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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평점 :
"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여정. 그 이름은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고향,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나의 고장",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교외의 도시 랭스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자 자기 고백서이지만 사적인 자기 고백록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정체성 자체를 문학, 이론, 정치의 필터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여 공적인 담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경이로운 역작이다. 이런 유형의 책을 지금까지 경험해본 기억이 없다. 새롭고 혁명적인 방식의 오토픽션은 놀랍게도 십 년도 전에 나온 아버지 연배의 작가의 저작이었다. 그럼에도 이 읽기는 나를 뒤흔드는 차원의 것이었다. '나'와 내가 떠나온 '가족'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객관화된 탐사의 여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계급 탈주자
중세, 근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계급 탈주라는 개념은 공명한다. 디디에 에리봉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대학교수이자 사회학자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차마 "사회관계자본"이라 여길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의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육체 노동은 그가 "몽테규나 발자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에밀 졸라 책은 읽어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에밀 졸라풍"이라 묘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떠나온 랭스로 돌아가 자신이 스스로를 발명해내야 하고 구축해야 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복기, 복원한다. 이 탐사의 미덕은 지독한 솔직함이다. 그는 스스로를 기꺼이 극단까지 해체한다. 자신의 위선과 위악과 속물성을 가감없이 언어화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은 내도록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아는 척도 드러내어 놓고 싶지도 않은 가족들. 그러나 그런 가족들의 위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명이었다는 깨달음은 그가 끝내 그들과 제대로 화해하지 않은 사실로 봉합되지 않는 부분을 저격한다. 정치적으로 노동자의 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키는 노동자들이 싫었다는 고백이 디디에 에리봉을 끌어내리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끝내 발화되지 않은 진실 속에 내재된 역설적 진실을 발견한다. 머리와 언어로 소외된 자들 편에 서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 그들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지 뼛속까지 알기에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가지는 함의는 횡행하는 공허한 입장 표명이 가지는 그 무력하고 가식적인 정치적 행동의 병폐를 일깨운다.
너 같은 사람들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저자의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이다. 계급 정체성과 교차하는 이 정체성은 그의 모욕으로서의 역사다. 나는 동성애자들이 과거에 그렇게 많은 폭력과 모독과 모욕에 노출되는 위험 속에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들을 뚫고 스스로를 재발명해야 하는 그 사회를 지칭할 마땅한 언어도 없이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박했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는 그 성적 정체성을 제대로 명명할 언어조차 차마 동원하지 못해 "너 같은 사람들"이라는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를 가져온다. 그것은 그의 사회적 계급과 더불어 그의 "복수의 예속화 양태들"을 양산한다. 이 두 가지 예속화의 여정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탈주자이자 재창조된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해야 했던 저자의 여정은 분명 그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도 나의 과거와 성장과정, 내가 떠나온 고장을 다른 차원에서 돌아보게 하는 획기적 전기로서의 전범으로 작용했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기까지 통과해 온 경험들을 재조명하며 나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외부적 작용의 결과였음을 깨닫고 아연해졌다. 나를 만는 것은 비단 내가 아니었다. 모든 성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정이지만 동시에 공적이고 구조적인 산물이기도 하다는 그 자명한 진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비단 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읽는 자들 모두의 회고록으로 변환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심오한 성찰의 열린 오토픽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따라서 우리는 표명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표명되고 재창조된다.
-p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