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토요일. 아침 눈발이 날렸다.
1월 22일 토요일 기다리던 아이를 가지고 낳고 3년을 키워낸 집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나의 이사를 정작 주도하는 아저씨들에게 괜히 면구스럽기도 계면쩍기도 해서
구석에서 핸드폰을 조물딱거리다 
1월 22일 아주 오랜만에 박완서 샘이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을 알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두부> 정말 좋더라. 정말." 

거짓말과 칭찬을 동격으로 싫어하는 여동생이 <두부>에 반하며 박완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책을 동생은 사지 않고 동생이 선수친 책은 내가 뒤따라 읽으며 샘의 책을 모았다.
둘 다 결혼을 하고 책장이 분리되면서 우리는 똑같은 책을 한 권씩 가지게 됐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빌려줄까?" 

"이미 읽었어."

  

 

 

 

 

 

 

 

혼수로 해 온 거실탁자의 상판 유리가 깨지고 내부순환 도로의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눈썹에 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멋진 방이 발치에 잔잔한 곰팡이 포자들을
무수히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 교통상황은 귀로도 확인가능할 정도로라는 것을
수긍해야 할 때쯤 이사가 끝났다.  

침대에 누웠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왜 아픈지 하나하나 헤아려 갔다. 

내가 떠나온 집은 나의 것도 아니었고 이별한 친구처럼 작별인사마저 없었다는 점.
그럼에도 나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뒤뚱거리며 올라가 만났던 너.
안아달라는 아이를 끌고 밀여 올라가서 만났던 너.
잘 돌보지 않았다고 야단맞아야 했던 너. 

를 헤어진 연인마냥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너를 떠나오며
동생과 나누던 무수한 에세이들.
아이를 안고 읽었던 그 누군가를 속이거나 의식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들과
아직은 한번쯤 더,라고 기대했던 그 분이 하필 이제 영영 가버리셨다는 거.  

명치 끝이 계속 서늘했다.
모든 익숙한 것들과 반드시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그 명제는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이사하는 와중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거의 일 주일을 넘게 읽다 말다 눕혔다 꽂았다 하는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가 얌전히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없어져서 다 읽지 못했다고 하고 싶었나 보다.
변명거리로 맞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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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1-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군요. 추운 날 고생하셨어요.
'주기율표'는 저도 끝을 못 내고 눕혀뒀어요.
전 박완서님의 '나목'을 쓸어봤답니다.
알라딘 서재 어여쁜 님이 주신 거라 더더 생각하면서요.

blanca 2011-01-25 22:4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 그냥 안끝내기로 했어요^^;; 집중도 안되고 너무 질질 끌다 말다 하니 의욕도 안 생겨서 오늘 새로 온 책들 읽기로 했답니다. '나목' 그런 소중한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교과서였나, 참고서에 발췌된 것으로만 읽었다 최근에서야 전문을 읽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25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결혼 초창기에, 남편이 사업을 말아 잡수셔서 이사를 엄청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집이랑 정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마구 옮겨다녔었어요.
글에서 님의 애잔한 마음이 느껴져 짠 하지만요, 또 정 붙이고 그렇게 살다보면 추억이 되어 있겠죠.
이사하시느라고 고생하셨겠어요, 이젠 용이랑 돼지랑 블루스 추는 꿈만 꾸시면 되는 건가요?^^

blanca 2011-01-25 22:4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ㅋㅋ 슬픈 사연을 재미있게 말씀하셔서 죄송하지만 웃었답니다. 안 그래도 삼일 지내니 또 정이 차차 들어가네요. 다만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다리품좀 팔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긴 한데 용이랑 돼지랑 블루스 추는 꿈이라면^^;; 무슨 의미이신지. 제가 형광등이라는 소리를 좀 들어서 망설이다 질문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1-25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태어난 집에서 스무해를 살아서 서울살이에 가장 힘든 점이 이사예요.
집 뿐만 아니라 동네, 타고다니던 버스에 마저 정을 붙이고 마는 저같은 촌년에겐 정말 도전이예요.

blanca님 여튼 날도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곰팡이들이랑 헤어지신건 잘된거 같아요.
새집에서 더 행복한 기억들이 많아지시길.

blanca 2011-01-25 22:4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안그래도 오이지군과의 결혼 축하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니 자꾸 멋쩍어 못드렸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이쁜 새댁이 되셨군요. 스무해나 사셨어요? 맞아요. 도전 맞아요. 고작 사 년 살고도 맘이 참 휑하던걸요. 행복한 기억 만들어 갈게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1-01-2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이사한 거군요.
난 벌써 하신 줄 알았는데.
어제 고 박완서님 추모 특집하는 거 보다 잤어요.
그걸 보다 자다니...ㅠ
그러고 보면 박완서님 책 제목은 정말 기가막히게 잘 지으시는 것 같아요.
얼마나 서민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드는지.

여담이지만, 예전엔 두부 좋은 줄 몰랐거든요. 그냥 덥덥하고 밍밍한 게.
그런데 요즘들어 부쩍 두부가 좋아졌어요.
아무래도 추모하는 마음으로 박완서 선생님 책 한 권 읽어줘야 할 것 같아요.
언제고 블랑카님 동네 좀 사진 찍어 올려주세요. 궁금해요.^^


blanca 2011-01-25 22: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네, 그랬답니다. 저도 요새 두부 좋아지던데 어쩜 같아요. 이제 맛을 알겠어요. 예전엔 정말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김치만 걸쳐 먹어도 어찌나 맛있는지. 된장찌개에 넣은 두부는 한 마디로 화룡점정^^;;이지요. 저도 잠깐 그 프로 보긴 했는데 졸리던걸요. 그 분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요^^;; 그러고 보니 동네 사진 좀 찍어야겠네요!

책가방 2011-01-2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사는 집에서 10년을 살았네요.
이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환경을 접해보고 싶어요.
여긴... 너무 재미없어요 ..ㅜ.ㅠ;;

blanca 2011-01-25 22:52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 저도 이사 좀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막상 떠나오니 참 섭섭하더라구요. 다만 이사를 하며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하는 과정이 또 좋긴 하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1-2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어요. 전 담 월요일에 이사랍니다. 추운 때 낯선 집으로의 이사는 좀 황량하고 심란하지요?
봄이 오면 그 용문고등학교 고갯길이 그리워지시려나요?

blanca 2011-01-25 22:54   좋아요 0 | URL
만치님은 월요일이군요.만치님 기억력 정말! 우아, 어쩌면 이제 몇 개월 지나면 만치님만 용문고등학교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저 기억력은 정말--;; 아, 그 고딩들의 시끄러움도 그리워지네요 ㅋㅋㅋ 정말 쉬는 시간, 점심 시간마다 얼마나 아우성을 치는지. 합창대회 연습기간에는 정말 대박이었답니다. 대회하기 직전 연습하던 모습 보고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cyrus 2011-01-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추운 날씨 속에 이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블랑카님은 집에 책을 많이 소장하셨을거 같은데,, 이사하는데 힘들지 않던가요?
아직 이사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방 안에 있는 책이랑 책장을 보니
괜시리 막막해지네요ㅎㅎ;;

blanca 2011-01-25 22:55   좋아요 0 | URL
cyrus님 안 그래도 이사할 때 책 많으면 정말 힘들다면서요. 저는 게다가 정리도 잘 안 되어 있어서. 아저씨들이 알아서 구멍구멍마다 잘 꽂아 놓으셨더라구요. 찾기는 힘든데 되레 정리가 되더라니까요. 안그래도 그래서 책을 사기 전에 조금씩 주저하게 됩니다. 이사를 겪어 보니 참 부담스럽더라구요.

카스피 2011-01-2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날 이사하셨네요.고생이 많으셨겠네요.새로운 집에세 아가와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당^^

blanca 2011-01-25 22:5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아이는 이 집이 더 좋다네요 ㅋㅋ 몸고생은 아저씨들이 다 하셨고 저는 맘고생을 좀 많이 했답니다.

꿈꾸는섬 2011-0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추운날 이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저도 이사하는 날의 그 쓸쓸한 감정을 알아요.ㅜㅜ
게다가 박완서 선생님 소식은 더더욱 가슴 아픈 일이죠.
전 요새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읽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이 글 쓰시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ㅜㅜ

blanca 2011-01-27 18:47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 책 읽고 계시군요. 이사는 하기 전보다는 지금 맘이 더 정리되고 무언가 할 일을 한 것 같아 가뿐한 느낌도 있고 그래요.약간 낯선 느낌도 있지만요. 책을 통 못 읽네요.

세실 2011-01-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는 참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도 교차하지요. 저도 슬슬 떠날때가 되었는데....ㅋ
두부 음 집에 있을듯한데 찾아봐야 겠습니다.
전 박완서 작가님 책중 '그남자네 집'이 참 좋았어요.

blanca 2011-01-29 23:44   좋아요 0 | URL
세실님, '그 남자네 집' 저도 참 좋아해요. 우연찮게 그 남자네 집이 저희 집 근처이기도 했구요^^;; 갑작스레 알고는 다시 읽어 보기도 했답니다. 역시나 좋더라구요.

2011-01-28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9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저는 아직도

문 앞에서 나를 맞아 주던 봄 바람.

고개를 젖히면 조각처럼 보이는 하늘.

사계절 마당을 늘 어슬렁 거리던 고양이.

수줍게 바람에 흔들리던 이름 모를 식물들.


이런 것들이 아른거려요. 사진에 담으면 잊을까, 마음에 새기고 왔습니다. 마음에 새기니 더 기억에 꺼내기가 쉽네요.
이사는 끝나셨겠지만 마음은 아직 그자리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툭툭.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만 여전이 조금은 바지에 묻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요.

blanca 2011-01-29 23:50   좋아요 0 | URL
혹 유년 시절의 집 얘기인지요. 바람결님 같은 집에 대한 기억을 저도 가지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없어요. 지금도 가슴이 조금씩 저릿해요. 상황에 밀려 이렇게 되어 더 그런가 봐요. 작지만 아주 따사로운 집이었는데.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