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책자가 10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그동안 후손들이 너무 단편적으로 인식한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면모를 알고자 함이나 충무공이 갖춘 문무의 매력을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음이 아닐까 한다.

 

난중일기를 근거로 한 장군 이순신을 문학적으로 접근한 서정적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며 일기식으로 담담히 써 내려간 1년간의 기록으로 칼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듯하다.

(※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는 책이 작가 아닌 회사원에 의해 쓰여 졌다. 나약하고 인간적인 장군의 모습이나 주위의 인물, 특히 원균, 그 시대의 조정의 사정 등이 정확한 사료에 의해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삶과 죽음의 중심에 있던 무사 이순신에 적의 칼과 화살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적 허무함, 무의미함과 싸워내는 고뇌와 갈등의 전쟁터가 마치 한 폭의 서사시를 읽는 듯 하다.

칼을 찬 이순신보다 붓을 든 훈훈하고 따뜻한 시인의 모습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이순신이 자신의 입을 통해 들려준 조선 시대의 조정, 백성들의 고된 삶, 명나라의 횡포, 고독하고 암담했던 이순신의 내면적 아픔을 그대로 적어두어 외로이 감당해내는 전쟁터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명나라 군사들이 술취해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 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혼절과 혼절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임금뿐이었다. 조정은 무겁게 침묵하고 나를 죽이면 나라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나를 살린 것은 적이었고, 나는 나를 살린 적 앞으로 나아갔다.

(정유년 내용 없이 가해진 고문 후 풀려나 전지로 향하는 1597년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 죄목은 일본군을 향해 출격하라는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

 

적은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삶을 가벼이 여겼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적을 죽일 수 없었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적도 죽일 수 없었다. 적은 한사코 달려들었다. 눈보라처럼 휘날렸고 나부꼈으며 작렬했다. 적이 죽기를 원하는지 살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는 물러섰고, 우회했고, 분산했다.

 

나는 적들의 칼에 새겨진 녹슨 글자들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적의 장군 가토의 칼 )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에 젖는구나

 

청춘의 날들은 흩어져가고

널린 백골위에 사쿠라 꽃잎 날리네.

 

내 젊은 적들은 찌르고 베는 시심가들이었다. 적들의 문장은 칼을 닮아있었다.

 

적이 오지 않았고, 내가 적에게 가지 않았던 기간에 임금의 유지는 이러했다. “자꾸만 적의 군대가 늘어난다하니 남쪽 바다의 장수는 무얼하고 있느냐. 바다에서 잡아야 상륙치못할 것 아니냐. 가을이 깊어가니 시름 또한 깊다. 또 한 해를 이대로 넘기려느냐.”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군사들에게 조총 훈련을 시키고 있으나 모자라고 망가진 것이 많아 막대기를 들고 총 쏘는 시늉을 하고 있다. 너는 빼앗은 왜적의 조총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 하니 그중 성한 것을 골라 서울로 보내라.(그 때 서울이라는 이 존재했을까?)

 

내륙 관아의 부패한 수령들과 아귀 다툼 해가며 군량을 모았고, 화약을 모았다. 갯벌을 막아 소금을 건져냈고, 대나무 파목으로 통발을 만들어 생선을 건져 올렸고 둔전에서 나오는 콩으로 된장 50독을 담아 양지쪽에 묻었다.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무, 배추를 소금에 절여 묻었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어서 수영 막사 담벽에 걸어 말렸다. 감 수천 개를 깎아 곶감을 만들어다 논 바닥에 내린 볏짚을 긁어모아 가마니를 짰고, 노란 가마니를 뒤집어쓴 수영 막사들은 초가집처럼 평화로왔다. 옥수수 술을 만들었다.

장졸들의 옷을 벗겨 끓는 물에 삶았고 머리를 잿물에 감게 했다. 훈련이 없고 작업이 없는 날 시래기 다발이 걸린 박사 담벽에 기대앉아 이를 잡았다. 군량 창고에 쥐 떼들이 들끓어 백성들의 고양이 10마리를 빌려왔다.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있었다. 쌀 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아리를 생각했다. 나를 닮아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빨아올리듯 훑어내는 면의 눈동자를 생각했다.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감당키 어려웠다. 송장으로 뒤덮힌 쓰러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새벽 바다의 비린 안개 속에서 때때로 죽은 여진의 몸 냄새를 생각했다 그 냄새가 평화인지 싸움인지 분별할 수 없으나 ᄊᆞ움과 평화의 구분을 넘어서 살아있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여진의 몸속은 평화롭고 뜨거웠다. 섬진강 물가의 벼려진 농가 토방에서 여진을 품었을 때 산 것이 산 것을 부르는 부름의 방식으로 이 기약 없는 전쟁이 끝나주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여진의 몸속에서만 유효한 바람이었다. 여진의 울음은 그 몸속의 세상이 몸 밖의 세상을 견디지 못해 우는 울음 같았다. 죽은 여진의 몸 냄새는 새벽 안개의 비린내에 실려 내 마음속을 흘러다녔다.

 

임금은 자주 울었다. 압록강 물가에서 우는 울음은 관리들의 입으로 퍼져 남쪽 바다까지 들렸다. “성룡아, 두수야,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임금은 중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개성을 버릴 때도 울었고, 평양을 버릴 때도 울었다.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던 이순신은 이렇게 고요 속을 빠져들어갔다. 159811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 뒤에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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