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초엽, 배명훈, 편혜영, 장강명,김금희,박상혁, 김중혁, 일곱 명의 소설가가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쓴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어떤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그것도 이미 자기 세계가 뚜렷이 정립된 유명 작가들이라면 자칫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흐르기 쉬운데 저마다 자신의 색깔이 드러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매력과 설득력이 충만한 매력적인 단편집이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키워드에 천착한 흔적 대신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도착하는 곳에서 '즐거움'의 테마로 모여드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유희의 쾌락이 아닌 궁극의 본질적 즐거움을 어떻게 찾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김초엽의  글로버리는 궁극의 즐거움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설계자들은 그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하여 살인 사건을 가상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다. 자매 관계도 죽음도 허구다. 그런데 이 허구를 진짜로 오인할 때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집착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진짜 관계와 애정에 대한 갈망을 노출한다. 


편혜영의 <우리가 가는 곳>은 사라지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의뢰를 받은 여자의 동행이 의외의 경유지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반전 어린 얘기다. 우연히 목격한 농막과 그 농막이 세워지는 마을에서 받은 조건 없는 호의가 이 차갑고 절망적인 여자들의 인생에 끼치는 따사로움이 이야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길다. 편혜영 특유의 긴장감 어린 서사 구조의 결말이 이렇게 따뜻한 곳으로 향했던 적이 있는지 작가가 앞으로 갈 향방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작품이었다.


장강명의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는 언뜻 소설이라기보다는 장강명 작가 본인이 소설가로서 겪는 어려움과 그 탈출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처럼 읽혀서 흥미로웠다. 카이스트 교수가 개발한 소설기계처럼 글을 쓰게 하는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게 되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참,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를...


김금희 작가의 <첫눈으로>는 예능국의 막내 작가 소봄이 '맛집 알파고' 프로그램 제작을 둘러싼 회사의 요구와 개인의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그려져 있다. 김금희 작가 특유의 밝음과 어두움이 적절히 혼재한 일터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이 생생하다.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일터는 기능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를 완전히 죽여야 하는 거짓 페르소나로 일관해야 하는 생존의 전장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김중혁의 <춤추는 건 잊지 마>는 적절한 마침표처럼 읽힌다. 보더라인에서 근무하는 인물. 전기 철조망 근처에서 난민의 탈출을 감시해야 하는 그가 숲과 교감하며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집착하느라 정작 잃어버린 진짜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서 심오하다.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 영속적인 좋음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도정에 놓인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1-08-0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혹은 아는) 작가 풍년이네요. 이 한권으로 그 작가들 다 만날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저는 제일 먼저 장강명편을 읽을 것 같고, 그 다음에 김초엽, 그 다음에 김중혁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자 배구 져서 아쉬워서 알라딘 들어왔어요. 더워도 좋은 하루 되세요, 블랑카님!!!!

blanca 2021-08-09 08:2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입추를 기점으로 아침,저녁 바람결이 달라졌어요! 시원해져서 좋긴 한데 한 살 더 먹을 날이 가까워져 온다니 급 우울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