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을 나가고 난 후 스스로 교사가 될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중학생 아이들과 생각보다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수업에 대한 열정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던가 확신이 안 선다. 아이들과 어쩌면 함께 했을 수도 있을 교실에서의 수업의 정경을 떠올리게 된다. 같이 읽고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지금은 짐작하기 힘든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어렵고 생각대로 안 되고 때로는 상처 받고 실망하고 무력감에 휩싸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십대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들의 이야기인데 이 둘의 현장은 외형적으로 사뭇 다르다. <우리들의 문학시간>은 과학고이고 <소년을 읽다>는 소년원이다. 한곳은 <코스모스>를 읽고 교사보다 더 쉽게 이해하는 아이들이 영재 교육을 받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열일곱 살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소년이 교사에게 인사하기 위해 간이 교실에 자유롭게 들어오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만화책도 소유하지 못하는 곳이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들의 공통점은 십대라는 연령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이 두 공간을 가로지르는 공감의 지대에서 두 공간의 십대들은 만난다. 좋은 글을 읽고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편견은 와르르 무너진다. 윤동주의 시에 모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년원 친구들은 줄줄 암송해 내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순수했다. 좋은 글 앞에서.
<소년을 읽다>를 읽다 자주 가슴이 아렸다. 분명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가는 곳이다. 범죄에는 분명 피해자가 존재한다. 그들을 의식한다면 이 소년들의 국어 수업을 그저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독방에서 시엽서의 시를 암송하며 시간을 보내고 책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에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발표하고 십대의 아이들이 택배 상하차를 다룬 이야기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풍경은 이 소년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아이이고 싶은데 아이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감히 상상해 본다. 일찍부터 친절하지 않았던 세상, 소년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먼저 강요하는 곳에서 재판으로 넘어온 경계의 이편에서 저자는 아이들을 만난다. 저자 또한 자신 앞에 있는 이 소년들의 열중하는 눈망울과 그 뒤안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좋은 삶과 좋은 읽기를 가르치는 일이 가지는 궁극의 의미에 대한 불확실성과도 닿아 있는 이야기다. 이곳의 아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지만 그 세상은 그 아이가 떠나왔던 이 곳에 오기 직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이것은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사는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는 데 분명 우호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암울한 전망과 현실로 여기에서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일은 어떤 관성처럼 아이들을 옭아맨다.
금요일마다 만나서 소년들과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꽉 찬 시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에 쌓이고 있을까. 강 하구에 퇴적물처럼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가, 바다로 흘러가는 어귀에서 새로운 물길을 만나게 될까. 아니면 도로 옆에 쌓인 흙먼지처럼 풀꽃 위에 잠시 머물다가 , 휙 지나가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말까. 사라져버리고 말까.
-서현숙 <소년을 읽다>
실제 일 년 동안의 수업일기는 대단한 성취나 거창한 감동의 결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극적으로 교화되어 근사한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도 없다. 대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해주어 감사하다며 선생님에게 커피 두 잔의 기프티콘을 보내오고 선생님 건강하라고 안부 전화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담담한 장면들의 울림이 한층 더 크다. 사람을 믿지 않았던 아이들이 자신들과 일주일에 한번 책을 읽고 때로 짜장면을 사주었던 선생님의 건강을 신경쓰고 누군가와 함께 선생님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까지의 여정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읽는 일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나는 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함께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나누며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기억의 한 자락을 점유하게 되는 일은 분명 헤아리기 힘든 질량과 질감을 가지는 시간일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부럽다. 그것이 세상의 풍파를 만나 깎이고 때로 스러진다 해도 거기 그렇게 한 구석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가지게 될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