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어렸을 때의 경애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아랫목에 깔린 조각 이불에 두 손 두 발을 붇고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편안하고, 느긋하고 느릿느릿 이어지는 진진한 옛이야기들.

그래설라무네(그래서)”의 토를 다는 순간은 한 박자 휴식 시간이다. 재빠르게 입에 고인 침도 삼키고 쥐나는 다리도 고쳐앉고, 엄마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짓을 한다. ‘들어가 공부하라는 경고다. 한 주먹만 하게 삐져나온 두 입술 사이에서 힘들이지 않고 풀어내는 겪은 전쟁 이야기는.....

 

70년대가 배경이었던 감칠맛 나는 꽁트집인 셈이다. 우리 올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그가 내 이웃에 살았다면 나조차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았을는지.

 

그때 그 사람의 주인공 상철은 마치 대학 동창 경희의 오빠 같다. 김자옥의 화사한 미소, 남정임의 깜찍함을 겸비한 신부감을 찾더니 놀러가서 본 올케언니는 맨발에 오빠의 런닝셔츠를 걸쳐 입고 마루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른 꽃잎의 추억네 편은 그녀가 처녀 때 받아 두었던 책갈피의 주인공들을 우연히 접하면서 번번히 깨어지는 낭만이 속살 드러내듯 그려지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앟은 음모역시 4편으로 쓰여 있다. 자식의 합방을 원치않는 분희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여기서는 가슴앓이의 증상으로 표현된다.), 직장 여성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맞서는 분희의 딸 후남이 여성의 서러움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일식(日蝕): 아들 에 대한 부모의 엇나간 애정과 기대, 빗나간 자식조차 잠시동안의 태양의 일식 증상으로 간주,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의 칼같은 아픔이 욱에게 비로소 자각을 갖게 한다.

 

죽순같이 뻗어 올라간 아파트 구멍 구멍마다의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땅집에서 살아요, 아파트 부부, 열쇠 가장, 이민 가는 맷돌, 할머니는 우리 편, 꿈은 사라지고,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삼박 사일간의 외출등에서 허탈한 웃음 가슴을 따뜻이 해주는 미소, ‘그럼 그렇지의 감탄사를 불러내는 기막힌 사연들을 재치있게 끄집어내 백지 위에 그려내는 그녀의 재주에 다시금 존경심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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