 왕년에 시인이었고, 알고 보니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출신이었어요. 당시 그는 유망 있는 젊은 작가였는데 돌연 마음을 바꾸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대요. 

저는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글쓰기가 잘 안 풀리면, 그리고 앞길이 보이지 않으면 농사나 짓고 살아야지"라고요. 물론 농담이죠. 며칠 전에도 라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중에 농부가 되어야지."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헛소리 하지마라." 농사가 어디 뭐 쉽습니까?

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작가가 농부가 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하면서 알았습니다.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그냥 내가 되는 것이라는 걸, 누구의 기대도 충족할 필요가 없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이제 압니다. 난 언젠가 정말 농부가 될 수도 있다는 걸요."
277페이지 中
-----

삶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거나 혹은 너무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내 인생을 산다면 그게 그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그냥 나고 내 직업이다.

작가였다가 농부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농부였다가 작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의지고 내 마음뿐이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
마무리
=====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인 글이다. 그렇기에 주제도 다양하고, 형식도 완전히 자유롭다. 저자가 생전 처음 경험한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은 저자에게 그야말로 새 바람을 안겨주었다.

새로운 영감의 글들을 떠올리게 했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자유를 얻었으며, 모국에서 멀어짐으로써 새로운 정체성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다소 불편하거나 어렵게 다가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자신만의 속도로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도 이렇게 적응해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통하면 통하는 대로, 안 통하면 안 통하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대로 거기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아 '만족'을 추구해 보는 것도 색다른 인생살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통하지 않아 속타는 일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만의 해석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 만나본 클레어 키건의 신작은 일곱 편의 단편집을 엮은 책으로,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과 남성 중심 사상이 짙게 묻어있는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가득 담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권이 유독 남성 중심 사상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유럽, 그것도 자유로움과 버스킹으로 유명한 아일랜드도 과거에는 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 문화가 팽배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깊게 들어가기 어려운 한 가정, 한 사람의 심리 등을 생략과 공백 등을 활용해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력감, 외로움, 허무함 등의 감정이 더 적나라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과 공기, 한 가정의 적나라한 모습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짧은 여행이나 현재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구석구석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축축하며, 허허벌판의 모습이 그려지는 모습인데, 그 속에 자리한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는 않다.


우울하고, 외롭고, 씁쓸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나 서툰 느낌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민담이나 신화 이야기처럼, 아일랜드만의 설화가 곳곳을 채우고 있어 신비로운 느낌도 감돈다.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포인트들도 곳곳에 눈에 띄는데, 대부분의 경우 '도망친다'가 나의 답이다. 과거에는 시대 분위기가 그러했고, 또 다른 살아갈 방법을 몰라서 버텼다지만 지금의 나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다른 길을 찾았을 것 같다.


그 이야기들 중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몇 편을 중심으로 담아보았다. 나의 글을 읽는 또 다른 독자분들도 '나라면?'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면 어떨까 한다.



=====

간략 줄거리

=====


■작별 선물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로, 소녀가 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 사정을 점점이 그리고 있다.


소녀는 어릴 적 어머니의 묵인과 주도하에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꼭 오빠 유진이 없는 날을 골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치 재물을 바치듯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딸을 데려가곤 했다.


시간이 지나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이제 남은 건 자신과 오빠 유진뿐으로 마침내 그녀도 이 집을 탈출해 뉴욕으로 가게 된다.


이에 유진은 그녀를 배웅하며, 마지막 선물로 그녀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덜어주는 말을 건넨다. '자신도 이내 곧 떠날 것이라고'



■푸른 들판을 걷다

사제의 하루를 담고 있는 소설로, 주요 배경은 결혼식장이다. 사제는 잠시 자리를 지켰다가 자신이 왔다는 눈도장만 찍고 금방 떠나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을 가지고 있다.


사실 신부가 그녀의 옛 연인이기 때문이다. 모른 척 신랑과 신부를 축복해 주고, 끝까지 그녀의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린 사제는 그날 식장에서 사람들의 가십 속에 등장하는 한 중국인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차 한 잔을 얻어먹고, 마사지를 받게 된다. 온몸 구석구석 뭉쳐있던 피로감과 슬픔을 달래주던 손길 덕에 사제는 그곳을 벗어날 때쯤에는 발길이 가뿐하다.


그렇게 푸른 들판을 걷고 또 걷으며, 사제가 사랑을 떠나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검은 말

브래디의 무의미한 일상을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쫓고 있는 이 소설은 어리숙하고 서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녀가 떠나간 후에도 여전히 브래디는 그녀와 커다란 사냥용 말이 나타나는 꿈을 꾼다.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을 꿈으로 떠올린다.


브래디는 잠을 잘 때조차 편하게 자지 못한다. 외출복에 작업화 차림 그대로 입고 잔다. 무력감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녀가 떠나간 뒤 그는 더 이상 텃밭에 신경 쓰지 않는다.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삶에 활력이 떨어지면서 경제력도 형편없어졌다.


브래디는 매번 그녀를 떠나보낸 순간을 떠올린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들(장도 보고, 공과금도 내고, 외식도 시켜달라는 말)에 꺼지라고 답했던 자신을 경멸한다.


술을 먹고 객기를 부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여전히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또 꿈꾼다.



■삼림 관리인의 딸

디건은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다. 오로지 자신이 산 땅에만 관심이 있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사에게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결혼했음에도 그녀를 외롭게 하고 방치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마사는 삶이 무료하다. 섣부른 청혼을 한 것이라는 후회를 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들에게 큰 애정이 없다. 사실 막내딸은 디건의 아이가 아닌, 외판원과의 외도로 낳은 아이로, 세 아이 중에 가장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


돈을 쓰는 것에도, 마사가 외부 일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 디건으로 인해 마사는 그나마 가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낙이라면 낙이다.


하루는 디건이 가지치기를 하던 중 우연히 사냥개를 한 마리 발견하게 되고 주인이 없다고 생각해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그런데 또 하필 그날 생일이던 막내딸의 선물로 주게 되면서 딸아이와 사냥개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사냥개를 받고 기뻐하던 막내딸은 항상 개와 함께 보내지만, 어느 날 그 개는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아이는 그 후로 말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마사는 마침내 모든 것을 다 풀어내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것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임을 확신한 디건은 자리를 피하고 이후 모든 외부 활동을 접는다. 집안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더 이상 아내는 남편과 함께 잠을 자거나 공간을 공유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꼬질한 개 한 마리가 집을 찾아오게 되고 이를 처음 발견한 모자란 둘째 아들이 개를 위해 불을 피우게 되는데 이것이 집 전체로 번져나가며 온 집안을 태우게 된다.


가족들은 잠에서 깨어나 목숨은 건졌지만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디건의 집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돌아온 개를 보고 딸아이는 행복해하고, 옆에서 모자란 아들은 자신이 만든 농장이 사라졌다며 우울해한다.



■물가 가까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청년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다. 오늘은 자신의 스물 한 번째 생일을 맞아 엄마와 지내기 위해 텍사스 해변으로 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몇 달 만에 백만장자와 결혼했는데, 사이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체할 것 같은 분위기 속 청년은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저녁을 먹고 홀로 산책을 겸해 해변으로 향한다.


답답해서였는지 그날 청년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여럿 하게 되는데, 샴페인을 마셨고, 수영을 했고, 죽을뻔한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이내 비행기표를 바꿔 돌아갈 결심을 하는데, 이때 눈앞에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년은 수화를 통해 들려오는 상담원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굴복

이 소설은 아일랜드 소설가 존 맥가헌에게 영감을 받아 쓴 단편으로, 오렌지 먹는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주인공의 행동과 태도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중사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남을 괴롭히고 통제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가까이에 있는 부하나,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 연애를 즐기고 있는 여자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괴롭히면서 자신의 만족감을 찾는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혼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철저히 감춘다. 이 대상자에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도 포함되는데, 마침내 견디다 못한 약혼자는 파혼을 통보하고 이에 중사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남을 굴복시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중사의 이야기를 이 소설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퀴큰 나무 숲의 밤

설화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소설 속에는 미신을 믿는 마거릿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사촌인 사제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이내 사제의 배신으로 버림받게 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그녀는 어느 날 그를 쫓게 되고 이에 관계를 갖게 되면서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죽게 되고 여자는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 사제가 죽으면서 그가 살던 집이 그녀의 소유가 되고 그녀는 낯선 동네로 이사 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점을 치는 마담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에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마침 옆집에 붙어살고 있던 총각이 호감을 보기고 있던 터라 그녀는 전기가 나간 날을 기점으로 그와 자주 왕래하며 지내게 된다. 또 점을 치고 난 후 어떻게 알고 오는 건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것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한동안 벽을 허물고 남자와 가깝게 지낸다. 더불어 사제의 물건들을 하나둘 태워버리며 과거와도 이별을 고한다.


그러다 출산을 하게 되고 아이는 더할 수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 아이가 일곱 살을 넘기자 마거릿은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에 사람들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이가 걱정되었던 그녀는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배를 타고 가뿐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난다. 이것을 일찍이 예감하고 있던 옆집 총각은 그녀를 마음에 묻고 다시 일상을 찾기로 한다.


벽을 다시 시멘트로 바르고, 암염소를 집에 들이는 등 다시는 여자에게 속지 않기로, 가까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

자세히 들여다보기

=====


●작별 선물


어머니는 대가족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대가족이 되었고 어머니는 가끔 화가 나면 소녀를 양동이에 넣어서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소녀에게는 언니와 오빠들이 있는데,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과 자신 그리고 오빠 유진뿐이다. 오늘 그녀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날 것이고 이제 이 집에는 부모님을 제외하면 유진만 남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 떠날 시간을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으로, 떠나는 것에 큰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어릴 적 어머니의 묵인과 주도하에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한 달에 한 번 오빠 유진이 없는 틈을 타 어머니는 남편과 관계를 맺은 후 소녀를 아버지가 있는 방에 집어넣고는 했다.


아버지는 소녀를 추행했고 소녀는 홀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다 생리가 시작하면서 소녀는 더 이상 그 방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소녀는 뉴욕으로 먼 길을 떠날 예정이지만 어떤 미련도 없다. 어머니에게도 그 어떤 다정한 말이나 위로를 건네고 싶지 않다.


-----

어머니에게 할 말이 없다. 입을 열면 엉뚱한 말이 나올 텐데,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당신은 위층으로 올라가지만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층계참에 서 있다.

15페이지 中

-----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비단 그녀뿐만은 아닌듯하다. 그녀 위로 있는 언니 오빠들도 집이라면 학을 뗐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언니와 오빠들은 모든 것을, 여기서 살던 추억을 떠올리다가도 아버지의 그림자가 바닥을 가로지르면 뻣뻣하게 굳었다. 언니 오빠 들은 집을 다시 떠나면 치유받는 것 같았고,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16페이지 中

-----


짐작건대 소녀가 겪은 일이 소녀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었던 듯하다. 특히 아버지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일념이 강했던 것을 보면, 형제자매들에게 있어 집은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의 공간이었던 듯하다.


-----

작별을 어렵게 만들 행복한 기억을 찾아야 할 것 같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키우던 세터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을 때가 기억난다. 어머니가 당신을 그의 방에 들여보내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

강아지들을 물에 빠뜨려 죽인 날,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17페이지 中

-----


소녀는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이 집에서 행복한 기억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끔찍한 기억만 떠오를 뿐이다.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마중 나오지 않는다. 헐벗은 채 침대에 누워 돈으로 희롱을 일삼을 뿐이다. 소녀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집을 떠난다.


그리고 오빠 유진이 공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한다. 소녀에게 귀띔하듯이 자신도 곧 이 집을 떠날 거라 일러둔다. 소녀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와 안심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소녀는 알고 있다. 결코 유진이 절대 밭을 떠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그저 홀로 유진을 두고 떠나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막냇동생이 아버지에게 추행당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건넨 말일뿐이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다.


소녀는 차마 유진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꾹꾹 내리 참다가, 공항 게이트의 구석진 화장실 칸에 들어서고서야 눈물을 보인다.


****


비틀어진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아이들을 부양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 부모들이 나서서 성추행을 일삼고 이를 묵인한다.


언니, 오빠들은 이 모든 것을 견디다 하나 둘 집을 떠나고 이제 남은 것은 오빠와 자신뿐이다.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오빠는 기꺼이 선의의 거짓말로 동생에게 작별의 선물을 건넨다.


유능하고 똑똑해도, 공부를 잘해도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들을 농부로 만들어버렸다. 딸들은 성추행의 도구로 삼으면서 가정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


나라면? 당연히 진작 도망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일 때는 아마도 이들처럼 숨죽이며 살았을 것이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어머니와 성추행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떠날 방법을 나름대로 강구하지 않았을까?

돈을 모은다거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는다거나 무언가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집은 안전함도, 평화도, 위로도 되어주지 못하는 공간이 되었기에.



●삼림 관리인의 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받게 된 아하울 땅을 빅터 디건은 형제들의 몫까지 사들여 거대한 빚을 지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신붓감을 찾기 위해 코트 타운 항구로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춤추는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고 들이댄다.


여자는 싫다고 했지만 디건의 끈질긴 구애로 인해 결혼 승낙을 하게 되는데, 당시 여자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는 점 그리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 년 뒤 둘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내가 된 마사는 곧 후회하게 된다. 그가 대단한 것처럼 읊어대던 아하울은 지저분하고 낡은 곳이었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보수적이고 사랑을 모르는 디건이 그녀를 외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공허하고 외로웠다. 어느 날은 그녀가 외판원을 통해 장미를 사서 심어두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디건은 크게 화를 내며 '멍청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내 돈을 낭비했다'라며 역정을 낸다.


마사는 꿈꾸던 결혼생활과 크게 차이가 나는 생활을 바로잡고 싶어,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 기회는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지내면서 마사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게 되는데, 자기가 낳았지만 큰 애정 없이 무심하게 키우게 된다.


큰아들은 농사에 대한 '그라(사랑)'이 없었고, 더불어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이곳을 떠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둘째 아들은 모자랐는데,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았고 진실을 말하는 무서운 습성이 있었다.


막내딸 빅토리아는 머리가 좋고 똑똑했는데, 유일하게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잘 컨트롤하는 아이였다. 덕분에 모자란 오빠를 잘 구슬려서 그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일도 스스로 잘 해냈다.


마사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낙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마을 사람들은 이 집에 모여 마사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가고는 했다.


-----

그는 알았다. 이 땅이 아내와 자식들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93페이지 中

-----


그 와중에 디건은 홀로 바빴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고 토지 문서를 되찾아 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전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중 사냥개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주인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막내딸의 생일이었고, 또 마침 가장 먼저 건넨 사람 또한 막내딸이 되면서 그 개는 막내딸의 선물이 되어 버린다.


막내딸은 리트리버의 성별이 남자인 것을 알고 저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늘 함께 한다. 그러다 진짜 개의 주인인 오도넬이 나타나고 개를 데려가면서 딸아이는 개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말을 잃고 학교도 가지 않는 딸을 본 마사는 그동안 고심해오던 일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한다. 마사는 평소 생활비를 조금씩 떼어 돈을 모아두며 언젠가 떠날 날만을 고대하고 있던 차였는데, 마침 그때 촉발제가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디서 데려온 개를 딸아이에게 생일선물이라고 주었는데 문제가 생겼고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남편의 이기적이고 무심한 것을 보아 넘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마사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잠도 같이 자지 않고, 말도 섞지 않았다. 디건은 내심 계속 속으로 토지 문서만 돌려받으면을 외치며 마사가 원하는 것을 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이 마음이 마사에게 닿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디건은 집안이 여느 날과 다르게 환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사가 이야기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날 마사의 이야기는 평소와는 달랐는데, 가짜가 아닌 숨겨진 진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으며, 자신이 외판원과 관계를 가졌고 그렇게 막내딸이 태어났다는 것.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디건은 자리를 벗어나고 그렇게 집안은 더 한 침묵 속에 빠지게 된다.


결혼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행복하냐'고 묻는 말은 어쩌면 마사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디건은 이웃에게 보이기 위해 가던 미사도 불참하고, 주변 사람들과 왕래도 끊는다. 마사는 아침식사도 차리지 않았고 오로지 모자란 아들만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꾀죄죄한 모양을 한 개 한마디가 돌아오고 모자란 아들은 그 개를 처음 발견하게 된다. 덜덜 떠는 모습에 막내딸이 알려준 방법으로 불을 피우고 그것은 곧 집 전체로 번져나간다.


피어나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 때문에 가족들은 하나 둘 깨어나고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아하울은 불길에 휩싸여 사라지게 된다.


딸아이는 돌아온 저지(개)를 보며 행복해하고, 모자란 아들은 자기가 불지른 집을 보며 자신이 만든 농장을 잃어버렸다고 괴로워한다. 그러는 한편 흥미롭게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켜본다.


****


디건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거대한 빚을 내면서까지 아하울을 사들였고, 또 신붓감을 찾아 억지 구애를 하며 마사를 아내로 맞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땅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아내는 외로움에 지쳐갔고, 그래서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큰 애정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속에 전혀 애정이 없지는 않았다. 자그마한 애정이 숨어있었다. 마사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주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은행으로부터 아하울의 토지 문서를 완전히 가져오고 난 뒤에 행할 일이었다.


우선순위가 바뀌다 보니, 모든 것의 일 순위는 아하울의 토지 문서였다. 20년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마사를 좀먹었을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장미조차 제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아이들과 애정 없는 남편만을 바라보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했을까?


****


나라면? 역시 도망갔을 것이다. 20년의 세월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다. 애정해주고 관심 가져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없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깊은 대화조차 나누려 하지 않는 디건을 보며 마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푼돈을 모으며 견뎌냈을까?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아이들은 그녀의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 속에서 자신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병에 걸리든 말든 위생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집안일도 애정을 쏟지 않은 것이다.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디건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했다면, 이들은 아하울에서 보다 더 행복하고 예쁜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가 가까이


케임브리지에 있은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청년은 스물 한번째 생일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텍사스 해변으로 왔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를 생각해 올해도 어기없이 이곳을 찾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몇달 뒤 공화당원이자 백만장자인 새아버지 리처드와 재혼했는데, 사이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청년은 부모님의 이혼 후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녀는 테네시주 출신으로 돼지를 키우는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어 찾아뵐수는 없지만 청년은 종종 할머니를 떠올리고는 한다.


-----

"'우리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가다니'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몇 명이나 되겠니? 난 테네시주 돼지 농장 딸인데 내 아들이 하버드에 가다니. 기분이 가라앉으면 항상 그 생각을 해. 그러면 기운이 끝도 없이 솟거든."

150페이지 中

-----


어머니는 보잘것 없는 어려운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이렇듯 장성한 아들을 보며 늘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하고는 했다.


하지만 아들은 늘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것이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엄마는 아들을 생각해서라고 이야기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말못할 애틋함과 희생이 엿보인다.


함께 저녁을 먹은후 청년은 답답한 마음에 해변으로 향한다. 그날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된 날이었는데, 샴페인을 마셨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으며, 옷을 잃어버렸고, 익사할뻔한 상황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물가에서 나온 청년은 이내 어머니가 있는 리조트로 향하고 일정을 바꿔 돌아갈 결심을 한다. 샤워를 마치고 항공사에 전화를 걸던 중 어머니를 마주하게 되고 그때 수화기에서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청년은 할머니에게서 결혼 당시 할아버지와의 일화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대서양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 꼭 한번 바다를 보고 싶다는 요청에 할아버지는 늘상 "그럼 여기 일은 누가 하고?"라며 거절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삭이 되면서, 결국 바다는 포기할때쯤 어느날 일요일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워 바닷가에 데리고 갔다. 한 시간을 주고 늦으면 두고 가겠다는 엄포를 하는데, 이에 할머니는 맨발로 바닷가를 30분동안 걸었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서 5분이 지나자 남편은 정말 혼자 차에 시동을 걸어서 혼자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할머니는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우고 겨우 같이 타고 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런 남편을 믿고 긴 세월을 산 것을 후회했던 것 같다.


-----

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스물한 살이고, 이 지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버드에서 A학점을 받았고, 달빛 속에서 아무런 시간제한도 없이 해변을 걷고 있다.

156~157페이지 中

-----


늘상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청년은 어쩌면 그날 물가를 배회하며,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불현듯 자신은 다른 선택을 하겠노라 결심하고 항공일정을 바꾸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청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


유일하게 남은 가족, 어머니를 위해 청년은 매년 자신의 생일이 되면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늘 불편함을 감수하고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매번 후회한다. 더 나은 생일을 보낼 수 있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신도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스물한 번째 생일날 청년은 또다시 반복되는 생일날을 보내지만 그날은 생각지 못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물가에서 자신이 익사 당할뻔 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불현듯 할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와 다른 선택을 해보자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청년은 숙소로 향하게 되고 항공사에 연락해 일정을 바꾸려는 찰나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난다.


****


나라면? 한번쯤은 다른 선택을 해볼 것 같다. 다른 선택은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법이고, 이 또한 시도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다음에는 어머니를 자신이 속한 공간에 초대해 보거나 어머니와 자신 모두 행복할만한 경험을 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모진 삶을 산 어머니이기에 아들을 위해 희생하며, 백만장자 남편과 어렵사리 지내고 있는듯 한데,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듯 하다.



●퀴큰 나무 숲의 밤


사제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던 더나고어 언덕의 집으로 한 여자가 이사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마거릿 플러스크로 마흔살도 채 되지 않았으며, 사제와는 사촌지간이다.


사실 사제와 마거릿은 마거릿이 10대 때 청혼하고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로, 돌연 사제가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면서 마거릿은 졸지에 버림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사촌지간이었기에 종종 변함없이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거릿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을 모르는척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어느날 그를 따라 나서게 된다.


그러다 거기에서 둘은 관계를 가지게 되고 마거릿은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영아 돌연사로 죽게 되고, 이후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되면서 마거릿은 미신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월요일에는 절대 재를 버리지 않았고, 일꾼을 지나칠 때는 반드시 그의 일을 축복했으며, 난로에 소금을 뿌리고 침실 벽에 성녀 브리지다의 십자가를 걸고 달의 변화를 주시하는 등의 미신을 늘 따랐다.


그렇게 아이가 죽고 이런저런 이유로 사제가 죽으면서 그가 살던 집은 그녀에게 상속되었고, 그녀는 갑작스레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온 후에 마거릿은 갑작스레 임신할 수 없는 몸에서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된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그녀가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된 데에는 퀴 큰 나무(=마가목)가 원인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정말 퀴 큰 나무가 없는 이곳에서 그녀의 몸은 신비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것이다.


마거릿이 거주하고 있는 언덕위에는 두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사제의 집과 대머리 노총각, 마흔아홉살의 스택이 거주하고 있었다.


스택은 은근히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며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을전체에 전기가 나간 그날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은근히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집에는 암염소(조지핀)을 집안에서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살짝 열린 침실위에 털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함께 자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고 남긴 집과 땅, 이탄이 나오는 수입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며 그 후 홀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옆집으로 이사 온 이성과 서서히 가까워지며 지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이 가깝게 지내는 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수근거리며 뒤로 여러 말들을 쏟아내고는 했는데, 이에 마거릿은 더욱더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도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한 이동식 주택에 들어서게 되고 거기서 점을 치는 마담 놀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놀란을 통해 그녀의 과거와 미래를 점치게 되면서 마거릿은 다시한번 임신을 꿈꾸게 된다.


더불어 그녀가 놀란을 통해 '일곱째 아이(아일랜드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일곱째 아이는 치유력이나 예지력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진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병과 유령을 쫓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치유해주기 시작한다. 덕분에 매일 그녀의 집앞에는 먹을것을 비롯해 많은것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옆집 남자 스택과 관계를 가지면서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고 이후 마거릿은 두 집 사이의 벽을 허물고 따로 또 같이 생활하게 된다.


이때 마거릿은 남아있던 사제의 물건과 스택이 방한구석에 꽁꽁 보관하고 있던 부모님의 물건들을 태우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과거와 안녕을 고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제의 집에서 마거릿은 출산을 하게 되고 마이클이라는 세례명을 지어주게 된다. 아이는 예언과 같이 건강하게 자라났고, 스택은 서서히 그녀가 곧 떠날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아이는 신기하게 단 하루도 아프지 않았고, 성장 속도는 남달랐다. 기어다니지 않고 어느날 벌떡 일어나 걸어다녔으며, 스스로 염소젖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자기 이름을 뒤집어서도 쓰고 앞뒤 순서를 바꿔서도 쓰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가 일곱살을 넘기자 마거릿은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마거릿은 아이가 걱정되어 이곳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마담 놀란이 예언한데로, 아이의 양막을 건넸던 어부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배를 타고 떠날 수 있게 된다.


스택은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허물어진 벽과 벽 사이를 시멘트로 바르고, 이탄을 캐면서 바쁘게 살아갈 결심을 한다. 더불어 다시는 여성을 믿지 않겠다 결심하며, 키우던 암염소를 다시 집으로 들인다.


-----

"다음 아이는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 아들을 낳고 나면 당신은 절벽 밑을 보지 않게 될 거예요."

224페이지 中

-----


정말 이 마을을 떠난 이후 마거릿은 마담 놀란의 예언처럼 아들덕에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


결혼을 약속한 사제의 일방적인 파기로 인해 마거릿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됐고, 가족들과도 인연이 모두 끊겼다.


그나마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이도 잃었으며 홀로 떠돌며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리는 말을 늘 들으며 지내게 된다. 때문에 그려는 고립을 선택했고 사람들과의 왕래도 모두 끊게 된다.


하지만 불행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먼저 떠나보낸 아이덕에 사제의 집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출산 능력을 갖게 되면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예언에 따르면, 그 아이는 마거릿의 삶에 더없는 가치를 안겨줄 아이로, 특출난 아이로 예상된다. 미신을 굳게 믿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그럴 운명이었는지 마담이 예언한대로 마거릿은 순탄하게 아이를 출산하고 남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와 예정대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


****


만약 나라면? 광활한 자연속 언덕위에 자리한 집 두채. 그리고 절벽이 위태롭게 내려다보이는 곳의 풍경과 함께 수군거리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일랜드의 어느 바닷가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이 이야기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더 베일에 쌓인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더해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일랜드만의 설화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홀로 떠밀리듯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불현듯 사라진 여인 마가릿의 이야기 역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더 그렇다.


배신당한 괴로움이 컸겠지만 만약 그때 궁금증을 억누르고 사제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마거릿의 인생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마거릿의 인생은 꼬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미련두지 않는것이 맞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나라면 굳이 사제를 따라가진 않았을 것 같다.


늦게 이유를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냥 빨리 잊고 더 나은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거나 아니면, 나만의 인생을 꾸리는 선택이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 한번의 일로 마거릿은 모든것을 잃었다. 뭐 그런 최악의 상황에 자신을 버린 가족과 굳이 함께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잃지 않아도 될 것을 잃은 것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

마무리

=====


인상깊에 다가왔던 소설의 줄거리와 함께 그 속에서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함께 담은 의견을 적어보았다. 유독 여성들에게 가혹한 이야기들이라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래서 더 '나라면'이라는 물음을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중에는 그 어떤 이도 행복과 가까운 이는 없다. 그저 황폐하고, 외롭고, 비참하고, 상처와 결핍이 있는 이들이 가득 할 뿐이다.


여기 남성성에 가부장, 억압, 이기적, 퇴폐적, 반인륜적, 자기애적인 느낌이 더해지며 최악의 상황에 도래하게 된다.


여성성에는 무관심, 방치, 방관, 순리, 수동적인 이미지가 더해지며 어딘가 무기력하고 포기한 듯한 뉘앙스가 많이 엿보인다.(마지막 '퀴큰 나무 숲의 밤' 제외)


덕분에 문학을 읽으며, 역사를 배우게 된다. 아일랜드의 역사에도 이토록 지난한 과거가 존재했구나 깨닫게 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꽤 험난한 과거를 보냈고, 또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앞두고 있다.


'작별 선물'에서 그녀는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 사제의 옛 연인은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는 상처로 뒤덮인 집이 사라지고 거기에 남은 것은 오로지 새로 올릴 미래만 남았다. 똑똑한 막내딸에게 집이 사라진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저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 마거릿은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개척했다. 미신이나 점사가 허무맹랑하다고 할지언정,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아픔과 고통에 무너지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잡아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지금 어떤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보면 어떨까 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 역시 남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돌격 중이다. 당신도 과거를 벗어던지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고 느낀다면 마주하고 직면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디디며, 희망을 향해 전진해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