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는 로알드 날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흠뻑 빠졌다. 작가 로알드 달이 이미 죽었다는 얘기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짜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세계의 건설자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여기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야기의 화자가 저 세상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읽기는 죽음이 가지는 불가해성의 정점을 통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최근에 아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김희준 시인은 1994년생인데 불의의 사고로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유고가 된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은 깊고 넓고 새롭다. <행성표류기>는 산문인데 우주 여행자인 '나'를 화자로 하는 만큼 소설로도 읽힌다. "내 몸에는 은하가 흐르고 유전자에는 외계가 섞여 있다."는 시인의 고백을 근거로 삼자면 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천계도감을 끼고 살았던 우주의 별이 되어버린 시인 그 자체로도 보인다. 


목동자리, 처녀자리, 궁수자리, 백조자리, 오리온자리마다 얽힌 시인의 언어로 재해석되어 재창조된 신화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거대한 산문시이자 인생에 대한 오묘한 철학책처럼 읽힌다. 별자리마다 지도를 구해 다음 행성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현실을 떠나 있는데 어쩐지 '생의 곡진함'을 품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성운은 오리온대성운에 속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별이 성운 안에서 태어나고 늙어간다. 생과 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니 성운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어느 곳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김희준 <행성표류기>


스콜처럼 하늘에서 편지가 내려 살아있는 글씨가 손바닥에 묻는다는 백조자리의 이야기는 김희준 시인의 편지가 읽는 이에게 어떻게 내려 꽂혀 인장을 만드는지에 대한 은유처럼 들린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시인의 언어가 살아 있다. 그녀의 세계는 이렇게 허무하고 신산한 현세의 삶을 해체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를 진정으로 그리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마무리는 분명히 있어, 엄마.

                                          2020년 6월

예언 같은 말. 그것은 어쩌면 시인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하나의 거대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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