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줄거리는 비록 한 쪽에 불과할 1980년대의 농촌 이야기. 게다가 모든 이들의 대화가 농도 짙은 사투리와 말장난을 나열한 듯한 대사로 짜증이 나 몇 차례 책장을 덮기도 했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문장, 외국어 한 마디가 오히려 납득이 빠른 간결한 문체에 익숙한 터라 너절한 넋두리를 참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이문구라는 대작가에 대한 예의로 인내를 거듭한 결과 큰 수확을 얻어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애환과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진득함,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 보듬어주고 감싸 안기 위한 지혜가 이런 표현과 비유를 생산케 했으리라.

 

직설적이고 솔직함이 경박함으로 치부되었던 조상들의 시대에서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을 앞세워야 했고 맹렬한 비판이야말로 뜨거운 의지를 담고 있었음이리라.

 

촌사람 이문구는 우리말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매끄러운 문장을 마다했다.

읽어낼수록 우러나는 농축된 표현들을 기록해두고 기억하고 새겨보고자 한다. 감히 활용할 수조차 있다면 말의 달인이 되겠지.

 

아들 교육을 핑계로 이미 서울로 가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 응두, 농촌을 뜨고 싶어 틈틈이 서울을 기웃거리는 작은 아들 영두.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이 두 자식을 둔 문정(文正 : 이 마을의 터줏대감 이 씨는 자신을 그리 칭하기로 스스로 정했다.)은 특별한 낙 없이 빠듯하게 살아가는 육순의 노인이다.

산 너머 남촌의 줄거리는 이 노인이 친구 심 씨의 아들 의곤이를 다방에서 처음 만난 처녀 하양과 맺어주려는 계획에 착수하는 것, 이것이 300페이지를 채우는 모두이다.

나머지를 차지하는 진한 토속어 속담들이 풍부하게 등장인물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려고 주제넘은 궁리를 하다.

지게를 져도 서울 지게가 가볍다고 기어 올라 갔으니 올라서나 자빠지나 다 제할 탓인즉 두메 고뿔이 서울 몸살더러 환약 써라 탕약 써라 할 일이 아니다.

그건 또 육개장에 보리밥 마는 소리냐

아무리 이물스럽기가 이무기 손위라도 유만부득이지 그 모로 닮은 빨래판 같은 상판에 사람 음식 들어가는 입으로 짐승 다음 가는 소리만 아갈거리던 화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까치 소리가 까마귀 소리로 들려.

농지 개량한 논 팔아 수리조합 봇물을 산폭이니 늙게 집세기 신고 산길 걷게 된 따분한 신세.

송아지 주고 강아지 얻은 턱이지.

그래 봤자 엄지 손가락으로 새끼 손가락 할퀴는 격이지.

웬 여자가 남의 왕십리로 넘어가는겨.

날 잡은 사람이 자루 잡은 사람을 당할 수 있나.

그 하면 된다는 생각은 뒀다가 애 낳고 싶은 때나 하고.... 나도 설악산 지리산에서 밥 해먹고 동해 바다 서해 바다에서 멱감은 사람이여.

이 노인네가 겉만 두붓모지, 속은 떫고 검은 게 도토리묵이네.

겨울바람 버릇없고, 여름비 염치없다고, 하늘 하나 쳐다보고 사는 사람이 삽을 먼저 집어야 할지 쇠스랑을 먼저 들어야 할지.

살찐 사람 따라서 부으라는 말 같네. 타령은 들을만 하더니 후렴이 틀렸구먼.

쇠고기는 본처 맛이고 돼지고기는 애첩 맛이라.

저녁달에 못 꿴 바늘귀 새벽달에 꿰라 싶어

죄진 듯이 빌고 빚진 듯이 달래도 소용없다.

가랑비에 우산을 써도 발목은 젖고, 뙤약볕에 양산을 써도 손목은 그슬리기 마련.

이삭 주어다가 씨하는 집 봤남.

음식을 만들 때는 생전 선 씻는 법 모르다가도 돈만 보면 앞치마에 손부터 훔치고 나서는 주인 마누라가 밉살스러워서

가던 길에 달 뜨면 이태백 생각나고, 오던 길에 처녀 보면 국수 생각나는 게 田家野情인데

선을 어디 한두 번 봤나요. 점심시간에 우동을 먹을까 하며 중국집에 들어가는 정돈걸요.

무슨 흥정이던 맨입보다 축인 입이요, 차 마신 입보다 밥 먹은 입이 뒷맛이 있으며 처음에 먹고 들어가야 나중에 먹고 떨어진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른 것.

돼지고기가 풍기를 돕는다는 건 항설이 낭설이라는 게 정설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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