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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이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보이스 피싱을 당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사투리가 섞인 소박한 음성의 아저씨가 내 핸드폰이 맞는지를 확인한 다음 너무나 절박한 톤으로 어머니가 머리를 다쳤다고 했다. 수많은 보이스피싱 사례들. 당했다고 하면 왜 순진하게들 그랬을까 머리를 갸우뚱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한번 쓰러진 적이 있는 엄마가 하필 머리를 다쳤다고. 게다가 내 이름을 호명하며 엄마를 바꿔주겠다고까지 하는 낯선 사람의 다급함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끊어버리기는 했지만 순간 지옥으로 갔다.
이제 친구들, 사촌들의 부모님의 부음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랜 지병으로 미리 마음의 각오들을 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어느 날 주무시다가 작별 인사도 없이 가시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런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산다는 게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의 줄을 결국 당겨야 한다는 일임이 너무 두렵고 자신없어졌다. 탄생을 마주대하고 나니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생명의 허망함이 더 둔중하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오래 공들여 해야 하는 경우 어차피 나는 죽을 텐데, 라는 허무감이 어리석게 덮쳤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일지도 모르는데, 하는.
네가 죽은 이후 나는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파울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까 봐 두렵고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고 늙어서 망가져 가는 게 두렵고 날로 증가하는 이 세상의 빈곤과 폭력, 그리고 부패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p.153
더 많은 생명을 부려놓을 수록 더 많은 상실을 각오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이를 잃게 된 여자는 십대 소녀를 보고 "아이를 갖지 마."라고 되뇌인다. 칠레 출신의 저자 이사벨 아옌데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남매를 데리고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다. 유전병인 포르피린증을 갖고 있던 딸은 어느 날 감기를 앓다 병원에 입원하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 떠난다. 딸은 서른도 되지 않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하나뿐인 남동생에게 어린 조카 둘이 있었고 아마존의 여전사 같은 어머니와 우직한 몸에 달콤함을 감춘 의붓 아버지가 있었다. <모든 삶이 기적이다>는 1992년 12월 작가의 심장과도 같았던 딸의 상실로 시작하고 있었다. 세퀘이아 나무숲에 딸의 재를 뿌리면서 이사벨 아옌데는 마약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또다른 딸 제니퍼 이야기를 꺼낸다. 제니퍼는 재혼한 남편 위예의 딸이었다. 탯줄을 자르며 눈을 맞추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 손을 잡아주며 감격하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불렀을 때 온몸으로 응답했던 아이도 자라서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학대하는 나약하고 피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제니퍼는 중증 마약중독자로 끊임없이 병원에서 탈출하고 그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는 또 사라진다. 이사벨 아옌데는 딸 파울라의 마침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남편 위예는 자신이 낳은 생명이 과연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스러졌는지초자 확인할 길 없는 불확실한 고통에 가슴을 친다.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 끊임없이 망연해졌다. 이사벨 아옌데식으로 말하면 사방에 널려있는 어마어마한 고통들.
슬픔. 심리 상담사가 지적했듯이 위예와 나의 삶에는 슬픔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상실감과 어려움에 대한 의식.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면 짐을 제대로 짊어져야 한다.
-p.106
이사벨 아옌데는 고난을 얘기하는 대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그 갈피짬마다 스며드는 생의 아름다움은 눈물겹고 사랑스럽다. 아들 니코의 세 명의 아이들, 손주들을 돌보는 일상들은 코믹하고 더없이 정겹다. 기저귀를 가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컨베이어 벨트에서 물건을 조립하고 포장하듯 기계식으로 할머니, 아빠, 엄마가 덤벼드는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언제나 시어머니를 놀라게 했던 며느리가 양성애자임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게다가 이사벨 아옌데의 의붓아들의 여자친구가 며느리의 연인이 된다. 그래서 이사벨이 서문에서부터 나의 삶에는 드라마가 부족하지 않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유교정서에는 경악스러운 반전이 또 저자식으로 일상에 긍적적으로 녹아 수습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감동적이다. 두 엄마는 아이 셋을 성심껏 건사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니코, 이사벨 아옌데의 아들은 또 새로운 삶의 동반자 로리를 만나 더 정돈되고 풍요로운, 조금은 헷갈리는 가정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칠레의 부족 같은 대가족에게는 외부의 일들이 절대 흔들 수 없는 본질적인 결속력과 안정감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것같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악재들은 드라마틱하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는 이사벨 아옌데와 남편 위예, 아들의 모습은 견고한 실재에 닿아있다. 거기엔 그들이 조금 더 일찍 깨달은 비밀이 있었다.
나는 위급한 상황이 되면 항해에 필요없는 것들, 그러니까 가진 것의 모든 것을 배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결국 무거운 짐들을 버리고 계산을 마치고 났을 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사랑뿐이었다.
-p.458
사랑. 자신이 낳은 딸을 다 키워서 잃게 된 그녀가 죽고싶다고 편지에 쓰자 너의 그 말이 나를 죽고싶게 한다고 응답했던 그 늙은 어머니와의 사랑.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에 남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편지로 쓴다. 오고가는 편지는 어느 날 곱게 포장되어 되돌아 온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지나친 솔직함이 남아 말썽이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애 막바지에 이르면 기억하는 만큼만 살아온 것이 된다"는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사벨 아옌데는 105살이 될 때까지 매일 어머니와 주고받는 편지를 읽을 것이라 했다. 그때 즈음이면 노망의 혼돈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터이고 나는 우리의 편지 덕분에 두 번 사는 게 될 것이라는 말에 눈물이 어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우리 엄마와도 나의 딸과도. 추억 속에서 나는 다섯 살. 치매가 오기 전 나의 할머니는 여전히 늙고 등이 굽은 꼬부랑 할머니. 기억을 부정하 면 나와 할머니와의 시간들은 모두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되고 만다. 끊임없이 되돌아가 당신이 부려놓은 생명은 여전히 당신에게 매달리고 말대꾸하고 주름골에 손가락을 넣고 의기양양하게 존귀한 존재가 된다. 기억도 삶이다.
이 책. 150센티미터가 간신히 되는 작은 체구의 여자. 항상 모든 것을 스스로 지키고 편견, 인습에 당당히 항거했던 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남편 위예에게는 연약한 아내가 되고 싶고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에 그것을 질문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여자. 일흔이 다 되어가는 작가의 진실에 근접하고자 하는 여정의 얘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내 눈의 비늘을 한 겹 벗겨 준 기분이다. 들고 갈 짐이 없다고 장밋빛 전망으로 눈을 어둡게 하는 얘기보다 인생은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고 빠르고 돌발 상황으로 가득차 있다고 제대로 짐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작가가 마지막에는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온 남편과 달콤한 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폴 뉴먼을 닮았던 젊은 남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남편의 존재감 속에서 안온하게 안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삶의 잔혹함, 기만성 앞에서도 살아갈 힘을 나게 한다.
고마워요. 이런 글을 써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