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상찬을 바치는 작품이 있다. 유명인들이 추천 도서 목록 고전에 거의 반드시 올리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죽음을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얘기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메시지까지 싸안고 있는 그 책.

별 다섯 개가 거개인 리뷰를 몇십 개를 달고 있는 소설도 흔치 않다. 그것도 고전중에. 그러니 나는 언제나 항상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그리고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그 독특하고 유머러스하고 야하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그 남미의 문학 특유의 분위기에 완전히 중독되어 남미 작가들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며(고작 두 권 읽고) 이 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폭염과 더불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같은 이름이 몇 대에 걸쳐 반복되고 죽었다 살아나고 이모랑 했는지 여동생이랑 했는지를 헷갈리는 등장인물과 더불어 완전히 미로를 땀을 뻘뻘 흘리며 헤매다 끝나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적을 자격이 없다. 일단 성실하지 않은 독서였고 그 마술적 리얼리즘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은 딱딱한 감수성을 견지했으며 근친상간이 가지는 더 큰 문학적, 예술적 은유를 떠올리지 못했으니 이 책을 논하지 못하겠다.
다만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독특했고 기묘했고 매력적이었다는 것만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필코 시원한 바람이 불면 다시 제대로 이 책에 빠져보리라. 이 책은 딱딱하고 까칠한 눈으로는 절대로 온전하게 즐길 수 없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남미에는 아주 독특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주며 잘 먹는 나를 흡족해하며 지갑을 털어댔던 절친은 지금 베네수엘라에 가 있다. 그녀는 과테말라에 있다 베네수엘라로 가며 미스 베네수엘라가 되겠다고 싸이의 대문글에 적었다. 그 독특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를 떠올리며 남미의 그 문화에 한 번 젖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복날 우리 가족은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허름하고 무뚝뚝한 그 작은 칼국수집에 근처 대학교의 농구팀 비슷한 젊은 청년들이 대거 들어서자 그 무뚝뚝하던 종업원 아줌마는 그간 본적 없던 애교와 너스레를 발휘하셨다. 정말 친절하셨다. 싸인 한 장씩 해달라고 세 번 반복하시며.
분홍공주님은 아예 그쪽으로 돌아앉아 한참 그 오라버니들을 완상하시더니 돌아앉아 갑자기 음흉하게 웃는다.
그건 분명 아주 의미있는 웃음이었다.
그렇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남자들은 여자들을 좋아한다. <백년의 고독>도 결국은 그런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