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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평점 :
"분열되는 사회 속에 고립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한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 흠뻑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한동안 그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소설은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는데, 유일한 공통점은 벽돌 책이라 불릴 만큼 꽤 두터운 두께를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전작들이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의 소설들이라면, 이 책만큼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없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미래의 미국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현실인지 미래의 모습인지 구분할 수 없는 구렁텅이 속에서 허우적 되는 느낌이 들어 더 섬뜩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더불어 자꾸만 현재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러 묘사들 때문에 '미국'이라 읽고, '한국'이라 쓰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주인공의 상황이나 감정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에 분열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등장인물을 포함해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내용이 꽤 방대하다.
그래서 읽으면서 캐릭터 및 각 사건에 대한 개요를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단순히 읽고 마는 것에 그쳤다면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어쩌면 SF이자 첩보 스릴러 물의 '결론'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르겠다.(그래서 범인은 잡았어? 말았어? 어떻게 잡았어? 와 같은)
하지만, 하나하나 집중하고 정리하면서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책에서 큰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졌다.
대신, 내가 집중한 내용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사회적 배경 등에 더 시선이 갔는데, 어딘가 봄직한 이야기와 사건, 인물, 배경 등이 낯선 듯 익숙했기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쪽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무엇'은 결코 이것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자꾸만 상기하게 만들었는데, 어수선한 세계정세와 맞물려 어쩌면 '곧'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함과 공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더불어 우리가 꿈꾸는 원더풀한 세상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만들었는데, 이 책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실상 모두가 꿈꾸고 원하는 원더풀 랜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재 존재하는 세계 여러 국가들만 봐도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내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실상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어떤 이념도 결코 완벽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모습은 어떠한 형태로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저 모순을 합리화시켜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갈라진 미국의 두 나라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를 취한다. 여성과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나라라고 하지만, 안전과 편의를 위해 국민들의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하는 '연방공화국'과 '자유' 국가라고 부르짖지만, 실상 중세 시대 잔인한 형벌을 가하고 여성과 소수자를 차별하며 낡은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위법이라 말하는 '공화국연맹'은 그 어느 쪽도 완벽하다 말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은 계속 분열되고, 분리되어 간다. 그리고 그 속에 남는 것은 짙은 불신과 외로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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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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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인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지구방위대인 미국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떤 변화의 양상을 보일지 그려본 소설로, 허구이지만 타당성 있는 현실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오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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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이 되는 중요 지역 '중립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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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미니애폴리스였던 곳으로 이제는 둘로 갈려서 한쪽은 공화국연맹, 다른 한쪽은 연방공화국이 관리하고 있었다. 중립지대인 미니애폴리스는 이제 미국의 베를린 같은 곳이 되었다.
더불어 이곳은 자주 납치와 암살이 자행되는 공포의 현장이다. 연방공화국에서는 도시의 끄트머리인 이곳 국경을 스키드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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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로 나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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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왕래가 자유롭지 않게 된다. 때문에 자유로운 세계여행도 불가능해진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국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나라별로 봉쇄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제 테러는 사라졌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은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연방공화국
-여성과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나라
-유전자 치료법의 발전으로 치매는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 됨
-안전과 편의를 위해 생체칩을 국민들의 생체에 이식하면서 사생활이 없어짐
<연방공화국 '정보국'의 직업윤리>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무엇을 시키든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연방공화국 정보국의 특징>
▶정보국을 보통 '호텔'이라 부름
▶중립지대의 치안 담당. 공화국 연맹으로부터의 모든 위해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임무를 맡고 있음
▶애인이나 배우자를 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음
(그래서 문제가 없는 데이팅 앱' 투나잇 온리'를 내부적으로 권장함)
▶요원들의 몸에 마이크로 칩을 삽입해 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진단함. 이를테면 육류 섭취량, 콜레스테롤 수치, 음주량, 지방 섭취 등을 매주 진단해 계급, 나이, 근무 연차에 따라 한도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음. 특히 휴가가 아닌 근무 중에는 엄격히 통제됨
▶항상 모든 내용이 도청되므로 가끔 도청 방지기를 활용해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함
■공화국연맹
-조지아주 애틀란타를 수도로 정함
-법을 제정하고, 사회문화적 판결이 필요할 때 결정권을 가진 12사도에 의해 운영됨
-신성 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할 경우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함
-성에 대해 매우 보수적(페미니스트나 동성애자는 인정하지 않음)
-유산은 불법
-'정화 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예술 작품과 대중 문화 콘텐츠를 사전 검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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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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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텐글
-15년 차 연방공화국 정보국 요원
-직책: 브레이머 부장의 부관
-현재 나이 마흔셋
-스텐글은 아버지가 56세에 얻은 늦둥이로, 아버지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음
-어머니는 애인과 집을 나간 후 돌연 사망
-이복동생과는 열한 살 차이
※샘은 케이틀린과 인생 궤적이 비슷함
<중립지역 작전을 위한 새로운 신분>
-에드나 머스그레이브
-연방공화국 국영 라디오 방송국 영화 평론가
-중립지대 라디오 지국에 일 년 동안 파견 근무
-얼굴, 홍채, 지문, 헤어스타일, 말투, 의상, 습관 모두 새로 탈바꿈함
■샘의 아버지
-직업은 작가
-98세에 사망
-미국이 분리되기 전의 미합중국을 몹시 그리워함
-고향: 맨해튼
■샘의 어머니
-직업은 정신과 의사
-동료 의사와 눈이 맞아 남편을 버리고 떠났고, 일 년 뒤 애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
■브루스 브레이머 부장
-샘의 직속상관
-체중이 14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
■필 플렉 부국장
-브루스 브레이머 부장의 상관
-과묵하고, 영리하고, 무자비함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은 절대 바꾸지 않음
■케이틀린 스텐글
-뒤늦게 알게 된 샘의 이복 동생
-2013년생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남
-엄마 이름은 리디아 말론으로 조지아주 서배너 출신이며 자살로 사망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스텐글의 뜻을 어기고 엄마인 리디아가 속여서 태어난 아이
-현재 서른 두 살
-아버지인 스텐글이 연을 끊으면서 양육비로 매달 2천 달러를 보냄
-외삼촌 부부와 함께 지냈고, 법대 성적은 우수했음
-아버지와 잘 지내보고 싶었으나 좌절되면서 분노
-짧은 결혼생활을 함
■모건 채드윅
-억만장자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인물
-2020년대 초반에 생체 이식 '채드윅 칩'을 개발해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을 불러일으킴
-4년 안에 미국의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꿀 야망을 가지고 있음
-미국 사회가 분열되기전, 미국은 일부 부자들을 위한 나라라고 규정하며 변화를 촉구함
-카리스막 넘치는 인물로 묘사
■라프렐 요원
-17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예민하고 세심하고 분석적이고 까다롭고 경쟁심이 많음
-삼십대 초반
-멕시코계 이민 가정출신으로 맨해튼에서 태어남
-아버지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엄마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
-부자 동네인 뉴욕 다운타운에서 자람
-코로나 팬데믹 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삼촌이 입양하여 코네티컷 교외 주택가로 이주
-76세에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숙모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하면서 유일한 상속자가 되고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음
-요가 강사인 아내 레슬리가 있음
■션 새비지 요원
-나이는 서른 살, 인간관계는 전혀 관심이 없음
-키가 2미터에 단단한 근육질 체형
-미드웨스트 출신
-동부 해안 출신 엘리트와 특권 계급을 좋아하지 않음
-무자비한 구석이 있지만 충성심이 강하다.
※라프렐 요원과 새비지 요원은 반대되는 성향으로 자주 부딪혔음
■로레인 터커 애플화이트
-중립지대 독립영화관의 영사 기사
-아버지는 프로비던스 변호사, 엄마는 사교계의 유명인사
-보수적인 부모의 집을 나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
-일을 할때는 엄격한 스타일
-에드나 머스그레이브와 심적으로 가까워지는 인물
■막심 레프코비츠
-공화국연맹 소속
-직업은 코미디언
-연방공화국 일을 돕는 샘의 정보원이자 스파이
-성전환 수술후 여성이 됨
-화형당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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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무엇'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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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공화국=CIA
●공화국연맹=북한
●미국이 둘로 나뉜 상황=독일의 동독과 서독 or 대한민국의 남한과 북한을 연상시킴
●모건 채드윅=일론 머스크
●클리블랜드 대학살=911 테러
●뉴클린=KKK단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연주회 테러=프랑스 바타클랑 테러
●리하버드 고교 강당 총기 난사=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부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부동산 사업 깡패
-상스럽고 거칠고 마구잡이로 떠드는 저질 백인 남성의 언어를 구사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라는 허울뿐인 슬로건을 내거는 사람으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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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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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겪던 미국은 전체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던 중 클리블랜드 대학살을 계기로,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완전히 분리되게 된다.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바탕이 된 사회로, 12사도가 지배하며 소수자와 여성을 억압하고 중세 시대처럼 공개 처형으로 죄인을 처벌하는 방식을 취한다.
한편 연방공화국은 민주공화국으로서 미국을 되살리고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꾀하는 사회다. 하지만 국민들의 몸에 칩을 삽입함으로써 사생활이 없는 형국이 된다.
연방공화국 정보국의 주요 보직에서 근무중인 샘은 어느날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항상 공포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중립지대에서 '테이크다운'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 것이다.
테이크다운은 정보국에서는 '암살'을 뜻하는 용어로, 명령은 절대적이었기에 샘은 그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립지대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임무 수행전 자신에게 이복동생이 있으며, 그 동생이 타깃임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훈련받은대로 샘은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임무를 위해 새로운 신분 '에드나 머스그레이브'가 되기 위한 철저한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얼굴, 홍채, 지문, 헤어스타일, 말투, 의상, 습관 등을 모두 새로 탈바꿈하며, 중립지대 라디오 지국에 일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할 방송국 영화 평론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중립지대에서 그녀는 적응기간을 가지며 정보요원으로써는 절대 할 수 없었던 몇가지 일들을 경험해보게 된다. 더없이 높아진 보안등급으로 인해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받고 있었지만, 새로운 캐릭터 적응을 위한 핑계로 잠시나마 숨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이복동생 케이틀린을 마주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총격전으로 아끼던 라프렐 요원을 잃었지만, 덕분에 행방이 묘연하던 그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전에 정보국 최고위원회에서는 케이틀린을 제거하기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와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제거는 커녕 그녀를 포섭하는것부터 쉽지 않다.
양쪽 진영에서는 각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첨단 과학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달랐다. 공통적인 것은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서로의 진영에 이중 스파이를 둔다는 점이었는데, 촘촘한 정보망을 뚫기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샘은 위장 신분인 에드나로서 중립지대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며, 이복동생 케이틀린을 찾는 일에도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독립영화관의 영사 기사인 로레인 애플 화이트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는데, 후에 반전된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니 집중해서 살펴보기 바란다.
한편, 중립지대로 넘어오면서 자신의 자리가 위태해진 샘은 또 다른 명령이 부여되면서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쩌면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는 직접 책으로 만나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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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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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 나라는 민주주의 탈을 쓴 파시즘 국가가 되었어.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고, 대단히 유연하고, 제대로 된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의 대표가 열심히 일하던 미합중국이 그리워. 지금은 나라가 구심점 없이 두 조각나 있어. 나는 이런 세상을 볼 때마다 몹시 화가 치밀어."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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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미합중국)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샘의 아버지 또한 과거를 몹시 그리워하며, 현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대화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고, 가족과도 편하게 지낼 수 없던 연방공화국의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을까? 이전 시대를 살아봤고 또 기억하고 있기에 어쩌면 현재가 더 끔찍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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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게 무섭지 않아?'
무섭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더 무서워.
나의 모순, 나의 특기, 절대로 풀 수 없을 매듭, 답을 찾을 수 없는 퍼즐이었다.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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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이 개념은 쭉 이어진다. 샘은 그래서 외롭지만 홀로 있는 삶을 철저히 지켜나간다. 중간에 잠시 '함께' 있는 삶으로 이탈하기도 하지만, 결국 또다시 '혼자' 있는 삶으로 돌아온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없는 사회적 구조가 밑바탕에 깔려있는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살아가려면 '혼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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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기 전에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어. 인간이 가장 맞히기 어려운 퍼즐은 자기 자신이야. 누구나 제대로 풀 수 없는 퍼즐이니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은 누구나 낯선 존재야."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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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로 분리된 미국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없다. 혁신적인 과학기술로 수명이 연장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며 살아갈 수는 있지만, 정작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한 여러 방법은 전혀 시도되고 있지 않다.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손꼽히는 타인과의 교감을 이 두 나라에서는 자유롭게 행할 수 없기에, 결국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감시되고, 사랑은 통제되며, 행동은 제한당하는 삶 속에서 나와 너는 없다. 그저 낯섦만 존재할 뿐이다. 시스템이 많은 정보를 모아 분석한다고 하지만, 결국 한 인간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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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공화국 정보국은 편집증적인 조직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국경 너머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
2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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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정보국 소속으로 근무하며, 매 순간이 칼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았을 것이다. 때문에 믿을만한 동료라 할지라도 사적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었으며, 그 어떤 약점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고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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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세상에 숨었다."
4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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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는 마쳤지만, 여전히 불안은 존재한다. 샘은 잠시 휴식을 위해 떠난 곳에서 욕조에 몸을 뉘이며 이 말을 한다. 그리고 이 말은 나에게 '영영 숨고 싶어', '이제 그만 쉬고 싶어'라는 말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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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에게 바란 건 사랑이나 관심뿐이었어.
(...)
그렇지만 아버지도 무서웠을 거야. 우리 모녀를 잊고 싶었겠지."
4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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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케이틀린이 지금까지 버텼던 이유는 어쩌면 이 욕망에 대한 갈급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왜 언니는 되고, 자신은 안되는 걸까. 자신이 바란 건 오로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뿐이었는데.
이 때문에 생긴 분노와 미움은 추진력이 되어 케이틀린으로 하여금 마치 정답을 찾듯 언니 샘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배다른 자매가 한자리에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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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동시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어.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꿈꾸는 삶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반대 지점에 있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그런 깨달음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덫에 갇혀 있다. 그 덫을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5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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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한 개인에게 적용해 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이념으로 갈라선 미국의 두 나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극단적인 이 끝과 저 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실상 어쩌면 이 또한 우리가 만든 덫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안과 긴장의 늪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행복 속에서 꿈꾸는 삶을 살 것인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반대 지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어쩌면 삶은 완전히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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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모두들 커플로 분열되고, 가족으로 분열된다. 국가로 분열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탓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고 함께할 수 없다며 문을 닫아 잠그는 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인간의 조건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
5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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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면모와 부정적 면모가 모두 한꺼번에 포함되어 있는 분열. 분열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조직을, 가족을, 관념을, 세대를 만든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적으로 돌리거나 탓하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의 천성이고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면 이제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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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만나는 사람이 있나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네요?"
"외로워서요. 오늘은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서로 이렇게 이어진다. 뜻밖의 만남, 끌리는 순간, 가벼운 시시덕거림, 한잔하자는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섣불러 동조할 수 없다.
던컨의 진짜 정체는 뭐지? 이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없을까?
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든지 일단 의심하고 본다.
(...)
이제 나에게는 사생활이 없다. 끝없이 감시받고 있다.
나는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가볼 데가 있어서요."
5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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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래서 끊임없이 '함께'하려 한다. 하지만 샘은 여러 경험을 통해 이제 누군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본다. 자신은 사생활이 없고, 그렇기에 자신을 향한 공격이나 테스트가 언제 어디서든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샘은 혼자 있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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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이 말했다. "제가 일을 마친 뒤에 한잔하는 건 어때요?"
(...)
그저 등을 돌리고 거리로 나서며 나 자신을 타일렀다.
잘했어. 신중하게 잘 처리했어. 던컨이 전혀 문제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그저 정말로 외로워 말을 붙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언제나 그 반대인 경우를 생각해야지, 방심하면 안 돼. 빨리 끊어야 돼. 혼자가 되는 게 제일 좋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해.
5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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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말을 건넸음에도 던컨은 계속 구애한다. 하지만 샘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이내 속으로 안도하며 방심하면 안 된다는 말을 되뇌며, 혼자가 좋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여운이 길게 남았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말에서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샘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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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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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숨 쉴 틈 없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나간다. 그래서 이내 결론에 다다르고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만큼은 결론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사이 건네는 진심 어린 대화 장면(아버지와 딸, 언니와 동생, 동료 사이, 이웃과 이웃, 점원과 고객)과 저자가 구축해 놓은 세계관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의문점 투성이의 세상 속에는 모순 투성이로 가득하다. 완벽한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고, 속고 속이다 못해 정작 자신조차 제대로 믿을 수 없다.
타인은 그저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는 친구, 동료, 가족도 포함된다. 그래서 이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늘 목 끝까지 다가와 있는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고 싶지 않지만, 임무를 위해서는 어떤 반항의 말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 조차 마찬가지다. 그래서 얼굴을 바꾸는 일도, 삶을 사는 방식도, 사랑을 나누는 일도, 가족을 만드는 일도, 죽는 순간을 결정하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최첨단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생활의 편의성은 좋아졌을지 모르나, 여기에는 유대감이나 관계성은 없다. 자유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하다. 국가의 부품이 되어 쓰임대로 쓰일 뿐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첩보 스릴러에 SF 적인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현실에 벌어질법한 이야기들이라 가벼이 웃어넘기기에는 걸리는 것이 많다.
심지어 몇몇 묘사들은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 혹은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처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음 직한 일들이라 앞선 두려움도 느껴진다.
한쪽에는 몇 년째 전쟁이 이어져오고 있고, 심심하면 테러가 발생한다. 총격전이나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소설인지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00시대라고 일컬으며 평화로웠던 시대, 혼란스러웠던 시대, 풍요로웠던 시대와 같이 구분하는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후에 어떤 시대로 불리게 될까?
언젠가 원더풀한 시대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저마다의 이상과 현실, 개념, 욕망, 기대가 다르기에 어딘가에서는 늘 불평등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 모두가 말하는 원더풀 랜드는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불평등의 추를 계속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 훼손된 뭔가를 복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계속 옳은 선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다음, 그다음의 더 좋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소설에서 결여된 '자유', '공감', '교류', '교감'과 같은 것들이다.
차이를 차이로 두기보다, 이념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샘과 케이틀린의 마지막 순간처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세계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이걸 가르쳐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