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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하루 - 권력 아래 가려진 왕비들의 역사 ㅣ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4년 10월
평점 :
역사책을 보면 보통 왕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이 되지만, 왕비에 대해서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왕 못지않게 권력에 가까웠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왕비이다. 오죽했으면 외척들의 기세 덕분에 정권이 바뀐 일이 종종 등장했겠는가. 똑똑한 왕비는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조선 역사 속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였던 왕비들의 모습을 통해 좀 더 내밀한 조선 역사를 알아보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사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여성을 그리 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유학의 영향으로 여자는 그저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남편을 잘 모시면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으로 인정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왕비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국모로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왕실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암투에서 살아남으려면 왠만한 요령으로는 힘들었다. 아예 정치와 연을 끊고 살고 싶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왕비라는 자리는 누구나 쉽게 될 수 있지도 않지만,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사에서 이름을 날렸던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솔직히 제목만 보면 왕비들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상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적인 구성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왕비들의 모습을 주제별로 엮어서 설명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구성이 큰 연관은 없지만 그래도 왕이 아닌 왕비를 주인공으로 쓴 역사책이라는 사실이 다른 역사책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각 단락마다 왕비들이 진짜 생각했을만한 이야기를 꼭지로 넣어두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구성이 눈길을 끈다. 일반 역사책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왕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화려해보이는 생활 뒤에 이런 마음 고생이 있었구나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정치라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꼭대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에서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을 했던 왕비로서는 그런 생활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눈에 선하다.
왕의 눈 밖에 나서 사약을 받게 된 왕비부터, 천하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비까지 정말 조선에는 수많은 왕비들이 존재했다. 왕은 한 명이라고 해도 왕비는 두세명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왕비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좀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그 당시에 가장 유력했던 가문의 내막을 왕비를 통해 알아가는 재미도 나름 괜찮다. 조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의 시각을 따라가보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레 권해본다. 아마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조선 왕비의 매력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