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역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움이나 연민이 아닌 사랑과 이해로, 또 지혜로움으로까지 받아들여짐은 나이탓일까.

소설의 매력일게다.

 

1960년생. 전직 치과의사, 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의 작가였던 위화가 시대착오적(?)인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인가. 신선한 휴머니즘의 완벽함인가.

 

19살 근룡이는 허삼관에게 진지한, 자신이 터득한 삶의 방법을 일깨워준다.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구요. 땅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

 

결국 허삼관의 피는 부인과 세 아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요, 돈이라는 삶의 등식을 이루게 된다. 피를 팔아 얻은 아내 허옥란이 낳은 첫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았을 때 부자간의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드러내는 끈끈한 부정애.

둘째 아들 이락이의 귀가를 위해 피판 돈으로 책임자에게 극진한 대접과 술상대를 해주어야하는 비굴함과 허약함, 단순한 슬픔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비애가 소설 전체에 깔려있으나 너무나 인간적인 살아가는 방식에 내가 오히려 빈곤함을 느끼게 된다.

 

부부간의 대화를 다시 들추어 본다.

허옥란은 5년 동안 아들 셋을 낳았는데 각각 허일락, 허이락, 허삼락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루는 삼락이가 13개월이 되었을 때 허옥란이 허삼관의 귀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당신은 바깥에서 희희낙락 했겠다?”

난 웃은 적 없어. 좀 희죽댔을 뿐이지. 소리를 내서 웃은 적은 없다구.”

아이야.” 허옥란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니까 아들을 일락, 이락, 삼락이지.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세 번 즐거웠다는 거 아냐?”

 

희비극의 삶을 거치며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조금 더 나은 생의 길을 가고 있다. 노부부가 된 그들이 젊어서 피를 팔고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따뜻이 데운 황주를 먹으러 가는 모습이 왜 그리도 윤택하게 느껴지는지.

 

허삼간이 근엄하게 내뱉는 자신의 평등관 한 마디.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라는거라구.”

 

한편의 철 지난 중국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가슴 언저리를 떠나지 않는 인물들-일락이의 생부인 하소용과 아내, 임분방 부부, 방철장, 피 팔러 갔다가 물을 많이 마셔 오줌보가 터져 죽은 방씨, 과로와 영양 실조로 죽은 근룡-에게 느꼈던 뭉클하게 번지는 아리함을 단순히 연민이라고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50을 넘겨 살면서 무의 속에서 가리워졌던 내 인생의 그림자를, 내 생애 중 가장 깊은 나락의 늪을 고독하게 넘기고있는 이 때 허삼관을 보면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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